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거토피아를 운영하는 류상태님
이제 오늘부터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이단이라는
거북한 용어를 버릴 것을 단호하게 부탁드리고 싶네요.
이단이라는 말은 정말 나약한 집단을 짓밟기 위해 즐겨쓰는 용어였습니다.
소수의 힙없는 무리를 그 싹부터 잘라버리기 위해 고안한 마법의 칼이라는 것입니다.
약자들의 친구인 예수님이 당시 기득권층인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 이단의 괴수로 몰렸었고
그 결과가 끔찍한 십자가 참형(죽음)이었음을 잊으신 것입니까?
우리가 언제까지 힘있는 세력으로부터 저주받을 죄인으로 낙인찍혀야 합니까?
어떤 기독교 학자는 이 심판 용어를 영적 살인이라고 하면서 쓰지 말 것을 힘주어 권고하던데...
약자를 위한 운동을 한다는 류상태님조차 즐겨쓰는 것을 볼 때
그 운동의 한계를 심히 느끼게 되는군요.
전 그런 용어 한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너무 제 자신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죄많은 내가 감히 세상 사람들을 심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인 양 심판할 권리가 저에겐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단이란 정죄 곧 영적 살해 행위.. 이젠 그 죄를 받아야 할 때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제 통일교를 어쩌겠다구요?
님은 제 글을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에 스스로 귀막고 눈막은 유대교 지도자가 되어
다시오신 주님을 십자가에 참수시킨 그 무거운 죄를 반복하고 있음을 알 것입니다.
그 때 뜨거운 참회의 눈물을 흘힐 것을 기대하겠습니다.
통일교가 해악하다면 기독교는 해악의 제곱으로 설명되어야 마땅하다 할 것입니다.
1) 통일교는
문선명씨를 인류의 ‘참 아버지’라고 가르침으로써
이 땅의 부모들을 ‘참 부모가 아닌 분’으로 격하시키고
가정의 숭고한 질서를 파괴하고 있기에
사회적 범죄집단으로 간주합니다. (류님의 기득권적 관점에서 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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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란 참으로 두렵구나!
그런 생각만 자꾸 듭니다.
님의 글을 기독교 버전으로 고칩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신'으로 가르치거나 '하나님의 아들'로 가르침으로써
이 땅의 모든 인간들에게 신성이 없는 죽은 자로 자괴감을 주었으며
심지어 '사탄의 아들'인 양 격하시킴으로서
'인간 존중'의 기본 원리를 파괴하고 있기에
사회적 범죄집단으로 간주합니다.
기독교는 신이나 성자(하나님의 아들)로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가 신도 아닌 인간으로 또한 성스런 성부모(참부모)로 보는 것이 범죄라구요.
어쩜 그렇게 철저히 기득권층의 논리위에 서십니까?
류상태님조차 아직 바뀌지 않았군요.
일본에서 4박5일간 통일교 세미나를 통해 뭘 배웠던 것입니까?
성부모(참부모)라는 말이 그런 말이던가요?
성부모(참부모)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드립니다.
이것 읽고 큰 깨달음을 얻기 바랍니다.
참부모라는 용어!
가정을 살리는데 없어선 안될 용어라고 전 생각해왔습니다.
통일교에서 성스런 부모 곧 성부모(참부모)라는 개념을 씁니다.
최고의 구원 단계를 '성인'(보통의 종교)의 단계를 넘고 다시
'성자'(기독교계통)의 단계를 넘어야 참부모의 단계에 다다른다고 봅니다.
성자보다 한 차원 더 높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부모라는 개념은 지극히 어색하므로 참부모라고 쓰고자 합니다.
물론 '성인'의 단계는 알다시피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성자' 아래 단계임은 분명할 것입니다.
석가나 공자나 마호멧은 하나님과 직접 만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대신자인 천사장과 만났거나 천사장의 인도를 받았다고 봅니다.
