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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국립공원지킴이 생활
1. 2008년 10월 어느 이른 아침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오늘도 산에 가십니까?” “예” 경비 아저씨와 주고받는 말이다. 나는 누가 보아도 아침 일찍부터 허구한 날 산으로 놀러 다니는 팔자 좋은 행색이다. 국립공원지킴이가 되어 다시 산으로 출근한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세월 참 빠르다. 이순을 넘긴 나이에 일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일 년여를 빈둥빈둥 놀다보니 노는 것만큼 답답하고 지겨운 일은 없다. 아무튼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기 맑고 경치 좋은 북한산으로 서둘러 가고 있다.
도시의 아침은 활기에 넘쳐 있다. 모두들 총총걸음이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뛰거나 걷
지 말고 두 줄로 서서 손잡이를 꼭 잡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도록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러
나 바쁜 아침 출근길이요 ‘빨리빨리’가 몸에 밴 우리들이다. 더구나 예전에는 바쁜 사람을 위해 한
줄을 비워두도록 꾸준히 홍보까지 하지 않았던가. 왼쪽 길은 걸어가는 곳이 되었다. 서 있으면 눈
총이 따갑다. 나도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왼쪽 길을 급하게 걸어간다.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5분
일찍 서두르면 될 걸 그렇지 못하고 맨 날 허둥댄다. 배낭을 메고 비좁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것은 고역이다. 몸을 놀릴 수도 없다. 서민들의 하루는 이렇듯 고단하나 힘차게 시작된다.
고속터미널역은 사람들로 붐빈 열차가 지나간 다음에 오는 전철은 자리가 비어 있기 마련이다. 2
분 후에 오는 열차에 자리를 잡아 가만히 눈을 감고 얌전히 앉아 있는데 열차 안이 소란스럽다. 노
인과 젊은이가 옥신각신한다. “노인이 왜 여기 앉는 거요? 노인자리가 비어 있지 않아요?” “여기도
자리가 비어 있으니까 거기까지 갈 필요 없이 여기 앉겠소.” “노인 좌석에 우리가 앉으면 일어나라
고 호통을 치시면서 여기 앉으면 안 되지요. 냄새난단 말이에요.” “예끼 고약한 사람.”하며 그 자리
에 앉으신다. 노약자석은 임산부와 노인, 장애인을 위하여 최소한 비워둔 자리 일 뿐이다. 노인들
은 아무 자리에 앉아도 된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공부하랴, 직장에 다니랴 피곤하고 지쳐서겠지만 노인 어르신들을 본체만체
한다. 노인이 앞에 서 계셔도 2․30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4․50대가 자리에서 일어
난다. 동방예의지국은 옛말이니 노인들을 하찮고 천덕꾸러기이요, 퇴직자는 귀찮은 존재가 되었
다. 고령화 사회가 되어서일까? 남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식만을 위해서 사
는 사회가 되어서일까? 남의 눈치 안보고 남의 기분이야 어떻든 제 기분 내키는 대로 씨부렁거리며
제멋대로 사는 세상이라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언짢고 찜찜하다.
2. 예전에는 구기분소에 들려 임무를 부여 받은 후 자기 자리로 갔지만 지금은 곧바로 자기 구역으
로 가서 일하면 된다. 내게 맡겨진 구역은 평창지역이다. 등산로 1곳을 제외하고는 휴식년제로 묶
여 있고 교통이 불편하여 한적한 곳이다. 평창지킴터에서 커피를 마신다. 산 속에 혼자서 마시는
커피도 제법 운치가 있다. 향이 좋다. 불그스레 물든 아기손바닥 같은 애기단풍잎, 젓가락처럼 생
긴 솔잎, 주홍색깔의 벚 잎사귀가 돌계단 위에 널려있다. 아름답다. 자연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자
연은 스스로 그리되는 것이다. 낙엽인들 쓸어 무엇하리요마는 사람이 관리하고 있구나 하는 흔적
을 남기고자 말끔히 쓴다. 산으로 오르는 입구가 깨끗하니 마음 또한 말끔해진다.
