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3.창세기-013 처음 가정의 시련(창세기 4장 1-7절)
성경말씀은 창세기 4장 1절에서 7절까지 봉독합니다.
[창세기 4장]
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세기 4장에는 우리 인류가 출발하면서 형성된 맨처음 가정 이야기가 기록되어있는데, 참 놀랍고 안타깝게도 처음 가정이 행복한 가정 이야기로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큰 시련을 겪게 되는데,
[창세기 4장]
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하면서 그 가인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얼마 있다가 둘째 아들 아벨을 낳았습니다.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아주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극동방송국에서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성경과 역사’라는 그런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역사를 보고 성경을 보면 일치되는 부분도 있고 전혀 맞지 않는 일치되지 않는 그런 부분이 있었는데, 보통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역사를 보면 엄청나게 오랜 이야기를 가지고 시작을 하는데, 가령 인류의 역사를 300만년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봅니다.
인류 역사가 300만년 됐다 이렇게 하고 지구의 역사는 약 45억년쯤 되었다고 일반 역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45억년은 추측에 불과한 건데 연대측정법이라고 하는 자기들은 이른바 과학적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별로 과학적이지 않은 그런 연대측정법인데, 다음에 우리가 창조론 공부를 할 때 홍수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 심도있게 할 생각인데요,
1836년에 덴마크의 고고학자였던 C.J 톰센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톰센 하면 영어로 톰슨이죠. 북구라파에서는 톰센이라 하는데..
C.J 톰센이라는 사람이 오늘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3시대를 이야기 하죠.
맨 처음 석기시대, 그 다음에 청동기 시대, 그리고 철기시대.
석기시대를 후에 영국에 학자가 이걸 다시 존러벅이라는 사람이 신석기와 구석기로 나누게 됩니다.
석기시대를 신석기와 구석기로 나누었었고, 프랑스의 고고학자 모르간이라는 사람이 중석기라는 말을 사용하게 돼요.
학술적으로 이렇게 하니까 거기 굉장한 것이 있는가 보다 하는데, 사실은 파고 들어가보면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 근거도 없는 내용인데, 오늘날도 급하면 돌멩이도 던지고 하죠.
다윗도 돌멩이 던져서 출세한 사람인데..
지금도 저 파푸아뉴기니아라든지 아니면 라오시 캄푸치아 이런 정글속에 가면 거의 석기시대와 같은 그런 원시생활을 하는 사람이 지금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금석병용시대 별별 이야기를 하는데 여전히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는 그런 학설들입니다.
여기 일반 세계사에서 볼 때 인간들이 농경문화를 시작한 것은 1만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성경 이야기와 조화를 시켜볼려면, 성경은 거의 창세기에 인간이 출발할 때 바로 농경문화가 시작되었고, 그리고 동철 금은동철로 가지고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가인의 7대손이 되는 두발가인때부터 금은동철이 나옵니다.
그럼 그때를 우리가 시대로 본다면, 성경이 말하는 연대기로 본다면 주전 3000년, 주전 3000년이면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부터 이미 성경은 금속을 썼다는 거야.
동과 철을 가지고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 역사 백과사전에 보면 엉터리로 되어 있거든요.
뭐라고 되어있느냐 하면 청동기라는 게 주전 1000년 경에 청동기가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철기시대는 주전 400년경부터 철을 사용했다고 이렇게 하는데, 성경한 그것보다 훨씬 전에 사용했다는 기록이 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토론을 많이 해도 기록된 역사가 나오면 토론은 종결됩니다.
그런데 언제든지 기록이 참 중요한 건데, 주전 1400년 전에 모세가 나올 때 그때 애굽 사람들이 전차, 마차를 가지고 따라왔다고 하는데 돌을 가지고 마차 만들 수 있습니까?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성경과 역사를 진행하면서 살펴본 대로는 성경에 있는 역사가 가장 정확하다.
일반 학자들이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맞는 말도 있고 틀린 게 많아요.
그리고 논리적으로 안맞는 게 많아요.
그러면 지금 현재 진화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인류 역사를 약 300만년 되었다고 하고, 그리고 증거가 나온, 다시 말하면 자기들이 말하는대로 증거가 나온 걸 제시하는데 뭘 제시하느냐 하면,
루이스리키라는 사람이 1931년도에 아프리카에 가면 탄자니아 올드바이 계곡이라는 계곡에서 어떤 뼈들을 화석들을 찾아내가지고 이걸 진잔드로프스보이세이라고 명명을 했고 이것을 연대를 175만년 됐다. 아무 근거 없습니다.