물론 석가와 공자는 예수님의 길을 곧게 할 분이였고,
마호멧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바람에 나타난 결과적 길을 간 분이라고 봅니다.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다면 마호멧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면서 예수님으로 인해 살아난 바라뱌의 입장에서 나온 종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때문에 태어났지만 결국 예수님과 적대적인 관계로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슬람교과 기독교의 철저한 무시와 대립, 적대성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모든 것은 물론 문샘 말씀집에서 제가 읽은 것을 생각나는대로 쓰는 것입니다.
성자와 더불어 가정을 이룰 배필이 하나가 된 상태가 성부부(참부부)이고...
그 사이에서 자녀를 번식하면(창1:28) 성부모(참부모)가 되는 것이겠지요.
태생적으로 성가정(참가정)이나 성부모(참부모)를 강조하는 통일교의 개념이
창세기 1장 28로 인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부모와 떨어져 둘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성구가 따로 있기도 하지요.
한편 성자는 하나님의 거의 전적인 수고로 태어납니다.
성자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4천년만에 하나님은 그토록 열망하던 당신의 아들인 성자를
이 땅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보내더라도 보호하는 울타리가 없으면 죽을 수 밖에 있으니
하나님은 일찌기 외적인 이스라엘민족과 내적인 유대교를 세워 내외 울타리를 치고
예수님이 태어나면 예수님을 중심으로 당신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창건하실 것을 고대하면서 60대 4천년 만에 예수님을 보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외적 예수님의 울타리(이스라엘민족)와,
내적 예수님의 울타리(유대교)가 배신하는 바람에 하나님의 나라는 멀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이스라엘민족과 유대교 대신한 것들을 세웁니다.
40일 금식을 통해 죽었다 살아난 조건으로 새출발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이스라엘민족을 대신한 12지파의 상징인 12제자와
유대교를 대신한 복음(새말씀)을 통해 12제자와 당신이 하나가 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이 작은 예수님의 울타리조차 사탄의 침범으로 무너집니다.
결국 당신의 육신을 사탄에게 내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조건으로 영적인 부활을 하셨고... 그 기간 즉 40 동안 새롭게 영적 내외 울타리를 치십니다.
가롯유다 대신 맛디아를 세워 당신의 울타리가 될 12제자(이스라엘민족 12지파 상징)를 다시 세우고
복음(유대교의 율법 상징)을 이제 철썩같이 믿게 하는데 성공합니다.
즉 예수님과 이들이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12제자들이 복음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울타리가 되게 되었고 그 울타리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찾아나서게 되었습니다.
영적 하나님의 나라가 비로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게 영적 구원이라는 통일교의 사상입니다.
한편 성부모가 되는 것은
성경 창세기에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로 해와를 창조한다는 것처럼
하나님의 절대적인 수고와 아담의 뼈가 필요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이제 성자의 뼈를 깍고 살을 도려내는 수고를 통해 성자는
배필을 찾아나서야 했고 그 배필과 한 가정을 이뤄
하나님의 아들을 제 2차로 번식(창1;28)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예수님을 불신한 유대교인들로 인해 예수님은 결혼도 못하고
성자의 단계를 넘어 성부부, 성부모의 단계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물론 영적인 성부부, 성부모의 단계를 이룬다고 봅니다.
통일교는 성신을 예수님의 배필로 보는 것을 알 것입니다.
아무리 성자(창세기1:28, 생육하라는 축복받음)라도
당신의 뼈와 살을 파내 배필을 세워야 했던 것이고
그럴 때 비로소 성부부, 성부모라는 다음 단계의 축복(제2의 축복)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는 달리 문샘은 배필을 얻기 위해 온갖 수고를 다 하십니다.
문샘께서 말씀하시길 배필을 찾는 작업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고 하는 말씀이
그런 배경을 두고 있지만 님들은 모르시니... 답답한 마음으로 씁니다.
배필을 찾기 위해 사탄과 혈투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마리아를 혼낸 것도 그 같은 내용이라고 하셨지요.
