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13일의 금요일이더군요. 송년 모임이 있는 오늘.....
그 유래를 보니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생각되는 금요일에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가 죽은 날이랍니다.
그럼에도 징크스를 깨고 지금 만나러 갑니다.
거울에 비추어 나를 본들, 내가 보일까요?
도무지 볼 수가 없어 타는 속내, 나를 보러 가는 길입니다.
이번 발걸음은 지난 번 보다 훨씬 가벼워 좋습니다.
스마트폰 네비게이션에 이수역 4번 출구 방배동 큰댁설렁탕을 입력했습니다.
몹시 추울 거라는 날씨가 며칠 동안의 익숙한 면역력으로 견딜만해져 봄날처럼 가뿐합니다.
징크스의 서막, 도로가 엄청 밀리더군요. 시간을 당겨서 나올 것을....
되도 않을 후회를 매번 고치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또 하고 있습니다.
만남의 장소를 코 앞에 두고 그 주변을 20여분 헤매이다 주인장에게 전화를 넣었습니다.
내 서 있는 위치, 왼쪽에 무엇이 있고, 오른 쪽 간판이 무엇이고를 상세히 일러주었더니
바로 옆 골목으로 우회전하면 된답니다.
헤매기 전 처음 느낌이 역시 맞았던 것을, 괜한 호기를 부렸나 봅니다.
일곱시 사십분, 약속시간에서 사십 분이나 지나고.....
안과 밖의 온도 차로 유리문에 성에라도 끼었던가?
신발을 벗으면서 살짝 손바닥으로 유리판을 훑었습니다.
어색한 제스처, 문을 열고 다시 보게 될 얼굴들에 대한 나의 설레임은 지금부터.
언제나 이론과 현실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처럼 본의 아니게
안녕하세요란 그 당연한 인사조차 못 건네고 후닥닥 감자탕 냄비 앞에 놓여졌습니다.
멋진 인사라도 할 것을....
거두절미하고란 표현 말고는 적당한 것이 없을만큼
그래서 편한 분들임에 형식이 무슨 필요입니까?
다 그러려니 하는 것이지요.
대각선 방향의 아침고요님이 한참 전부터 "작업의 정석"에 관한 열강을 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난 이런 사람이야!
두르고 잇는 목도리 5천원, 딸에게서 산 스웨터 만원, 바지 이만구천원, 잠바 4만원,
난 소개팅에 나가면 상대 여자에게 식사대접은 김밥, 통장에 잔고 36만원, 차는 소형차, 직업은 백수 등등으로
일단 바닥을 보여주지. 나의 이 솔직함을 세 번 정도까지 잘 견디고 나면
네, 다섯번째의 만남에선 3만원 이상의 커피 대접도 할 수 있는데
여자들이 그 세 번의 고개를 못 넘기대. 인내가 부족해."
처음 오셔서 진지하게 귀담아 듣고 계시는 peace-k님,
열변에 옳커니 한 몫 거드시는 사랑님,
듣고 있자니 하도 기막혀 입을 못 다무는 혜인언니,
간간이 추임새만 던질뿐 묵묵히 감자탕부터 볶음 밥까지 먹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기억의 하늘땅님.
볶음밥이 어느 결에 그들 옆으로 놓였길래 "왠 밥이 그 쪽만?"
먹을 것도 아니면서 괜한 심통 한 번 질렀더니 급하게 나눠 주더군요.
같은 자리에 앉았던 나나야님, 사랑맘님, 바이오님, 저는 무엇으로 있었는지
그 볶음밥의 흐름을 목격도 못하고.... 그저 웃느라 혼이라도 빠진 모양입니다.
목젖이 보이도록 깔깔대며 웃어도 부끄럽지 않을 이 호탕함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앉자 마자 웃음부터 터져 나왔던 겁니다.
내가 앉은 쪽은 아무래도 경로우대석인 듯 하다고 하니,
오늘 모인 전체가 경로당 분위기 아니냐고 한바탕 또 웃었습니다.
둘러 보니 젊은 분들이 정말로 없는 겁니다.
하하님, 나나야님, 밝은태양님 빼면 모두 징그러운 50대.
그럼에도 안도의 바이오님이 "그럼 내가 이 싯점에 영곈가?" 우쭐해졌습니다.
