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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네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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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진귀, 신귀,고귀한) 스크랩 원수의 딸과 부부 인연을 맺은 사나이
쥔장 추천 0 조회 162 10.11.04 15: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세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


김종서는 수양대군의 수하로 부터 철퇴를 맞고 피살되었으며 그의 아들들도 모두 죽임을 당했으나 운좋게도 손자 중의 한명만이 어찌어찌하여 살아 남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 한명회가 수양대군에게 보고하지만 수양대군은 그를 살려두라고 명함으로써 김종서 가문은 대를 끊기는 비극만은 면하게 된다. 이는 아마도 충신을 격살한데 대한 수양대군의 마지막 양심이었던 듯...

그러나 이 김종서의 손자와 세조의 딸이 서로 우연히 만나 부부로서의 연을 맺어 살게 됐다는 야사가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세조에게는 딸을 하나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덕성이 갸륵하고 총명할 뿐 아니라 사리 판단이 곧고 정확해서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아버지 수양대군이 한바탕 피보라를 일으키고 왕권을 찬탈하여 즉위하니 그 딸은 자연히 공주로 신분이 격상되었다. 그러나 공주는 그와 같은 도리에 어긋난 광영을 조금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왕의 처사를 부끄럽게 여겼다.

정권욕에 눈이 어두워 친조카인 왕과 충신들을 무참히 척살했을 뿐 아니라 피를 나눈 형제들까지 마구 죽였으니 어찌 인륜으로서 그럴 수 있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통탄한 나머지 식음을 전폐하며 기회 있을 때마다 부왕에게 그 부당함을 눈물로써 탄원 했다.

세조도 처음에는 민망한 생각으로 딱한 표정을 지으며 공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으나 그런 호소가 자꾸 거듭되자 자격지심이 발동하여 화가 치밀었다.

부녀간의 애틋한 정이 차츰 식어 껄끄러운 관계로 변한 것이다. 그러던 중에 세조가 단종의 모후인 권씨가 묻힌 소능을 파헤쳐 백골을 강물에 띄워 버리는 잔인한 짓을 하자 부왕 앞에 나아가
"아바마마, 어찌 이런 무참한 짓을 하나이까. 다 썩은 백골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십니까."하고 울면서 항의했다.

마침내 세조는 노발대발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린 년이 무얼 안다고 감히 그런 무엄한 소리를 지껄이느냐! 사사롭게는 아버지요 나라로 보면 임금인 나에게 불경스럽게 대드는 것을 보니 너는 아무래도 죽고 싶어 환장을 한 모양이구나. 꼴도 보기 싫으니 물러가서 처분을 기다리라!"며 불같이 노했다.

그렇게 되자 누구보다 고통을 느낀 사람이 중전인 정희왕후였다. 남편의 좆같은 성질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중전은 자칫하다가 사랑하는 딸을 잃게 될까 노심초사하였다.

그래서 중전은 황급히 공주의 유모를 불러 은밀히 지시했다.
"상감의 진노가 저럴진대 븐명 내 눈앞에서 딸자식이 죽는 꼴을 보게 생겼네. 그러니 자네가 공주를 몰래 모시고 나가서 목숨을 부지하도록 보살펴 주게나" 하면서 얼마간의 보화를 싸서 유모한테 주었다.

모녀가 눈물로 이별을 서러워한 뒤 공주는 유모를 따라서 몰래 궁귈을 빠져나와 정처없는 도망길에 나섰다. 공주를 피신시킨 중전은 세조한테 공주가 부왕의 꾸중을 듣고 상심하여 몹시 앓아 누웠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뒤미처 공주가 끝내 죽었다고 소문을 내었다.

두 사람은 고생고생하면서 어느덧 충청도 보은 속리산 근처에까지 다다랐다. 약한 다리로 4백 리를 걸은 데다 서울에서 어느 정도 멀리 도망쳐 나오고 보니 마침내 기진맥진하여 한 발짝도 더 내디딜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마침 그때, 산길 아래쪽으로부터 웬 떠거머리 총각 하나가 지게를 지고 올라오다가 두 사람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서
"여보게, 총각. 우리 모녀가 너무 먼 길에 지친 데다 배도 고파서 옴짝달싹도 못할 지경이니 좀 도와 줄 수 없겠나. 그 보답은 톡톡히 하겠네."
라며 유모가 간곡히 애원하자 총각이 말했다.

