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부, 즉 아라벨라 슈타인바허가 독주를 맡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뜻도 된다. 아무튼 딱히 흠 잡을 데는 없는 연주였으니 실망하지는 않지만.
나로서는 멘델스존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데다
오래 전 아슈케나지가 체코 필을 이끌고 내한했을 때 우리나라 바이올리니스트가
이 곡을 제대로 망쳐준 이후로는 누가 연주해도 그보다는 나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름은 밝히지 않겠지만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체코 필 단원들이 일제히 짓던 그 빛나는 썩소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그리고, 후반부의 말러 공연(함부르크 버전)은...
솔직히 말해 완벽한 공연은 아니었다. 아니, 퍽 설익은 연주였다.
그런데 그 설익은 연주가 그 설익은 버전에 그토록 기막히게 맞아떨어질 줄이야!
연주가 끝난 뒤 지인들에게 말했듯이, 의욕과잉의 해석이 의욕과잉의 버전을 120% 살려냈다.
만약 샤이나 얀손스 같은 지휘자가 이 버전을 지휘했다면(물론 하지 않겠지만)
그들은 자신들만의 밸런스 감각이며 기타 다른 기교를 총동원해 이 버전을 최대한 세련되게 연주했을 것이다.
헹엘브로크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규 버전과의 차이를 아주 극명하게, 대단히 과장되게 표현했다.
팀파니 주자가 연주할 때마다 키득거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공연이 끝난 뒤 기립박수를, 그것도 잘 하지 않는 '브라비시모!'까지 외쳐가면서
(일부 단원들이 날 보고 웃었다... 하하;;;) 오바질을 한 것은
이 '의욕과잉'의 버전에 대한 '의욕과잉'의 해석에 대한 '의욕과잉'의 찬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밭에서 방금 따온 싱싱한 푸성귀로 만든 샐러드를 한 상 거하게 먹은 느낌이랄까.
여기에 비하자면 정규 버전은 말하자면 비빔밥이다. 잘 익힌 나물들로 만든.
물론 이 쪽이 맛의 조화로움이라는 면에서, 그리고 요리의 완성도라는 면에서 훨씬 고급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처럼 각 푸성귀의 맛은 입에서 따로 놀지만 어쨌든 대단히 싱싱한 샐러드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비록 제대로 씻지 않아서 흙이 씹히기는 하지만,
그리고 어쩌면 배추흰나비 알 같은 것도 붙어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맛있었으니 됐지 뭐.
그리고 베어 그릴스 말을 빌자면 배추흰나비 알도 충분히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처럼 근래 재미있는, 아니 웃기는 공연을 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올해 안에는 다시 못 보리라는 것만은 확신한다.
첫댓글 오~ 내가 첫 개시네? ㅎㅎ
담주에 이 공연 방송되는데 브라비시모 외치는 황진규 방송타겠네. 혹시 그걸 노린 건? ㅋㅋ
배추흰나비는 초딩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단어로군.ㅎㅎ 흥미로웠던 공연이라는 자네 말을 방송으로 확인해보는 수밖에...ㅋㅋ
아마 자네 마음엔 안 들 걸? ㅋ
이히힛 초대에바악~~~~ 후기네여. 저도 삘 받아서 다른 버전의 다양한 비유둘을 생각해 봤는데 시간되면 정리해서 올릴게여. 저는 도랸님처럼 간결하게 의사 표현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글만쓰면 <고도를 기다리며>의 럭키의 대사처럼 되버리는데 도랸님의 간결하면서도 촌철살인한 리뷰에 무릎을 탁! 치지 않을수 없네여 ㅋㅋㅋ 잘보고 갑니당 ^^
참! 그리고 도랸님은 "근래에"라고 하셨는데 저는 공연가서 아이고 재미지다~ 라며 낄낄깔깔 신나서 웃으며 본 공연은 15년 클덕 인생에 첨있는 일이네요. 이전에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다시 오기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ㅋㅋㅋㅋㅋ
그니까... 이 친구들이 카메라 들이대니까 다큐를 예능으로 받아쳤다는 뜻이로군요? ㅋㅋ
퀴니님의 알찬 후기 기다리겠습니다.^^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말러음악이 다듬지 않은 원석이나 길들지 않은 야생마같은 느낌이 다분하죠... 아바도나 샤이는 그걸 잘 다듬고 정제해서 세련된 혹은 담백한 말러로 만든거구요. 아마도 어제 공연은 가공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말러였나 봅니다
버전 자체가 덜 다듬어진 것이었어요^^
아하 그렇군요
저는 좋았습니다
기대안하고 갔는데
그 이상이었습니다
브리앙님 도리안님 연주전후로 만나뵙게 되어서 반가왔습니다
연주끝나고 난 뒤 브람스님 그리고 칼라스님 그리고 크리스님과 사랑이 내게님 그리고 다른 분들도 반가왔습니다
봄왈츠님께서 무척 반겨주셔서 저도 2배로 반가웠어요.^^
안녕하세요 봄왈츠님.
처음 뵈었는데 고개까지 숙여주시며 겸손하게 인사받아주시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은근하게 멋 풍기는 분 좋아하는데 봄왈츠님께 그런걸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예당에서 뵈면 인사드리겠습니다.
절제미와 세련미를 중시하는 분들에겐 다소 부담스럽고 과격한 연주였을지 모르겠지만, 제대로된 말러1번을 접해보지 못한 저에겐 굉장히 만족스러운 공연이었습니다. 블루미네 악장도 신선했고 목관과 금관군의 탁월함이 정말 좋았습니다. 공연 보기 전 방전 직전이었는데 충전 백퍼센트 하고 돌아왔답니다. ^^
디디님,인터미션 때는 기운없는 목소리셨는데,말러 끝나고 나오셔서는 신나하셨죠?ㅎ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ㅎㅎㅎ
이 글 참 재미있네요~
도데체 어땠길래??? 라는 호기심도 갖게 만들고 오빠의 의욕과잉 찬사의 보복(?)도 재치만점이에요~
그나마 1번이어서.. 날것이어도 좋았을거 같네요~ 의욕과잉의 4악장 도입부를 들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