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뻴라지오와 요한 엮음 / 요한 실비아 옮김 / 분도출판사
1. 작가소개
- 지은이 : 뻴라지오와 요한
이 책은 로마의 성직자였던 뻴라지오와 요한(Patrologia et Jean)이 6세기 초반에 수집하여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 ‧ 편찬한 것이다. 벨라지오와 요한이 각각 두 권으로 나누어 번역한 것이다.
- 옮긴이 : 요한 실비아
2. 간추림 또는 내 마음에 다가온 구절및 느낌
머리말
고대인은 현대인보다 훨씬 더 신중했다고 할 수 있다. 하물며 수도자들이야 사람을 피함, 침묵에의 사랑, 특히 겸손이라는 그들 소명(召命)의 근본적인 요구 때문에 월등히 더한 자제력을 지녔던 것이다. (p13)
☑ 침묵 속에서 나온 금언이기에 더 의미가 있다.
수고하지 않고 아무도 자신의 하느님을 가질 수 없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이다. (Elie 7). (p14)
☑ 하느님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위하여 수고하여야 한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침묵을 지키지만, 마음속으로는 다른 이들을 책망한다. 즉, 쉬임없이 말을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을 하지만 침묵을 지킨다. 필요없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p14)
하느님을 위하여 이야기를 하는 자는 마땅히 할 바를 다하는 사람이다. 하느님을 위하여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은 그와 마찬가지다. (Poemen 147). 사막의 교부들은 사랑이 그것을 요구할 때 이야기를 했고, 요구되는 만큼 말하지 않을 수 없곤 했다. (p15)
그들에게 있어서의 구령은 다만 지옥을 피하는 일뿐만 아니라, 현세에서 지옥으로 이끄는 모든 것, 즉 죄악 ‧ 악마 ‧ 성서적 의미의 세상도 피하는 일이었다. "구원은 영원한 지복(至福)과 아울러, 현세에서는 영혼의 건강에서 오는 평화의 낙원인 것이다." (p17)
구원을 얻기 위해 실제로 반드시 수도자가 될 필요는 없고 수도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알 필요도 없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원하시는 그 구원을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원하지 않는다면, 크리스찬일 수가 없겠다. (1디모 2,4참조) (p18)
☑ 우리의 궁극적인 바람은 구원이 되어야 한다.
그대가 구원을 열망한다면 그것으로 이끌어가는 모든 일을 행하라. (Isidore pretre 6). (p19)
디오스쿠로 교부는 "해마다 하나의 덕행 실천을 스스로 꾀하곤 했는데, 예컨대 금년에는 사람을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라든가, 금년에도 말을 하지 않겠다라든가, 과일이나 야채를 먹지 않겠다"하는 식이었다. (p23)
☑ 우리도 매년 성경 필사를 한다던지, 성경 통독을 한다든지 하는 목표를 세워 실천할 수 있겠다.
모든 행업이 다 똑같지 않은가? 성서에 이르기를, 아브라함은 친절하였다. 그런즉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 엘리아는 무념무상의 고요를 좋아했는데, 그런즉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 다윗은 겸손했는데, 그런즉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고 하니 말일세. 따라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대 영혼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보게. 그것이 바로 그대가 명심하여 행해야 할 일이라네. (P23)
☑ 하느님의 뜻에 맞추어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는 것,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저런 실천을 아무 거나 행하지 말고, 오직 하느님 당신이 우리에게 암시해 주시거나 그분의 대리자를 통해서 명하시는 것, 문자 그대로 하느님 의지의 화신으로 간주하여 사랑하고 추구하고 성취할 하나의 생활을 실천하는 것이다. (p24)
☑ 일생의 계획을 수립하여 실천하면 좋겠다.
꿀벌은 어디를 가나 꿀을 만들고, 수도자는 어디에 있으나 하느님의 역사(役事)를 실행한다. (p24)
휴식보다는 고통을, 영광보다는 굴욕을, 받기보다는 주기를 더 좋아하게.(파프누시오 교부) (p25)
영적 활동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가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하지 않은 바를 입으로 말함은 헛일이다. (p25)
☑ 소위 남에게 가르치는 사람은 명심해야할 말이다.
영혼의 수양은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니, 곧 몸의 고요함, 많은 염경기도, 다른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주목함이라네. 사람이 만약 그런 일에 항구하다면 그의 영혼은 곧 열매를 맺게 되지. (p25)
인간은 흡사 한 그루의 나무 같은 존재야. 육체노동은 그 잎새들이고 영혼 관리는 그 열매들이지. 그런데 성서에 의하면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져 불 속에 던져지는 바 되리라” 했거든.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정성은 열매, 즉 영혼 관리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함이 분명해. 그러나 잎새들의 그늘과 아름다움, 즉 육체노동도 역시 필요하지. (아가톤 교부) (p26)
연기는 꿀벌들을 몰아내고, 그들이 만든 달콤한 꿀을 없애버린다. 마찬가지로 육체의 안락은 영혼에서 주님에 대한 경의를 몰아내고 그것의 모든 선행을 박탈한다.(빠스톨 교부) (p27)
대단히 늙어있던 이시도로 교부는 그럼에도 노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좀 쉬도록 권유하는 수사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누군가가 이 이시도로를 불태워 그 재가 바람에 흩어져 버린다 하더라도, 나는 결코 휴식엔 동의할 수 없네. 이유인즉 하느님의 아드님이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일세" (p27)
☑ 하느님의 아드님도 보잘 것 없는 우리를 위하여 죽을 때까지 일을 하셨다.
노동 혹은 휴식을 위해서 수도자가 된다고 말함 역시 사실이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정한 휴식, 즉 겸손과 일치된 육체노동을 통해 영혼의 안식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람은 수도자가 되는 것이다. (p27)
사막의 교부들에게 있어서는 "하느님께 자신을 맡김", "하느님께 자신의 근심을 맡김"이 노동보다 효과적이다. (p28)
"자, 그대의 무력함을 하느님께 맡기게. 그러면 안식을 얻을 터이니"(아가톤 교부) (p28)
"사람이 만약 〈하느님과 나, 우리만 단 둘이 세상에 있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안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안토니오 교부). 그런 안식은 그가 고독 속에서 함께 사는 하느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온다. 게으르고 이기적인 고독이 아니라, 그 안에 형제애가 있는 근면한 고독 말이다. (p29)
☑ 이는 키에르케고로가 말한 ‘하느님 앞에 홀로 선’ 단독자(單獨者)의 삶이다. 5세기에 이런 생각을 안토니오 교부께서 이미 하셨구나!
"수도자의 노동은 만약 겸손이 없다면 온통 헛일이다. 겸손은 사실 사랑의 전조인 것이다. 흡사 요한 세자가 예수님의 예고자였고, 그래서 그분에게로 모든 사람을 이끌어들였던 것처럼 말이다. 겸손도 그렇게 사랑, 곧 하느님께로 이끌려진다. 하느님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p29)
"자만심이 내재되는 적선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p29)
노동보다는 겸손이 결국 참된 사랑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p29)
"문둥이를 만났을 때, 만약 내가 그의 몸과 나의 몸을 맞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련마는!"(아가톤 교부) (p30)
“사람은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수록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고 마또에스 교부가 말하였다.” 그는 또 “내가 젊었을 때는 자신이 뭔가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늙어버린 지금은 내 안에 선행이란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보게된다”고도 말하였다. (p31)
"지혜롭게“라는 말은 하느님의 빛 속에서 자신의 허무와 무능을 깨달은 죄인으로서의 피조물의 상태이며, 성서 전체에서 가르침을 주는 가난한 마음의 기본 자세인 것이다. (P31)
사막이 교부들에게 있어서 안식과 열락(悅樂)의 장소가 되는 것은 영적 투쟁 때문이지만, 그렇게 되찾은 천국을 다시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은 조심스럽게 영혼의 초상(初喪), 곧 마음의 참회를 꾀하는 것이다. (p34)
"만일 우리가 하느님을 찾으면 그분은 우리에게 나타나실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분을 붙잡고 있으면 그분은 우리 곁에 머물러 계실 것이다라고 아르센 교부는 말하였다“ (p35)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그들의 불순종으로 조물주와의 우정을 잃었으므로, 사막의 교부들은 순종으로 조물주와의 우정 및 사랑의 관계들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 낙원의 생활을 아주 매혹적인 것으로 만든 점이다. (p35)
성령을 받고 있는 우리의 교부들이기 이전에, 인간성에 있어서 참으로 우리의 형제이며 살과 피를 가진 그 존재들 속에, 하느님의 빛과 능력이 받아들여져 있다는 점이다. (p36)
☑ 교부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내(엘리아 교부)가 말하노니, 모름지기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므로, 수고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분을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p36)
☑ 신앙생활은 하느님을 위해서 수고를 하는 생활이다.
