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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 기지 둘레길 걷기(이촌동 산책길)
◇ 장교 숙소 5단지 :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일대
- 한국 주택공사가 미국마을로 조성하여 미군 장교들에게 숙소로 임대한 곳
▼ 첫 번째 이야기 - 나들목 안내 라운지에서
용산공원 즉 용산기지는 일제의 의해 만들어졌던 일본군 병영 기지로 40여 년간, 그리고 광복 후 미군기지로 사용되어 70여 년간 금단(禁斷)의 땅이었다. 우리 땅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했던 곳이다.
미군기지 5단지 장교 숙소 주거지는 1986년에 미군으로부터 부지 약 1만 5천평(49,368㎡)을 반환받아 한국 주택공사(LH공사)가 미국인의 설계로 미국 마을로 만들어 미군 장교들에게 숙소로 임대하였다. 그런데 2019년에 미군 장교들이 평택기지로 이전을 함으로써 이곳은 빈 곳으로 남게 되었다.
이후 리모델링을 한 후에 2020년부터 용산기지 공간 중에 처음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2023년 6월에는 용산공원 시범 공개 용지를 용산기지 14번 게이트를 이용하여 개방한 적이 있다.
이곳 5단지 장교 숙소 용지는 용산기지 안의 둔지산(屯之山)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1970년대에 ‘블랙호크 빌리지’ 즉 미군 헬기장으로 사용되다가 미군 장교 숙소로 활용되었던 공간이다.
미군 장교 숙소 용지는 조선시대 때 얼음을 저장하던 서빙고(西氷庫)가 있던 곳으로 조선 초부터 ‘서빙고’로 불렸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도 이 지역의 이름은 용산구 서빙고동이지만 지금은 미군 장교 숙소 용지를 포함해 ‘용산기지’라고 부르고 있다.
이곳은 한강에 인접해 있어서 조선시대 때는 경작지(논)로 활용되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군 병영이 들어오고, 일제의 패망 직후에도 용산에 주둔하기 시작한 미군들은 용산기지라고 부르지 않고, 대신 이 일대의 오랜 역사적 지명인 서빙고를 따서 ‘캠프 서빙고(Camp Sobinggo)’라고 불렀다.
캠프 서빙고는 광복 이후부터 한국전쟁 시기까지 사용되다가 휴전협정 직후 미8군이 용산기지로 이전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용산기지(Yongsan Garrison)’로 다시 부르게 되었다.
우리 정부는 용산공원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 국민들이 먼저 체감하고 용산공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논의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2020년 8월부터 미군 장교 숙소 용지를 국민들에게 개방하였다.
이곳은 연산군 때 서빙고뿐만 아니라 성동구 옥수동에 있었던 동빙고(東氷庫)도 둔지산 자락으로 옮겨져 왔다. 동빙고의 얼음은 왕실의 제사용으로 쓰였고, 서빙고 얼음은 백관들 즉 신하들에게 나눠주는 얼음으로 쓰였다.
▼ 두 번째 이야기 - 새록새록 야외 갤러리 장소에서
새록새록 야외 전시공간은 용산기지의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담고 있는 소중한 사진 전시회를 하고 있다. 용산역 건물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 당시 일본의 건축물들은 메이지유신과 함께 유럽의 건축물들을 그리고 군사 체계들이 모두 함께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전통 건축양식과 함께 섞이게 되면서 각각의 다른 형태의 건물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 용산역도 그중에 하나로 아름다웠는데 6·25전쟁 때 사라지고 말았다.
한국 근현대사의 무수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옛 조선군사령부 일대 전경
이 사진은 용산기지의 118년 역사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사진이다.
1904년 러일전쟁에 이긴 일본은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조인하게 된다. 한일의정서에는 일본군이 군사 목적상 필요한 지점을 마음대로 수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어 용산을 일본군이 차지하게 되었다. 사진 속의 이 건물이 바로 조선 주둔 일본군사령부가 있던 건물이고 수풀 뒤로 보이는 지붕이 조선총독관저이다. 이 건물은 6·25전쟁 때 사라지고, 미군기지가 되면서 121병원으로 만들어졌다가 지금은 평택으로 이전해 빈 곳으로 남아 있다.