그전에는 최고 오래된 것이 50만년 전의 것이라고 예를 들어서 필드다운맨이라든지 이런 건 다 50만년 되었다고 있는데, 여기 지금 루이스리키는 놀랍게도 선교사 아들이예요.
선교사 아들인데 성경을 예사로 무시해버리고 그 잘못된 그런 연대측정법을 가지고 어설프게 발표한 게 175만년 전에 사람과 원숭이의 중간 존재가 살았다는 루이스리키라는 사람의 발표가 있은 이후에 인류가 300만년 전부터 인류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그 중에서 175만년 전에 생존했던 사람과 원숭이의 중간 존재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발견되었다.
그 탄자니아 올드바이 계곡에서 발견된 이것을 가지고 진잔드로프스보이세이라고 했다가 얼마후에 1963년 역이 같은 지층에서 사람에 가까운게 나왔다는 겁니다.
그러면 원숭이가 밑에 있는 것이고 사람이 한참뒤에 나와야 되는데 오히려 사람화석이 진잔도르프스보이세이 라는 원숭이와 사람의 중간 존재는 그보다 더 밑에서 나왔다는 건데,
그러면 언제든지 진화론적 사고라는 게 밑에 있는 것이 오래된 것 아닙니까?
퇴적이 되어있으니까..
그러면 이 발표대로 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진화된 게 아니라, 사람에서 원숭이 쪽으로 진화된 거예요.
그래서 이 때 발견된 1963년도에 발견된 사람에 가까운 화석을 호모하빌리스라고 이름을 지은 거예요.
어떻든 이 발표로 인해가지고 한가지 온 세계 역사를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인간 인류 역사의 발원지가 아프리카라는 거예요.
지금 현재 BBC방송이라든지 여러 유럽에서 만든 어설픈 그런 보고서를 보면 항상 인류 기원을 아프리카 기원설로 바꿔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무너뜨리기 위한 아주 고의적으로 학설을 조작한 겁니다.
여러분 황우석 교수만 조작한 게 아니고 이런 학자들 전부 조작한 것을 볼 수 있어요.
파고 들어가면.. 아무 근거없는 날조된 거야..
그리면서 그것을 과학 교과서에 실어 가르치는 거예요.
그래서 학생들이 얼마나 혼란스럽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제가 여기 가인과 아벨, 아담의 바로 아들들인데 아담의 세 번째 아들 셋이라는 아들은 아담이 130세에 낳았다고 하면 지금처럼 하나 낳고 둘 낳고 한 게 아니고 아이를 계속 낳았을 텐데,
딸들을 낳은 얘기는 창세기에서 안 쓰고 있거든요.
아담이 딸들을 낳은 얘기는 안 쓰고 있지만 딸들도 낳고 아들도 낳고..
제가 볼 때는 아들 하나 둘 낳고, 딸 하나 둘 낳고.. 이렇게 낳아야 짝이 맞을 것 아닙니까?
예를 들어서 아들만 한참 낳다가 짝도 없이 계속 낳으면 그러면 안 되잖아.
그래서 아들들 낳고 딸도 낳고 이렇게 낳았는데, 130세때 낳은 아들이 셋이라고 한다면 그 이전에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는 얘기죠.
그런데 그때 벌써 천지창조로부터 인간창조로 바로 이어졌는데 인간창조 직후에 바로 가인의 농사를 지었고 그리고 아벨은 육축을 길러다는 겁니다.
양을 치는 자이었다 이렇게 말합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다..
그리고 3절에 보면,
3 세월이 지난 후에,
줄을 그으세요. 이런 말 한마디 놓쳐버리면 전혀 혼란스러운 질문이 올라오는데 세월이 흐른 후에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농사를 짓고 육축을 치면서 세월이 지나가요. 세월이 얼마만큼 지나갔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어요.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자, 이 부분을 설교하는 것을 제가 꽤 많이 들어보는데, 다들 어떻게 설교하느냐?
거의 제가 들은대로 99.9%가 가인은 피가 없는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이 안 받았다는 거야.
여러분도 그렇게 들었죠?
피가 없어서 안 받았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피를 좋아하십니까?
그리고 곡식을 가지고 바쳤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받았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곡식도 바치라고 되어 있어요. 나중에 가서 보면..
율법 이전이기 때문에 이것은 된다 안된다 그런 것도 없어요.
여기 조금만 더 성경을 성의있게 정성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하나님이 제사를 받지 않은 이유가 나와요. 충분히..