사막을 천국으로, 유열의 동산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오직 그 건조한 땅에 흐르는 물, 살아 있는 물이다. 에덴 동산에 있었던 큰 강에서 교부들은 하느님의 성령을 보았던 것이다. (p36)
"페멘 교부가 요한 콜로보스 교부의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 준다. ‘성인들은 흡사 같은 샘물을 마시면서도 다양한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자라는 정원과 같다. 어떤 이는 이런 일을 하고 어떤 이는 저런 일을 하지만, 그들 모두 안에서 일하시는 분은 하나이요 동일한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p37)
교부들의 교훈에 따른 영적 진보
누군가가 안또니오 교부에게 물었다. “제가 무엇을 지키며 살아야 하느님 마음에 들겠습니까?” 원로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가 어디로 가건 항상 하느님을 뵈오며 사시오. 성서에 씌여져 있는 대로 행동하고, 어디에 머물건 경망스럽게 이동하지 마시오. 내가 명한 이 세가지 점을 지키며 산다면 그대는 구원받을 것이오.” (Antoine 3) (p39)
팜보 교부가 안또니오 교부에게 물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답은 이러했다. “그대 눈에 의(義)롭게 보이는 바를 과도히 믿지 마시오.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 말고, 혀와 육욕을 제어하시오.” (Antoine 6) (p39)
☑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진실일 수는 없다. 그래서 영의 식별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눈에 높이 평가되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첫째로 유혹을 당해도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그분을 마음으로 받아 모시는 병자들, 그리고 인간적인 그 어떤 것도 섞음없이 하느님 앞에서 참으로 순수하게 행동하는 자들, 마지막으로 자신의 원의를 포기하고 영적 아버지에게 순명하는 자들이다”라고 테베의 요셉 교부가 말하였다.“ (Joseph de Thebes) (p41)
까시아노 교부가 이전의 “대수도원”의 장상이었던 요한 교부의 다음과 같은 모습을 이야기해 준다. “그는 바야흐로 막 죽어가고 있었는데, 진심으로 즐겁게 영혼이 주님께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 있던 수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덕을 깨칠 짧고 유익한 가르침을 유언으로 남겨 주기를 간청하였다. 그러자 그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나는 나 자신의 원의대로 행한 적이 결코 없으니 가르쳐 줄 게 아무것도 없다네. 내가 먼저 실천한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점 외에는 … “이라 했다는 것이다. (Cassiens 5) (p41)
☑ 자신의 뜻대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
안또니오 교부의 친구인 니스떼로스 교부에게 어떤 교부가 “제가 무슨 선행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더라네. “모든 행업이 다 똑같지 않은가? 성서에 이르기를 ‘아브라함은 친절하였다. 그런즉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 엘리아는 무념무상의 정적을 좋아하였다. 그런즉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 다윗은 겸손하였다. 그런즉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했으니 말일세. 따라서 하느님의 뜻을 따른 그대 영혼의 갈망이 무엇인가를 알아 그것을 행하며 마음에 간직해 두게나”라는 것이 그 원로의 대답이었다. (Nisteros 2) (p41)
빠스똘 교부가 말하였다. “만약 수도자가 두 가지 것을 미워한다면, 그는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게 무엇인데요?”라고 한 수사가 묻자, 그는 대답했다. “안락과 허영심이야.” (Poemen 66) (p42)
시스에스 교부는 말하기를 : “아무것도 아닌 자로 간주되도록 하라. 자신의 원의를 물리치며 근심없이 머물라. 그러면 그대는 안식을 얻으리니”라 했다. (Sisoes 43) (p42)
카메 교부는 죽음에 임박했을 때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이단자들과 함께 살지 말고, 고위층 사람들과 친분을 맺지 말며,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주기 위해서 손을 내밀어라.” (Chame) (p43)
"사부님,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 안에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이 생길까요?“ 한 수사에게 그런 질문을 받은 어느 원로는 이렇게 대답했다. ”겸손및 가난을 지니는 자,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는 자라면, 그 안에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리라.“ (N 137) (p43)
또 어떤 원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싫어하는 바를 다른 이에게 하도록 하지 말라. 그대의 결점에 관해 말하는 자가 싫거든 그대도 다른 이의 결점에 관해 말하지 말라. 그대를 험구하는 자가 싫거든 그대도 남을 중상하지 말라. 그대를 경멸 · 모욕하고 그대의 재산을 훔치거나 그와 같은 다른 잘못을 범하는 자가 싫거든 그대도 남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 이 말을 명심하면 충분히 구원받을 수 있으리니.” (N 253) (p43)
"수도자의 생활은 노동 · 순명 · 묵상의 생활“이라고 어느 원로는 말하였다. ”그것은 판단하지도 비난하지도 불평하지도 않는 생활이다." (N 225) (p43-44)
"죄에 대한 참회와 겸손이 그대 마음 안에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하라. 끊임없이 그대의 죄를 바라보고, 다른 이들을 판단하지 말며, 그들 모두에게 순종하라. … 어떤 문제로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면 다투지 말고, 좋으면 ‘좋습니다’하고, 그렇잖으면 ‘당신 생각대로 하십시오’하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가지고 결코 다투지 말 일이다. 그렇게 하면 그대의 영혼은 평화를 누릴 것이다.“라고 어떤 원로는 말하였다. (N 330) (p44)
내적 고요
에바그리오 교부는 말하였다. “온갖 종류의 애착을 그대 마음에서 뽑아 버려라. 그렇게 하면 고요한 생활이 동요되지도 교만되지도 않는다.” (Evagre 2) (p48)
"가장 근본적인 악은 방심(放心)이다“라고 빠스똘 교부가 말했다. (Poemen 43) (p48)
그는 또 말하였다. “육(肉)적인 사물을 피하라. 왜냐하면 사람이 오랫동안 그 공격을 받고 있으면, 흡사 몹시 깊은 우물가에 몸이 기울어져 있는 자와 같기 때문이다. 원수는 아무 때나 내키는대로 쉽게 그 사람을 우물 속으로 밀어넣을 것이다. 그러나 육적 사물을 멀리하는 사람은 우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와 같다. 원수가 그를 밀어넣기 위해 우물가로 데리고 간다 하더라도, 억지로 떠밀고 있는 동안, 하느님께서 그를 구해 주시는 것이다.” (Poemen 43) (p48)
통회
한 수사가 암모나스 교부에게 청했다. “제게 한 말씀 해 주십시오.” 원로는 그에게 대답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죄인의 정신상태를 지니게. 그들은 ‘재판관이 어디 계십니까? 그분은 언제 오실 것입니까?’라고 묻곤 하지. 그러고는 슬퍼하며 형벌을 기다리지. 수도자 역시 항상 경계하며 이렇게 자문해야 하네. 조만간 큰 변을 당하고 말걸!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법정에 서 있을 수 있을까? 그분께 내 행실을 어떻게 보고 드릴까?‘ 자네가 끊임없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을걸세“ (Ammonas 1) (p51)
야고보 교부가 말하였다. “등이 어두운 방을 밝혀 주듯이, 하느님에 대한 경외가 사람의 마음에 생기면, 그것이 그 사람을 밝혀 주고, 모든 거룩한 덕행과 계명을 가르쳐 준다” (Jacques 3) (p53)
성자 아타나시오 대주교가 팜보 교부에게 사막에서 알렉산드리아에 오도록 청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 교부는 어느 여자 희극배우를 보고 울기 시작했다. 같이 있던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대답하는 것이었다. “두 가지 사실이 나를 아연실색하게 하니, 첫째 저 여인의 멸망이요, 둘째 저 여자는 타락한 남자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열성을 발휘하는데, 나는 하느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만한 열성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라네.” (Pambo 4) (p54)
히페레키오 교부는 말하였다. “밤에 깨어 있는 수도자는 그 열심한 기도로 밤을 낮으로 변형시킨다. 가슴을 베어내는 듯한 슬픔을 지닌 수도자는 눈물이 솟게 하여 하늘의 자비를 끌어당긴다.” (Hyperechions 84-85) (p55)
한 원로가 말하였다. “우리는 종말론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행위에 대해 햄을 바치도록 요구하실 테니 말이다.” (N 136) (p57)
☑ 햄=셈
자기 지배
한 수사가 스케테의 사제인 이시도로 교부에게 물었다. “악마들이 어째서 그토록 당신을 두려워합니까?” 그 원로는 대답하였다. “내가 수도자가 된 이래 분노가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르는 일이 없도록 애썼다네.” (Isidore 2) (p64)
까시아노 교부가 말했다. “수도자들이 그들의 생각을 영적 아버지에게 숨기는 것은 마귀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일이며, 수도자들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해로운 일이 달리 없다.” (Cassien Coll 2,11) (p65)
"어떤 사람을 나무라면서 자네가 화를 낸다면 자네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이 된다. 이웃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멸망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라고 마카리오 교부는 말하였다. (Macaire 17) (p66)
빠스똘 교부는 식사에 초대를 받았을 때, 초대한 형제의 말을 듣지 않음으로써 그를 슬프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거기에 가곤 했다. 싫어하면서도 하는 수 없이 갔던 것이다. (Poemen 17) (p67)
빠스똘 교부는 또 말하였다. “연기는 꿀벌들을 쫓아내고 그들이 만든 꿀을 없애버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육체의 편안함은 영혼에서 하느님에 대한 경외를 몰아내고 그것의 모든 선행을 앗아간다.” (Poemen 57) (p67)
시소에스 교부는 말하였다. “자신의 혀를 지배함이야말로 진정한 은수생활이다.” (Tithoes 2) (p70)
히페레키오 교부는 말하였다. “야생 당나귀에게 있어서 사자는 무시무시한 존재이다. 그와 같이 이 수도자에게 있어서 탐욕적인 생각들을 무서운 시련이다.” (Hyperechios 66) (p70)
또 그는 말하였다. “화가 날 때 자기의 혀를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육욕이 닥쳐올 때도 억제하지 못할 것이다.” (Hyperechios 3) (p71)
그는 또 말하였다. “헐뜯음으로써 형제들의 살을 먹기보다 차라리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는 게 더 낫다.” (Hyperechios 4) (p71)
그는 또 말하였다. “뱀은 속삭임으로써 낙원의 하와를 쫓아내었다. 자기의 이웃 사람에 대해 쑥덕거리는 수도자도 그 뱀과 같다. 그는 자기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의 영혼을 망칠 뿐 아니라, 자신의 영혼도 구하지 못한다.” (Hyperechios 5) (p710)
어느 원로가 하루는 오이를 몹시 먹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이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우선 눈앞에 매달아 놓았다. 자신의 욕망에 지진 않았으나, 다만 그걸 너무 과도하게 욕망한 데 대한 보속이었던 것이다. (N 152) (p74)
스케테에서 어느날 (빨마로 만든) 노끈들을 씻기 위해 수사들이 소집되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은 너무나 엄격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병이 들어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수사에게 가래침이 튀어가게 했다. 그 수사는 “그만 그치게, 더는 가래 좀 튀게 하지 말라구!” 라고 그에게 말하고픈 생각이 자꾸 나서 몹시 괴로웠다. 그러나 그런 자신을 억제하기 위해 그 가래를 집어 입으로 가져가서는 꼴깍 삼켜 버렸다. 그때 그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 형제를 마음 아프게 할 말을 하지 않거나, 네게 욕지기를 일으키는 걸 먹어 버리거나 둘 중 하나야.” (N 357) (p76-77)
부정(不貞)
빠스똘 교부가 말하였다. “왕의 곁에 서서 모든 우발사태에 대비하고 있는 호위병처럼 영혼도 항상 부정의 악마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Poemen 14) (p83)
☑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수녀원장 사라는 부정의 악마에서 13년 동안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기도중에 그 싸움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청한 적이 결코 없었으며, 다만 “주여, 제게 힘을 주소서”라고만 말했다는 것이다. (Sara 1) (p83)
어느 날 바로 그 부정의 악마가 어느 때보다 격렬히 그녀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세속적인 허영들이 생각나도록 했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외경과 금욕에 대한 자신의 결심에 몰두했던만큼 그녀는 기도하기 위해 테라스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때 부정한 악마가 모습을 드러내며 그녀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가 나를 이겼다, 사라!” “아니다, 너를 이긴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나의 주님 그리스도이시다”라고 그녀는 대답하였다. (Sara 2) (p84)
☑ 기도만이 이기게 한다.
