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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나눈이야기-임사체험
나 자신과 남이 '하나'니, 내가 남에게 주는 것이 곧 나 자신에게 주는 게 된다.|
'생애들 사이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말하자면 당신은, '너희는 원할 때마다 개별 자아의 체험을 다시 창조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건 너희가 원할 때마다 언제든 새로운 '자신'이나 예전의 너희와 같은 자신으로 전체에서 떠오르리란 뜻이다.
그럼 제 개별 의식, '나'에 대한 자각을 제가 지닐 수 있고, 그것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다, 너희는 언제든지 원하는 모든 걸 체험할 것이다.
그래서 제가 '죽기' 전과 똑같은 사람으로 이승으로, 땅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고요? 다시 바로잡을게요. 그러니까 당신 말씀은 영혼들이 영적 형상이나 물질형상으로 소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돌아올 수 있다는 겁니까? 그들이 원하는 게 그것이라면요?
이제 너는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왜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왜 이런 이야기를 날마다 못 듣는 거죠? 이 정도 일이라면 세계토픽감일 텐데요.
사실 영적 형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육신으로 돌아오길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건 나도 인정한다.
하, 그것 봐요! 제 말이 맞았군요! 왜 안 그렇죠?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왜 더 많은 영혼들이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건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라, 바람직한 가 아닌가의 문제다.
무슨 말씀인지요?
예전 형상의 육신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혼이 매우 드물다는 말이다. 영혼이 몸으로 돌아가길 택할 때는 거의 언제나 다른 몸으로 그렇게 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것은 새로운 일정을 시작하고, 새로운 기억해냄을 체험하며, 새로운 모험들에 부딪힌다.
영혼이 몸에서 떠나는 것은 대개 그 몸과의 관계가 끝났기 때문이다. 그는 그 몸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던 체험을 체험했다.
사고로 죽은 사람이라면요? 그 사람도 자신의 체험으로 죽은 겁니까? 아니면 체험이 '잘린' 겁니까?
너는 아직도 사람들이 우연히 죽는다고 생각하느냐?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이 우주에서는 어떤 일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우연' 같은 건 없다. '우연의 일치' 같은 것도 없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고 제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다면, 죽은 사람들을 위해 애도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겠군요.
그들은 네가 자신들을 위해 애도해주길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네가 안다면, 그들이 자기 나름의 고귀한 선택으로 거기에 있다는 걸 네가 안다면, 너는 그들의 출발을 축하했을 것이다. 네가 한 순간이라도 소위 사후 세계란 걸 체험했다면, 너 자신과 신에 관한 가장 근사한 생각을 가지고 거기에 와 봤더라면, 너는 그들의 장례식에서 가장 유쾌한 웃음을 웃었을 것이고 네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우리가 장례식에서 우는 건 우리의 상실감 때문입니다. 그들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하리란 걸 알기에, 사랑하던 이를 두 번 다시 붙들거나 껴안거나 만질 수 없고, 그와 함께 있을 수 없으리란 걸 알기에, 우리는 슬퍼하는 겁니다.
실컷 운다는 게 그런 것이다. 그런 울음은 너희의 사랑과 너희가 사랑하는 사람을 영광스럽게 한다. 하지만 기쁨에 차서 몸을 떠나는 영혼을 기다리고 있는 현실과 체험이 얼마나 근사하고 경이로운지 안다면 이런 애도조차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사후세계의 모습은 어떤 겁니까? 실제로요. 제발 저한테 몽땅 다 이야기해주십시오.
내가 밝히지 않으려 해서가 아니라, 말해준다 해도 너희의 지금 조건, 지금 이해수준으로는 너희가 그것을 도저히 상상하지 못하는 탓에 일부 밝혀질 수 없는 것들도 있기 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야기될 수 있는 더 많은 것들이 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소위 사후세계에서 너희는 지금 체험하는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세 가지 중 하나를 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조절되지 않은 생각들을 창조하는 데 굴복할 수도 있고, 자신의 체험을 선택에 따라 의식하면서 창조할 수도 있으며, 존재 전체의 집단의식을 체험할 수도 있다. 이 마지막 체험을 재합일, 혹은 '하나'와의 재결합이라 부른다.
