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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쓰는 한국 근대사 | ||||||
책모임의 좋은 책 읽기: 최은숙/정산중학교 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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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1대 교주인 수운 최제우는 1824년에 경주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복술이, 사서삼경과 역사서를 읽던 이 총명한 소년은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떠돌아다니며 장사와 의술로 돈을 벌고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국운이 기울어져 가는 조선 말기였다. 서양세력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하고 지식인들은 위정척사파와 개화파로 나뉘어 있었다. 위정척사파는 제국주의의 본질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철학인 성리학이 이미 낡아 힘이 없었고 개화파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있었으나 제국주의자들로부터 힘을 얻고 있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동학은 이 둘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운동이며 사상이었다. 최제우는 사람이 천명을 돌보지 않아 세상이 각박하다고 생각하고 32살 되던 1856년 천성산으로 들어가 도를 닦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의 삶과 그가 등장하는 역사는 드라마틱할 만큼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도를 닦기 시작한 지 4년 뒤인 1860년, 그는 득도한다. 수운의 득도는 동학의 창시로 이어지는데, 자결로 귀결되는 위정척사운동과 매국으로 이어지는 개화운동을 뛰어넘으려는 조용하고도 거대한 흐름, 지식인 운동이 아닌 민중 운동, 제국주의 운동이 아닌 민족운동, 침략이 아닌 저항 운동, 그것이 바로 동학이었다. ‘시로 쓰는 한국 근대사’를 집필한 신현수 선생님은 그런 의미에서 동학을 한국 근대사의 시작으로 보았다. 1861년 수운은 포교를 시작한다. 이미 그해에 유림의 비난이 높아질 만큼 동학의 세력이 커지자 호남지방으로 피신했다가 다음 해인 1862년 혹세무민죄로 체포된다. 수많은 제자들의 청원에 힘입어 수운이 석방되자 신도가 증가해 1863년에는 동학교도가 3천여 명에 이르렀고 그해 7월, 훗날을 대비하여 최시형을 동학교단의 책임을 질 2대 교주로 임명한다. 다시 체포된 수운은 1864년 3월 대구 감영에서 고문을 받다가 참형에 처해졌다. 득도 후 4년 동안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한 편의 시에 응축된 우리 역사 이 노래는 동학농민 전쟁 때 군가로 불리기도 했다는데 한자가 섞인 원문으로 읽으면 입에 붙는 리듬감이 있다. 다른 차원의 세상을 향해 눈이 열린 기쁨이 행마다 넘쳐나는 것 같다. 우리 역사에서 시는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를 이끈 두 가지 역할을 수행했다. 시는 시대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노래였고, 시대가 거꾸로 가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는 시는 서슬 퍼런 칼날이 되어 역사의 길을 바로 잡기도 했다. 시로 근대사의 맥락을 선명하게 잡아주는 신현수 선생님에게 듣는 동학, 그리고 이어지는 개화기, 일제강점과 독립운동. 아마도 학생들이 이 책을 읽으면 외우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오히려 1860년, 1861년 같은 숫자들을 공책에 적고 외우고 싶어졌다. 연인들이 처음 만난 날을 기념하듯 부부가 결혼기념일을 기억하듯, 역사책에 나오던 숫자들이 슬픔과 고통과 기쁨의 얼굴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모든 역사적 현장에는 시(노래)가 있었다. 신현수 선생님이 4대강을 이야기하면서 물었다. |
첫댓글 먼저 다가오는 미모에 질투 나네
지난 여름 옥천에서 김성장쌤과 조만희 쌤한테 들었던 동학교주 최제우님 이야기 이 글에서 다시 읽으니 감동이고
새롭게 생각할 것들이 많네요. 시는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를 이끈 두 가지 역할 수행했는데 요즘 시들은 어떤지 반성해야
할 거 같아요
최강미모는 회장님이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