어느 원로 은수자가 부정한 생각들에 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는 죽은 뒤에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수고하고 고통을 받아들이게. 찾게, 그러면 얻으리니. 깨어 두드리게, 그러면 열리리니. 세상에서 투사들은 무수한 공격을 잘 견뎌냈을 때, 그래서 그들의 강함을 드러냈을 때 상을 받는다. … 그가 육체 단련을 위해 얼마나 대단한 노력을 참아 견디는가를 보게. 그러니 그대도 역시 확고하고 강한 사람이 되게. 그러면 하느님께서 자네 대신 적을 무찔러 주실 걸세.” (N 166) (p85)
다른 어떤 원로도 정결치 못한 생각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사시는 주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증인이시니, 그분을 모시고 바라보며 사는 우리는 게을러지지 말아야 한다. 그분께서 거룩하시듯 우리도 거룩해져야 한다. 반석 위에 서 있자. 그러면 강물이 그 물살로 우리를 쳐도 소용없을 것이며, 두려워하지 않는 그대를 쓰러뜨릴 수도 없을 것이다. 평온한 영혼으로 이렇게 노래하자.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시온 산 같아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서 있으리라.’(시편 125,1) (N 78-79) (p86)
어느 위대한 수도자의 제자가 부정에 항쟁하고 있었다. 그가 괴로워함을 보고 원로는 말하였다. “괜찮다면 하느님께 청해서 그 싸움을 네게서 멀리해 주시도록 할게.” 그러나 제자는 그에게 대답하기를 “사부님, 제가 고통 속에 있음을 잘 압니다만, 그 고통 때문에 제 안에 결심이 생겨남도 느껴집니다. 그러니 오히려 제게 견딜 힘을 주십사고 하느님께 청해 주십시오.” 했다. 그러자 원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봐, 이제 보니 네가 크게 진보하여 나를 앞질러 버렸구나.” (N 170) (p87)
시련에 단련되고 있는 한 수도자가 스케테에 있었다. 원수가 그에게 어느 예쁜 여자의 기억을 상기시키며 그를 몹시 괴롭혔다. 그런데 하느님의 섭리로 다른 한 수사가 이집트에서 스케테로 오게 되었고, 이야기 도중에 바로 그 여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 주었다. 그 소식을 듣자 그는 외투를 걸치고 그녀가 매장되어 있다는 곳을 향해 밤에 출발했다. 그는 무덤을 파서 시체에서 흐르는 물을 외투로 닦아 그것을 자기의 독방으로 가져왔다. 참을 수 없도록 냄새가 났지만 그는 그 악취를 앞에 두고 자신의 생각과 싸우는 것이었다. “네가 탐내던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 네가 그걸 소유하고 있다구! 실컷 냄새 맡어”라고 말하면서, 그리하여 싸움이 자신 내부에서 가라앉을 때까지 그는 그 끔찍한 악취를 맡고 있었다는 것이다. (N 172) (p88)
한 수사가 어느 원로에게 말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수치스런 어떤 생각이 자꾸 나서 무척도 괴롭습니다.” 원로는 그에게 대답하였다. “여인이 자기 아이를 젖 떼고자 할 때는 젖가슴에 무슨 쓴 약 같은 것을 발라놓는다. 그러면 아이는 여느 때처럼 와서 젖을 빨다가 그 쓴맛을 보고 달아나 버린다. 자네도 자네 생각에다 뭔가 쓴 것을 가미해 보게.” “그런데 무엇이 그런 것입니까?” “죽음 및 앞으로 올 세대에 죄인들에게 예비되어 있는 고통에 대한 묵상이야.” (N 182) (p93)
어떤 선인은 말하였다. “부정한 생각들은 처음엔 파피루스 같은 것이다.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날 때 거기에 동의함 없이 되밀어버리면 힘들이지 않고 잘라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날 때 그것을 즐기고 동의해 버리면, 반대로 그것이 흡사 단단한 쇳덩이 같아져서 잘라내기 힘들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별있게 그런 생각들에 대처해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승리의 월계관이 예비되어 있지만, 동의해 버리는 자들에게는 이제 구원의 가망성도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N 185) (p95)
☑ 부정한 생각은 초기에, 단호하게 잘라버려야 한다.
소유의 포기
어느 형제가 세속을 버리면서 자기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나 그 재산의 얼마간을 남겨두고 안또니오 교부를 찾아갔다. 원로는 그 사실을 알고 그에게 말하기를 “자네가 수도자가 되고 싶다면 마을로 가서 고기를 사게. 옷을 벗고 맨살에다 그 고기를 바른 후 다시 오게”했다. 그는 그렇게 했는데, 개와 새들이 그의 몸을 발기발기 찢어놓았다. 안또니오 교부에게 돌아오니 교부는 그에게 명대로 했는가고 물었으므로, 그는 상처투성이인 자기 몸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안또니오 성인은 그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세속을 버리면서도 돈을 갖고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악마들이 그를 공격해 올 때, 그처럼 발기발기 짓찢기고 만다네.” (Antoine 20) (p107)
어느 날 황제의 관리가 아르센 교부에게 유언장을 가져왔다. 그의 일가 중에 원로원 의원이 한 사람 있었던바, 교부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겨준다는 유언장이었다. 아르센은 그 유언장을 받아 들자 찢어버리려 했다. “그는 방금 죽었을 뿐이지만, 나는 그 사람보다 먼저 죽었어! 그러니 어떻게 내가 그의 상속자가 될 수 있는가 말이여?” 그리고 그는 한푼도 받지 않은 채 유언장을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Arsene 29) (p107)
☑ 수도자란 세상에서 이미 죽은 사람들이다
에바그리오 교부가 말하였다. “복음성서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어느 수도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그것을 팔아 버렸다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잊을 수 없는 말을 하더래.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태 19,21)라고 내게 명하시는 말씀까지도 나는 다 팔아 버렸구먼.” (Evagre 97) (p108)
피스타몬 교부가 어느 수사에게 말했다. “설사 자네가 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노동을 소홀히 하지 말게.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일하되, 마음의 산란함이 없어야 하네.” (Pistamon) (p111)
누군가가 복된 신클레틱 성녀에게 가난이 선행인가고 물었다. “가난할 줄 아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훌륭한 선행입니다. 왜냐하면 가난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은 육체적으로는 고통을 느끼지만 영혼의 평화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강한 영혼은 자발적인 가난에 의해 점점 더 강해집니다. 그건 흡사 사람이 발로 밟아 세게 짬으로써 세탁·표백하는 질긴 옷과도 같은 것입니다. (Syncletique 5) (p112)
히페레키오 교부는 말하였다. “수도자의 보물은 자발적인 가난이라네. 오, 수도자여! 그대 보물을 하늘에 있게 하게. 거기야말로 그대를 위한 영원한 안식이 있는 곳이니 말일세.” (Hyperechios 40-41) (p112)
한 수사가 어느 원로에게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해야 구원받겠습니까?” 원로는 속옷을 벗어 허리에 걸치고, 하늘을 향해 양손을 펼치며 말했다. “수도자는 이래야 하네. 물질적인 사물에 대해서 알몸이 되어야 하고, 이 세상의 유혹과 시련 앞에서는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거든.” (N 143) (p113)
누군가가 어느 원로에게 돈을 내놓으며 말했다. “이걸 받아쓰십시오. 당신은 연로하신 데다 병이 드셨으니 말입니다.” 원로는 사실 나병환자였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였다. “60년이 지난 후에 자네가 와서, 내가 필요로 하는 바를 공급해 주시는 분을, 내게서 뺏아버리겠다는 건가? 참으로 오랜 세원동안 이런 상태에 있어 왔지만, 그래도 나는 아쉬운 게 아무것도 없었네. 하느님께서 내게 필요한 것을 주시고, 나를 먹여 살려 주셨으니 말이지.” 그러면서 그는 아무것도 받으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N 260) (p114)
"자신의 몸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가지고 있는 건 좋지 않는 일이야. 자네가 그 금화 두 잎을 가지고 있으면 거기에다 희망을 걸게 될 것이야. 그런데 자네가 만약 그 돈을 잃어버린다면 하느님께서 더 이상 자네를 돌봐 주시지 않을 거라구. 그런즉 우리의 근심을 주님께 맡겨드려야 하네. 우리를 돌보시는 분은 바로 그분이시니 말야.“ (N 262) (P115-116)
인내
빠스똘 교부는 난장이 요한 교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주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모든 욕망에서 멀리 해 주셨으므로 근심거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어느 원로에게 가서 자기의 비밀을 털어 놓았다. “안식을 누리고 있는 이 사람을 보십시오. 이젠 도무지 싸울 필요가 없어졌답니다.” 그러나 원로의 대답은 이러했다. “주님께 청해서 어서 싸울 거리를 달라고 하게. 영혼의 진보는 바로 투쟁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니까.” 그리하여 다시 투쟁이 시작되자, 더는 그것을 멀리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이렇게 간청하는 것이었다. “주님, 이 싸움을 견뎌낼 수 있는 참을성을 주시옵소서.” (Jean Kolobos 13) (p119)
마또에스 교부는 말하였다. “나는 금방 끝나버리는 고된 일보다는 힘들지 않더라도 계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더 좋아하오.” (Matoes 1) (p120)
빠스똘 교부는 말하였다. “진정한 수도자를 식별해 낼 수 있는 것은 그가 유혹 속에 있을 때이다.” (Poemen 13) (p121)
성녀 신클레틱이 말하였다. “그대는 쇠붙이였으니 불로써 녹을 닦아내야 합니다. 그대가 의롭게 사는데 병이 든다면, 보다 작은 덕행에서 보다 더 큰 덕행으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대는 황금이었지만 불로써 더한 순도(純度)를 얻게 되니 말입니다.”(Syncletique 98) (p122)
그녀는 또 말하였다. “몸에 병이 들어 괴로울 때, 그 병 때문에 서서 기도할 수도 큰 소리로 시편을 노래할 수도 없다고 해서 슬퍼하지 맙시다. 그러한 단련은 우리의 악한 경향을 쳐부수는 데에 유익합니다.” (Syncletique 99) (p123)
그녀는 또 말하였다. “뭔가 선행을 시작했다면 원수의 방해로 그것에서 고개를 돌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원수는 그대의 인내심에 의해 분쇄될 테니까요. 그러니 돛을 펼치고 바다에 나가는 선원들처럼 하십시오, 처음에는 순풍을 만나도 나중엔 역풍을 만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하물(荷物)을 바다에 던져버리진 않습니다. 좀 참아보거나 태풍과 싸운 후 다시 항해를 시작합니다. 우리도 악령을 만날 때면 십자가를 돛처럼 높이 쳐들어 봅시다. 그러면 무사히 성공적인 항해를 하게 될 것입니다.” (Syncletique 102) (p124)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데다 꾀하는 일을 하는 동안 참을성이 없기 때문에 진보하지 못한다. 아무 노고도 없이 덕행을 얻으려 하니 말이다.” (N 297)
어느 원로가 사막에서 살았는데, 그의 독방에서 12마일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 가야 물을 얻을 수 있었다. 가서 물을 길어 와야 했던 어느 날은 거기까지 갈 힘이 없어서 중얼거리기를 “왜 이런 피곤을 스스로 겪고 있담? 물이 있는 근처로 가서 살아야겠군”했다. 그런데 그 말을 한 후 고개를 돌려보니 누군가가 따라오며 그의 걸음수를 헤아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대는 누구요?”하고 묻자, 상대방은 대답하기를 “나는 주님의 천사요. 그대의 걸음수를 헤아려 보고 거기에 맞는 상급을 주라고 보냄을 받았다오”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원로는 용기 백배하도록 위로를 받아 물에서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자기의 독방을 지었다 한다. (N 199) (p131)
☑ 우리의 수고를 다 헤아려 주시는 주님이시다.