▼ 세 번째 이야기-잔디마당(들내봄내), 집담소(도란도란), 파빌리온(두루두루)
이곳은 용산공원의 포토존으로 자유롭게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잔디마당 조성을 위해 10cm 콘크리트를 깔고, 그 위에 잔디를 심었다고 한다.
잔디는 3.5~4cm 유지를 해야 한다는 미군의 규칙이 있었으며, 5단지에는 플라타너스, 단풍나무, 가문비나무 등 여러 종류의 수종이 식수 되어있다.
그리고 5단지 전체 건물들을 보면 벽면에 5,000번대 번호가 쓰여 있다. 용산기지에는 약 1,000여 동의 건물이 있고, 건물에 1,000~8,000번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다. 이곳은 5단지로 5,000번대 번호가 쓰여 있다. 참고로 용산기지 14번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면 7,000번 대의 건물들이 있는데 일명 장군 숙소로 1958년에 조성되었다.
각 집의 현관마다 붙어있는 알파벳 A ~ E까지는 각 호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단층, 복층 세대가 있고, 크기도 45평형 ~ 57평형까지 다양하게 꾸며져 있다. 장교 숙소에는 영관급 장교가 모두 가족 단위로 거주하였다.
* 미국식 소화전의 특이한 점 : 이곳에 있는 소화전은 우리나라 소화전과 다른 점은 미국 소화전의 너트는 5각형으로 되어있지만. 우리나라 소화전은 너트가 4각형으로 되어있다. 소화전의 머리 모양은 소방관의 모자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는 용산기지 안의 모든 소화전이 미국식으로 되어있음을 알 수 있는데 철두철미하게 용산기지는 작은 미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군들이 이국땅에서도 미국처럼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미국식으로 설계되었다.
블랙호크 빌리지, 소풍 장소
이곳은 소풍 장소로 5단지 안에 두 곳이 있다. 1970년대에 블랙호크 헬기장이 있었던 곳이라는 이유로 ‘블랙호크 빌리지’로 불렸던 곳이다.
바비큐 하던 기구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예약제로 운영했다고 한다. 그릴은 공동 사용하는 기구이기에 깨끗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문구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 있는 생활 도구들은 전부 미군들이 사용하고 그대로 두고 간 것을 보존 관리하고 있다.
두루두루, 파빌리온
이곳은 함께 모여 활동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다목적으로 꾸며놓은 야외공간이다.
원래는 주차장이었던 곳을 간이 공연장으로 만들어 창의적인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으로써 <두루두루 (파빌리온)>으로 이름 붙여 놓았다.
* 두루두루는 ‘모두다’, ‘전부다’라는 뜻으로 함께 모여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뜻하고, * 파빌리온은 라틴어로 야유회나 운동회 등에서 사용되는 큰 천막을 의미한다.
▼ 네 번째 이야기 - 오픈 하우스(오손도손)
이곳 오픈 하우스는 실제로 미군 가족이 살던 곳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간이다. 미군들이 생활하고 살았던 숙소시설에 수많은 사람이 용산기지에서의 삶과 기억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전시공간으로 그 당시 생활과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형태로 연출한 공간이다.
1층과 2층으로 꾸며져 있는데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올망졸망 예쁘장하게 꾸며져 있다.
오픈 하우스는 용산기지에 살았던 미군 가족 6가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주택구조는 1층에 주방과 거실이 있고, 주방이 좌우로 개방되어 거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주택과는 다른 형태로 꾸며져 있음을 볼 수 있다.
2층에는 4개의 방이 있고, 1층과 2층에 화장실이 하나씩 있다. 1층 주방은 주한미군부인회에서 기증한 주방가구가 설치되어 있고, 주방 옆 거실에는 용산기지를 거쳐 간 미군 가족이 보낸 SNS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옆방에는 용산기지에서 생활했던 미군 가족의 사진과 동영상도 확인할 수 있다.
2층에는 미8군 사령관을 지냈고, 평택 험프리로 기지 이전을 하는데 핵심 역할을 한 ‘밴달’ 중장의 이야기와 ‘터너’ 가족이야기와 이곳 용산기지에서 서울 아메리칸 고등학교를 졸업한 ‘새미아 마운츠’의 이야기,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용산기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트럼펫 연주자 ‘스캇 포레이’의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다. (1층~2층까지 관람)
이 방은 토마스 밴달과 도린 밴달의 이야기방이다.