"마나님이나 저 어여쁜 아가씨를 보아하니 시골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로 이런 궁벽한 곳까지 오셔서 고생하십니까?"
"우리는 서울사람인데, 집안 난리를 만나 도망치는 길이라네‥‥"
"집안 난리라구요?"
"뼈아픈 사연일랑 묻지 말게나. 여북하면 우리 모녀가 이런 꼴로 여기까지 흘러 왔겠는가."

유모가 울먹이며 말하자, 총각은 웬일인지 한동안 말이 없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고,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마님의 사정도 참 딱하십니다. 사실은 저 역시 서을 사대부집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집안의 화를 피해 이렇게 도망와서 벌써 이태나 숨어살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동병상련으로라도 우리 모녀를 도와 주시게나‥‥"
"알겠습니다. 저는 저 위의 토굴 속에 살고 있는데,오늘 나뭇짐을 장에 갖다 팔고 곡식을 조금 사서 돌아가던 길이랍니다. 두 분만 괜찮으시다면 거기서 하룻밤 쉬었다 떠나시지요"

그렇게 해서 공주와 유모는 총각의 토굴에 도착하여 요기를 하고 잠자리를 얻어 눕게 되었는데, 너무나 고생한끝에 모처럼 긴장이 풀리고 보니 공주는 그만 신열이 들어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웠다. 그렇게 되니 날이 밝아도 일어나서 길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어딘가 목적지가 있어 급히 가던 길도 아니었으므로, 공주와 유모는 할 수 없이 총각의 토굴에 더 머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냈어도 공주의 건강은 회복되지 않아 언제 다시 길을 떠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유모는 할 수없이 총각을 불러 말했다.

"딸아이는 저렇게 기동을 못할 지경이고, 그렇다고 총각의 형편도 넉넉하지 못한데 언제까지 식량을 축낼 수도 없으니 이를 어쩌겠나. 마침 나한테 돈이 될 만한 물건이 약간 있으니 그걸 가지고가서 적당한 값에 팔아 약도 좀 짓고 양식도 충분히 장만해 오시게"

그러면서 패물 한두 가지를 내놓았다. 그리하여 비교적 후한 값에 물품을 처분해서 약을 짓고 식량을 사들고는 부리나케 돌아왔다. 약을 다려 먹은 공주는 가까스로 기운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 났는데, 젊은 남녀간의 감정 교감은 오묘하기 짝이 없어서 총각과 공주 사이에는 어느덧 뜨거운 시선이 몰래 오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사주단자와 납폐가 오가고 육례를 갖출 사이도 없이 부부의 인연을 맺고 말았다.

그제야 공주는 총각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
"이제 우리가 하늘 아래 갈라설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으니 피차 무엇을 숨길 필요가 있겠습니까. 먼저 서방님부터 가슴에 맺힌 이야기를 털어놓으십시오."

공주로부터 그런 요구를 들은 총각은 눈물을 흘리며 자기 내력을 고백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공주와 유모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총각은 선왕 단종이 즉위하던 해 세조 일파의 철퇴에 맞아죽은 길종서치 손자였다. 할아버지뿐만아니라 아니라 아버지 김승규까지 무참하게 살해되고 온 집안이 풍비박산될 때 어린 혼자의 힘으로는 원수를 잡기는커녕 자기 목숨마저 부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차라리 종적을 감추어 집안 혈통이나 보전하여 제사나 모시다가 기회가 오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불명예를 벗겨 드려야겠다고 생각하여 혼자 도망쳐 그곳까지 흘러왔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소문을 들으니 기어코 단종이 폐위되고 사육신이 참살당했을 뿐 아니라, 급기야 폐주(廢主) 단종마저 비명의 화를 입고 말았다 하지 않는가. 절망한 그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토굴을 거처삼아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고 가까운 마을에 내려가서 날품도 팔아 근근히 생활해 오던 중에 두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자기와 백년가약을 맺은 여자가 원수의 딸인 줄 꿈엔들 상상이나 했으랴.

자기 고백을 듣는 아내와 장모가 목을 놓아 우는 것을 보고 김총각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슴에 맺힌 한이 너무나 커서 생각만 해도 피눈물이 흐르오마는, 두 분은 어찌하여 그렇게까지 슬피 우시오?"

그제서야 공주가 자기 신분과 도주의 사연을 털어놓으니 김 총각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너무나 기구한 운명이요 인연임을 알게 된 두 사람은 부등켜안고 통곡해 마지않았다.