예수님은 그 혼인잔치에서 "내 때"는 언제냐고 묻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내 때"로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 좋은 혼인잔치날에 죽음을 이르는 십자가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은
도무지 관련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암튼 문샘은 당신의 모든 것을 투입하고 또 투입하십니다.
결국 세번째 여인인 한학자님을 통해 승리하십니다.
성자에서 이제 '성스런 남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녀로부터 자녀를 14명이나 얻었지요.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로 배필을 빚어 승리한 결과라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배필이나 자녀나 처음부터 완성된 입장은 아닙니다.
길러서 바로 세울 책임이 성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배필이나 자녀들로부터 한점도 부끄럽지 않도록 사셨습니다.
철저히 공적으로 사셨습니다.
공적인 일이 있으면 절대적으로 사적으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배우자도 성장하여 완성된 입장이 되었고,
문샘의 자녀들조차 이젠 거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게 통일교인들의 한결같은 소망이었고,
그 소망이 이루어지는 최근을 보면서 통일교인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자녀들이 자랑스러워 몸둘바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비록 장남 효진님의 실수도 있었지만 효진님의 재혼 이후의 모습은
정말 그야말로 성자다웠다는 주위의 평가가 나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원래부터 통일교 문샘의 가르침은 혈통을 생명보다 사랑보다 강조해 왔습니다.
제자들의 학수고대는 그래서 문샘의 자녀들이 당신들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었구요.
하나님의 최초 혈통인 예수님으로부터 참생명도 나오고 참사랑도 나오고 참진리도 나온다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봅니다.
성경 말씀보다 하나님의 혈통으로 태어난 예수님이 더욱더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지 성경이 그 일부의 것일 뿐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 신약 37권은 예수님의 지극히 작은 일부만을 표현한 진리라는 것이지요.
이게 통일교의 예수관이자 성경관입니다.
결론적으로 성자로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 전적인 책임이지만,
그러나 성자가 배필을 맞아 당신과 더불어 성부부를 이루는 것은
성자의 전적인 몫이라는 것입니다.
성자가 자신의 배필을 찾아 뼈중의 뼈로 보살피고 키워내는 것으로부터
성부부가 되고 성부모가 되는 것이니 결국 배필은 성자의 구세주가 된다 할 것입니다.
문샘이 늘 통일교인들에게...
배우자는 자신을 구원할 존재이니 항상 하나님처럼 모셔고 살라 하는 것도
그런 말씀의 배경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자녀도 자신을 구원할 존재이니 항상 하나님처럼 모셔야한다고 말씀이 나오지요.
자신을 성부부로, 성부모로 만들어주는 존재(배우자, 자녀)가 바로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자를 넘어 성부모가 되고자 해도 성자 혼자서는 안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성부모는 성자와 그 차원이 한참이나 다릅니다.
기독교에서 예수님만을 성자로 본다고 해서
모든 인간들을 거짓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과 같이
통일교가 문샘부부를 성부모(참부모)라고 본다 해서
모든 부모들을 거짓 부모로 보지 않는 것은 같은 이치라 할 것입니다.
이제 류상태님의 그 짧은 생각이 님을 부끄러워했을 것으로 확신하는 바입니다.
2) 통일교는
예수님과 부처님, 공자님 등 고등종교의 창시자들이
문선명씨에게 경배했다는 황당무개한 주장을 펴
인류의 종교 문화를 심히 왜곡하며 훼손하고 있기에
문화적 범죄집단으로 간주합니다.(류님의 세속적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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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선언은 지극히 영적인 것입니다.
검증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영적인 안목이 아닌 세속적인 눈으로 본다!
세상이 웃을 것입니다.
더 이상 세속적인 시각으로 영적인 것을 판단하고 심판하지 마세요.
2008년 4월 19일
불거토피아 카페지기 류상태님에게 청주사랑이 겸손하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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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상태님께..기득권적 논리로 우릴 범죄집단으로 낙인찍지 마세요.(지우지마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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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0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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