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인가 KBS 역사스페셜에서 매우 특이한 주제의 방송이 있었죠.
그 내용을 추려서 제가 간략하게 재구성 해 봤습니다^^ 방송을 못 보신 분은 새로운 느낌이 들 겁니당 ㅋㅋ
금나라와 청나라 황실은 스스로 신라 왕족의 후손으로서 성이 신라 왕성 김씨라고 자기들 역사서에 기록했죠.
(방송에는 한국측 사료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만 내용이 길어지므로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 )
신라가 망한 후인 고려 초에 신라 왕족인 김씨 일단이 고려에서의 신라 부흥이 어렵게 되자 만주의 동북쪽으로 올라가 여진부락의 추장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송나라(남송)의 홍호가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10년간 머물면서 금나라 황실에 대해 쓴 《송막기문》에는
'여진 추장은 신라 사람이다. 여진 추장은 신라인에서 비롯된다.
호는 완안씨로 (여진에서의) 완안이란 한자말에서는 왕과 같다.'
라고 기록되어 있죠.
완안은 김씨를 의미합니다. 송의 악비 장군과 싸운 금의 완안올출(금나라 황제 완안 아골타의 네째 아들) 장군을 김올출이라고 하죠.
금나라의 정사인《금사(金史)》본기에는
'금나라 시조는 함보라 불리웠는데 처음에 고려에서 왔다.....
형은 아고내인데... 함께 오지 않고 고려에 머무르면서...'
라고 적었습니다.
신라 왕족인 김함보가 만주로 간 것은 신라가 고려에 나라를 바친지 얼마 되지 않는 시기였죠.
청나라 국편 공식 역사서인《흠정만주원류고》에는
'신라왕실인 김씨가 수십세를 이어왔고 금이 신라로부터 온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금나라 국호 또한 김씨 성을 취한 것이다.....만주족은 신라로부터 왔고 ....'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신라 왕실의 왕손이 이끄는 여진부족은 옛 고려(고구려, 고구려는 초기부터 국명을 고려로 불렀죠^^)의 후예들 중 고려에 속하지 못한 거란 치하의 우리 민족인 발해인을 동북쪽에서부터 통합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함께 거란을 치자고 하면서 외친 구호가 '우리 여진족과 발해인은 근본이 같은 민족입니다'였죠.
이후 거란 즉 요를 물리치면서 옛 고려의 후예인 발해인도 여진족이라 불리게 되었고 훗날엔 만주족이라고도 불리게 됩니다.
여진 초기에 여진부락이 발해인을 통합하게 되면서 고려와 잦은 접촉으로 충돌이 발생하게 되자 고려의 윤관장군은 두만강 너머 만주 동북방의 동북9성을 수복하고 길림성 공험진에 고려지경이라 새긴 고려척경비를 세웁니다.
이에 여진의 근거지로 삼았던 동북9성이 고려의 수중에 들어가자 오아속(금나라 황제 완안 아골타의 형)은 고려에 친필서신을 보냅니다.
《고려사》예종 4년,
'일찍이 저희 여진의 선조가 대방(고려)로부터 나왔으니...이 오아속 역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 옛 땅을 돌려주시면 기왓장 한 장 던지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였죠.
고려는 거란(요)이 서북쪽에 있었기에 군사를 만주 동북쪽에 주력으로 두기가 곤란한 등 관리의 어려움과 함께 여진이 같은 민족인데다 금석의 맹약을 하고 조공을 약속하므로 그 청을 허락하게 됩니다.
1115년 금황제가 된 완안 아골타는
《고려사》예종 12년,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여겨 조심스럽게 섬겨왔고…'
라는 서신을 고려에 보내기도 합니다.
금나라에게 고려는 선조들이 나온 부모의 나라였던 것이죠.
그렇게 부모의 나라 고려를 배경으로 한 금황제 아골타는
1125년 서쪽으로 진군해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 송나라의 북방 저지선인 만리장성을 넘어 바람처럼 남진합니다.
금나라 군대는 순식간에 황하를 건너 송의 수도 개봉(카이펑)으로 들이쳐
1127년 송나라 황제를 포로로 잡고 중원대륙을 한반도대륙에 병합시킵니다.
이러한 맥락이 금이 고려와 충돌하지 않은 이유인 것입니다.
금나라 즉 신라 김씨(금씨)의 나라는 후에 몽고에게 밀렸다가 아이신줘러 누루하치(애신각라 노이합적) 때 다시 중원의 명나라를 공략하여 후금 즉 청을 세우죠.
중원대륙을 금에 이어 다시 한반도대륙에 병합시킨 것이죠.
청나라 마지막 황제의 이름은 신라 김씨 김부의입니다.
아이신줘러(愛新覺羅 애신각라, 김) 푸이(溥儀 부의)
아이신줘러는 김씨를 뜻하는 만주어인데 한어로 음차할 때 신라를 넣어 신라를 잊지말자라는 뜻인 애신각라로 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죠.
금나라 황족의 후손들은 그들 조상의 비석에 성이 김씨임을 명확히 하고 있고, 청나라 황족의 후손들은 지금도 그들의 성을 김으로 적고 김이라 발음합니다.
신라와 관계된 이 내용은 우리 한국 학자들이 주장한 것이 아니라 금나라, 청나라 황제들이 한민족의 핏줄이라고 자신들의 역사서에 자신들의 주장으로 펼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즉, 우리의 선조들이 밝힌 그 뜻을 그 후예들인 우리가 구태여 외면해야할 이유가 있을런지요.
금나라, 청나라 황제들은 우리 한민족이 중국을 지배했노라고 역사서에 당당히 그 뜻을 남겨 기록했습니다.
1908년 중국 북경(베이징) 자금성에서 청나라 선통황제가 즉위합니다.
그는 중국을 지배한 청나라 마지막 황제였죠.
중국 혁명 후 1959년 그는 친일 전범자로 법정에 섭니다.
[중국 푸순 전범 재판소, 영화 '마지막 황제'의 한 장면]
"아이신줘러 푸이, 전범자 아이신줘러(愛新覺羅 애신각라, 김) 푸이(溥儀 부의) , 나이 53세, 만주족 북경 출신...."
황실은 신라 왕실의 후예 김씨였고, 정복 주체는 신라와 고구려 후예인 발해인(여진인)이었죠.
고종황제의 스승이었던 규장각 부제학을 지낸 대사성 김교헌은 금나라 ,청나라 모두 우리 한민족이 세운 나라라고 역사서에 기록하여 편찬했습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숨결을 중원에 새겨 놓은 신라 김씨의 청나라는 서양의 침탈 압박과 내치의 혼돈속에서 만주족이 세운 나라를 멸하자는 중국 한족의 멸만흥한의 혁명 앞에 패하였고, 이로써 우리 한민족의 중원 지배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중대륙을 호령하던 한대륙 대장부들, 그들은 역사 속에서 당당히 그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금나라, 청나라의 역사는 한민족이 중국을 정복하여 지배했던 역사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