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볼버는 실린더의 회전을 이용한 연발 권총이다.
사진은 대한민국 경찰의 공식 권총이던 S&W 모델10 리볼버.
‘총’이라는 놀라운 물건이 등장하고 나서 무기의 주류는 바뀌었다. 그러나 당시 총이라는 것은 장약을 넣은 다음 탄환을 넣고 발사하는 전장식 화기여서 재장전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결국 장전하는 동안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한 번에 여러 발을 발사할 수 있는 총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처음 등장한 해결책이 총열을 늘리는 것이었다. 총열이 2개 이상으로 늘어나면 2번 이상 장전하지 않고도 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리하여 한꺼번에 여러 발의 총알을 쏘는 덕풋(duck foot, 오리발) 피스톨과 같은 물건이 등장하기도 했다.
장전 없이 여러 발을 사격할 수 있는 총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리볼버가 탄생했다.
사진은 덕풋 피스톨(위)과 페퍼박스 권총(아래)이다.
돌려야 산다? – 돌려서 계속 쏘자는 발상
한편 탄환과 장약을 미리 장전해놓았다가 필요에 따라 돌려가며 쏜다는 개념, 즉 리볼버도 이런 개발의 와중에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페퍼박스’ 총이었다. 페퍼박스 총은 총열 자체가 회전하면서 탄환을 발사하는 방식으로 리볼버의 효시가 되었다. 그러나 이 페퍼박스 총은 초기에는 방아쇠를 발사한 이후에 손으로 총열을 돌려야만 했다. 그러던 것이 장전쇠를 돌리면 총열이 돌아가는 싱글액션 기구가 발명되고, 방아쇠를 당기면 총열도 같이 돌아가는 더블액션 기구까지 발명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총열을 1개로 줄여서 무게를 줄이고, 장약과 탄환이 장전된 약실을 원통형으로 만들어 회전시키는 설계가 등장했다. 이것이 바로 과도기형 리볼버(Transition Revolver)로 리볼버의 직접적인 조상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전에서 쓸 만한 리볼버는 19세기가 되어서야 등장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새뮤얼 콜트가 1836년 내놓은 콜트 패터슨 리볼버였다. 콜트 패터슨 리볼버는 퍼커션 캡, 즉 뇌관방식을 채용한 권총으로 최초에는 5연발로 발매되었다. 아직은 탄피가 개발되기 전의 시대인지라 여전히 전장식으로, 원통형 약실에 탄환, 장약, 뇌관을 미리 장전해놓고 발사하는 방식이었다. 즉 원통형 약실 자체가 탄피로서 역할을 한 것으로 재장전을 위해서는 총의 일부분을 분해해야만 했다. 콜트 패터슨 리볼버의 또 다른 특징은 방아쇠가 총몸에 숨겨져 있다가 장전되면 발사준비가 되는 구조라는 점이다. 드디어 쓸 만한 연발총기가 등장했지만 콜트 패터슨은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콜트는 약 4년의 기간 동안 5천 정도 못 되는 리볼버 권총과 소총 등을 생산하고는 도산해버렸다.
콜트 패터슨 리볼버(사진 위)의 등장으로 리볼버의 시대를 개막했고,
콜트 워커 리볼버(사진 아래)는 리볼버를 군용 총기로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콜트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했다. 1844년 텍사스 레인저 대원 14명이 80여 명의 코만치 인디언과 교전을 하여 그 절반을 사살하거나 부상시켰다. 바로 이때 레인저 대원들이 사용하던 것이 바로 콜트 패터슨 리볼버였다. 이를 계기로 콜트 리볼버는 다시 부활했다. 특히 텍사스 레인저 출신의 새뮤얼 워커 대위의 의뢰에 따라 미 육군을 위한 새로운 리볼버가 개발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워커 모델 1847 콜트 리볼버(약칭 ‘콜트 워커’)였다.
리볼버의 시대가 열리다
콜트 패터슨의 0.36인치 구경 탄환 대신에 콜트 워커는 0.44인치 탄환을 6발 장탄하여 파괴력을 높였고, 총열을 9인치로 늘려 명중률도 향상시켰다. 콜트 워커 리볼버는 1847년 멕시코 전쟁에서 커다란 활약을 한 이후, 여러 가지 변형들이 미군에 의해 채용되었다. 또한 서부개척이 시작되면서 많은 민간인들이 콜트의 리볼버를 사갔다. 콜트의 명성은 유럽에도 알려져 런던에 콜트사에 공장이 생기기도 하는 등 리볼버의 전성시대를 콜트가 열어갔다.
