내 고향 방문기
나의 고향은 충남 청양군 장평면이다. 지난 20일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청양군의 의병활동에 대한 학술행사의 토론 사회자로 초청되어 집식구와 함께 가기로 했다. 지금까지 가사에만 매달려온 집식구와 고향나들이 겸 여행을 하려고 계획했다.
내 고향에는 우선 부모님의 산소가 있어 가는 길에 들려서 술이나 한잔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고향은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죽어서도 묻힐 곳이기 때문에 고향 생각은 더욱 끈끈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일년에 두 세 번씩 가는 고향이지만 아내와 함께 간다는 것이 더욱 뜻 깊은 것이었다. 이는 나의 고향일뿐 아내의 고향이라는 생각을 가지기에는 아직 정이 덜 들었기 때문이다. 전날 산소에 올릴 간단한 제물을 준비하게 하고 아침 5시에 일어나 신문을 읽고 아침밥을 먹고 8시에 출발했다. 혼자간다면 버스를 타고도 갈 수 있지만 부모님 산소를 들려야겠다는 생각과 모처럼 여행을 간다는 계획으로 차를 가지고 떠났다.
나는 부모님을 뵙는다는 생각에 중간에 쉬지 않고 줄곧 자동차를 달려두 시간 만에 도착했다. 묘소는 7남매의 다들 딸과 30여명의 손자손녀 등을 두었건만 돌아가셨다고 자주 찾아뵙지 못하기 때문에 올라는 입구에는 봄새 자란 잡초가 욱어져 있었고. 산소의 봉분에는 잡초가 나 있어 죄송하다는 생각을 하고 우리는 준비해간 자리를 깔고 준비해간 술을 한 잔씩 올리고 절을 하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긴 사연을 아뢴다는 마음으로 속으로 고하고 두 번 절을 올렸다. 옆에 모신 장형의 묘소에도 술을 올렸다. 백일홍 나무는 아직 잎이 피지 않아서 마치 죽은 것 같았으나 이는 대단히 늦게 잎이 돋아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있었지만 봉분위의 잡초를 뜯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없었다. 이곳에는 앞으로 우리도 묻히고 자손들도 함께 모일 지하 납골당이 설치되어 있다.
우리는 산소를 나와 장평면 사무소가 있는 곳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사촌여동생을 들어가 만났다.
여동생으로부터 고향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 종중 임원이 현장에 와서 보고 설계사무소에 재실 설계를 내려고 했는데 허가가 안난다고 하는 말이며, 장질녀가 어제 전화를 해서 지나간 할머니 이야기를 쓸데 없이 한다는 말과 그리고 창원언니가 2년 후 이혼을 하고 이곳으로 와서 살고 싶다고 한다면서 집안에 누구 누구 등등이 아주 비슷비슷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낙지리를 거쳐 회의 전에 점심을 약속한 장소에 갔다. 가는 길은 내가 자란 마을 낙지리를 거치는데 가면서 옛날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그리고 까치내를 지나 고려시대의 유명한 사찰인 칠깁산에 있는 장곡사를 비켜 지나 30분만에 청양읍내에 도착했다. 발표자들이 모이기로 한 약속된 음식점에 가서 점심식사를 한 다음 발표장인 청양예술문화회관으로 갔다. 2시가 되니까 이종매부이면서 동창인 이응선씨와 중학교 동창인 신영남, 황인세가 와서 만났다. 이응선씨는 두 번이나 전화를 해서 청양 모임에 오겠다고 언약했고, 저녁에 자기 집에 가자고 했다.
고향에서 우리집에 와서 자라고 하는 친구나 인척이 있다는 것이 고향의 깊은 맛을 갖게 한다. 곽호제, 박민영, 김상기,이성우 박사가 발표를 하고 토론예정자를 모아 좌담회를 가졌다. 그 과정에서 청양은 독립유공자가 172명이나 되어 인구비율로 보면 전국에서 안동 다음가는 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도 제기되었다. 또한 청양은 백제가 멸망하였을 때 우리나라 최초의 의병을 일으켜 투쟁한 두륜성이야기도 나왔다. 연구자들의 앞으로의 연구는 현장과 연계되어 이야기로 꾸밀 수 있는 연구가 되어야 한다고 결론짓고, 역사가 과거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이를 현재와 미래에 연계시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나는 강조했다. 5시 30분에 모두 마치고 헤여졌다. 이응선씨에게는 우리가 갈 곳이 있다고 말하고 작별했다. 우리는 많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친구가 있어 고향의 맛을 진하게 느끼게 했다. 우리는 40여년의 결혼생활을 하였으나 고향에 대하여 같은 정서를 만들지 못한 점이 후회스럽다. 우리는 서천의 끝자락인 서면 마량포에 와서 서산회관에서 쭈꾸미 볶음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옆의 민박에 숙소를 정했다. 바닷물이 밀려 저만큼 물러 났다. 밤 12시 경에 나가보니 갯벌이 바닷물로 가득차 파도가 출렁이고 있었다.
밤중에 나는 4촌여 동생이 2년후 이혼을 결심하고 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 12시 20분에 잠을 깬 후 밤새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그 사촌 여동생은 사철하고 야무져서 그렇게 평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6시에 일어나서 갯벌을 걸었고, 홍원항에 가서 어시장을 둘러보고 낙시터에까지 둘러보았다. 아침을 먹고 국립생태원에 가서 구경을 하고 12시에 다시 공주행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