그 가인이 드린 제물에 문제가 있었다. 성경한 이렇게 말하지 않고 뭐라고 하느냐?
제물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제물을 바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문제가 뭐냐?
6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이게 문제라는 거죠.
너 왜 피없는 제사를 가져왔느냐? 이렇게 말하지 않잖아요.
여러분 가인이 분하다는데 누구를 향해 분노하는 거예요?
누구를 향한 분노 같아요?
제가 볼 때는, 이것은 여러분은 다르게 생각해도 자유입니다.
아벨에 대해서는 시기하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분노하는 것 같애요.
여러분도 누구한테 실컷 가져갔는데 안 받아봐요.
좀 기분 나쁘지 않겠어요?
나는 정성을 다해 가져갔는데 안 받으면 기분 나쁘지 않겠습니까?
또 누구꺼만 받으면 그 사람 시기하는 거죠.
시기하게 분내고 하는 게 다 뭐예요? 이게 죄성이예요. 죄성.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간을 가만 내버려놔두면 그 인간의 죄성이 어떠냐?
제일 먼저 일어나는게 시기 분쟁 살인..
시기 분쟁 살인.. 여러분 로마서 1장 보십시오.
로마서 1장을 함께 보십시다.
타락한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가만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되느냐?
아주 악하게 되는데 로마서 1장 28절에,
[로마서 1장]
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죄라는 게 바로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분쟁한다는 것은 나중에 싸워서 죽이는 것이고 시기 살인.. 시기가 살인이야.
예수님께서 미워하는 것 시기는 미워하면서 질투하는 거야.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자’라고 했어요. 그렇죠?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살인미수예요.
그러니까 미워하는 것을 더 심하면 살인으로 가는 거죠.
그래서 여기 하나님께서 제물을 이야기 할 때 성경 기자가,
다시 봅시다.
창세기 4장 5절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제물을 기뻐하는 게 아닙니다.
제물을 기뻐하는 게 아니고 제물보다 사람이예요..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사람’이 먼저 라는 거예요. 제물이 먼저가 아니고 사람이 먼저예요.
여러분 지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지만 우리 손에 들고 있는 예물 헌금 그게 우선이 아니고 사람이 우선이라는 겁니다.
우상이나 귀신은 사람이 어찌 되었든간에 제물만 가져와..
이럴지 몰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이 더 우선이라는 겁니다.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열납’은 기쁘게 받으셨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이때 가인이 분하여 안식이 변했다.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그 제물을 하나님께서 안 받으신다면 잘못이 안 받으신 하나님께 있는지, 자기에게 있는지 생각해보면 자기에게 있는줄 알면 분을 낼 수 없잖습니까? 상식적으로..
그런데 사람이 분을 냈다는 거야.
..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않았다는 거야. 그러니까 아담으로부터 제사를 배웠을텐데, 자기 아버지 아담이 제사드리는 것을 가르치거나 본을 보이지 않았으면 제사를 드리지 않았을 텐데.
형식은 배웠는데 제사 드리는 마음의 자세를 배우지 않았어요.
그래서 네가 선을 행하지 않았다는 거야.
너 존재가 선하지 않다는 거야.
그래서 가인과 그 제물이라고 할 때 선하지 않고 형제에 대해서는 시기하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분을 내고 선을 행하지 않았다.
이것이 이어서 나오는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열납하지 않은 이유가 그냥 설명된 것 같은데. 내가 볼 때는..
어째서 맨날 피가 없다는 그런 소리를 하냐고..
그런지 안 그런지 다시 한번 봅시다.
이사야서 1장 13절을 봅시다.
여러분 확인하는 것이 좋아요.
거기 보면 하나님께 제사를 가져왔는데 헛된 제물입니다.
이사야 1장 13절 보세요. 10절부터 보는 게 더 좋겠네요.
[이사야 1장]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러분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봐라.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라. 이게 지금 소돔 사람과 고모라 사람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사야 시대에 소돔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누구보고 하는 말이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하는 말이예요.
역사를 모르고 앞에도 안보고 뒤에도 안보고 하면 소돔사람보고 하는 말이구나.
그런 실수는 하는 거야.
지금 이스라엘 이사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 예루살렘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데도 하나님께서 이들을 보고 뭐라하느냐.
너희 소돔의 관원들이요 고모라의 백성들이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면서 제물을 가져와.
소돔과 고모라 백성처럼 그렇게 타락하고 부패하고 죄악많은 사람들이 선을 행하지도 않으면서 제물을 가져오니까 하시는 말씀 아닙니까?