어느 원로가 자주 아프곤 했는데, 그러다 일년 동안 조금도 아프지 않자, 슬픔에 짓눌려 울기 시작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셨구나. 나를 찾아오지 않으셨으니!” (N 209) (p135)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육체에 병이 뜻밖에 생긴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말아라. 주님께서 네 몸이 허약해지길 바라신다면, 네가 누구이기에 그분을 나쁘게 생각할 수 있겠느냐? 어떤 때라도 그분께서 너를 돌보고 계시지 않느냐? 그분 없이 네가 살 수 있겠느냐?” (N213) (p137-138)
드러내지 아니함
어느 수도자가 페르메의 테오도로 교부에게 와서, 자기에게 한 마디 가르침을 달라고 사흘 동안 간청했다. 그러나 교부는 그에게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아주 슬퍼하며 떠나갔다. 테오도로의 제자가 그때 물었다. “사부님, 왜 그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아주 슬퍼하며 갔습니다.” “내 말을 믿게”라고 원로는 대답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까닭은, 그가 다른 사람의 말을 가지고 스스로 찬양받고 싶어하는 부정한 장사꾼이기 때문이라네.” (Theodore 3) (p143)
☑ 남의 지식을 가지고 자기 것인 양 우쭐거리지 말아야한다
대 니스테로스 교부가 한 수사와 함께 사막을 거닐고 있다가, 뱀을 보자 두 사람 다 달아났다. “무서우셔요, 사부님! 당신도 역시?” 라고 묻는 수사의 말에 그는 대답했다. “나는 무섭지 않네, 이 사람! 하지만 뱀을 보고 도망친 게 내겐 좋은 일이야. 그렇게 함으로써, 헛된 명성이라는 악마로부터 도망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네.” (Nisteros 1) (p146)
빠스똘 교부는 말하였다. “자네가 혀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 바를 자네 마음으로 준수하기를 배우게.” 그는 또 말하였다. “말을 할 때 사람들은 완전해 보이길 원하지만, 정작 그 말을 실천할 땐 그만큼 완전하지 못한 법이다.” (Poemen 63,56) (p146-147)
레뚜의 암몬 교부가 시소에스 교부에게 물었다. “성서를 읽을 때 저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도록 정성들인 강론을 준비하느라고 여념이 없습니다.” 원로는 대답했다. “그건 불필요한 일이오. 차라리 마음의 깨끗함을 통해서 언어의 은사를 얻도록 애쓰시오. 그러면 그런 걱정에서 해방될 것이오.” (Sisoes 17) (p147-148)
신클레틱 성녀는 말하였다. “보물은 발견되기 무섭게 약탈당하곤 한다. 마찬가지로 성덕 역시 만인의 주목을 받으면 파괴된다. 사실 불이 양초를 녹이듯이 찬사는 영혼에서 힘찬 생기를 잃게 하는 것이다.” (Syncletique S3) (p148)
성녀는 또 말하였다. “건초가 동시에 곡식알이 될 순 없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영예를 지니고 있는 사람은 하늘을 위한 열매를 생산한다는 일이 불가능하다.” (Syncletique S4) (p148)
대단한 고행자여서 빵을 먹지 않는 한 수도자가 어느 원로에게 갔다. 바로 그때 다른 순례자들도 거기에 와 있었다. 원로는 그들을 위해 약간의 죽을 쑤었다. 그들이 식사하고 있는 동안, 그 공행자는 다만 물에 불린 이집트 콩만 집어 먹었다. 식사 후에 원로는 그를 따로 불러 말했다. “여보게, 자네가 어떤 사람의 집에 갔을 땐 자네가 실천하고 있는 바를 전시하지 말게. 그걸 지키고 싶다면 자네 방에 머물며 결코 나오지 말게.” 수사는 원로의 말대로 다른 수사들과 함께 있을 때는 공동의 관습을 따랐다. (N257) (p149)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부심하다 보면, 영적 풍요를 잃게 되어 메마름만 남는다.” (N320) (p149)
판단하지 아니함
어느 수사가 죄를 지었던바, 사제가 그에게 성당에서 나가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베싸리온 교부가 일어서더니 그와 함께 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역시 죄인입니다.” (Bessarion7) (p151)
스케테의 한 수도자가 하루는 어떤 잘못을 범했다. 원로들은 회의를 열어 모세 교부가 오도록 사람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거절했다. 그리하여 사제가 누군가에게 책임지고 가서 이렇게 말하도록 했다. “오십시오, 모든 수도자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는 일어서더니 구멍 난 바구니에 모래를 가득 채워 그걸 등에 지고 갔다. 그를 마중나온 수도자들이 “그게 뭡니까, 사부님?” 하고 물으니까 그는 대답하기를 “내가 지은 죄들이 등 뒤에서 새어나오고 있는데 나는 볼 수가 없거든. 그런 내가 오늘, 다른 사람의 죄를 심판하러 이렇게 오고 있는 중이렸다?” 했다. 그 말을 듣고 수도자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꺼냈고, 잘못을 범한 수사를 용서해 주었다. (Moise 2) (p152)
요셉 교부가 빠스똘 교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참된 수도자가 되는지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원로는 그에게 대답했다. “그대가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안식을 누리고 싶다면, 언제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그리고 아무도 판단하지 말게.” (Joseph de Panepho 2) (p152)
어느 원로는 말하였다. “네가 순결하다고 해서 방탕함을 단죄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너도 그렇게 계명을 위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간음하지 말라’고 하신 분이 ‘판단하지 말라’고도 하신 것이다. (N11) (p154)
대성당을 관리하는 어느 사제가 한 은수자의 집에 오곤 했다. 성찬의 전례를 거행하여 은수자에게 성체를 영하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어떤 손님이 와서 그에게 그 사제의 비헹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고, 그래서 은수자는 격분했다. 그 사제가 여느 때처럼 성찬의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왔을 때, 그러므로 은수자는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사제는 그 사실을 알고 물러갔다. 그때 한 목소리가 들려오며 말하기를 “사람들이 나의 심판을 빼앗아갔구나”했다. 황홀감에 잠겨 그는 황금 우물 같은 것을 보았는데, 황금 두레박과 밧줄도 있었다. 그 물에는 아주 맛있는 물이 고여 있었으나, 그 물을 길어 항아리에 붓는 문둥이도 있었다. 은수자는 물을 마시고 싶으면서도 물을 긷는 문둥이 때문에 마음을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때 그 목소리가 다시 그에게 묻는 것이었다. “왜 그 물을 마시지 않나? 물을 긷는 자가 누구면 어때? 그의 직책은 다만 두레박에 물을 채워 그걸 항아리에 붓는 일이 아닌가?” 제 정신이 돌아온 은수자는 그 현시(顯示)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 사제가 기억에 떠올랐으므로 그는 이전처럼 그에게 성찬의 전례를 거행해 달라고 청했던 것이다.(N254) (p154-155)
삼감
아가톤 교부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도자들이 어느 날 그가 아주 신중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그를 만나러 갔다. 그들은 그가 화를 내는지 어떤지 보고 싶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아가톤이오? 방탕하고 교만한 사람이라는 얘길 우리가 들었소.” “사실입니다”라고 그가 대답하자, 그들은 덧붙여 말했다. “그대가 수다스러운 욕장이 아가톤이요?” “그렇습니다” “그대가 이단자 아가톤이요?” “저는 이단자는 아닙니다”라고 그는 항변했다. 그러자 수도자들은 그에게 물었다. “우리에게 말해 주시오. 그토록 많은 욕을 해도 그대는 받아들였는데, 대체 어째서 그 마지막 말은 참아내지 않았소?” “처음 것들은 받아들이면 내 영혼에 유익이 있기 때문에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단자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그것이 하느님과의 분리를 뜻하는 말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그의 신중함을 감탄했으며, 이윽고 깨달음을 받으면서 돌아갔다. (Agathon 5) (p160)
누군가가 하루는 아가톤 교부에게 물었다. “어느 것이 더 좋습니까, 육체 노동입니까, 혹은 영혼 관리입니까?” “사람은 흡사 나무와 같은 존재야”라고 그는 대답했다. “육체의 노동은 그 잎새들이고 영혼의 관리는 열매들이지. 그런데 성서에 적혀 있기를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져 불에 던져지는 바 되리라’했거든. 그런즉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바를 살펴봐야 하네. 또한 육체 노동을 나타내는 잎새의 그늘과 아름다움도 우리에겐 필요한 것이라네.” 더욱이 아가톤 교부는 대단히 사려깊은 사람이었고 일에 끈기가 있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자급자족했고 부지런히 손일을 했으며, 음식과 의복에 대해서 아주 적고 하찮은 것으로 만족했다. (Agathon 8,10) (p160)
아가톤 교부가 말하였다. “성마른 사람은, 설사 그가 죽은 자들을 되살린다 하더라도 그 분노 때문에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Agathon 19) (p161)
몇 명의 수도자들이 어느 날 제논 교부를 찾아와서 물었다. “‘하늘마저도 하느님이 보시기엔 깨끗하지 못한데’(욥기 15,15)라는 욥기의 구절은 무슨 뜻입니까?” 원로는 대답했다. “허, 이 사람들이 자기네의 죄는 보지 않고, 하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캐내려 드는구만! 그렇긴 하지만 그 구절의 의미는 이런 거야. 하느님 홀로 깨끗하신 분이므로 하늘마저 그분 앞에선 깨끗하지 못하다는 거지.” (Zenon 4) (p165)
“원로들은 수도자들에게 처음부터 지각없는 말을 해주진 않네. 그 반대로, 밑도 끝도 없는 명령을 그들에게 주곤 하지. 만일 수도자들이 그런 얼토당토 않는 명령을 실천함을 보게 되면, 정말 유익한 것이 있을 때에도 더 이상은 그들에게 말하지 않는 거야. 그들이 무엇에나 순명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지.” (Joseph 5) (p168)
빠스똘 교부가 말하였다. “시련은 좋은 거야. 좋은 성질의 사람을 만드니까.” (Poemen 24) (p175)
빠스똘 교부가 말하였다. “남에게 가르침을 주면서 자신은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흡사 하나의 우물과 같네. 다른 모든 이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고 그들을 깨끗이 씻어 주면서도 자기 자신을 깨끗이 씻을 순 없거든. 온갖 땟국과 불순함이 그 안에 남아있기 마련이지.” (Poemen 25) (p175)
빠스똘 교부가 또 말하였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침묵을 지켜 보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남들을 비난한다. 그런 사람은 끊임없이 지껄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어떤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을 하지만, 침묵을 지키는 셈이 된다. 필요 없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Poemen 27) (p175)
그는 또 말하였다. “악이 악을 내쫓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즉 만일 어떤 이가 네게 나쁜 짓을 한다면, 너의 선행으로 그의 악랄함을 파괴하도록 그를 도와주어라.” (Poemen 27) (p175)
☑ 진정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는 또 말하였다. “불평을 일삼는 건 수도자로서 할 바가 아니다. 악을 악으로 갚음과 분노함도 수도자로서 할 바가 아니다. (Poemen 91) (p175)
☑ 3회인 나도 수도자라 할수 있을 것이다.