오전에는 마대에 담아놓은 매몰쓰레기를 운반하고 오후에는 매몰쓰레기를 파낼 예정이다. 1970년대에는 쓰레기를 눈에 보이지 않도록 땅에 묻는 것이 자연보호라고 생각했다. 허나 지금은 땅에 묻은 쓰레기를 도로 파내는 일이다. 북한산에는 많은 쓰레기가 묻혀 있지만 어디에 묻혀있는지 알 수 없음으로 모든 쓰레기를 파낼 수 없다. 발견 즉시 캐내는 수밖에 없다. 쓰레기가 썩으면 산을 오염시킨다. 보이지 않는 커다란 물탱크인 산이 오염되면 냇물과 바닷물이 오염되어 모든 생물이 살아 갈 수 없다. 산을 깨끗하고 순수하고 온전하게 가꾸어야 할 이유다.
지킴터 위 화장실 청소를 대충대충 해치우고, 쓰레기를 운반하고 있는데 ‘청담샘에서 일선사로 가는 중간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움막을 짓고 있으니 가보라.’고 탐방객이 알려 준다. 하릴없이 오후는 순찰을 가는 수밖에 없다. 청담샘 주변과 일선사 주변을 살펴보고 보현봉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아도 움막 같은 것을 짓는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도리 없이 내려오는 수밖에 없다. 이왕 간 김에 일선사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서둘러 내려온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소장님 어디십니까. 장님이 평창지킴터에 와 계시니 얼른 내려오십시오.”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내려왔는데 사람도 보이지 않고 차도 없다. 어찌된 일일까. 전화를 건다. “늑대소년이 되었어요. 그냥 가자고 해서 사무소로 왔어요. 미안합니다.” ‘내가 지킴이라서 이런 대접을 받는구나.’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마음이 씁쓰레하고 떨떠름하다.
3. 국립공원지킴이는 55세부터 65세까지 노인 실업자에게 주어진 일자리다. 공원 순찰, 청소, 시설물 보수를 망라한 국립공원 내 모든 잡일을 닥치는 대로 처리한다. 딱히 주어진 일이 없으니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국립공원지킴이다.
북한산 소장이었던 내가 맨 꼴찌인 일용직 국립공원지킴이 생활을 하고 있다. 잘하고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일터가 있어서 좋다. 정년퇴직을 하고보니 오라는 데도 없고 마땅히 갈 곳도 없다. ‘30년간 열심히 일했으니 이젠 쉬는 것도 괜찮지.’ 하는 말로 위로해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생계를 위해서도, 무료하고 지겨운 생활을 모면하기 위해서라도 할 일이 있어야 된다.
월간「사람과 산」홍석화 사장이 백부대간진흥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장이라는 직함으로 출판사 한 쪽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거마비까지 주었지만 딱히 하는 일 없이 지내자니 보기에도 민망하였다. 일자리를 찾은 곳이 과천시민회관 경비자리였다. 야간에만 4일 일하고 하루 쉰다. 트집이나 잡고 잔소리하며 못살게 구는 아줌마도 없다. 오로지 순찰에 신경만 조금 쓰면 되는 괜찮은 자리를 운 좋게 얻었다.
경비업무에 적응해 갈 즈음에 국립공원지킴이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밤이 아닌 낮에 그것도 산에서 일하니 구미가 당긴다. 그렇지만 월 급여가 15만원이나 적어진다. 과천시민회관에서는 서로 모르는 사람이요, 북한산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안다. 국립공원 지킴이가 되는 것은 대감마님이 하인으로 뒤바뀌어지는 천지개벽할 일이다. 북한산 소장이었던 내가 맨 꼴찌 일용직인 국립공원지킴이가 된다니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 할수록 가슴이 벌떡거리고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내 모습이 초라해지고 작아진다. ‘국립공원지킴이면 어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북한산에서 일한다는 것으로 마음을 추스르고 위안을 삼아 보아도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자꾸 자꾸 든다. 마음을 다잡고 가까스로 국립공원지킴이 지원서를 접수하였으나 아직도 여전히 ‘할까? 말까?’ 망설이는 무거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면접시험장인 북한산사무소 앞 등나무 주위에 응시생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정년퇴직한 김종달, 이덕봉의 얼굴이 보인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몇 마디 인사를 나눈다. 커피 맛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그저 그런 맛이다. 소장실이나 사무실에 들려 그들과 당당하고 의기양양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데 응시자 신분이라 나도 사무소에 들어가지 않고 옛 동료 직원도 나를 부르지 않는다. 사실 모른 체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마음 속 한 구속에는 들어와서 커피 한 잔 같이 하자고 부르지 않는 그들에게 서운한 생각이 자꾸 든다. 마음을 비우고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지만 냉혹한 현실에 못내 서운하고 울적한 마음이다.