..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제물을 무수하게 가져오는데,
..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번제라고 좋아합니까? 양을 잡았다고 좋아합니까? 그 수양의 기름을 좋아합니까? 그게 아니잖습니까?
..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무슨 말이냐?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앞으로 보세요.
여기 지금 이사야 시대에 예루살렘에 관원들과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무수한 제물을 가져오고, 끝없는 피를 흘려 동물을 가져오고, 기름을 가져오고, 그리고 안식일과 월삭과 대회로 모이고 성회를 베풀고 하는데 하나님이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왜 그래요? 원인이 뭐죠?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니까..
악을 행하였거나 행하고 있거나 행하려는 계획이 있거나.. 사람이 우리가 세상법이라는 것은 악한 행위를 행했기 때문에 악한 자라고 하죠?
성경은 악한 사람이기 때문에 악을 행한다는 겁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기 전에는 세상 사람 기준에 죄인이 아니죠?
그러나 성경은 죽이기 전에도 죄인이기 때문에 동생을 죽이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 이정도만 해도 하나님께서 왜 가인이 드린 제사를 받지 않았는가 분명하지 않습니까? 극명하지 않습니까?
피가 없다는, 그런 유치가 소리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피를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강수같은 기름을 기뻐하는 것이 아녜요.
한군데 더 찾아 봅시다.
소선지서 아모스 4장인데요.
교회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특권이 있는데 그 예배 기본자세 기본을 배워야 하니까..
아모스 4장 4절부터 5절까지 보겠습니다.
[아모스 4장]
4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줄을 그으세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고 그러면서,
..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희생이 뭐겠어요? 양이나 소를 잡는 거죠.
..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5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광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의 기뻐하는 바니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니까 실컷 너희 희생을 소를 잡고 양을 잡고 실컷 십일조를 갖다 바치고 그런 낙헌제를 갖다 드려봐라. 그리고 소리내어 광포하려무나. 해봐라.
이스라엘 자손아 이런 것은 너희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너희가 좋아서 하는 종교행위에 불과하다는 거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창세기 4장에, 지금도 보통 에스라하우스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질문을 보면 이 부분 질문이 되게 많이 해요.
끝없이 질문해요. 바르게 안 배우고 안 가르쳤으니까 마음에 답이 없는 거예요. 성도들이..
7절,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그러니까 사람의 타락한 본성속에는 죄의 소원이 있어요. 내 소원이 아니고 하나님의 소원도 아니고 죄의 소원이 있다니까..
그러니까 남을 해치거나 어떻게 할려는 것. 남을 해칠려고 하는 어떤 악한 마음. 이런 것은 내 소원도 아니고 하나님 소원도 아닙니다.
그것은 죄악의 소원이예요.
저것을 어떻게 해 버릴까 하는 생각..
이런 것도 죄악의 소원이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원은 그런 게 아니예요.
그런 부분은 나중에 조금 더 영적인 얘기를 할 때 우리가 살펴보겠는데,
타락한 사람들 마음속에는 죄의 소욕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못되가지고 하라고 하면 하기 싫어해요. 하던 것도..
옳은 것이고 하던 것도 하라고 하면 하기 싫어해요.
육신의 정욕이 계명에 반발하는 거예요.
그런 죄성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해요.
그런 게 다 죄의 소원들이죠. 죄성이란 겁니다.
8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밖에 나가자고 꾀어내는 거죠. 그후 그들이 들에 있을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최초의 살인이죠? 시기하고 분내고 그리고 낯을 들지 못하고 그리고 선을 행하지 아니하고 그리고 살인하고 이런 사람이 가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 이런 존재를 존재와 그 예물은 열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때려죽여놓고..
제 생각에 가인이 아벨을 때려 죽이겠다. 그런 생각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죽는 게 뭔지도 아직 모르잖아. 죽는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으니까..
미워서 어떻게 해 보겠다 하고 했는데, 다시 말하면 살인이 뭔지도 채 알지 못할 때 살인이 발생했어요.
이건 하나님의 소원도 아니고 아담의 소원도 아니고 하와의 소원도 아니고 저와 여러분의 소원도 아니고..
사실은 가인의 소원도 아니라고.. 죄의 소원이 들어있어요. 죄의 소원이..
그래서 사도 바울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나는 분명히 선을 행할려고 하는데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거야..
그러면서 이것을 행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내 속에 거하는 죄라는 사실을, 바울 시대에 가서 명료하게 밝혀진 거죠.
죄의 소원이 있다고 창세기에 나와요. 벌써..