어느 수사가 빠스똘 교부에게 와서 말했다. “제게 허다한 생각이 떠오르니 염려스럽습니다.” 그러자 원로는 그를 밖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자네 옷을 펼치게. 그 속에다가 바람을 잡아 넣어봐!” 수사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 원로는 다시 말했다. “그래, 자네가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떠오르는 생각 역시 막을 수가 없는 거야. 그래도 자네가 할 수 있는 건 그 공격에서 저항하는 일이지.” (Poemen 28) (p176)
빠스똘 교부의 부탁을 받고, 어느 수사가 모세 교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자기 이웃을 위해 죽는 게 됩니까?” 원로는 그에게 대답했다. “무덤 속에 있은 지 이미 3년이 되었다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깊이 하지 않는 사람은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할 걸세.” (Moise 12) (p178)
신크레틱 성녀가 말하였다. “유익한 슬픔과 영혼을 황폐하게 하는 슬픔이 있습니다. 유익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와 다른 이의 악함을 탄식하게 하며, 완덕에 도달하려는 결심을 버리지 않도록 하는 슬픔입니다. 그런 것이 참된 성격의 슬픔이지만, 그러나 원수에게서 오는 슬픔도 있습니다. 소위 낙담이라고 불리어지는,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 슬픔이 우리 안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즉, 기도와 시편 낭송을 두 배로 늘려 그 악마를 쫓아내야 합니다.” (Syncletique S 10) (p181)
히페레키오 교부는 말하였다. “진정한 현인은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친다.” (Exhort ad monachos 122b) (p182)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활동도 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행동이지 열매를 맺을 줄 모르는 말은 아닌 까닭이다.” (p185)
누군가가 어느 원로에게 물었다. “성서에서 말하는 좁고 험난한 길이란 무엇입니까?(마태 7,14)” 좁고 험난한 길은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자제하며 자신의 뜻을 꺾음을 말하는 것이네.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랐습니다.’(마태 14,27)라고 사도들에 의해 씌여져 있듯이 말야“ 하는 것이 원로의 대답이었다. (N249) (p186-187)
“게으른 자가 부지런한 일꾼과 같이 살면 그는 진보하게 될 것입니다. 진보를 못한다 해도 적어도 더 게을러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N251) (p187)
어느 원로는 말하였다. “말은 하면서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흡사 잎새는 무성하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와 같습니다. 열매가 풍성히 열려 있는 나무는 잎새도 풍성하기 마련이지요. 마찬가지로 여러 선행을 행하는 사람은 그 때문에 말도 하게 될 것입니다.”(N252) (p187)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우리를 단죄받도록 이끌어가는 것은 마음 안에 끼어드는 악한 생각이 아니라 그것의 악한 사용입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 때문에 멸망해 버리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오히려 그 때문에 상급을 받기도 하니까요.” (N218) (p188)
☑ 생각이 문제가 아니라 행동이 문제이다.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사막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마땅히 자기 지배의 주인이 되어야 해요. 멸망하고 싶지 않다면, 아직 배움이 필요한 사람은 그런 생활을 하는 법이 아니니까요.” (N221) (p189)
☑ 재속회원이 된다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성서의 모든 구절을 알고 다윗의 시편을 외어 낭송하지만, 하느님께서 찾으시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거든. 겸손 말이네.” (N222) (p189)
어느 위대한 어른이 자기에게 질문하러 온 수사에게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 그대가 내게 와서 ‘나를 불쌍히 여기십시오’라고 말하면, 하느님 당신께서 그대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기를 바란다면, 네 자신과 형제들을 불쌍히 여겨라. 그러면 나도 너를 불쌍히 여기리라. 내가 너를 용서하기를 원한다면, 네 자신과 이웃을 용서하여라.” 불의가 혹시라도 하느님에게서 나올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음을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그건 우리에게 달려 있는 일이다.“ (N226) (p191)
어느 수도자가 교부 중의 한 사람에게 상담하러 가서 말했다. “잠에 져서 일과기도 시간을 놓쳐 버리고 나면, 제 영혼은 그것에서 감히 해방될 엄두도 못냅니다. 너무도 부끄러워서요.” 그러자 원로는 그에게 대답했다. “자네가 아침까지 자 버리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잠이 깼을 땐 일어나서 문과 창문을 닫고 성무일과를 외게. 왜냐하면 ‘낮이 당신의 것이니, 밤 또한 당신의 것 …’ (시편 74,16)이라고 성서에 적혀 있기 때문이네.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데 있어서 좋지 않은 시간이란 없으니 말일세.” (N230) (p193)
어느 원로는 말하였다. “수도자는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그런 말을 해서도 안되고 불쾌하게 여겨서도 안된다.” (N386)
☑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드려야 한다
몇몇 원로들은 말하였다. “우리가 서로 모이곤 했던 당초에는, 영혼에 유익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래서 우리의 영혼은 보다 높게 고양되어 하늘에 오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모여서 남을 헐뜯는 데 여념이 없으니, 서로를 깊은 구렁텅이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N238) (p195)
또 한 사람의 교부가 말하였다. “진실로 우리의 내적 사람이 삼갈 줄 안다면, 외적 사람도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적 사람이 그렇지 못한다면, 무슨 힘으로 우리가 혀를 조심하겠습니까?” (N239) (p195)
어떤 원로가 말하였다. “영적 활동은 필수적인 일이다. 그 때문에 우리가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하지 않는 바를 입으로 주장함은 과연 부질없는 짓이다.” (N240) (p195)
어느 수도자가 세속을 버리고 수도복을 입자마자 방에 틀어박혀 “나는 독수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이웃에 사는 원로들이 몰려와 그를 밖으로 나오게 했고, 수도자들의 독방을 두루 돌아다니되 그들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엎드려 절하라고 명령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독수자가 아니고 이제 막 수도생활을 시작한 자입니다.” (N243) (p196)
☑ 겸손해야 한다.
원로들이 말했다. “만일 어느 젊은이가 자신의 의지로 하늘로 올라감이 보이거든, 그의 발을 잡아 당겨 버리게, 그런 것은 그 젊은이에게 아무 가치도 없는 일이니까.” (N243) (p196)
어느 원로가 말했다. “예언자들은 책을 썼고, 그들 뒤에 온 우리의 교부들은 그 책들에 관한 많은 연구를 했다. 그후 그들의 후계자들은 그것을 암기하였다. 마침내 현대라는 세대가 왔는데, 그들은 종이와 양피지에 그 모든 것을 써서 쓸모없이 벽장 안에 방치해 두었다. (N228) (p197)
어느 원로는 말하였다. “우리의 두건은 순결을 상징하고, 어깨와 목을 둘러싸는 스카풀라오는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우리의 허리띠는 힘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옷에 맞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그리고 모든 일을 열렬히 행합시다. 그래야 빌린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N55) (p198)
☑ 스카폴라를 입었다는 것은 십자가를 졌다는 것이다
경계
아르센 교부가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을 찾으면, 그분께서 우리에게 나타나 주시리라. 또한 우리가 그분을 붙잡으면, 그분께서 우리 곁에 머물러 계시리라.” (Arsene 10) (p199)
암모에스 교부가 성당에 갈 때는 제자가 자기 곁에서 걷지 못하도록 하곤 했다. 제자는 멀리서 그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는데, 뭔가 물어볼 마음이 있어 그에게 다가가면 그는 짧게 대답한 후, 즉시 제자를 뒤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두려워서야.” 그는 말했다. “영혼에 유익한 바를 서로 이야기하면서, 그것과는 관계도 없는 말을 하게 될까봐 말야. 자네가 나와 나란히 걷지 못하도록 한 건 바로 그 때문이라구.” (Ammoes 1) (p200)
알로니오 교부가 말하였다. “사람이 만일 자기 마음 속으로 ‘하느님과 나 우리만 단 둘이 세상에 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안식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Alonius 1)
☑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단독자의 삶이다
에바그리오 교부가 말하였다. “항상 자네의 죽음을 생각하고, 영원한 형벌을 잊지 말도록 하게. 그러면 어떤 잘못도 자네의 영혼을 더럽히지 않을 걸세.” (Evagre 4) (p201)
엔나톤의 테오도로 교부가 말하였다. “만일 기도할 때의 부주의나 시편 낭송 동안의 괴로운 분심들을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로 돌리신다면, 우리는 구원되지 못할 것이네. (Theodore de l'Ennaton 3) (p201)
☑ 누구나 다 분심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인간은 약한 존재다.