토머스 밴달 장군은 가장 최근까지 용산기지에서 생활한 장군으로 전 미8군 사령관, 2018년 10월 췌장암으로 사망하였다. 1982년도 웨이트포인트 졸업생이자 이라크전 참전용사였던 그는 2013년 6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제2보병사단 사단장을 거쳐 2016년 2월부터 2018년 1월까지 미8군 사령관이자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장직을 수행하였다. 그는 용산 미군기지를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 방은 터너 가족 이야기방이다.
제이슨 터너는 1988년부터 1994년까지 아버지를 따라 용산기지에 거주했고, 성인이 된 후 미군으로서 2017년부터 용산기지에서 가족과 생활하다가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했다. 터너 가족에게는 용산기지에서 3대가 거주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 방은 스캇 포레이의 이야기방이다.
스캇 포레이는 1970년대에 군인 직계가족으로 용산기지 내의 초등학교에 다녔고, 그의 아버지는 소령으로 그는 한국에서 트럼펫을 배웠고, 현재는 과테말라에 거주하고 있는데 클럽에서 아버지를 따라 공연할 기회도 얻었다고 한다.
지난날 미8군 클럽에서는 우리가 흔히 ‘8군 쇼’라고 부르는,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밴드공연이 펼쳐졌다. 1950~60년대에 가장 전성기를 이루었고, 당시 우리나라 대중음악계를 풍미한 여러 가수가 ‘8군쇼’ 출신이다. 용산기지는 ‘8군쇼’ 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중앙무대였던 곳이었다.
이 방은 새미아 마운츠의 이야기방이다.
새미아 마운츠는 2000년에 서울 아메리칸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을 떠나서 애리조나 대학에 다녔는데 커리큘럼이 기대에 미치지 않자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서울에서 성우로 활동하다가 보슨톤 컨서버리티 예술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녀는 용산을 포함한 서울을 제1의 고향으로 여길 정도였다.
새미아 마운츠가 쓴 『프렁크 더 스컹크』
이 책은 2008년 새미아 마운츠가 용산기지 내에 있는 서울 아메리칸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10대 소녀로서 성장기를 기반으로 쓴 소설이다. 이 책에는 용산기지의 다양한 물리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기지 내에 있는 사회적인 요소까지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
▼ 마무리 이야기 - 용산의 담장(상징존)
전시된 담장 앞에서
이곳은 헐려진 담장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가 들어온 나들목은 원래 출입구가 아니었고, 원래 출입구는 이 전시 공간 동쪽으로 출입하는 8번 게이트가 있다.
이 전시물은 나들목을 만들면서 철거한 벽돌 담장의 일부를 전시하여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리고 앞으로 어떤 변화를 모색해 나갈 건지를 생각하게 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오랜 시간 외국군의 주둔지로써 우리 국민이 들어가 볼 수 없었던 118년의 금단(禁斷)의 땅이었던 곳의 첫 담장을 허물었다는 그 의미를 담고 있다.
◇ 용산가족공원 :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일대
- 1992년 서울시가 주한미군사령부 골프장을 공원으로 조성하여 개장
용산가족공원은 임진왜란(1592~1598년) 때 왜군이 병참기지(兵站基地)로 사용하였고, 임오군란 1882년 때는 청나라군사가 점유하였으며, 갑신정변(1884년)과 러일전쟁(1904년) 그리고 1906년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 일본인들이 군사 시설 및 거주지 등으로 사용하였다. 6·25전쟁 때는 UN군과 주한미군사령부가 설치되었다.
8.15광복 이후에 주한미군사령부의 골프장으로 쓰이던 부지 29만 7,520㎡(약 9만 평)를 1992년 11월, 서울시에서 공원으로 조성하여 문을 열었다. 1997년 11월 15일, 국립중앙박물관 건립 계획에 따라 규모가 8만 9,256㎡(약 2만 7천평)으로 줄어들었고,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이곳의 골프장의 잔디와 숲, 연못 등은 그대로 두고 4.6km의 산책로와 건강달리기 코스, 느티나무, 산사나무, 구상나무 등 80종 1만 5,000그루의 나무와 원두막을 갖춘 자연학습장, 태극기공원, 잔디광장 등을 새로 마련하였다. 공원 안에서 비둘기, 호로새, 야생 꿩, 청둥오리, 흰 뺨 청둥오리, 거위 등이 서식한다.
