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남미 마젤란 해협(Straits of Magellan)
남아메리카 대륙의 꼬리 부분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이어주는 해협이다. 1914년 파나마운하가 완성되기 이전에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유일한 항로였다. 해협의 이름은, 포르투갈 태생이나 스페인으로 귀화한 모험가이자 항해가인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이 1520년에 이 해협을 처음으로 건너 항해한 것에서 기인하였다.
그는 포르투갈 출신의 항해사로, 스페인으로 귀화,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의 후원으로 세계 최초로 지구 일주 항해에 도전한 모험가이다. 항해술에 대해 누구보다 밝았던 그는 혼자만의 착상으로 천재성과 용기를 발휘, 지구 일주에 도전하여, 결국 태평양을 발견하고 세계 일주에 거의 성공함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했다. 본인은 필리핀 막탄 섬에서 사망해 세계 일주 항해에는 엄밀하게 말해 실패했으나, 그의 함대는 세계 일주를 끝까지 성공했고, 그가 10여 년 전 반대 방향으로 항해해 필리핀에 도달했었던 점 등을 감안해 지구를 최초로 한 바퀴 돈 인물로 간주하고 있다.
빨간선이 해협의 항로. 칠레의 영토이다. 빨간 원 부분이 경험한 가장 남쪽 지점임
이 해협을 지나 대서양에서 칠레로, 또는 그 반대 방향으로 빠지는 항해를 몇 차례 한 적이 있다. 마젤란해협을 지나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넘어오자 바람이 없는데도 길고 골이 깊은 너울(swell)이 남쪽에서 밀려왔다. 아마도 남극해에서 강한 바람에 의해 생긴 것일 것이다. 이것이 육지에 닿으면 해일(海溢)이 된다.
너울은 강풍으로 생기는 파도와는 또 다른 형태이다. 이 너울은 태풍보다 빠르게 멀리까지 밀려온다. 항해 중 태풍 중심의 이동을 관찰하여 대피할 거리와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머뭇거리다 보면 바람보다 먼저 너울이 밀려와 선속을 방해함으로 중심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 길고 골이 깊은 너울은 선체를 40도까지 기울었다 일어서게 했다. 말이 그렇지 실제로 서 있는 사람을 40도 옆으로 기울였다 수십여 초(秒)의 간격으로 다시 반대쪽으로 40도로 기울기를 반복해 보라! 정신이 혼미해지고 더구나 주위의 물건들이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더욱 혼란을 가중시킨다. 청천벽력이었다.
이런 해상(海象)에서도 선원들은 스스로의 안전은 물론 선박과 화물의 안전을 모두 지켜내기 위해 고군 분투해야 한다. 특히 적재한 화물의 고박장치(固縛裝置) 상태 점검은 필수적이다. 선내의 화물이 움직이지 못하게 묶고 받친 장치들이 헐겁거나 파손되어 화물이 선박의 흔들림으로 쏠리거나 이동하게 되면 선체의 중심(重心)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추정컨대 ‘세월호 전복사건’은 선내 화물고박장치가 파손, 한쪽으로 쏠림으로 인한 선체 전복이 아닌가 싶다. 선박이 충돌없이 전복하는 것은 무게중심이 부력중심의 위에 있을 때에 쉽게 일어난다.
일찌기 항로 정보가 부정확했던 시절에 좌초한 선박들의 잔해(빌려온 사진)
흔들림 속에 그러한 작업이 결코 쉽지 않다. 선장인 내 자신도 다르지 않다. 사실은 책임이 있기에 그들보다 더 두렵고 괴롭다. 그러나 표현할 수도, 해서도 안 된다. 암튼 태연해야 하고, 태연한 척 해야 한다. 마치 전쟁터의 장수가 어떤 상황에서도 태연함을 유지해야 병사들의 사기(士氣)를 유지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바람이 거의 없는데도 이처럼 선체가 기울기는 처음 겪었다. 그래도 무거운 쇳덩이로 된 선체가 넘어지지 않고 바로 일어서는 걸 보면 부력(浮力)과 무게 중심을 이용한 과학의 힘도 무섭도록 정확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감사했다. 이것이 선박의 복원력(復原力)이다.