그런데 거기에 대한 확실한 자백을 사도바울이 하는 거예요.
로마서 7장 14절 이하에서..
그리고는,
..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하나님 말씀에 그래, 네가 네 아우를 지키는 자이지..
너는 네 아우를 지키는 자야.
그런데 너는 네 아우를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네 속에 있는 죄의 소원을 따라서, 우리의 몸과 우리의 손발과 마음판을 죄의 소욕에게 내어줘서 죄의 종 노릇하고 죄에게 순종한거야.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는 거죠.
그리고 죄의 삯은, 실컷 순종해봐야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된다는 겁니다.
죄에게 순종하면 죄의 종이 되어 사망에 이르고, 의에게 순종하면 의의 종이 되어 생명에 이른다.
여러분 보세요. 로마서까지 갈 것 없잖아.
창세기에 벌써 로마서가 다 나오잖아.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하면 창세기부터 하면 우리는 로마서는 언제 듣느냐?
창세기에 로마서가 다 나와요.
복음을 꼭 복음서 가서 듣는 게 아니라고..
10절,
10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줄을 그으세요. 아까 본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는데 줄을 그으시고, 또 10절에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중요한 얘기죠?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가 어떻게 하였느냐?
먼 훗날 사도 바울이 자기 딴에는 잘하는 줄 알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핍박하던 바울이 다마스커스에서 예수님을 만나가지고 엉겹결에 까무라치면서 하는 말이, ‘주여 뉘십니까?’ 했는데,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 하니까,
그 때 두 번째 바울의 질문이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무엇을 했느냐?
나는 내 인생을 내가 지금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 살면서 내가 무엇을 했는가?
또 어떻게 했는가? 돌아본다고 하면 하나님께 내놓을 만한 게 있습니까?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면 땅이 그 사람에게 저주를 내립니다.
하나님이 저주하는 게 아니라, 땅이 그 사람에게 저주를 내린다니까..
그 사람은 설 곳이 없고 피할 곳이 없고 숨을 곳이 없고 갈 곳이 없다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교훈이예요.
다시 말하면 사람이 이런 범죄 저런 범죄 다 해서는 안되지만,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려서는 안돼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아야 돼요.
억울한 피가 이 땅에 흐르지 않아야 돼요.
여러분 광주에서 흘려졌던 억울한 피가 있는 거죠.
4.19때 마산에서 흘려진 억울한 피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 핏소리는 오래 가는 거예요.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피하면서 유리한다, 여러분 죄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가는 거예요.
자기 발자국 소리에 자기가 놀래고..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에도 놀라고..
숨을 곳이 없어요. 꿈에서도 가위가 눌리고..
죄를 지으면 아무데나 가도 그 저주가 따라 다니는 겁니다.
그 죄를 용서 받기 전에는 저주가 그냥 일생만 따라 다니는 게 아니라 지옥까지 따라가요.
죄를 지으면..
12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제가 늘 5월이 되면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돼요.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아기자기하게 그런 사랑이 있는 그런 분은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참 착했어요.
그리고 아버지는 너무너무 정적한 그런 분이었는데, 농사를 지으면 우리 어머니가 농사를 짓을 것을 보면 세상 시원찮게 해요.
밭에다가 씨를 줄줄뿌리고 발로 툭툭차고 지나가 버려요.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한알 한알 심는 게 아니고 대충대충 하는 것 같은데 잘 되는 거예요.
항상 보면 우리 밭이 곡식이 잘돼요.
그리고 우리 집에 음식 맛이 장맛이 달아요.
그래서 제가 지금 장맛이 달다면 무슨 말인지 모를 거야. 장이 짜지..
장이 왜 다냐?
장이 항상 맛이 있고 곡식이 잘 되고, 복을 받는 거죠.
우리 어머니가 세상에서 무슨 큰 그런 복이 아니라 손으로 하는 일이 잘 되는 복..
악을 행하지 않으니까 너무너무 착하게 사니까..
땅에서 잘될려면 착하게 살아야 돼요. 진짜..
착하게 살라니까 꼭 내가 유치원생 보고 하는 소리같죠.
죄송합니다만 우리가 다 돌이켜 어린아이같이 되어야죠.
정말 착하게.. 공부도 착한 애가 잘해요.
착은 애는 공부할 생각만 하니까 공부를 잘 하는데, 못된 아이는 못된 생각하니까 공부가 머리에 안 들어오는 거야..
마음이 착하면 공부를 잘하게 되어있어.
그래서,
..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했더니,
13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이것도 문제야. 여러분 그 행위대로 하면 죽어야 돼요.