“건강이 어떻습니까? 산에는 자주 다니십니까?” “예. 요즈음은 일주일에 한두 번 친구들과 산에 다닙니다.” 물어보고 자시고 할 게 더 있겠는가. 그걸로 면접은 끝이다.
국립공원지킴이가 된다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한 일일까. 호랑이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고 했는데 말이다. 잘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직원들 보기가 민망하다. 집안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 소장들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2008년 3월 31일 매스컴을 동원하며 국립공원지킴이 발대식을 갖는다. 지킴이 무리에 나도 끼어 있다. 지킴이가 되었으니 모든 지킴이와 똑같은 행동을 해야 된다. 옛날의 소장이 아닌 한 낱 지킴이일 뿐이다. 마음을 다잡아도 옛날의 대접받던 시절을 못 잊으니 큰일이다. 아무리 지킴이가 되었다고 하여도 이사장이 한낱 산장지기인 함태식 씨에게는 점심을 함께 먹으러 가자고 말하면서 명색이 소장 출신인 나에게는 일언반구도 없다.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라지만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잊자. 잊자.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니 이젠 모든 것을 잊고 욕먹지 않게 주어진 지킴이 생활을 열심히 해나가자.
4. 나는 P.P로프 한 롤을 지고 대남문을 오르고 있다. 낡은 로프는 교체하고 흔들리는 지주는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합동작업을 위해서다. 시멘트와 나무말뚝도 운반해야 된다. 40kg인 시멘트는 반으로 나누어 운반하고 한 롤이 30kg쯤 되는 로프(후에 안 일이지만 로프 한 롤은 24.5kg이다)는 통째로 지고 가기로 하였다. 이왕 하는 김에 나는 로프를 지고 가기로 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지게 지는 일은 자신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게지고 산에서 나무를 해오거나 볏단을 나르거나 두엄(퇴비)을 운반하였을뿐더러, 대학교 산악부 시절엔 40kg이 나가는 무거운 키슬링 배낭을 메고 보름 동안을 하루 종일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지 않았던가. 일을 마치고 내려 올 때도 북데기가 많은 낡은 로프를 지게에 지고 내려오니 나보고 「체험 삶의 현장」에 출현한 사람 같다고 한다. 몸으로 때우는 일이라면 자신 있다. 일하고 나니 기분이 좋다.
여름 내내 구기계곡과 평창계곡 탐방로의 지주를 단단히 고정하고 로프를 팽팽하게 하였다. 움직이기만 하여도 땀이 흐르는데 힘든 작업을 하니 땀이 주르르 흐른다. 흐르는 땀방울에 일하는 즐거움을 준다. 일한 후의 점심 맛은 그만이다. 각자 집에서 싸가지고 온 도시락이다. 반찬에 신경 쓰면 마나님이 스트레스 받으니 집에서 먹는 반찬을 가지고 다니지만 사랑의 반찬이다. 근무자에게 술은 금물이지만 합동작업을 하는 경우에는 사무실에서 더러 막걸리를 사준다. 적당히 먹는 술은 작업 능률도 올려주고 몸에 보약이다. 요즈음 일부 등산객 중에는 점심에 많은 술을 먹거나 정상주라며 술을 마신다. 심지어 인수봉 정상에서도 술을 마신다고 하니 큰일이다. 산에서 음주는 안전사고로 이어 질 수 있다. 아무래도 산에서 음주는 삼가는 것이 좋겠다.