하지만 너희가 첫 번째 길을 택한다 해도, 너희 대다수는 그다지 오래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상에서 너희가 처신하는 방식과 달리). 이것은, 자신이 체험하는 것을 싫어하자마자, 너희는 새롭고 좀 더 즐거운 현실을 창조하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그냥 멈추는 것으로 이렇게 할 것이다.
이 때문에 너희는 그렇게 하고 싶어하지 않는 한, 그토록 겁내는 '지옥'을 체험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설사 그런 경우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점에서 너희는 '행복할' 것이다. (네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비참한' 것에 '행복해한다.')
그러니 너희는 더 이상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때까지 계속 그것을 체험할 것이다. 하지만 너희들 대다수는 그 체험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 그 순간에 이미 거기서 벗어나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너희는 지상에서의 삶에서도 지옥을 없앨 수 있다.
너희가 두 번째 길을 택해 자신의 체험을 의식하면서 창조한다면, 너희는 의심할 여지없이 '곧장 천국에' 이르는 체험을 할 것이다. 자유롭게 선택하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그리고 천국을 믿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이것을 창조하려 할 테니 말이다.
설령 천국을 믿지 않는다 해도, 너희는 체험하고 싶은 건 뭐든 체험하게 될 테고, 이것을 이해하는 순간, 너희의 소망은 점점 더 나아질 것이며, 그렇게 되면 결국 너희는 천국을 믿게 될 것이다!
너희가 세 번째 길을 택해 집단의식의 창조에 자신을 맡긴다면, 너희는 순식간에 완전한 포용과 완전한 평온, 완전한 기쁨, 완전한 자각, 그리고 완전한 사랑 속으로 옮아갈 것이다. 이런 게 집단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너희는 '하나임'과 하나될 것이고, '너희의 것'을 빼고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전부'를 빼고는, 다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다른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너희가 결정하기 전까지는. 이것이 너희 다수가 명상상태에서 아주 잠깐씩 경험하곤 했던 '하나임과 하나 되는' 체험인 열반nirvana이다. 이것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황홀경이다.
이렇게 해서 너희가 무한시간 - 무(無)시간 동안 하나임을 체험하고 나면, 너희는 마침내 그 체험을 그만둘 것이다. '하나 아닌 것'도 함께 존재하지 않고서는, 또 그것이 존재할 때까지는, '하나임'을 '하나임'으로 체험할 수 없기에, 너희는 이것을 이해하면서 다시 한 번 분리, 즉 분열이라는 발상과 생각을 창조할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는 영원히 영원히, 끝없이 영원히, 우주 수레바퀴를 따라 여행하고, 가고, 돌고, 존재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몇 번이고 - 무수히 여러 번, 그때마다 무한한 기간 동안 - 다시 '하나됨'으로 돌아갈 것이고, 우주 수레바퀴의 어떤 지점에 있든 '하나됨'으로 돌아갈 도구가 자신에게 있음을 알게 되리라.
너희는 이 책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할 수 있고, 내일이라도 명상 속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 언제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가 죽을 때 지니고 있던 의식수준에 반드시 머물러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렇다. 너희는 원하는 만큼 재빨리 다른 수준으로 옮아갈 수도 있고, 너희가 하고 싶은 만큼 많은 '시간'을 들일 수도 있다. 만일 너희가 한정된 관점과 조절되지 않은 생각의 상태로 죽는다면, 너희는 더 이상 원하지 않을 때까지 그 상태가 너희에게 가져다주는 모든 걸 체험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너희는 '깨어나 - 의식하면서 - 자신의 현실을 손수 창조하는 체험을 시작할 것이다.
