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 2차대전 후 냉전 시대 미국은 군비경쟁을 유발하고 석유값을 하락시켜, 패권을 다투던 구소련 연방이 경제난으로 1991년 해체됐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침공 이유로 미국은 러시아를 경제 제재하고 있다. 1980년대 미국을 넘보던 세계 2위 경제 대국 일본은, 1985년 미국의 압박(플라자 합의)에 엔화를 절상했다. 일본이 불응하면 환율조작국 지정, 무역 보복 등의 제재수단이 많아 일본으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환율 절상 여파로 일본은 수출 경쟁력을 잃고 경기 침체로 잃어버린 30년을 겪었다.
미국은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응징하고 북한과 이란을 경제 제재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각국의 상품을 사주는 슈퍼 갑의 구매력(buying power)과 1,000조 원의 국방비는 힘의 원천이다. 미국은 환율조작국 지정, 관세 폭탄, 세컨더리 보이콧 등으로 상대국을 제재할 수단이 많다. 미국은 핑퐁외교로 중국을 개방시켜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시키고 상품 구매를 통해 중국 경제를 성장시켰다. 중국이 예상과 달리 민주국가 대신 사회주의로 힘을 키워 미국 패권에 도전하자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중국은 성장이 정체되고 부동산 대란(빈집 1억여 채)으로 패권국 도전이 매우 어려워졌다.
90년대 IMF 전 담배와 자동차 개방 협상 때 한국의 비협조로 미국의 원한을 샀다. 1997년 한국은 대기업의 연쇄 부도와 외화 부족, 일본 은행의 대출금 연장 불허와 회수로 단자회사들이 부실에 빠졌다. 일본 정부에 일본 은행의 대출금 연장을 한국 정부가 요청하였으나, 미국의 압박으로 일본 은행이 대출금을 회수하여 IMF 외환위기를 겪었다. 외환위기의 직접 원인은 기업 부실과 일본 은행의 대출금 회수지만, 간접 원인은 미국의 압박으로 일본 은행의 대출금 회수 때문이다. 패권국의 힘을 인정하고 비위를 맞추며 실리를 챙겨야 한다.
국제관계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임시정부를 도왔던 대만과 단교하고 한국과 전쟁한 중국, 베트남과 외교 관계를 맺었듯이 국익을 위해 어제의 친구가 한순간에 적이 될 수도,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구한말 세계정세에 어두워 패권국 영국과 협력 관계인 미국을 외면(당)하고 몰락하는 청나라와 러시아 편에 섰다가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다. 미·중 패권 경쟁에서 한국이 위험한 줄타기를 해서는 안 된다. 사슴 사냥이 잔인하지만, 호랑이에겐 정의이듯이 국제관계에선 힘이 진리이다. 강대국의 약소국 지배가 당연하게 여겨졌듯이, 국가 관계는 도덕적이지 않고 국익이 우선일 뿐이다.
한국 대선 후보라면, 미국 유력 인사와 찍은 사진 한두 장은 있어야 행세하던 시절이 있었다. 2002년 노무현 대선 후보는 미국 인사와의 사진은 고사하고 미국 방문 경험도 없다며 “반미는 어때?”라며 호기를 부렸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격이다. 노 후보는 수도 이전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정부)이 반미적이라는 이유로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노 전 대통령의 반미 정서로 세계적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와 S&P 등이 북한 행동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2단계나 낮추려는 위기 상황을 맞았다.
반미 국가로 찍히면 미국의 수입제한, 환율조작국 지정 등 경제 제재로 외자가 빠져나가고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여 경제 위기를 겪을 수 있다. 한국은 신용등급 하락을 막기 위해 2003.3. 반기문 외교·안보 보좌관, 권태신 재경부 국장,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 등을 무디스, S&P, 피치 등 신용평가 기관에 파견하여, 노 대통령 미국 방문 때까지 신용등급 하락 반대를 읍소하여 신용등급 하락을 막았다. 이후 미국을 방문한 노 대통령은 반미 발언을 해명하고, 미국이 아니었다면 나는 북한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을 것이라는 아부성 연설을 해야 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와 이라크 파병 정책을 채택했다.
첫댓글 한국은 세계 200여 국가 중 핵을 가진 적과 전쟁(휴전) 중이고 사회주의 강대국인 중국, 러시아와 이웃인 국가이다. 1945년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한반도에 진주했던 미군이 1949.6 철수하고, 1950.1 미국의 방어선에서 한반도가 제외된다는 애치슨 라인이 선포되자 1950.6. 북한이 남침하였다. 미군이 철수하면 국가신용등급 하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경제와 안보에 크나큰 위험이 닥친다.
1992년 필리핀에서 미군 철수로 필리핀의 안보 불안이 커져, 불안을 느낀 국제 투자회사들의 자금이 빠져나가 경제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영유권분쟁 중인 스프래틀리 군도 일부(미스치프)를 중국이 점령하고 위협하여도 필리핀은 속수무책이었다. 중국에 위협을 느낀 필리핀은 미군 주둔을 요청하여 2016년 미군 주둔으로 군사, 안보적 이익을 얻게 되었다. 2016년 국제 상설중재재판소에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 불법으로 결정 났으나 중국은 무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