한참을 울고 나서 공주가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맺어짐은 어른들 사이의 원념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해소하라는 하늘의 뜻인 줄로 압니다. 저는 이제 한낱 촌 아낙으로서 죽는 날까지 낭군님을 지성으로 모실까 하오니, 낭군님은부디 저를 배척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김 총각도 한숨을 쉬고 말했다.
"옳은 말씀이오 지나간 일을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으려니와 우리가 이미 이렇게 맺어졌으니, 하늘의 뜻을 따를 수밖에."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서로를 위로하며 변함없는 사랑으로 평생을 함께 하기로 맹세했다. 그리고는 김서방은 공주가 궁궐을 떠나면서 가져온 패물을 슬금슬금 팔아 속리산 밑에 집도 짓고 논밭도 장만하여 비록 크고 넉넉하지는 않으나 사람다운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귀여운 자식이 3남매나 태어났고 어머니처럼 의지하던 유모는 세상을 떠났다.

세조는 만년에 이를수록 지난날 자기가 저지른 죄업에 회한을 느꼈다. 더군다나 전신에 심한 피부병을 '앓게 되니 그것 역시 천벌이 내린 것이 아닌가 싶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부처님께 빌어 지난 죄를 면하려고 속리산 법주사를 찾아가게 되었는데 공교롭게 도 그 행차가 김서방네 집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때 세조는 길가에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자기를 무척 닳은 것을 보고 깝짝 놀랐다. 그래서 행차를 멈추게 하고는 뒤따르는 신하를 시켜 그 아이들을 가까이 데려오라고 했다. 보면 볼수록 자기와 닮은 구석이 많고 귀여운 아이들이어서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말을 붙이고 있는데 울타리 너머에서 난데없이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것이 웬 올음소린고?"
세조가 신하에게 묻는데, 아이가 냉큼 대답했다.

"우리 엄마가 우시는 거예요"
"너희 어미가?"
"예. 아까부터 임금님 수레를 보시고는 울고 계셔요"
"그러하냐."
세조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배종하는 신하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수레에서 내려와 아이들의 집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자, 한 아낙이 버선발로 달려와 넓죽 발 앞에 엎어지며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누구며, 왜 우느냐?"
"아바마마, 죽여 주옵소서!"
"아니, 뭐라고!"
세조는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네가 누구란 말이냐?"
"불초 여식이옵니다. 지난날 아바마마께서 준엄하신 꾸지람을 내리시니, 어마마마께서는 저에게 큰 벌이 내릴까 염려하시고 유모한테 딸려 저를 피신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멀리 떠나 이곳에 이르러 죽지 못하고 오늘까지 구차한 명을 잇고 있습니다. "
"아! 네가 죽은 줄만 알았더니, 이렇게 살아 있었더란 말이냐."
세조가 탄식을 하며 딸을 부등켜안고 눈물을 흘리니 모든 신하들이 따라 울었다.

"그래, 너의 남편은 누구며, 지금 어디 있느냐?"
"놀라지 마시옵소서. 제 남편은 김종서 대감의 손자입니다."
"아니, 지금 뭐라 하였느냐."
"그분 역시 가문이 화를 당하자 피란하여 이곳에 와 있다가 우연히 저를 구출해 주어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대가(大驚)가 이쪽으로 지나가는 것을 알고 두려운 나머지 피하여 숨었나 봅니다."

세조는 하늘을 쳐다보며 깊은 회한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야 김종서인들 무슨 죄가 있겠느냐. 그 손자가 하필이면 내 사위라니, 하늘 아래 어찌 이런 기막힌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는 공주를 보고,나중에 가마와 말을 보낼 터이니 서울에 올라와 자기 곁에서 지내도록 하라고 분부했다. 이윽고 왕의 행차가 지나간 다음 집에 돌아온 김서방은 아내로부터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 한참 생각했다.

서울에 올라가면 부마로서 부귀 영화를 누릴 수 있을지는 모르나, 소위 공신이란 무리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자기를 노려될 터이니 그들한테 무슨 모함을 당하거나 자객의 손에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같은 꼴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거기에 비하면 비록 넉넉하지는 않을망정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과 더불은 민초의 삶이 얼마나 홀가분하고 행복한가.

그렇게 생각한 김 서방은 아내를 설득했다.
"데리러 오면 안 갈 도리가 없고, 안 가더라도 여기에 머물면 후에 어떤 험한 일을 당할지 모르니, 차라리 다시 몸을 숨기는 것이 어떠하오?"

그 말을 들은 공주도 찬성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튿날로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었으며 뒤늦게 서울에서 데리러 온 승지는 헛탕을 친 채 돌아가고 말았다는 얘기이다.

[손영목著- 조선왕조야록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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