죄벌이 중하고 무거워 견딜 수 없는 게 아니라 죽어야 되거든요.
사람의 피를 흘리면 죽어야 되거든요. 원래..
왜 이렇게 가인이 살인을 했는데 용서되었다고 봅니까?
왜 용서된 거죠?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나..
살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 살인했기 때문에..
제가 볼 때는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용서를.. 그러니까 용서한다고 해가지고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지었지만 그대로 하면 죽어야 돼요.
피를 흘리면 자기가 죽어야 되는데 이렇게 이만큼 벌로서 다스리는 용서된 것은 모르고 한거야.
살인이 뭔지도 모를 때 살인이 발생한 거죠.
그런데 그걸 갖다가 타락한 본성은 항상 자기 죄보다 벌이 무겁다는 거야.
나는 아직 재판받는 사람중에 억울하지 않다고 한 사람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어요.
항상 억울하다고 해.
억울하지 않다고 한 사람을 봤는데 그 사람이 안의정씨야. 안의정씨..
노무현 대통령 측근에 있다가 정치자금 마련했다가 감옥에 가서 재판 받을 때, 제가 지은죄가 너무 크니까 가볍게 하지 말고 벌을 충분히 무겁게 내리십시오. 나는 한사람 딱 봤어요.
창세 이후로..
그 안의정씨는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어.
겉으로 한 소리인지 진심으로 한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어떻든 그렇게..
전보다 항상 자기는 억울하다는 거야. 그게 참 악한 거죠.
마땅한 벌을 받아놓고도..
나중에 욥기를 보면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가볍다. 그렇죠?
우리를 우리 죄대로 처치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신앙있는 사람들의 고백인데, 못된 사람은 항상 억울하다고 해..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또 이것 때문에 질문이 끝없이 올라와요.
‘아직 세상에 아담과 하와 가인 아벨, 아벨은 죽어버렸고, 지 혼자밖에 없는데 누가 죽이겠느냐?’ 이런 질문을 많이 해요.
이것은 조금 설명이 필요합니다.
‘세월이 흐른 후에’ 라는 것을 기억해야 돼요.
이사람은 벌써 장가를 가서 살림을 따로 나가지고 제사를 따로 지낸다니까..
만약에 자기 아버지 슬하에 있었다면 제사를 따로 안드리죠. 자기 아버지가 드리지.
살림을 나가지고 가인은 가인대로, 아벨은 아벨대로 따로 제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벌써 분가 했다는 것이고 장가를 들었다는 얘긴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살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 때에는..
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첫째로 사람이 제법 있었고, 두 번째는 사람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고 죄를 지은 사람의 심리상태예요.
여러분 죄를 지으면 내가 어디가서 틀림없이 내가 누구에게 벌을 받지 않겠는가?
그런 불안한 심리가 가인 속에 있었단 말이죠.
세 번째는 심지어 가인 아벨 뿐 아니라, 제가 볼 때는 아담과 하와라도 정말 이 세상에 자기들만 있는지 또 딴곳에 다른 동산에 다른 사람을 만들어 놨는지 모른다는 거죠.
지금 우리가 오늘까지 와서 오늘도 목사님 우주에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모르죠 내가.. 가봤냐.
지금도 우리가 다른 별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서 이렇게 말하는데, 그 때 오죽하겠어요? 성경도 역사도 아무 것도 없는데..
그러니까 죄를 짓고 난 가인의 심리상태가 그렇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꼭 누가 있다는 게 아니라 없다고 할지라도 있는지 모르는 거예요. 죄를 지으니까..
또 사람이 실제로 있었기로 하고..
조금만 더 생각하면 그 정도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습니까?
그래서 창세기 4장 공부를 똑바로 해야 돼요.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또 이것은 그날만 아니라 오고 오는 세월에 만나는 사람이 있을것 아녜요?
그때는 보통 900년 살았으니까..
또 여기 어떤 분이 표를 어떤 표를 줬냐고 묻는데, 몰라요. 저도 안 봤어요.
어떻든 무슨 표를 줬겠지.
그런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까 우리가 언급한 것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게 읽을 가치가 있는 거죠.
16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가하였더니
놋 땅이 정확이 어디인지 찾지 못합니다. 아직도..
어떤 주석도 해결이 안돼요. 어디인지..
왜냐하면 노아 홍수때 뒤죽박죽 뒤범벅이 되어버렸어요.
지금 유브라데 강만 확실하고 나머지 강은 어디있는지 모르겠는데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17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여기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들려올라간 그 에녹이 아닙니다.