빠스똘 교부가 말하였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은 기본원칙이며 동시에 목적이다. 과연 성서에 이르기를 ”지혜의 근원은 주님을 경외함이니…“(시편 111,10)했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제단을 다 쌓았을 때,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창세 22,12)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도 했다. (N647) (p206)
빠스똘 교부가 또 말하였다. “이야기 도중에 계속 트집을 잡는 사람을 자네는 항상 피해야 하네.” (N124) (p206)
어느 수사가 시소에스 교부에게 물었다. “제 영혼을 돌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영혼을 돌볼 수 있겠는가?”라고 그는 대답했다. “만일 우리의 혀가 문을 열어 놓고 있다면 말이네.” (Tithoes 3) (p207)
모세 교부가 실베스뗄 교부에게 물었다. “사람이 매일 다시 회개를 시작할 수 있습니까?” 실베스뗄 교부는 대답하였다. “사람이 부지런하다면 매일뿐 아니라 시간마다 다시 회개를 시작할 수 있네.” (Silvain 11) (p207)
세라피온 교부가 말하였다. “황제 앞에 서있는 병사들은 오른쪽도 왼쪽도 살피지 않습니다. 수도자에게 있어서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대전에 서서 쉬임없이 그분을 경외하노라면, 원수의 어떤 공갈도 그를 겁내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Serapion 3) (p208)
히페레키오 교부가 말하였다. “항상 마음 속에 하늘나라를 지녀라. 그러면 너는 아주 빨리 그것을 상속받을 것이다.” (Hyperechios 7) (p209)
그는 또 말하였다. “수도자의 생활은 죄를 불태워 없애버림으로써 천사들의 생활을 닮아가야 한다.” (p209)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도자는 자기가 하느님의 뜻대로 살았는지 어떤지를 성찰해야 합니다. 평생토록 그렇게 자신을 살펴야 하고, 보속해야 합니다. 아르센 교부가 바로 그렇게 살았답니다.” (N264) (p210)
어느 원로는 말했다. “사람이 금이나 은을 잃어버렸을 때는 되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회를 놓쳐버린 사람은 그것을 되찾지 못할 것입니다.” (N265) (p210)
어느 원로는 말했다. “황제 옆에 있는 사람을 아무도 헤칠 수 없듯이,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 곁에 있으면 사탄도 우리를 해칠 수가 없습니다. ”너희는 나에게 다가오너라. 그러면 나도 너희에게 다가가리라.“(즈가 1,3)는 말씀이 성서에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N268) (p211)
어느 원로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의 생각이 그에게 “오늘은 쉬고 내일 보속하여라”고 말하자, 그는 그 생각에 맞서며 이렇게 말했다. “아냐, 오늘은 보속하고 내일은 하느님의 뜻대로 행하도록 하여라.” (N271) (p211)
☑ 오늘 할 일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내일은 나에게 보장된 날이 아니다.
어느 원로가 말했다. “열심히 침묵을 지키고, 헛된 근심거리를 갖지 말아라. 서 있건 누워 있건 하느님을 경외하며 묵상하여라. 그렇게 하노라면 악령들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N274) (p212)
어느 원로가 한 수사에게 말했다. “악마는 원수이고, 그대는 집이오. 원수는 구할 수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을 계속 그대에게 던지며, 제 모든 쓰레기를 계속 그대의 영혼에 부어넣습니다. 그대의 작업은 그놈이 던진 것을 정신차려 제거하는 일이지요. 만약 그런 것에 괘념하지 않는다면, 그대의 집은 온통 쓰레기 투성이여서 더는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이오. 반대로 처음부터 그놈이 던지는 족족 없애버리시오. 그러면 그대의 집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깨끗함을 보존할 것이오. (N275) (p212)
부단한 기도
“내가 손일을 하면서 어떻게 계속 기도하는가를 보여 주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나는 앉아서 얼마간의 빨마 잎을 물에 담그네. 이렇게 말하면서 그것으로 줄을 엮지. ‘주님, 선한 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무한히 어지신 이여, 내 죄를 없애 주소서.’(시편 51,1) 그것이 기도야. 그러가, 안 그런가?“ (Lucius) (p219-220)
마카리오 교부가 기도하는 방법에 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기도할 때 많은 말은 필요없어요. 자주 손을 펴들고 ‘주여, 당신이 원하시고 아시는 바대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해요. 그대의 영혼이 어려움 중에 있을 때는 ‘저를 구해 주소서’하세요.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이 적당한 것인가를 알고 계시니까요.” (Macaire 19) (p220)
교부 중의 한 사람이 말했다. “탁한 물에 자기의 얼굴을 비춰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야릇한 생각들이 깨끗해지기 전에는 영혼이 기도중에 하느님을 뵐 수가 없습니다.” (N 379) (p220)
환대와 자비
카시아노 교부가 말하였다. “우리는 원로 중의 한 분을 만나러 팔레스티나에서 이집트로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른이 우리에게 환대의 예우를 표해 주고 있는 동안, 우리는 그에게 질문했습니다. ‘형제들을 맞아들이면, 무슨 까닭으로 당신께선 단식의 규칙을 지키지 않으십니까? 팔레스티나에선 사람들이 그것을 지키는데 말입니다.’ 원로는 우리에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언제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그대들이야 내가 오래도록 여기에 붙잡아둘 수 없지 않겠나. 단식은 유익하고 필요한 것이나 우리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고, 사랑의 실천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느님의 율법이거든. 그대들 마음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영접함이니, 가장 큰 정성을 기울여 그대들에게 사랑의 징표를 보여줘야 하는 거지.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야 어떻게 단식할 수 있겠나? 그러나 곧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네’(마태 9,15)” (Cassien 1) (p224)
그는 또 말하였다. … “잠깐 들렀다 가는 형제들을 접대하느라고, 나는 여섯 번이나 식탁을 차렸다. 그들이 먹도록 권하기 위해서 나도 먹었는데, 그래도 나는 아직 배가 덜 찼다구.” (Cassien 1) (p224)
어느 수사가 사순절 제2주일 중에 빠스똘 교부를 찾아왔다. 그는 교부에게 자기의 생각을 털어놓았고, 교부의 답변을 들으면서 평화를 되찾았다. 마지막에 수사는 덧붙여 말하기를 “제가 좀은 망설였습니다. 오늘 당신을 뵈러 오는 데 대해서 말입니다”했다. “까닭이 대체 뭔가?” “요즈음은 사순절이니, 당신께서 문을 걸어 잠그고 계실까봐서요.” “우리는 나무문 닫기를 배운 적은 없네”라고 원로는 대답하였다. 입(口)이라는 문을 닫고 있도록 배우긴 했지만서두.“ (Poemen) (p225)
어느 수도자가 한 은수자를 찾아왔다가, 그와 헤어질 때 말하기를 “사부님, 제가 당신께서 규칙을 따르시지 못하게 했으니 죄송합니다.”했다. 그러자 대답은 이러하였다. “나의 규칙은 자네를 반갑게 맞아주고, 평화롭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네.” (N283) (p226)
난장이 요한 교부는 스케테에서 은거하고 있었는데, 테베 출신으로 사막에서 살고 있는 어느 원로 곁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 원로는 죽은 나무를 가져와 땅에 심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날마다 뿌리쪽에 물을 한 양동이씩 부어 주게. 이 나무에 열매가 달릴 때까지 말일세.” 그런데 샘이 너무나 멀리에 있었으므로 요한은 저녁에 물길러 가서 아침이 되어야 돌아오곤 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그 나무는 싹이 돋아나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원로는 그 열매를 따서 형제들에게 모여 있는 곳에 가지고 와 말하는 것이었다. “이 순명의 열매를 집어 먹게나!” (Jean Kolobos 1) (p232)
신클레틱 성녀는 말하였다.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고행보다는 순명을 더 좋아합니다. 고행은 교만의 안주인이지만, 순명은 겸손의 하녀이기 때문입니다.”
(Syncletique 16) (p235)
원로들이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회개하기 시작하는 사람에게서 노고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찾지 않으신다.” (N292) (p237)
겸손
안또니오 교부는 하느님의 심오한 생각들에 대해 유심히 탐구해 보다가 이렇게 여쭈었다. “주여, 어떤 이들은 아주 늙도록 사는데, 어째서 어떤 이들은 젊어서 죽습니까? 어떤 이들은 좋은 것을 넘치도록 많이 가지고 있는데 어째서 어떤 이들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어째서 억한 자들은 부자로 살고, 착한 사람은 가난에 짓눌립니까?” 한 목소리가 그에게 대답했다. “안도니오야, 네 자신 일에나 전념하여라. 그런 건 하느님의 의견들인즉, 그걸 이해한다고해서 네게 유익한 건 없느니라.” (Antoine 2) (p241)
안또니오 교부는 말하였다. “나는 원수가 땅 위에 쳐둔 모든 그물을 보고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대체 무엇이 저 그물에서 빠져나갈 수 있으리오?“ 그러자 한 목소리가 ”겸손이다“라고 내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Antoine 7) (p241)
모세 교부가 즈가리아 수사에게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한마디 해 주게” … 그러자 즈가리아는 자기의 모자를 벗어 발 밑에 놓고 지근지근 밟으면서 말했다. “사람이 이렇게 짓밟히지 않으면 참 수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Zacharie 3) (p248)
난장이 요한 교부가 말하였다. “겸손은 하느님께 이르는 문이다. 그래서 헤아릴 수 없이 숱한 겸양을 통과하며 살아야 했던 우리의 교부들은 기뻐하며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는 또 말했다. “겸손과 하느님을 경외함이야말로 모든 덕행을 합친 것보다 더 높은 덕행입니다.” (Jean Kolobos 22) (p250)
테베의 요한 교부는 말했다. “수도자는 무엇보다 겸손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세주의 제일차적 가르치심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Jean des Cellules 2) (p250)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은 겸손한 사람이다.