점심을 먹었으니 좀 쉬고 싶은데 일선사 절에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명상의 말씀」이 귀에 따갑게 들린다. 절속 같다는 말은 옛 말이다. 조용한 산 속의 앰프 소리는 공해다. 누가 얼마나 귀담아 들을까. 뿐만 아니다. 멀리 북악산 팔각전 아래서 군인들이 사격 연습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확성기 소리에, 총 소리에 정신이 없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참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5. 지킴이 생활을 통틀어서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이었을까? 시멘트나 모래를 지고 산에 오르는 일도 아니요, 손에 피를 흘리며 가시철망을 제거하는 일도 아니요, 정조준을 못해 똥 범벅이 된 화장실 변기를 청소하는 일도 아니다. 애완견을 데리고 산에 가는 것을 제지하거나 출입금지구역에 들어오거나 담배 피우는 사람을 타이르는 일도 아니다. 비는 그치고 하늘은 맑게 개였는데 산에 가려는 사람을 산에 가지 못하도록 말리는 일이다.
폭우나 폭설이 내릴 것이라는 기상특보가 발효되고 해제될 때까지는 입산 자체가 아예 통제된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 입산을 통제하는 것은 그래도 이해해 주지만 청청하늘에 산에 가지 못하도록 막는 일은 이해해 주지 않는다. 가려는 사람이나 막는 사람이나 딱하기는 피차 마찬가지다. 기상특보 시 등산로 통제는 마치 음식물이나 약품의 유효기간과 같다. 유통기간을 하루쯤 지나 먹었다고 무슨 큰일이야 나겠느냐마는 유통기간이 지난 음식물은 반듯이 폐기처분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에서 시킨 대로 사람들이 산에 가지 못하도록 등산로 입구를 지키는 일이 내가 하여야 할 일이니 눈 딱 감고 막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등산 그 자체가 어느 정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북한산에서는 지정된 탐방로(등산로)만을 따라 걷는다면 별문제가 없으리라. 폭우나 폭설이 내릴 때면 전문산악인에게는 이보다 훈련하기 더 좋은 때는 없다. 날씨를 보아 안전하다고 판단되거나 전문산악인인 경우에는 각서를 받은 후에 입산시키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입산통제가 해제되니 한 시간 전에 “일선사에 가겠습니다.” “못 보내드리겠습니다.” 입씨름한 중년 분에게 미안한 마음이 자꾸자꾸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6. 봄 가고 여름 가고 가을이다. 온 산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가고 있다. ‘뿌드득. 뿌드득.’ 산길을 거니노라면 도토리들이 발에 밟힌다. 올해는 도토리 풍년이다. 도토리가 풍년이면 농사가 흉년이라는데... 농사도 풍년이다. 수리 시설이 없던 옛날에는 가뭄에 도토리가 잘 열리기 때문이다. 국립공원에서는 도토리 채취가 금지되어 있다. 도토리는 다람쥐 등 야생동물의 먹이감이기 때문이다. 올해처럼 도토리가 지천으로 깔려 있으면 도토리 좀 주어다가 묵을 쑤어 먹은들 무슨 대수이랴. 땅에 떨어진 도토리는 벌레가 먹고 썩고 말라비틀어진다. 다람쥐가 식량으로 저장한 도토리는 많은 양이 아니다. 하지만 도토리 채취를 그냥 놔둔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숲 속으로 들어가 어린 나무를 밟아 버려 숲을 망가뜨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립공원에서는 뺏어 놓은 도토리를 헬기를 이용하여 산에 다시 뿌려주는 촌극까지 벌였다. 다람쥐 먹이인 도토리를 주워서는 안 된다는 홍보를 위해서 말이다.
자연을 망가뜨리는 것은 우리 인간이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둘 때 온전한 모습을 갖춘다. 북한산에는 수많은 등산로가 있다. 옛날에 매표소였던 샛길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2007년 입장료가 폐지 된 후로는 더 많은 샛길이 생겨나고 있다. 길 아닌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립공원에서는 샛길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보현봉과 사자능선 일대는 특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펑창지킴터 - 일선사 - 대성문으로 이어지는 탐방로(등산로)를 제외하고는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그렇지마는 많은 사람들이 몰래 이곳을 들어오고 있다.