성경을 볼 때 항상 동명이인이 많이 있어요.
이름은 같은데 사람은 다른 그런 경우가 많이 있으니까 이런 것도 조심해야 돼요.
18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줄을 그으세요. 이 라멕이 누구냐 하면 가인의 5대손이죠.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한 조상이예요. 아내를 더블로 가져갔어.
..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여러분 문화도 꽤 일찍 시작되었어요. 이게 음악이죠. 음악.
사람들이 아주 일찍부터 음악이 발달된 거죠.
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여기 이런 것도 번역이 잘못되었어요.
‘씰라가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할 때, ‘그’가 씰라요? 두발가인이요? 우리 문법으로 하면 씰라죠? 그렇죠?
그런데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문법이 그렇게 되면 안되고, 두발가인이 동철로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었어요. 그렇죠? 우리 번역이 이런 것은 좀 잘못된 거야.
‘씰라가 두발가인을 낳았는데, 그 두발가인은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이렇게 해야 맞는 거죠.
이해가 됩니까? 이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래서 그럴 때 우리말 성경만으로는 어려움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부분이 많이 있어요.
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이 노래가 인간이 부른 최초의 노래거든요. 이게..
그런데 이것도 번역이 이상해요.
여러분 이 부분의 번역을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게 읽으시려면 현대어성경이라는 책이 있어요. 대조를 해 보면 현대어성경이 이 부분을 번역한 게 훨씬 더 타당성이 있습니다.
이게 지금 칼의 노래, 라멕이 두 아내를 취했는데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아다와 씰라인데 라멕의 아내들죠.
라멕이 씰라라는 여자에게서 두발가인을 낳았거든요.
그러니까 문법으로 볼 때 씰라가 날카로운 기계를 만든 게 아니죠. 여자니까..
위에 다시 보세요.
19절,
19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씰라는 여자죠?
21절에 라멕의 아내 씰라가 두발가인을 낳았다 그말이죠.
그렇게 되어 있는 거니까 정밀히 봐야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말하면 라멕이 자기 아들이 칼을 가지고, 뭐를 만들어 가지고 사람 죽이는 날카로운 기계인데, 그때 날카로운 기계는 뭐겠어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사람 죽이는 것 외에는..
사냥하거나 사람 죽이는 건데, 이걸 잡더니 살인자의 노래를 부른 거예요. 악한 노래를..
그래서 인간이 부른 최초의 노래가 뭐냐? 반드시 시험에 나옵니다.
라멕이 부른 살인자의 노래예요.
여러분 여기 ‘내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다.
내게 상처를 입히거나 내게 덤비거나 하면 죽여버리겠다.’ 그렇게 되어있는데, 번역이 참 어려워요.
번역이 반역이라는 말이 있다니까.. 얼마나 어려운지..
특히 고문서, 옛날문서 문법이 발달되지 않은 문서. 그것도 시적인 것. 노래 가사문학이나 시를 번역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은 그 분위기라든지 번역을 대조해보면 현대어성경이 오히려 사람들이 우습게 보는데 그 내용을 보면 분위기를 보면 맞다는 거예요. 제가 볼 때..
그래놓고는 가인을 죽이면 벌을 7배나 받을 것이라 했는데, 라멕을 위해서는 벌이 77배라고.. 지 멋대로야. 지가 무슨 재판장인가 라멕이..
이러면서 점점 사람이 못되어지는데, 못되니까 아내를 둘씩이나 취하고, 그 못된 사람손에 칼이 들려지고, 칼을 들고는 이런 흉악한 노래를 불러대면서 인간이 타락으로 간다는 거죠.
그러니까 큰 흐름을 창세기 4장부터 흐르는 큰 흐름을 정리해 가다보면 이게 지금 무슨 얘기를 할려하느냐 하면 이렇게 해서 노아 홍수를 얘기할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죄악이란 게 맨 처음에는 과일 한개 따는 걸로 시작해요. 그렇죠?
가인이 동생 아벨을 때려 죽이더니, 가인 자손 중에서 죄악이 더 빨리 증폭해요.
그 다음에는 아내를 둘 취하는 걸로 진행되어가지고..
지금 보면 꼭 같이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에 살지만 어떤 집안에 악이 더 증폭되고 있는 거예요. 그렇죠?
어떤 집안에는 착한 사람이 나는데, 어떤 집안에는 계속 악한 사람이 나는 거예요.