은수자 모세가 성직자의 신분에 이르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장백의(長白衣)를 입혔다. 그러자 대주교가 그에게 말했다. “모세여, 그대가 이젠 하얗게 되었구먼,” “정말 밖은 그렇습니다. 주교님. 그렇지만 안은 어떻겠습니까?” (Moise 4) (p253)
“니스테로스 사부여, 수도원에 시끄러운 일이 생길 때, 당신은 어떻게 하여 당신 자신을 침묵케 하고 우울해하지 않는 덕행을 얻게 되었습니까?” 오랫동안 기도한 후에 니스테로스는 대답하였다. “사부님, 죄송하지만 저는 수도원에 들어왔을 때 이렇게 중얼거렸답니다. ‘당나귀와 네가 같은 족속이냐! 당나귀는 두들겨 맞아도 잠자코 있고 욕설을 퍼부어도 대답이 없다. 그렇게 행하여라. 시편에 적혀 있듯이 말야. ”나는 당신 곁에서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그래도 항상 당신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시편 73,22-23)’” (Nisteros 2) (p254)
빠스똘 교부는 말하였다. “사람은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또 내뿜듯이 계속 하느님에 대한 겸손과 경외를 호흡해야 합니다.” (Poemen 49) (p255)
빠스똘 교부가 말하였다. “하느님 앞에 엎드리시오. 자신을 중요시하지 말고, 자신의 의지를 내쫓아 버리시오. 그런 것이 바로 영혼을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연장들입니다.” (Poemen 36) (p255)
빠스똘 교부는 다른 원로의 의견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말하려 하지 않았고, 다른 이의 말을 항상 칭찬하곤 했다. (Poemen 105) (p256)
어느 수도자가 시소에스 교부에게 이렇게 문의했다. “나 자신을 곰곰이 성찰해 보니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 내게서 떠나지 않음이 확인됩니다.” 원로는 그에게 말했다. “자네 영혼이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건 대수로운 일이 아니야. 자네가 자신을 모든 피조물보다 열등한 것으로 안다면 그건 훌륭한 일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육체 노동을 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개선하고 겸손으로 이끌어주는 일이다.” (Sisoes 13) (p259)
신클레틱 성녀는 말하였다. “겸손없이 구원받으려 함은 나사못으로 조이지 않은 선박이 바다를 항해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입니다.” (Syncletique S9) (p259)
히페레키오 교부는 말했다. “생명의 나무는 자라게 마련이다. 그러나 열매를 따기 위해서는 수도자의 겸손이 그 나무 속에서 자라야 한다.” (p259)
올시시오 교부는 말하였다. “강가에 있는 점토를 굽지 않고 그대로 초석으로 사용한다면 단 하루를 못견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구우면 석재만큼 단단한 건축자재인 테라코다가 됩니다. 감각적인 지혜를 가진 사람도 그와 같습니다. 요셉처럼 하느님에 대한 경외라는 불로 굽혀지지 않는다면, 그가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더라도 완전히 멸망하고 맙니다.” ... 힘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우리로서는 투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간신히 하느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Orsisios 1) (p260)
어느 마귀 붙은 자가 거품을 부글대면서 은수자인 한 원로의 빰을 때렸다. 원로는 그에게 즉각 다른 쪽 빰을 내밀었다. 그러나 악마는 그의 겸손의 불길을 참을 수 없어 당장 그 남자에게서 나가 버렸다. (N 298) (p261)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교만하거나 헛된 영광에 대한 생각이 그대 안에 침투해 들어올 때면, 그대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있는지 원수를 사랑하는지, 반대자의 성공을 기뻐하고 그의 실패를 슬퍼하는지, 그대 자신을 쓸모없는 종, 죄인 중의 죄인이라 생각하고 있는지, 그 모든 걸 보기위해 양심 성찰을 해 보게. 그리고 설사 그 모든 조항이 자네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뭔가에 도달한 것으로 여기지 말게. 그런 종류의 생각은 여타 모든 것을 망칠 테니 말이네.” (N299 Or11) (p261)
어느 원로가 말했다. “그대가 그대의 형제보다 더 점잖고 더 엄격하고 더 똑똑하다고 생각함으로써 마음 깊은 곳으로 그대의 형제를 비판하지 말고, 가난한 마음과 참된 사랑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유순하게 머물게. 악한 영에 이끌려 그대 노고의 결실을 잃어버릴까봐 염려되니 말일세.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이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게.(콜로 4,6참조) (N331 Or 13) (p261-262)
어느 원로가 말했다. “자신의 공로보다 더 많은 칭찬과 존경을 받는 사람은 그 때문에 큰 손해를 입는다. 반대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저 높은 곳에서는 영광을 받을 것이다.” (N300 Or 10) (p262)
어느 수도자가 한 원로에게 어째서 악마들이 우리를 그렇게도 유혹하는가고 물었다. 원로가 대답했다. “그건 말이지. 우리가 그들을 쳐부술 수 있는 무기인 겸손 · 가난 · 인내를 우리에게서 멀리 던져버리기 때문이야.” (N302) (p58)
어떤 사람이 한 원로에게 물었다. “겸손이란 대체 뭡니까?” 그는 대답했다. “자네를 대적하여 죄지은 한 형제가 자네 앞에 엎드리기 전에 자네가 먼저 그를 용서하는 것일세.” (N304) (p263)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네게 닥쳐오는 모든 시련을 겪을 때, 네 자신 외에는 아무도 비난하지 말고 이렇게 말하여라. ‘내 죄 때문에 이런 일이 닥쳐왔구나.’” (N305) (p263)
어느 원로는 말하였다. “나는 보다 높은 것을 겨냥하기 위해 내 위치를 벗어나 본 적도 없고, 어둠 속으로 버려졌다고 해서 얼굴을 붉힌 적도 전연 없다. 내 유일한 생각은 이것이니, 나의 옛 사람을 벗어던지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는 일일 뿐이다.” (N660) (p263)
어느 수도자가 한 어른에게 물었다. “나그네에게 알맞은 일은 무엇입니까?” 원로는 대답했다. “나는 한 행려 수도자를 알고 있네. 그는 사람들이 애찬(愛餐)을 베풀 때 성당에 있다가 수도자들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하려 했지. 그런데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어. ‘이 형제를 누구 초대했나요? 일어나서 여기서 나가시오!’ 그 수도자는 떠나갔어. 그가 쫓겨남을 마음 아파한 다른 수도자들이 나가서 그를 다시 불렀지. 그리고 곧이어 그에게 물었어. ”쫓겨났다가 다시 불림을 받았을 때 당신은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나요?‘ ’마음속으로 내가 개와 같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개는 사람이 쫓아내면 쫓겨가고 다시 부르면 돌아오니까요‘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N306) (p263-264)
원로들이 말했다. “유혹을 받을 때면 더 겸손해지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약함을 보시고 그때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높아지면 그분은 당신의 보호를 우리에게서 거두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멸망하고 말지요.” (N309) (p265)
악마가 빛의 천사로 변해 어느 수도자에게 나타났다. “나는 가브리엘 천사이다. 그리고 너에게 보냄을 받았다”라고 그가 말하자, 수도자는 대답했다. “다른 어떤 사람에게 보냄을 받지 않았나요? 나로 말하면 천사의 방문을 받을만한 인간이 못되니까요.” 악마는 즉각 사라져 버렸다. (N310) (p265)
원로들이 말하였다. “천사가 그대에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수월히 받아들이지 말게. 차라리 겸손하게 이렇게 말하게. ‘죄 중에 살고 있는 나는 천사를 볼 자격이 없는 인간입니다.’”
(N311) (p265)
원로들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원로가 자기의 독방에서 유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악마들이 나타나 그를 조롱하곤 했지요. 한 악마가 그 수도자에게 패했음을 느끼고 그에게 나타나 ‘나는 그리스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을 본 수도자는 눈을 감아 버렸어요. 악마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이다. 그런데 너는 어째서 눈을 감느냐?’했지요. ‘내가 그리스도를 뵙고 싶은 건 이 이승에서가 아니라 저 세상 삶을 살 때입니다’라고 수도자가 대답하는 말을 듣고, 악마는 사라져 버렸답니다. (N312) (p266)
악마들이 어느 원로를 속이려고 이렇게 말했다. “너는 그리스도를 뵙고 싶지?” 그러자 원로는 “고약한 놈들 같으니! 그분에 대해 그따위로 말하다니! 나는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가 저기에 있다“고 사람들이 말하더라도 너희는 그 말을 믿지 말아라’고 경고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악마들은 사라졌다. (N313) (p266)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누군가가 만일 하느님을 경배하며 겸손되게 형제에게 하나의 명령을 한다면,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발설된 그 말은 그 형제를 순종하게 만들고 받은 명령을 실행하게 한다. 그러나 하느님을 경외하지 않고 자기의 권위를 느끼게 하기 위한 지배욕으로 어느 형제에게 명령한다면, 마음속의 비밀을 보시는 하느님께서 그 형제로 하여금 명령을 듣고 실천할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신다. … 하느님을 따른 명령은 기도의 방식을 통한 겸손된 것이지만, 지배욕이나 분노, 급작스러움으로 행해지는 명령은 악함에서 오는 것이다.” (N315) (p266-267)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나는 교만과 함께 얻어지는 승리보다는 겸손한 인내가 요구되는 실패를 더욱 좋아한다.” (N316) (p267)
어느 수도자가 한 원로에게 물었다. “나는 다른 수도자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비난받을 짓을 하는 걸 받을 때, 내가 그들에게 주의를 줘도 괜찮겠습니까?… ” 그걸 참을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딱 한 번만 아주 겸손하게 그들을 경고하십시오. 그들이 만일 당신 말을 듣지 않는다면 당신의 고통을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을 위로해 주실 겁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그분 앞에 엎드려 그분께 자신의 의지를 맡겨야 합니다. 당신의 열성이 하느님을 따른 것이 되도록 조심하십시오. 내 생각으로는 침묵을 지키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만, 당신에게 있어서의 겸손은 바로 침묵이거든요.“ (N318) (p267-268)
어느 수도자가 한 원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사람에 있어서 진보는 무엇으로 구성됩니까?” 원로가 대답했다. “겸손이지. 사람이 겸손을 향해 자신을 낮출수록 그만큼 더 완덕을 향해 높아지는 거라네.” (N381) (p268)
어느 원로가 말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을 낮추면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면, 그는 유혹자인 악마들을 불로 태우는 것이 됩니다.” (Guy p90 n2) (p268)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만일 방앗간 주인이 맷돌을 돌리는 짐승의 눈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 짐승은 몸을 돌려 제가 빻은 곡식을 먹어치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안배로 우리는 우리의 선행을 보지 못하게 가려 주는 베일을 받은 것입니다. 스스로 행복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받을 상급을 잃지 않도록 하는 베일 말입니다.(N322) (p268)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나는 교훈을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는 또 말하였다. “때가 되기 전에는 사람을 가르치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평생토록 설익은 지성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N668-669) (p269)
어떤 사람이 한 원로에게 물었다. “겸손은 대체 무엇입니까?” 원로는 대답했다. “그건 위대한 일, 신적인 일입니다. 겸손의 길은 육체의 고행에 전념하며, 자신을 죄인들의 반열에 넣고, 다른 모든 사람 밑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N323) (p269)
그는 다시 물었다. “다른 모든 사람 밑에 자신을 위치시킨다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인지요?” 원로는 대답했다. “그건 다른 사람의 죄가 아니라 항상 자신의 죄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고, 하느님께 항구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N323) (p269)
