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레 가티 &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 - 둘째 날
2017/11/16 목 20:00
롯데콘서트홀
바이얼린, 프랑크 페터 짐머만 Frank Peter Zimmermann
기돈 크레머&데이빗 진먼/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길샤함&마리스얀손스/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김수연&성시연/경기필에 이어 베토벤의 바이얼린 협주곡을 실연으로 들은 것이 이번이 네 번째. (아내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ㄷㄷㄷ)
프랑크 페터 짐머만은 살짝 불안하게 출발한 1악장 초반을 제외하면 곡 전반을 통해 안정적인 리드를 보여주는데 이는 강렬한 카리스마가 아닌 특유의 자신감과 오케스트라와 대화하고자 하는 자세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연주 중 오케스트라와 주고받는 부분이 나오면 수시로 몸을 돌려 단원들과 눈빛을 교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과시하는 스타일이 아닌 그가 선택한 앵콜곡은 예상대로 바흐의 바이얼린 소나타. 짐머만은 현재 뒤셀도르프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미술전시관이 후원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1711년산 레이디 인치퀸을 사용하고 있다.
2부 브람스 교향곡 1번. 강하면서도 도도하게 흐르는 총주와 함께 52번의 팀파니 연타로 시작하는, 다소 충격적인 도입부에 매료되어 평소에도 자주 듣는 곡이다. (그러고 보니 1부의 베바협도 4번의 약한 팀파니 연타로 시작되는구나. 묘한 우연 ㅎㅎ) 그래서 기대가 컸던 만큼 많이 아쉬운 연주였다. 뻔한 해석은 들려주지 않겠다는 의지는 알 수 있었지만 이렇게 곡 전체에 걸쳐 뚝 뚝 끊어지는 느낌의 브람스는 처음이었다. 무거운 베낭을 메고 산을 오르는데 누군가가 베낭을 살짝 살짝 당기는 듯한 답답함이랄까(조금만 더 그랬으면 짜증이 났을 ㅋㅋ). 브람스의 교향곡들은 모두 물흐르는 듯 유려하고 자연스럽지만 그 안에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을 포함하고 있어 듣고 나면 경외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전개에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이 만족스럽지 않으니 곡이 끝나고도 쉽게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 (연주가 끝나면 단원들이 무대 위에서 포옹과 악수를 통해 서로를 격려하며 헤어지듯 우리 부부도 악수를 하는데 어젠 몰려오는 아쉬움에 그조차 깜빡할 정도였으니... ㅠ)
사족1, 이제야 베토벤 바이얼린 협주곡을, 특히 2악장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뜸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보다.
사족2, 가티께서는 왜 그렇게 말이 많고 목소리가 크신지… 아재 인증? 중요한 부분에서 예외없이 기합을 넣으시는 바람에 약간 짜증. 드레스 리허설도 아니고… 자기 기분만 중요한가? ㅠ
사족3, 역시 이번에도 절실하게 느낀 것이지만 음악은, 특히 독주 악기 협연이 있는 경우 무조건 무대 정면에서 관람해야 한다. 첫째 날 합창석에 이어 둘째 날엔 사이드 좌석이었는데 짐머만이 몸을 돌려 악기가 보일 때와 악기가 보이지 않을 때 확연한 음색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악기음의 직진성을 무시한 좌석 선택이 패착=티켓가격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
프로그램
베토벤, 바이얼린 협주곡 (프랑크 페터 머만)
브람스, 교향곡 1번
첫댓글 브리앙님 후기 넘 잘 쓰시는거 아닙니까? ㅋㅋ 브람스 교향곡 1번에서 가티는 전체적인 흐름보단 디테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살짝 쉬어 가더라도 한 프레이즈 내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그림을 더 정확하게 표현해주길 바란달까요? 프레이즈 마다 살짝 살짝 끊어지는 면이 있긴 했지만 그날 브람스는 그래도 힘이 느껴지는 브람스였단 생각이 듭니다. 4악장에선 기승전결을 뚜렷하게 만들어내면서 전체 발란스도 잘 맞춰 마지막 부분에서 방점을 잘 찍었단 생각이 들어 저는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브람스는 들을 수록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길고 우아한 선율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늘어지고 빠른 전개에 초점을 맞추면 선율은 뭉게지고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고요. 현악과 목관의 조화가 안 이루어지면 브람스 교향곡처럼 듣기 힘든 곡도 없다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우아한 선율이 모여 치밀하게 직조된 구조까지 연주해 주는 브람스를 경험하는게 진짜 쉽지는 않은 거 같아요. 그래도 어쨌든 가티는 무기력한 브람스는 아니였고 나름대로 힘있는 브람스를 들려 주었다는 생각은 듭니다. 멋진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