나 또한 그 중 하나이면서 아닌척 뒷짐을 지고 비웃듯 웃는 꼴이라니....
"또 우리가 원인인 거야?" 돼지띠 혜인언니와 초록언니가
젊은 친구들 우리가 못 오게 한 거 아니라고 억울해 죽겠답니다.
우린 어쩌라고! 그 흥분이 고맙고 귀엽습니다.
알고 보니 아리님이 혜인언니한테 그랬답니다.
"오늘 오지 말라고......."
이유요? 모르죠!
화기애애한 저녁식사가 끝날 무렵 운선님이 운영자 세 사람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수고한 것이 무어라고
산행에서 찍은 각자의 사진 중 하나를 액자로 만들어서.....
참 세심한 분입니다.
2차로 길 건너편 호프집에 들렀습니다..
바다와 플룻님이 처음 온 기념으로 케잌 하나를 사 왔습니다.
산에 대한 징크스가 있어 바다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분,
낯설었을 터인데 분위기에 자신을 온전히 띄웁니다.
세상은 저절로 나를 일으켜 주지 않음을
일찌기 터득할 수록 살기 수월한 지혜, 이렇게 들이대며 사는 거지요.
아직은 한참 맘이 안 좋을 시기임에도 평택에서 온 피스님.
자신과의 전쟁에서 기어코 이겨내고 말리라는 의지가 울음과 웃음으로
뒤범벅되었지만, 그 심오한 중에
성이 문이고, 이름이 방자라는 말을 조심스레 내 놓길래, 우리 빵 터졌습니다.
우린 이렇게 뜬금없을 한 마디에도 세상을 뒤집듯 웃고 살 겁니다.
배용준 분위기를 한껏 띄운 이 겨울의 아리님, 진심으로 머리 모양이 멋있었는데
괜히 놀렸습니다. 냄비 바닥이 뚫어져라 눌은밥을 박박 긁느라 숟가락이 다 닳지는 않았는지....
이곳 호프집에서도 경로우대석의 만담은 쉼표도 없이 이어지는데,
아까 그 멤버입니다. 이번엔 우리의 풍경소리님이 열심히 들어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나와 풍경소리님의 대화는
"지금 어디예요? 차가 막혀요?"
"아니요, 다 왔어요. 지금 앞이예요." 이것으로 다 되고 말았습니다.
난 늘 이렇게 늦습니다.
그래서 늘 아쉽습니다. 이보다 일찍 왔으면 좋았을 것을....
한번씩 던지는 돌직구가 명쾌한 영아님의 형광등 사건을 직접 듣고,
늘 만화 같은 표정의 하하님,
실제의 모습은 상당히 젊은데 사진 속에서는 영낙없는 중역진의 근엄한 포스라니....
사람의 모습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 절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벌써 열시 반! 이젠 가야죠.
멀리 진주에서 오신 아침고요님도 그렇고, 평택에서 온 피스님도 그렇고
갈 길이 멉니다. 차분하신 제니님, 모인 사람들과 일일이 다 말을 하지 못했대도
많이 아쉬울 것은 없답니다. 우리들 다 그러하니까요.
마냥 이렇게 웃고 떠들 순 없으니 떠날 때는 말없이 웃음 한자락 휘날리며
쓸쓸히 멀어져 가는 거지요.
이 쓸쓸함에다 어제 보다 조금 더한 따뜻한 온기가 불어 넣어졌다면
그것이 어딘가요? 우리가 많은 것을 바란 것도 아닌데, 이것도 인연이라 감히 말합니다.
집으로 오는 길, 그냥 오기 무엇해 그 곳에서 가까운 언니 집을 방문했다가 나오는 길,
함박눈이 나풀나풀 흩날립디다.
새벽 한 시 반이 넘은 시각! 오늘도 헛되이 보내지 않은 하루! 잘 지냈습니다.
(아침고요님 본의 아니게 오늘 많이 이용해서 죄송합니다.
솔직한 입담으로 살아온 중에 경험담, 우스개소리처럼 하셨어도
그 속에서 각자 취할 것이 무엇인지는 우리의 몫으로 던져 놓으신 걸 왜 모르겠습니까?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