그럴 때 우리가 얼마나 선을 행하는 의지, 죄의 소원은 내게 있다할지라도 그 죄를 다스리려는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가지고 선을 행할려는 의지가 있어야 돼요. 여러분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앞에 엎드려있다는데 이것은 야고보도 말하기를 선을 알고도 행치않는 그 자체가 죄라는 거예요.
자전거를 예를 들면, 자전거가 안 넘어지게 할려면 계속 패달을 밟아야 돼요.
그래야 안 넘어지고, 우리가 죄를 안 범하는 유일한 길은 계속 선을 행하는 거야.
선을 계속 행하고 있는 동안에는 죄를 짓지 않는데 선을 행하기를 안하면, 나는 선도 안하고 악도 안하겠다. 그것은 안된다는 거야.
선을 알고 행치않는 그 자체가 죄니까..
그래서 선한 사람은 선한 행위를 악한 사람은 그냥 악으로 기울어져요.
매일 같이 우리가 오늘도 내가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면서 오늘 하루를 선하게 살자. 일평생 선하게 살기는 힘들어도 오늘 하루 내가 선하게 살자.
그리고 선하게 사는 오늘 하루하루가 쌓여서 내 선한 과거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내 선한 미래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끊임없이 하루하루를 선하게 살려는 의지가 있어야 돼요.
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여러분 보세요. 방금 하와가 셋을 낳았다고 하는데, 셋이 바로 아들을 낳았대..
그럼 이걸 문자대로 보면 셋이 나자마자 아들을 낳았습니까?
그래서 전부다 창세기가 얼마나 압축되어있는지..
창세기 한 권이 커버하는 시간대가 나머지 성경 전체만큼 돼요. 창세기 한 권이..
그만큼 이야기를 아주 압축을 해서 썼다는 거야.
그래서 조금은 때로는 설명이 필요하고 우리가 시간대를 넓혀서 생각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특히 창세기를 볼 때..
그런 것을 지난번에 봤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천지를 창조한 대략이 이렇다. 대략은 크게 생략하고 중요한 것만 썼다는 겁니다. 대략..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좀 생각하면서 읽어야 돼요. 창세기는..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이것은 셋의 혈통을 타고 그 가문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게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져 가는데 그 뒤에 보면 5장에 보면 사람이 죽는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여러분 5장 보세요.
아담의 계보를 쭈욱 이야기하는데, 이 계보를 가지고 쭈욱 해서 이름이 나옵니다만 결국은 어디로 가느냐 하면 이 이야기가 아브라함 쪽으로 가는 거예요.
아브라함 쪽으로 가서 다시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하고 이삭 중에서 이삭 쪽으로 가는 것이고,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 중에서 야곱쪽으로 가는 것이고, 야곱의 아들이 열두 아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유다와 요셉이 있는데, 유다쪽으로 가서 결국은 다윗 쪽으로 가는 것이고 마침내 예수그리스도로 가는 거예요.
한 가닥으로 가는 겁니다. 다 이야기하면 책이 두꺼워지는 거니까..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일단 숲을 좀 보고, 그리고 아까 제가 창세기 4장을 볼 때 세밀이 들여다보라고 했는데 나무도 보고 그런 훈련을 조금 하고 나면 여러분이 성경을 볼 수 있어요.
지금은 조금 어려운데 창세기만 어려워요. 창세기만 이런 설명이 필요하고 나머지는 그냥 읽으면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를 제대로 공부하게 되면 출애굽기는 너무 너무 쉬운 거예요.
레위기는 유치원생들도 공부할 수 있어요. 너무 너무 쉬기 때문에 레위기는..
레위기는 ~ 하라. ~하지마라. 누구든 할 수 있는 거죠.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창세기에서 우리가 시간을 조금 보내야 될 겁니다.
창세기를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상당히 스피드가 나가지고 어떻든 우리가 계획한대로 하면 4년 정도 해서 계시록까지 갈려고 합니다.
5장은 저녁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오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처음 가정 이야기를 살펴 보았는데, 아쉽게도 처음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아니라 아픔이 있는 가정, 형이 동생을 쳐죽이는 그런 가정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같은 씨름이 있고 같은 싸움이 있는 줄 믿습니다.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낯을 들 수 없는 것이고,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는 것이고, 또 우리에게도 죄의 소원이 있지만, 우리가 죄의 소원을 다스리면서 그것을 눌러버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의 아들의 영의 인도를 받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항상 우리가 우리 아우가 어디 있는지, 또 내가 무엇을 하였는지를,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살피면서 창세기 4장에 기록된 교훈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일생동안 하루 하루를 선하게 의롭게 살아서 경건을 연습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