한 수도자가 어느 원로에게 청했다. “제가 지키며 살 수 있는 단 한 가지 일만 말씀해 주십시오.” 원로는 그에게 말했다. “자네가 모욕을 받고 참아낼 수 있다면, 그건 모든 덕행을 능가하는 훌륭한 일이라네.” (N324) (p269)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경멸 · 모욕 · 피해를 참을성 있게 견디어내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N325) (p269)
이웃을 참아 견딤
마카리오 교부가 이집트에 있었을 때, 짐바리 짐승을 몰고 다니던 한 남자가 어느 날 교부의 물건을 훔치고 있음을 보았다. 그는 지나가던 순례자처럼 그 도적에게 가서 도적이 짐승에게 물건 싣는 일을 거들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마음의 평온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자기의 물건을 싣고 가는 도적을 배웅해 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1디모 6,7) 야훼의 이름을 찬양할지니라(욥기 1,21 참조) (Macaire 18)
(p275)
빠스똘 교부의 형제인 빠이시오가 외부의 어느 수도자와 각별한 친분 관계에 있었다. 빠스똘 교부는 그 사실을 용납할 수 없어 일어나 암모나스 교부에게 달려갔다. “내 동생 빠이시오가 어떤 사람과 각별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데, 그래서 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빠스똘 사부, 자네가 아직 살아 있구먼! 독방으로 돌아가세. 그리고 자네가 일 년 전부터 이미 무덤에 있다는 생각을 해 보게”라고 암모나스 교부는 대답하였다. (Poemen 2) (p276)
빠스똘 교부가 말하였다. “자네의 고통이 그 무엇이든간에, 그 고통에 대한 승리는 침묵을 지키는 데 있네.” (Poemen 37) (p276)
어떤 수도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를 더 모욕하여 화를 돋우는 사람을 그만큼 더 찾아다니곤 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은 진지하게 완덕을 구하는 사람들을 고쳐 주기 위해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실 완덕을 구하는 사람들을 좋게 말해 주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영혼을 괴롭히는 일이 됩니다. 성서에도 ‘너희를 칭찬하는 사람들은 너희를 나쁜 길로 인도한다’ (이사 9,16 참조)고 적혀 있지 않습니까?” (N336) (p277)
강도들이 하루는 어느 원로의 은거처에 들어왔다. “네 방에 있는 건 뭐든 다 내놓아!” “너희 좋을 대로 다 가져 가려무나, 애들아”라고 원로는 대답했다. 그리하여 강도들은 모든 걸 다 찾아 들고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방 안에 숨겨져 있던 지갑은 빠뜨리고 갔으므로 원로는 그것을 들고 그들을 따라가며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이것도 가져가! 너희가 방에 빠뜨렸단 말야!” 강도들은 원로의 그 참을성을 감탄하며, 가지고 갔던 물건을 모조리 도로 가져와 원로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서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분은 정말로 하느님의 사람이야!” (N337) (p277)
어느 원로는 시련을 잘 참아받는 덕행을 가진 한 제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하루는 기분이 나빠져서 그 제자를 문밖으로 쫓아내었다. 제자는 밖에 앉아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원로가 문을 열었을 때 제자는 여전히 거기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원로는 제자 앞에 엎드렸다. “그대가 나의 사제입니다. 그대의 겸손과 인내로 내 고약한 성질을 이겼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들어오시오. 이제부터 그대가 사제요 어른이며, 나는 연소한 제자입니다. 그대의 행동이 나의 나이 많음을 능가했습니다.” (Un Romain 2) (p279)
사랑
안또니오 교부가 말하였다. “이제 나는 하느님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분을 사랑합니다. 사랑은 공포를 몰아내니까요(1요한 4,18 참조).” (Antoine 32) (p281)
안또니오 교부는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삶과 죽음이 이웃사람에게서 옵니다. 우리의 형제를 얻게 되면 하느님을 얻을 것이며, 우리의 형제를 분노하게 만들면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항하여 죄를 짓는 것입니다.” (Antoine 9) (p281)
니트리아의 아모운 교부가 안또니오 교부에게 와서 말했다. “내가 보기엔 나의 실천이 당신의 실천보다 더 엄격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당신이 나보다 더 유명하지요?” “그건 내가 당신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겠지요”라고 안또니오 교부는 대답하였다. (Amoun de Nitrie 1) (p281)
빠스똘 교부가 말했다. “이웃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과연 누군가에게서 욕설을 들은 사람은 자신도 똑같이 보복해 줄 수 있다 하더라도, 자신과 싸우며 잘 견뎌내어 상대방을 슬프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혹은 누구에게서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자신을 화나게 하고 괴롭힌 사람에게 보복하지 않고 참을성있게 견딘다면,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목숨을 이웃을 위해 내놓는 것입니다. (Poemen 116) (p283)
어느 원로가 말했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뭔가를 달라고 청할 때 당신이 마지못해 그걸 준다면, 그런 식의 증여에 어울리는 성의 밖에 없습니다. 성서에는 ‘어떤 사람이 네게 십리를 같이 가자고 하면 너는 그와 함께 이십리를 가거라’라고 적혀있지 않습니까? 그건 이런 뜻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뭔가를 청하면 진정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주십시오.” (N345) (p285)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내게 유용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만약 형제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나는 결코 탐낸 적이 없습니다. 형제를 얻으려는 희망을 가지는 것이 내게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N353) (p289)
어느 수사가 한 원로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하루는 원로에게 종기가 생겨 고름이 숱하게 흐르는 데다 냄새가 아주 고약하였다. 수사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서 떠나라구. 그 썩은 악취를 너는 못 견딜 거야.” 그 유혹을 이기기 위해 수사는 대야를 가져와 원로의 헌 데를 씻었다. 그러고는 그 씻은 물을 단지에 모아 목이 마를 때마다 그것을 마셨다. 그래도 그 생각이 줄곧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네가 떠나고 싶지 않다면 적어도 그 썩은 물은 마시지 말아.” 그럼에도 수사는 용감하게 그 일을 잘 참아내었다. 헌 데를 씻은 물을 계속 마시며 원로의 시중을 든 것이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그 일에 바치는 그의 사랑을 보시고 고름 섞인 물을 아주 맑은 물로 바꾸어 주셨으며, 원로도 보이지 않는 치료책으로 완쾌시켜 주시는 것이었다. (N356) (p289)
초자연적 통찰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생살을 먹고 살 수 없음을 아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성체를 빵으로, 성혈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그분을 받아모시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Daniel 7) (p294)
돌은 단단하지만 물은 본디 단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이 가득 든 통을 바위 위에 매달아 한 방울 씩 한 방울 씩 떨어지게 하면 바위에 구멍이 납니다. 하느님의 말씀도 그렇게 물처럼 유연한데, 우리의 마음은 완고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주 그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열려 하느님을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Poemen 183) (p300)
어느 교부가 말하였다. “돼지의 눈은 그 본성상 어차피 땅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을 쳐다볼 수 없거든요.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혼이 달콤한 쾌락에 이끌려 그 진창에 일단 굴러 떨어지게 되면, 더 이상은 하느님을 쳐다볼 수 없어지고 신적 사물에 대한 흥미도 잃고마는 것입니다.” (N364) (p308)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볼 줄 아는 은혜를 받은 한 원로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어느 수도원의 수사가 자기의 독방에서 묵상에 잠겨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악마가 와서 문 뒤에 서 있더군요. 그 수사가 묵상을 하고 있는 동안은 문 안으로 침입할 수 없던 그 놈이, 수사가 묵상을 그만두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어요.” (N366) (p309)
완덕에 관한 요약된 금언들
“어떻게 하면 참된 수도자가 됩니까?”라고 묻는 이에게, 어느 원로는 대답하였다. “내 말 듣고, 홀로이신 분 앞에 홀로 있게.” (p345)
“당시은 어떻게 하시기에 절망에 빠지시는 법이 없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원로는 “나는 매일 죽음을 기다린다네.” 했다. (p345)
“저는 왜 계속 절망하곤 할까요?” “자네가 아직 목표를 못 보고 있기 때문이라네.” 질문받은 원로의 대답이었다. (p345)
☑ 목표는 하느님이다. 하느님을 보지 못하면 절망하게 된다
“수도자의 일은 무엇입니까?” 원로는 대답했다. “분별이야” (p345)
“수도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질문받은 원로가 대답했다. “선은 무엇이나 실천하고 악은 깡그리 끊어야 하네.” (p346)
원로들이 말하였다. “기도는 수도자의 거울이다.” (p346)
원로들이 말하였다. “판단하는 것보다 더 나쁜 건 달리 없다.” (p346)
원로들이 말하였다. “마음속에 문득 무슨 생각이 날 때마다 이렇게 말해 보아라. ‘네가 우리 편이냐, 아니면 원수에게서 오는 것이냐?’ 그러면 틀림없이 그 점을 자백할 것이다.” (p346)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모든 일에 있어서 애써 자제함이 하느님의 길입니다.” (p346)
어느 원로가 말했다. “먼저 양심성찰을 곰곰이 해 보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꾀하지 말게. 그렇게 해야 자네가 하고자 하는 일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건지 아닌지 그 여부를 알 수 있는 거라네.” (p346)
어느 원로가 말했다. “어떤 수도자가 기도하기 위해 서 있을 때만 기도한다면, 그는 결코 기도하는 사람이 못되네.” (p347)
“어떻게 하면 영혼이 겸손해지나요?”라고 누가 묻자, 원로는 대답했다. “다만 자신의 잘못에만 각별히 유의해야 하네.” (p347)
어느 수도자가 말했다. “주님을 위해 재산을 버리고 고국을 떠나고서도 결국 지옥에 가는 것은 수도자에게 있어서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p347)
어느 원로가 말했다. “이 세대는 오늘 걱정은 하지 않고 내일 걱정을 하는구나.” (p347)
어느 원로가 말했다. “행한 일보다 명성이 더 큰 사람은 조만간 변을 당할 것입니다.”
(p348)
어느 원로가 말했다. “항상 죽음을 보며 사는 사람은 용기의 부족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p348)
그는 또 말하였다. “사람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것이니,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함, 죄를 미워하고 덕을 좋아함 및 하느님께 부단히 기도함입니다.” (p348)
3. 이책에 대한 간략한 나의 느낌 또는 소개
이 책을 다 읽고 정리하던 중 그만 버스에서 책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다시 책을 사고, 다시 책을 읽고 다시 정리했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다시 읽으며 놀랐던 게 분명히 읽은 책인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마치 새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정리하지 않는 독서는 허사라는 것을 깨우쳐주었다.
첫댓글 “나는 교만과 함께 얻어지는 승리보다는 겸손한 인내가 요구되는 실패를 더욱 좋아한다.”
겸손의 중요성을 배우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겸손이 얼마나 좋은 덕인지요...읽고 공감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