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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서론
이제 히브리서를 살피고자 한다. 이는 마태복음과 갈라디아서 이후로 세 번째로 살피는 성경이다. 마태복음과 갈라디아서, 히브리서를 탐구함은 개혁신학의 구원론이 사도들의 가르침과는 다른 내용을 말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이며 그리스도임을 강조한다. 이는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은 당시에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구약성경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름은 율법의 최고 통치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에 대한 두 증거가 보여준다. 산헤드린 공회 석상에서 어떤 이들이“예루살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고 하더이다”라고 증언하며(마26:61), 대제사장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요구하자(마26:63), 예수께서는 “네가 말하였느니라”고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시인하신다(마26:64). 이러한 예수의 증언은 모세율법 곧 구약성경을 부인하고 유대공동체를 허무는 주장이다. 왜 구약성경을 부인하고 유대공동체를 허무는 주장인가? 구약성경을 생각해보라.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휘장으로 가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계셨다. 그런데 갈릴리 출신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예루살렘 성전은 구약 제사가 이루어지는 유대인들의 삶 중심지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허물고 새로운 성전을 세우리라고 말한다. 이러한 예수의 주장들은 구약성경의 내용과 전혀 다르다. 그래서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를 이단의 괴수라고 정죄하고 사형에 합당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우리는 히브리서를 구약성경을 설명하는 자습서나 해설서로 생각한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유대교로 돌아갈 위험에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한 변증 서신이다. 유대교로 돌아간다고 함은 구약성경을 따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이다. 그런데 모세율법 곧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의 완악함에 맞춰진 여호와의 뜻과 경륜이다. 이스라엘의 종과 어린아이와 같음에 조정된 여호와의 뜻과 경륜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율법으로 돌아감은 하나님 아들이 종의 신분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이는 이 세상 초등학문인 율법을 따라 여호와를 섬긴다는 말이다. 율법이 명하는 성전제사나 제사장 제도, 십일조로 여호와를 섬긴다는 의미이다. 왜 율법으로 돌아가고자 하는가? 유대인들의 극심한 핍박과 고난을 피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핍박과 고난이 가능함은 당시 사회의 정치와 경제의 주도권을 잡은 자들이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핍박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의 가르침이 모세율법 곧 구약성경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라보면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은 율법과 다른 이단의 가르침이다. 이단의 가르침이라는 증거는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고(마26:63-64) 예루살렘 성전을 헐면 사흘에 지을 수 있다는 예수의 주장이 그 증거이다(마26:61). 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단의 무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처럼 당대에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고난과 핍박 상황은 오늘날 이슬람 국가인 이란이나 이라크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상황과 같다. 이처럼 유대 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자들이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다. 그들 모두는 율법 아래에서 크고 먼저 된 자들이다. 그래서 율법 최고 통치기관인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를 이단의 괴수로 정죄하고 사형에 합당하다고 판결하여 빌라도 법정에 세운 것이다. 이러한 율법 지도자들의 조치를 따라 유대 백성들도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율법과 복음의 불연속을 강조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강조한다.
사도들의 증거방식
사도들은 율법 아래에 있던 중에 예수의 부르심을 받고 따라나섰다. 예수와 함께 동거하고 동행함은 율법 아래에서 하나님 새로운 통치 가운데 거하는 일이다. 제자들은 율법을 따라 휘장으로 가리신 여호와를 섬긴 자들이다. 그러나 예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는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아들을 통한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 가운데 거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을 직접 대하고 교제하는 삶은 구약의 어떤 선지자도 누리지 못한 은혜의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직접 들었으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을 직접 보았다.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을 통해서 그가 하나님 아들이며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공생애 당시에 예수에게 나아와서 함께 거함은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 가운데 거하는 일이다. 이러한 새로운 통치가 종말에 임한 천국이다. 그래서 사도들은 복음을 증거할 때 동족들과 이방인들에게 예수에게 나아오라고 권고한다.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따름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 가운데 거하라고 말한다. 사도들의 서신서도 율법을 따라 시행된 옛적의 일들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에 속한 생명의 일로 온전케 되었는지를 말한다. 이처럼 사도들은 구원역사를 따라 율법과 복음을 대비하여 설명한다. 이러한 방식은 신약성경 전체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증거방식을 따라 기록된 대표적인 성경이 히브리서이다.
히브리서 기자
히브리서를 기록한 저자가 누구인가? 이에 대하여 증거는 “내가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를 위하여 너희 기도함을 더욱 원하노라”라는 구절이다(히13:19). 이는 히브리서를 기록한 기자와 수신자가 밀접한 유대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증거 구절은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저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는 기록이다(히13:23). 이러한 기록들은 히브리서 기자가 디모데의 동역자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히브리서 기자는 디모데와 함께 동역하였던 바울 사도라고 할 수 있다.