이들 너울이나 파도를 피하기 위해 칠레의 산티아고항이나 푼타아레나스항에서부터 Pilot(도선사) 태우고, 칠레 남서부의 수많은 섬 사이의 호수 같은 뱃길을 항해하는 것도 추억에 남을만했다. 가끔은 여름철에도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듬직한 얼음덩이가 선측(船側)을 지나갈 때는 섬뜩한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다.
3. 아프리카 동안의 아굴라스 해류
해류(海流)란 바닷물의 거시적이고 지속적인 일정한 흐름을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작은 규모의 와류(渦流)나 파도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이상의 규모에서만 적용되는 용어이다. 이 해류가 생기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기에 복합적으로 보고 있다.
세계의 주요 표면 해류는 북반구에서는 시계 방향, 남반구에서는 반시계 방향으로 커다란 환류(環流)를 형성한다. 크고 작은 해류가 많지만 일본의 동해안을 흐르는 구로시오[黑潮], 아프리카 동안(東岸), 모잠비크 해협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인 아굴라스를 끝점으로 하여 흐르는 아굴라스(Agulhas) 해류가 인상에 남는다.
중동 지역에서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항을 목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끝을 돌아 나오기 위해서는 아프리카와 마다카스칼섬 사이를 빠져야 한다. 이 해협은 모잠비크 해협이라도고 했다.
출항하면 미리 계산을 하여 도착항의 Agent(대리점), 용선자, 선주에게 각각 ETA(도착 예정시간)을 알려주고, 다음부터는 매일 혹은 일정 간격으로 통보하는데 이는 해상이나 기후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아프리카의 끝 아굴라스에 있는 인도양과 대서양의 경계 표식(왼쪽이 인도양, 오른쪽이 대서양) 빌려온 사진.
캐이프타운(Cape Town)항 도착 하루 전에 보니 ETA(도착 예정시간)이 2~3일 전보다 무려 7시간이 빨라져 있었다. 아굴라스(Agulhas) 해류를 감안하여 계산했는데도 그렇다. 아마도 평소보다 빠랐던 해류를 타고 떠내려 온 것이다.
이 해류 가운데 있는 남아공의 더반(Durban) 외항에 닻을 내리고 정박한 적이 있다. 평상시보다 몇 배 더 길게 닻줄을 놓고서도 당직 항해사들에게 닻 끌림이 없는지 엄중하게 감시하게 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해류의 흐름이 빠를 때면 낚시가 아주 잘 된다는 사실이다. 어류(魚類)는 물의 흐름을 거슬어 올라가는 성질이 있다. 온갖 고기가 올라온다. 모처럼 싱싱한 생선회를 실컷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아니고 여러 날이면 조리장(調理掌)이 슬며시 낚시에 정신없는 내 곁에 다가와 걱정을 한다.
“선장님, 이러다간 고추장이 바닥날 듯 합니다. 구하기도 힘드는데…” 엄살인 줄은 알지만 직책상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4. 소코트라섬 부근의 계절풍과 구로시오[黑潮] 해류
1978년 6월 22일, 선령(船齡)이 20여 년이나 된 3,000톤급의 ‘히로시마마루(宏島丸)’에 승선 때였다. 예비부력을 600여 톤을 남긴 거의 만선(滿船)으로 대서양의 스페인령 라스팔마스항을 출항하여 일본의 토우쿄오(東京)까지 지구를 반 바퀴 도는 장장 47일간의 항해를 시작했다.
지부롤터 해협, 지중해, 스에즈 운하, 홍해를 지나 7월 13일, 위도 15도 부근 ‘아프리카의 뿔’이란 Guardafui곳[岬]을 지나면서부터 차츰 풍향이 남쪽으로 바꾸면서 계절풍으로 인한 대파(大波)가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선체는 Socotra섬 쪽으로 심하게 밀리기만 한다. Main deck(주갑판) 위에 뒤덮여 오는 거대한 해수 덩이는 마치 선체가 잠수함 같다는 느낌이다. 기어이 소코트라섬(Socotra) 동단(東端)을 지나면서부터 제 항로(Course)를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과연 북인도양의 남서 계절풍이 대단하다는 걸 몸으로 느낀다. 소코트라섬은 특이한 모양의 아데니움(석화) 나무와 자연환경으로 유명하지만, 지금 이 해역은 소말리라 해적(海賊)으로 이름난 곳이다. 우리의 청해부대가 파견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Guardafui곶과 소코트라섬
선박 건조(建造) 시에 붙인 주갑판 위를 덮은 두꺼운 나무판자가 쳐 올라오는 파도에 부서져 나가기까지 한다. 무서운 물의 힘이다. 그래도 수백 톤의 물을 뒤집어 쓰고도 거뜬히 떠올라 물덩이를 털어내는 모습이 마치 우직한 황소처럼 믿음직스럽고, 자연의 힘에 비해 인간의 지혜가 뒤떨어지지 않음이 경외스럽기도 하다.