보현봉(714m)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참으로 아름답다. 대남문의 문루와 북한산성, 문수봉, 승가봉, 사모바위, 비봉, 족두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형제봉 능선과 칼바위 능선 그리고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의 장엄한 모습. 오봉과 자운봉, 선인봉, 만장봉의 아름다운 도봉산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런 광경을 보고자 등산인들이 몰래 들어온다.
또한 보현봉 일대는 기도처로 알려져 기독교 광신도와 토속종교인들이 기도드리려 몰래 들어온다. 어떤 이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기도를 한다. 비닐을 뒤집어쓰고 밤새도록 기도한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죽기 살기로 오는 사람도 있다. 펜스까지 뜯고 들어온다. 하나의 믿음이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 누가 무엇이라 말해도 소용이 없다. 신앙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고 본다.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은 다 신앙으로 이루어 진 산물이다.
무속인과 광신도들로 엉망이 된 보현봉 일대를 휴식년제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어 이제는 어느 정도 질서가 잡혀가고 있다. 보현봉 일대는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2026년까지 출입이 통제 된다. 그 이후에도 해제 된다는 보장이 없다. 경치가 아름다운 사자능선과 보현봉에 오르는 길만이라도 해제하고 길 밖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하는 것도 슬기로운 방법일 것이고, 평창계곡의 동령폭포도 조망하기 좋은 곳까지는 다녀오도록 개방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국립공원에서는 못 들어가게 너무 규제만 한다. 아름다운 경치는 서로 함께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여간 남들은 못 들어가는 보현봉 일대를 돌아다니고 있으니 정녕 나는 복 받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갈 수 없는 곳이니 더 가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보현봉에 함께 가자는 친구들의 요청으로 보현봉에 오른 적이 있었다. 통솔하고 내려오는데 이걸 어쩌나! 분소장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분소장은 카메라를 들이댄다. 분소장은 내가 불법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데리고 내려오는 걸로 알았던 것이다. 허나 그 순간 내 심장은 멈춰버리고 얼굴은 백지장이 되어 버렸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모기 소리로 “제가 모시고 온 사람들입니다.” “아, 그래요”하고 보내주긴 하였으나 그 동안 쌓았던 신뢰감은 여지없이 짓밟혀 버렸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다시는 이런 일은 절대로,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였다. 그리고 사자능선을 잘 내려오다가 주민들이 일구어 놓은 배추밭에서 그만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머리가 먼저 아래쪽으로 구른걸 보니 내 머리는 돌대가리인 모양이다.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벌을 받았다.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창피한 지난 일이다.
7. 이따금 내 지역을 벗어나 타 지역을 순찰할 때도 있다. 평창 계곡은 한적한 편이지만 구기계곡이나 사모바위 쪽은 주말이나 휴일이면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10시부터 12시까지는 거슬러 가기 힘든 곳이다. 오죽했으면 도봉산 칼바위능선에서는 일방통행을 실시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은 산에서는 어느 쪽으로 통행을 해야 될까. 과문해서 정해진 규율은 보지 못했다. 지하철은 좌측, 행단보도는 오른쪽 통행으로 표시되어있다. 내 생각으로는 산에서는 오른쪽 통행이 맞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 사람들이 오른손잡이로 로프를 오른손으로 잡고 오르내리는 것이 보다 안전하고 편리하리라는 생각에서다.(주 : 국립공원관공단의 퇴직자들의 친목단체인 국공회는 산악인들과 열띤 논의를 거처 2009년 초부터 산에서 우측통행을 주창하였고 2009년 10월부터 정부 주도로 우측보행을 시행하고 있음으로 산에서 우측통행은 정착되어질 것이다)
위험한 곳을 오르고 내릴 때는 누가 양보해야 할까. 올라가는 사람보다는 내려오는 사람이 조금은 멀리 볼 수 있으므로 먼저 보게 되는 내려오는 사람이 양보해 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함께 가는 동료가 산의 형상이며 바위모양을 열심히 설명해 준다. 거북바위, 물개형상, 악어모습 등 보기에 따라 다양하게 달리 보인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관점에 따라 다르다. 이왕이면 좋은 점을 보며 세상을 밝게 살아가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8. 국립공원지킴이 생활을 마무리해 본다. 소장이 지킴이 생활을 한다고 깔보고 얕잡아 볼는지 모른다. 직원은 옛날을 생각하여 함부로 하지 못하고 눈치를 살핀다. 나도 후배들의 눈치를 본다. 서로 불편한 관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가 국립공원지킴이 생활을 해야 한다면 국립공원을 잘 알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자.