이렇게 연발총기로서 놀라운 성공을 거둔 리볼버는 전술까지도 바꾸어놓았다. 전투의 첨병인 기병대는 세이버(기병도)와 기병총을 사용했지만 총기의 화력은 보잘것없었다. 오죽하면 남북전쟁의 명장 로버트 리 장군의 아버지이자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이었던 헨리 리 장군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기병대의 화력은 기껏해야 순진한 수준이다.” 그러나 연발 발사가 가능한 리볼버가 기병대의 총기로 채용되면서, “순진”했던 화력은 “잔인”할 정도로 향상되었다.
리볼버의 등장으로 기병대는 세이버에 의존한 단순한 돌격을 탈피하여
유효한 화력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일례가 미스켈 농장 총격전이다. 1863년 4월 남군의 존 모스비 대위가 이끌던 69명의 레인저가 150명 병력의 북군 기병대에게 매복을 당했다. 세이버를 휘두르며 과감하게 돌진하던 북군 기병대는 말에 타고 있던 남군 레인저가 쏟아내는 리볼버 권총탄 세례에 무릎을 꿇었다. 교전결과 북군은 9명 전사, 15명 부상에 82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남군은 전사 1명, 부상 3명에 그쳤을 뿐이다. 북군은 세이버 돌진이라는 구식 전술에 의존했던 반면, 남군 레인저는 리볼버 2정을 항시 휴대하면서 마상 사격을 통하여 화력과 기동성을 확보하면서 절대 다수의 적을 제압할 수 있었다.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다
한편 리볼버는 탄피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더욱 현실적인 총기로 거듭났다. 1857년 스미스 앤 웨슨(Smith & Wesson 이하 S&W)이 탄피를 사용하는 최초의 리볼버인 모델1을 발매했고, 1873년에는 드디어 콜트의 탄피형 리볼버인 싱글액션아미 모델이 나오면서 뇌관식 리볼버의 시대는 끝나게 되었다. 이렇게 현대적인 리볼버가 등장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었다. 바로 어떻게 장전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탄피형 리볼버 시대를 개막한 스미스 앤 웨슨 사는 모델1 리볼버.
리볼버의 전설이된 콜드 싱글액션아미(Colt Single Action Army)
<출처: (cc) Hmaag at Wikimedia.org>
가장 많은 인기를 끌었던 콜트 싱글액션아미의 경우에는 고정 실린더방식을 채용했다. 아예 생산할 때부터 실린더, 즉 원통형 약실을 총몸에 고정시켜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고정실린더 방식은 45구경탄 같은 강력한 탄환을 발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탄환을 한 발씩 넣어야만 하기에 재장전이 엄청 느리다는 단점이 있었다.
한편 실린더가 고정되지 않는 설계방식의 리볼버도 등장했다. 총기의 가운데를 꺾어서 실린더를 개방하는 중절식(Top Break) 리볼버가 등장했다. 중절식 리볼버는 고정실린더 방식에 비하여 매우 빠르게 장전할 수 있었다. 특히 스피드로더나 문클립을 사용하면 재장전에 5초도 걸리지 않았다. 다만 총몸이 꺾이는 설계방식이라서 구조적으로 취약했기에 강력한 탄환을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대표적인 중절식 리볼버로는 영국의 웨블리 리볼버와 S&W 모델3 리볼버를 들 수 있다. 특히 S&W 모델3는 전설의 총잡이 와이어트 어프가 OK목장의 결투에서 사용했던 총으로 유명하다.
리볼버의 재장전 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중절식 리볼버(사진 왼쪽)가 등장했고,
이후 스윙아웃 실린더 리볼버(사진 오른쪽)가 주류가 되었다.
리볼버를 장전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해답은 바로 스윙아웃(Swing-out) 실린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실린더를 측면으로 열리게 하여 빠른 재장전이 가능했고, 힌지를 사용하여 총몸의 강성을 유지함으로써 강력한 탄환도 발사할 수 있어 중절식 리볼버의 단점을 극복하였다. 그리하여 콜트사의 M1889 리볼버를 기점으로 이후의 수많은 리볼버들이 스윙아웃 실린더를 채용하였으며, 현재까지도 리볼버 장전방식의 표준이 되고 있다. 이렇게 불과 4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리볼버는 발전을 거듭하면서 현대적인 총기로 성장했다.