율법과 복음의 불연속을 강조함
히브리서는 율법과 복음의 연속성보다는 불연속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사실은 히브리서 서두에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라는 머리말이 잘 나타낸다. 이 구절은 논문 내용을 압축하고 요약한 논문 제목처럼 히브리서 내용을 압축하고 요약하는 말이다. 옛적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심은 구원역사의 발전 상황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옛 뜻과 경륜이 구원역사의 진행 상황에 따라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집행되기 때문이다. 이는 막 태어난 어린아이의 성장 과정에 따라 부모의 뜻과 양육방식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따라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나라를 이룰 만큼 생육하고 번성하였을 때,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율법을 주신다. 따라서 모세율법은 언약(계약) 내용이며 여호와의 옛 백성과 세상에 대한 통치 질서이다. 그러나 모세율법은 이스라엘의 육체만을 상관할 뿐 그들의 속사람까지 새롭게 하지 못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휘장 밖의 영역,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에 세워진 종(머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히1:2). 이는 종말에는 오직 아들을 통해서만 하나님 말씀이 주어진다는 말이다. 따라서 아들을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 말씀은 구약에서는 감추어진 비밀이다. 구약백성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하신 사역을 알지 못하였다.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구약백성들이 예수를 하나님 아들이며 그리스도로 알고 믿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눈을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많은 선지자와 의인들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다(마13:16-17). 그런데 개혁신학은 오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처럼 구약백성들이 오실 예수를 믿었었다면 그들도 예수를 믿은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 당시의 이스라엘은 모세율법을 지켜야 하였다. 율법이 명하는 안식일과 유월절, 대 속죄일과 같은 절기들을 지켜야 하였다. 오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안식일과 유월절, 대 속죄일에 짐승 제사를 하면 되겠는가? 그들은 예수를 보지 못하고 예수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였는데, 더군다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의미를 해석한 사도들의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예수를 하나님 아들이며 그리스도로 믿을 수가 있겠는가? 이처럼 개혁신학은 인간의 상상 속에서 개진된 탁상공론이며 철학적인 가르침이다.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는 옛 백성들에게는 감추어진 비밀이라고 말한다(골1:26-27). 구약에서 그리스도께서 감추어짐은 여호와께서 휘장의 장벽을 두셨기 때문이다. 이는 구약에서는 하늘이 열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종말에 아들을 통해서 참되고 온전한 하나님 뜻과 경륜이 나타났으므로 율법 아래의 일들은 모두 잊으라고 말한다. 이처럼 히브리서는 율법과 복음의 불연속을 강조한다.
레위기를 토대로 함
히브리서는 레위기를 토대로 한다. 이는 레위기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는 삶을 말하기 때문이다. 시내산 언약 내용이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시내산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아, 너희가 내 말을 잘 들을 것이냐?”라고 말씀하시자(출24:3, 7), 이스라엘은 ”예, 우리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나이다“라고 두 번에 걸쳐서 응답한다(출24:3, 7). 이에 여호와께서는 ”그러면 너희는 내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시고 피를 뿌려서 언약(계약)서에 서명하신다. 그리고 언약(계약) 내용의 핵심인 십계명을 돌판에 기록하여 주신다. 따라서 십계명은 언약 내용의 모법이며 나머지 율례들은 십계명을 시행하기 위한 시행령이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구원은 레위기적인 구원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의 상으로 부르셔서 먹고 마시는 교제를 하는 구원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레위기에서 말하는 죄도 하나님 법정의 심판과 형벌을 의미하지 않으며 레위기의 속죄도 하나님의 집에 들어오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상에 앉지 못할 부정한 자를 제물의 피를 통해서 정결하게 하여 참여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봉사하게 하는 속죄를 말한다. 이처럼 레위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관계적인 구원과 교제의 생명을 말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집에 들어오려면 반드시 피를 뿌려야 하였다. 이는 그들은 휘장 밖 죄 아래에 세워진 종(머슴)된 백성이기 때문이다. 피를 뿌리라고 함은 뿌려진 피를 통해서 휘장 밖과는 다른 새로운 교제 관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레위기의 가르침을 따라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를 흘리심을 통해서 믿는 자들을 하늘의 성소에 이르게 하셨다고 말한다(히12:18-24). 이는 예수께서 율법 아래에 있는 백성들의 죄를 정결하게 하시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이다. 위엄의 우편에 앉으심은 아버지의 권세를 대행하는 왕세자(상속자, 아들)의 자리에 좌정하셨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기록하며(엡2:5-6), 사도 요한은 ”이기는 자들은 이것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말한다(계21:7) 이처럼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언어와 개념을 따라 구원 역사적으로 아들에 대하여 말한다.
/하늘에 속한 교회
첫댓글 10월24일 병원 합병증 검사를 받고 말일날 약을 타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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