이 공원은 1년 내내 24시간 무료로 문을 열며, 주변에 남산공원, 한강시민공원 이촌지구, 전쟁기념관 등의 관광지가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 : 용산구 용산동6가 168-6
- 미르폭포와 고려시대, 조선시대 국보 및 보물급 탑들을 전시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는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국보 및 보물급 석탑(石塔) 그리고 승묘탑(僧妙塔)·현기탑비·석등·석조불입상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열린 마당
열린 마당은 거울 못을 돌아 국립중앙박물관 건물 앞에 서면 제일 먼저 마주하게 되는 곳으로 한국 전통 가옥에서의 ‘마루’의 의미를 이곳에 담았다.
미르폭포
미르’는 용(龍)을 뜻하는 옛말로 박물관이 위치한 용산이라는 지명에서 비롯되었다.
'미르폭포', '미르못', '미르다리'가 있는 박물관 정원은 우리의 전통조경을 엿볼 수 있도록 꾸민 공간이다.
배롱나무 못
동쪽의 '미르폭포'에서 흘러나온 물은 '미르못'을 거쳐, 이곳 배롱나무 못에 이른다. 옆에 있는 다리는 '나들다리'이다.
석조물 정원
석조물 정원은 돌로 만든 전시물을 한데 모은 야외전시장이다.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만들어진 석탑과 석불 등을 서로 비교하면서 감상할 수 있다.
거울못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의 모습이 커다란 못에 비치게 된 데서 거울못이라고 한다. 거울못은 산과 물의 조화를 강조하여 꾸미는 우리나라 전통의 정원 원리를 반영하여 만들었다.
전통염료 식물원
우리 조상들은 다양한 종류의 식물에서 아름다운 채색의 원료를 얻었다. 전통염료식물원에서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여러 가지 염료식물을 한자리에 모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청자정
국립중앙박물관 전면의 거울못 반도 지에 있는 청자정(靑瓷亭)은 2009년에 건립되었으며,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상징물이다. 청자정으로 가는 산책로에 작은 목조다리를 놓아 운치를 더하였다.
모란못
모란못은 박물관 뒤편에 자리 잡은 고궁의 정원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붙여진 말이다. 거울못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정겨움을 느낄 수 있으며 네모난 연못엔 연꽃이 있고 주변에 낮은 기와 담장을 두른 모습은 한국의 전통적인 정원을 체험하게 한다.
◇ 국립한글박물관 : 용산구 서빙고로 139
- 한글 및 한글문화 관련 유물과 자료를 보관, 전시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 및 한글문화 관련 유물과 자료의 수집·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 및 교류 등 한글문화의 보존, 확산 및 진흥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2014년 2월 17일 발족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9일에 개관했다.
1층에는 한글도서관이 있다. 대부분의 분야를 취급하지만 한글박물관 내에 있는 도서관인 만큼 한글 관련 자료가 가장 주축을 이루고 있다.
2층에 있는 상설전시관에서는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 이두와 향찰을 쓰던 시절부터, 한글 전산화와 글꼴에 대한 논의가 있던 20~21세기 초반까지의 시기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한글이 국문으로 지정되기부터 일제에 의해 조선어로 지위가 격하된 것, 한글을 지키기 위한 여러 사람의 노력에 관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해방 이후 한글 전산화 과정에서 발명된 송기주의 네벌식 및 공병우의 세벌식 타자기, 그리고 현대에서 사용되는 글꼴에 관한 이야기까지 있다.
이 박물관은 2021년 4월 5일~2022년 1월 20일까지 상설전시관 개편공사를 진행하였고, 1월 21부로 재개장되었다. 재개장한 상설전시는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 계획>으로 전시장은 『훈민정음』을 바탕으로 한글의 역사를 풀어낼 수 있도록 기획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한 다양한 문화재급 소장 자료와 관 내외에서 새롭게 발견된 한글 자료들이 소개된다.
이 밖에도 조선의 22대 왕 정조가 쓴 한글 편지를 모아 놓은 정조의 한글 어찰 첩과 양반 송규렴이 노비 기축 이에게 쓴 한글 편지, 과부 정씨가 어사또에게 올린 한글 청원문, 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가의 한글 자료, 일제강점기의 발명가 최윤선이 한글 교육을 위해 만든 조선어 철자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유물들이 소개되어 있다. 3층에서는 기획전시회가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