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편지 877 606번의 실험
독일의 세균학자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 1854-1915)가 최초의 효과적인 매독 치료제인 살바르산을 개발했습니다. 그 치료제는 606번의 실험 끝에 만든 약이라 해서 '606호'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1493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고향으로 돌아오자 그의 귀환과 함께 매독이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옮아져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400여년 동안 유럽에서만 1,000만 명이 매독으로 죽었습니다. 19세기말에는 프랑스 파리 인구의 15%가 매독 환자였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그 시기에 매독은 결핵, 기생충과 함께 우리 민족의 3대 질병으로 꼽힐 정도였습니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이란 책에서 "매독과의 투쟁은 민족의 과업"이라고 썼을 정도로 매독은 심각한 사회문제였습니다. 보들레르는 "우리의 뼈 속에 매독이 살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혈관 속에는 공화주의 정신이 숨 쉬고 있다"고 빗대어 말할 정도였습니다.
다행이 1909년 6월 26일 파울 에를리히가 최초의 효과적인 매독 치료제인 살바르산을 개발했습니다. 이 치료제는 매독균 스피로헤타를 죽이지만 인체의 다른 세포에는 손상을 주지 않고 특정 세균만 죽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법의 탄환'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성병인 매독이 인류의 부도덕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며 치료제 개발 자체를 반대하였습니다.
에를리히는 동물에게 염료를 주사하면 특정 부위만 색깔이 변하는 것에 착안해 '동물의 몸을 이루는 여러 조직 중에서 특정 부위만 염색하는 염료가 있다면 사람의 조직에 있는 세균만을 염색하여 죽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 결론이 바로 '마법의 탄환' 이론입니다. 그는 정상세포는 죽이지 않고 사람을 괴롭히는 미생물만 죽이는 화학약물의 개발에 몰두해 마침내 ‘살바르산 606’을 탄생시켰습니다.
그가 발견한 살바르산은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그리 대단한 약이 아닙니다. 부작용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40년 뒤에 페니실린이 나오자 살바르산은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수은으로 매독을 치료하던 당시로서는 살바르산은 획기적인 약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페니실린으로 매독을 완치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살바르산은 수많은 인명들을 구해내었습니다.
606의 실험은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605번의 실패를 경험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피뢰침을 처음 발명하자 교황청에서 신의 징벌을 피하게 만든다고 크게 노했듯 매독이 부도덕한 사람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 하며 매독 약을 반대한 사람들의 반대도 그에게 큰 짐이 되었을 것이며 그의 경쟁자들은 그를 심하게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반대와 실패 뒤에 얻어진 살바르산의 발견은 수많은 생명들을 살리는 엄청난 공헌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진지한 노력들이 분야마다 이루어져 인류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합니다.
살바르산 (Salvarsan)
- 매독의 화학요법제인 아르세노벤젠의 시판명.
-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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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독(梅毒)의 화학요법제인 아르세노벤젠의 시판명(市販名). 1910년 독일의 P. 에를리히 및 일본의 하타 사하치로[秦佐八郎(진좌팔랑)]가 공동으로 개발한 세계 최초의 매독 치료제이다. 개발번호가 606번인 화합물이었기 때문에 606호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 뒤 개량되어서 네오살바르산·네오네오살바르산·아세타졸 등이 시판되었으나, 비소화합물로서 그 부작용 때문에 항생물질의 출현으로 현재는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다. 어원은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비소>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