너희는 첫 단계를 돌아보면서 그것을 정화(靜化)라 부를 것이고, 너희 생각의 속도로 원하는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두 번째 단계를 천국이라 부를 것이며, '하나됨'의 희열을 체험하는 세 번째 단계를 열반이라 부를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알고 싶은 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죽고 나서'가 아니라 몸 밖에서의 체험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럴 경우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제게 그걸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냥 '자신'의 본체essence가 신체를 떠난 것이다. 이것은 꿈꾸는 동안에는 흔한 일이고, 명상 동안에는 자주 있는 일이며, 몸이 깊은 잠에 빠진 동안에는 숭고한 형태로 빈번히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 '이탈' 동안 너희 영혼은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체험을 보고하는 사람들이 자기 의지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나중에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들로서는 그것을 '그냥 내게 일어난 일'로서 체험할 수도 있지만, 무릇 영혼의 행동과 관련된 어떤 일도 저절로 일어나는 법은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이 오직 발 가는대로 창조하는 것뿐이라면, 만사가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드러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서 그것이 우리에게 '밝혀질' 수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만사가 우리에게 밝혀질 수 있는 경우는 그것이 우리와 떨어져서, 우리 창조물의 일부가 아닌 것으로 존재할 때뿐인 것 같은데요. 이 문제를 좀 이해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어떤 것도 너희와 떨어져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너희의 창조물이다. 확연한 네 이해 부족까지도 너 자신의 창조물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네가 상상으로 지어낸 것이다. 너는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모른다고 상상한다. 그래서 너는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안다고 상상하는 순간, 너는 곧바로 알게 된다.
너는 자신이 이런 식의 상상을 하게끔 놔두는 것으로 그 '과정'Process이 계속될 수 있게 한다.
과정이라고요?
삶, 그 영원한 과정 말이다. 그것이 소위 유체이탈 체험이든, 꿈이든, 아니면 수정 같은 명료함이 너희를 찾아오는 신비스런 각성의 순간이든 간에, 너희가 자신에게 '밝혀지는' 체험을 하는 그 순간에 벌어지는 일은, 너희 자신이 그냥 '기억해냄' 속으로 빠져든다는 것뿐이다. 너희는 자신이 이미 창조한 것을 기억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기억해냄은 대단히 강력할 수 있어서, 개인 차원에서의 현현(顯現)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런 장대한 체험을 한번 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현실'이라 부르는 것과 잘 융화하는 방식으로 '현실 생활'로 되돌아가기가 대단히 힘들어질 수 있다. 그것은 너희 현실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뭔가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늘어났고 자랐으며, 두 번 다시 오그라들 수 없다. 그것은 요정 지니를 병 속에 도로 집어넣으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유체이탈 체험이나 소위 '임사(臨死)' 체험에서 돌아온 많은 사람들이 이따금 완전히 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게 이 때문입니까?
바로 맞혔다. 그리고 그들은 달라졌다. 왜냐하면 이제 그들은 그만큼 훨씬 많이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체험들에서 멀어질수록, 시간이 많이 지날수록, 그들은 자신들의 옛 태도로 더 많이 돌아간다. 자신들이 아는 것을 또 다시 잊었기 때문이다.
'기억을 유지할' 무슨 방도가 있습니까?
있다. 순간마다 너희의 앎을 행동으로 표현하라. 환상의 세계가 너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아는 것에 따라 행동하라. 겉모습이 아무리 너희를 미혹하더라도 너희가 아는 것에 머물러라.
모든 선각자들이 해왔고, 하고 있는 일이 이것이다. 그들은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고, 자신들이 아는 것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고 기억해 내는 또 다른 방법도 있다.
예?
남이 기억하게 만들어라. 너희가 자신을 위해 원하는 것을 남에게 주어라.
그건 제가 이 책들을 가지고 하고 있다고 여기는 거군요.
바로 그것이 네가 하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더 오래 그렇게 할수록, 네가 그렇게 할 필요는 더 줄어들 것이다. 이 메시지를 남에게 더 많이 보낼수록, 네가 그것을 너 자신에게 보낼 필요는 더 줄어들 것이다. 나 자신과 남이 '하나'니, 내가 남에게 주는 것이 곧 나 자신에게 주는 게 된다.
- 신과 나눈 이야기 3권 149p~ |
첫댓글 행동으로 표현하라.
남이 기억하게 하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