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10 (일)
아침에 일어나니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린다. 창밖을 보니 어릴 때 보던 장례행렬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상여를 탄 선소리꾼이 요령을 흔들지만 여기의 모습은 앞차에 탄 사람이 북을 치고 있고
음악소리는 녹음기에서 흘러나온다. 뒤차에 편히누워 따라가는 이는 라이브 악사를 부르지 못하는
소시민이었던가 보다. 뒤따르는 행렬이 초라하다.
출발하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열대와 아열대가 함께하는 이 나라는 연중 200일 이상 비가
오는 기후라서 가방 속에 우산은 필수라고 한다. 버스를 타니 간밤에 총소리도 들렸다고 하고 침대
가 흔들렸다고도 한다. 어제 우리가 갔던 화련에서 진도 5정도의 지진이 있었는데 여기 도원은 진도
1정도로 흔들림이 있었다고 가이드가 말한다. 나는 요람으로 여기고 잘 잤지만.
오늘은 온천부터 간다. 화산과 지진의 나라답게 온천이 많이 있지만 여기 사람들은 온천을 즐기지는
않는단다. 섬나라에 흔한 해수욕장도 대만인은 자주 찾지않고 대신 실내수영장에서 논단다. 관광도
즐기지 않아 호텔도 많이 없어 어제처럼 한꺼번에 관광객이 몰려오면 콘도까지 여행객의 숙소로
사용한단다. 끊어진 중국으로 통하던 관문인 홍콩을 경유하던 편법을 넘어 올해 7월부터 정식으로
본토에서 직송으로 관광이 뚫려서 중국에서 대거 보물을 보러 몰려 올 것으로 예상하여 지금 호텔
을 짓는 중이라고 한다.
늘 푸른 나무들이 빽빽한 산 . 소나무가 없는 산. 단풍도 없을 산. 곁에 가니 나팔꽃처럼 보이는
보라색꽃들이 눈길을 당긴다.
일행인 가족 중에 6살 꼬마는 오늘도 차를 타자 마자 아빠랑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고 있다.
벌써 사흘째다. 좋은 아빠노릇 하기가 만만치 않다. 또 한쪽의 털보아빠랑 중학생인 딸아이가
손잡고 안기는 모습으로 늘 친밀해 보여 참 보기가 좋다. 엄마가 간혹 질투의 눈으로 쳐다보더라.
아주 작은 온천을 찾아드니 한국관광객이 벌써 한 물하고 씻느라 복잡하다. 우리의 여행문화는
아름다운 곳이면 며칠씩 머물며 여유있게 즐기는 유럽인과 비교하면 ‘짧고 많이’ 주의라서
떠내기 손님들로 인식 되어 어딜 가나 깊은 대우를 못 받는 느낌이 든다.
노천온천이라 수영복을 입어보자니 아주 몇 년 만의 느낌이다. 난 폼 주의가 아니라 실용주의라
뚱뚱해도 개의치 않고 수영장에서 잘 놀지만 주변의 사람들이 저거는 안 벗고 비겁하게 구경꾼
으로 쳐다보아 타국 에서도 잔신경을 쓰게한다. 따뜻한 물에서 땅 짚고 헤엄치며 혼자 오랜만에
잘 놀았다. 다시 정상인이 되고 보니 한쪽 귀에 있던 귀걸이가 안 보인다. 30년 숙원이던 것을
1.5배 예뻐진다는 말에 2년 전에야 용기를 내어 뚫고 나서 첫 생일때 딸아이가 사준 귀걸이인데
사라졌다. 야단칠 아이의 얼굴이 떠올라 주변을 살펴 보았지만 안 보인다. 할 수 없다.
최소한 내가 왔던 흔적은 남기고 가야지.
식당에서 중국해산물 요리를 먹고는 야류공원이라는 바닷가를 찾았다. 며칠 전에도 보았던 야릇한
나무가 또 보인다. 가지 끝에 아기 손가락 길이만한 빨간 꽃이 벨벳처럼 폭신한 모습으로 이국을
느끼게 해 준다.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산호꽃이라 한다. 산호색깔을 닮았다. 책갈피에 끼워 왔는데 지금 보니흑산호로
변화하여 화려한 고향을 그리워 하는 듯 하다.
야류공원.
아! 드라마에서 보던 그곳이다. 아주 아주 특이한 자연의 경관이다. 바닷가에 마치 버섯이 가득
피어난 듯한 모래기둥이 눈 가득 보인다. 화산작용으로 용암이 흘러내린후 모서리가 깍이는
풍화작용으로 머리는 단단한 암석으로 변하였고 버섯기둥은 만지면 가루가 떨어지는 본래의
모래모습으로 남아 특이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어찌보면 아령을 꽂아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엔 없는 이런 풍경을 구경한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가치가 있는 듯 하다.
결국 내가 감탄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신이 만든 것들이구나.
우리나라 같으면, 아니 나 라도 만지면 부서지는 이 아름다운 모래조각들을 후손들에게 오래 남겨
줄려면 한 발짜욱 나를 멀리 돌려 세워야 할 것 같다.
파도치는 바닷가에 바나나가 열리고 있었고 피자에서 보던 올리브 열매도 몇 개 주웠다.
결정적인 아름다운 순간에 시샘하듯 카메라 약이 다 되어 일행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에 저녁식사를 하였다. 일행인 자매 중 언니가 맛난 케익을 가져오셨다.
사연을 들어보니 몸이 아파 고생하던 친구가 회복하여 함께 여행하자고 대만여행을 신청하였는데
떠나기 직전에 그 친구의 여권을 살펴보니 만기가 다 되어 그만 주저앉게 되었다고 한다. 함께 못 온
친구 분이 한국에서 동무에게 보낸 사랑의 케익이라고 한다. 맛있게 먹으며 착한 마음씨에 감동하였다.
나 같으면 ' 비 나 와뿌라‘ 햇을 텐데..
(장례행렬)
(산호꽃)
(용암의 흔적)
(모래조각)
첫댓글 좋은 기행문과 사진 잘 보았습니다. 덕분에 돈 안들이고 여행 잘했네요.
음 맞아요...야류...저도 다녀왔어요...참...인상 깊었던건 대만 사람들 식당에서 먹다 남은 음식 죄 싸가는거에요..우리도 배워야할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