지킴이로 생활하는 동안에 공단에 재직하면서 써두었던 글을 다 모아 한 권의 책도 내었다. 「산사랑 이야기」다. 하찮은 글이지만 책을 내었다는 그 자체만으로 보람을 느낀다.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자랑하고 싶다.
지킴이인 나를 부르는 호칭은 가지각색이다. 국립공원사무소 소장과 공단본부 처장을 지냈다고 ‘소장님’, ‘처장님’, 부르기 쉽고 흔하디흔한 ‘회장님’, 국공회에서 총무이사 일을 보고 있으니 ‘이사님’, 나이 많이 먹었으니 ‘선배님’과 ‘선생님’ 등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마음이 통하는 사람끼리 부르는 다정한 이름은 ‘형님’, ‘아우님’이다.
전화벨이 울린다. 탐방지원센터에 근무하는 배광진 형님이다. “약속이 없으면 장성열 아우님과 오늘 한잔 어떻습니까?”고 묻는다. “좋지요.” 오늘도 즐겁게 하루를 마감한다. 내일은 내일 다시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
追記. 2009년 1월 국공회 전임자로 근무하게 되어 9개월의 짧은 지킴이 생활을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임자의 인건비조차 마련이 어려워 궁여지책으로 2010년 8월부터 일주일에 3일간 북한산둘레길운영단에서 유연근무자로 근무하면서 국공회 일을 보았습니다. 둘레길을 돌아다니며 고작 쓰레기나 줍고 다니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2011년 3월 둘레길 운영이 공단 직영에서 한국자연공원협회 용역으로 바꾸어졌습니다. 둘레길운영단장은 여전히 북한산사무소 보전과장이었습니다. 운영주체가 달라져 면접시험을 보게 되었지요. 면접 1시간 전에 익명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하였습니다. ‘선배님, 분위기가 안 좋으니 면접시험장에 오지 않은 것이 좋겠습니다. 0000’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 짐작이 가지만 떳떳하게 자기를 밝히지 않았으니 시험에 불응하면 시험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떨어뜨렸다고 할 것이 뻔하다. 시험에 응시한 후 전화가 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떨어뜨려야 되는데 2~3개월 근무하다가 자진사퇴하는 모양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모양새를 갖출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불합격 되고 말았습니다. 굴욕감에 분노와 울화가 치밀고 가슴이 아리고 쓰리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며 모든 원인이 나 자신에 있으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 이 글을 쓰면서 지난날을 회상하니 씁쓰름합니다. 못 낫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지나간 과거인 걸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세상은 참으로 살기 좋은 곳입니다. 남들이야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내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떳떳하면 그만이요,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정정당당히 살아가면 되지 않는가요? 후배들의 지시와 감독을 받으며 일했던 나 자신에게 몇 번이고 되뇌는 궁색한 변명이요, 위안의 말입니다.
그동안 나는 국공회에서 청소년들에게 북한산국립공원의 자연·역사·문화를 해설하며 나름대로 즐겁고 보람찬 일을 하였다고 자부합니다. 지금도 그 일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는 유익한 일을 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남을 배려하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주어진 일에 열심히 살아갔노라고 기억되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광재 님의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를 음미하며 이 글의 추기를 마무리합니다.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이광재 -
서로 다른 얼굴로 모여 사는 세상
아픈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상처주지 않고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나는 좋다.
서로를 위로하고 챙겨주는 사람이 나는 좋다.
단점이 있어도 덮을 줄 아는 사람
장점만을 골라서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나는 좋다.
작은 것이라도 배려하며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나는 좋다.
격려하고 위로해주고
훈훈한 정으로 마주 않아 웃음 지으며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사람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