리볼보의 약실이 손쉽게 개방되면서 문클립(왼쪽)과
스피드로더(오른쪽)를 사용하여 빠른 재장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리볼버 vs 자동권총
이렇게 연발권총의 시대를 개막한 리볼버였지만 20세기 초에 이르면서 강력한 적수를 만났다. 바로 자동권총이었다. 발사 반동 등 여러 가지 원리로 작동하는 자동권총은 초기에는 신뢰성이 문제가 있었지만 진화를 거듭했다. 한편 리볼버는 더블액션과 스윙아웃 실린더의 채용 이후에는 뚜렷한 발전이 없었다. .45 콜트나 .38 스페셜과 같은 탄환들이 사용되면서 살상력이 높아졌고, 20세기 초기의 방탄조끼를 격파하기 위하여 1930년대에 357 매그넘 탄환이 등장한 정도였다. 결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리볼버는 M1911A 거버먼트 모델이나 P-38 발터, P-35 하이파워 등 자동권총에게 군용권총의 일선을 빼앗기게 되었다.
1950년대부터는 44매그넘과 같은 강력한 리볼버가 등장하여 인기를 끌기도 했다.
사진은 영화 [더티 해리]의 포스터.
물론 S&W 모델10 “밀리터리 & 폴리스”와 같은 명총은 오랜 기간 군용 및 경찰총기로서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또한 소위 스너비(Snubby)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소형 리볼버들이 사복경찰관이나 스파이들에게 애용되기도 했다. 한편 1955년에는 S&W에서 44 매그넘 탄환을 사용하는 모델 29를 발매했으며, 이것이 영화 [더티 해리 Dirty Harry]에서 캘러한 경위가 사용하던 44 매그넘 리볼버였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로 리볼버는 미국이나 유럽 등 경찰시장에서도 뚜렷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게다가 1986년 발생한 마이애미 총격전으로 인하여 은행강도 2명에서 FBI요원 8명이 압도당하고 2명의 사망자까지 내게 되자, 리볼버는 경찰용 총기로서 입지를 크게 상실했다. 리볼버는 보통 6발의 장탄수에 불과했지만, 자동권총은 복열(double column)탄창을 채용하여 한 탄창에 15발 정도 휴대가 가능해져 그 인기는 더욱 높아져만 갔다. 결국 콜트사는 1999년 이후로는 수집가들이 찾는 ‘전설의 명기’ 콜트 싱글액션아미를 제외하고는 리볼버를 생산하지 않게 되었고, 현재는 미국의 S&W, 스텀루거, 브라질의 토러스 등이 대표적인 리볼버 제작사로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리볼버가 설 자리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자동권총이 대체할 수 없는 리볼버만의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리볼버는 탄환을 장전한 상태로 오랜 기간 놓아두어도 된다. 자동권총의 경우 장전한 상태로 발사하지 않고 오랜 기간 놓아두면 탄창의 스프링 압력이 줄어들어 차탄 공급이 안 되는 등 작동상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리볼버는 약실에 탄환을 넣어둔 채로 몇 개월이 지나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더블액션의 묵직한 방아쇠 압력으로 인하여 오발의 위험도 적은 편이다. 공포탄을 발사하면 다음 탄환 장전이 안 될 수도 있는 자동권총과는 달리, 리볼버는 탄환의 문제로 발사가 되지 않더라도 방아쇠만 당기면 다음 탄환을 발사할 수 있어 언제나 믿고 사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실제로는 총기를 발사할 일이 많지 않은 이들에게 리볼버는 이상적인 총기이다.
사진은 대한민국 경찰의 새 공식 권총 S&W 모델60.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실제로는 총기를 발사할 일이 많지 않은 이들에게 리볼버는 이상적인 총기이다. 가장 대표적인 직업군이 경찰이다. 근무시간 내내 총격전에 시달리는 영화 속의 경찰관과는 달리 실제 경찰관들 가운데 훈련을 제외하면 근무 중에 총을 쏴본 사람은 드물다. 미국에서도 3%에 불과할 정도라니, 우리나라 등 경찰의 총기 사용이 드문 나라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이유로 총기를 준비된 상태로 오래 보관해야만 하는 이들에게 리볼버는 여전히 매력적인 총기이다. 현재 우리나라 경찰은 S&W 모델 10 4인치 모델을 사용하다, 더욱 경량화된 S&W M60 3인치 모델로 교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