우리나라 동해안에도 이와 같은 무서운 계절풍이 있다. 겨울철 대륙성고기압에 의한 강하고 찬 서북풍이다. 등압선이 남북으로 길게 뻗은 모양일 때인데 풍속과 풍력이 그의 변함이 없이 며칠간씩 지속되는 수도 있다. 초보 항해사 시절 이 황천(荒天)을 경험한 영상은, 대사 카페 「만남의 광장」에 올렸던 “울릉도의 추억–제2부 시련”을 보면 실감 날 것이다.
(다음 링크를 클릭해 보세요. https://cafe.daum.net/DAESA8/ASmG/4332)
광란의 소코트라 해협을 거쳐 스리랑카 남단을 지나 싱가폴 해협을 통과, 일로(一路) 일본열도를 향해 남 · 동 중국해에 들어섰다. 대만을 지날 때는, 이 부근에서 태풍을 만나 필리핀에서 동광석(銅鑛石)을 싣고 일본으로 가는 일정이 10여 일이나 늦은 경우와 처갓집(?) 드나들 듯 즐거웠던 추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여기서부터는 감미로운 FM 음악방송은 물론 가끔은 TV도 볼 수 있는 데다 무엇보다 한국, 우리의 그리운 집이 가까워진다는 데 마음들이 설레기 시작한다. 얼마만인가! 하루가 급하다. 어쩌면 당장이라도 눈앞에 집이, 가족이 나타날 것만 같다.
이곳에서 시작되어 일본열도를 지나는 구로시오[黑潮]가 좀 빨리 밀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기도(祈禱)로 변하지만 도무지 마음 같지가 않다.해는 저물고 빗방울은 떨어지고 소도 고삐를 당기는 데, 오줌은 또 그렇게 마려운 꼴이다.
전체 항로
일본 남쪽 다네가시마(種子島)를 지나자 그제서야 구로시오(黑潮)의 영향을 받는지, 출항 후 처음으로 12놋트를 기록한다. 내일까지만 계속 밀어주면 예정보다 하루는 빨리 동경만(東京灣)에 닻을 내릴 수가 있다. 큐우슈우(九州) 너머로 자꾸만 고개가 돌려지는 것은 제주도와 부산이 이제는 일본 땅에 가려 뵈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는 듯하기 때문이다.
자연(自然)은 인간(人間)이 대결해야 할 상대가 아니고, 세밀하게 관찰하고 대화하고 이해하고 설명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인간의 백 년은 자연현상에 비하면 찰나에 지나지 않고 크기는 먼지와 같다.
너울, 해류, 바람과 비, 더위와 추위 앞에서 인간은 미약하지만 사고(思考)를 통한 지식의 힘은 자연 못지않게 위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자연을 이기려 하기보다는 질문하고 해석하여 더욱 자세하게 알아냄으로써 틈과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것이 과학이며 부력(浮力)이나 무게 중심 등을 계산해 낼 수 있는 힘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수십 만톤의 항공모함이 바다에 뜨고 인공위성이 달에 닿으며 우주를 향해 날아갈 수 있는 것도 모두 과학의 힘이다. 그러나 아직도 인간이 해석하지 못한 자연은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다.
첫댓글 '늑점이'
감동입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대사카페로 인해 '늑점이/서완수' 란 친구를 알게 되어 행운입니다.^^
괴상한 닉의 소유자. 평볌하지 않은 삶을 겪은 싸나이.^^
링크를 따라 갔다가 대사 회원들의 대담에 웃음 짓고
늑점이님의 naver/놀이터에서 병설중학교 졸업생임도 알게 되었네요.ㅎㅎ
참 둔한 바람새입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