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사유] <6-82>
'예쁘다'의 어원 ‘예쁘다’의 중세 국어(中世國語, 고려가 건립된 10세기 초부터 임진왜란이 발생한 16세기 말까지의 국어) 어형은 ‘어엿브다’라고 합니다. ‘어엿브다’는 중세 국어에서 ‘불쌍하다(憐)’라는 뜻을 가졌는데, 근대 국어( 近代國語,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 초부터 19세기 말 갑오개혁 이전까지의 국어)에 와서는 ‘불쌍하다 · 가엽다’와 ‘예쁘다 · 사랑스럽다’라는 두 가지 뜻으로 사용하다가, 현대 국어에서는 ‘아름답다(미려美麗)’의 의미로만 쓰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엿브다’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어여쁘다’를 줄인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어엿브다’라는 말이 ‘예쁘다’로 바뀌었고, 뜻도 ‘불쌍하다’와는 관계가 멀어졌습니다. 그렇다보니 예쁘다는 말은 ‘아름답다’와는 다른 느낌의 단어입니다. 예쁘다의 느낌을 생각할 때 옛 의미를 떠올려 보면, 가엽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가엽게 생각한다는 말은 보호하고 싶다, 돕고 싶다, 돌보고 싶다는 말과 일맥 상통합니다. 보통 아기를 예쁘다고 하는 것은 그런 느낌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할머니들께서 아기들에게 ‘아이고 가여워라!’라는 표현을 하는 것을 보고 들었을 것입니다. 뭐가 가엽다는 것일까? ‘예쁘다’의 어원을 알고 나서는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아기가 우는 모습을 보고, 아기들이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빨리 뛰고 싶지만 할 수 없고,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는 모습이 재미있으면서도 안타깝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감정들이 '예쁘다'의 느낌이지 않았을까요? 바라만 보아도 좋은데 혹시 다치지는 않을까?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하는 마음도 함께 들어있는 감정일 것입니다.
‘어엿비 여기다’라는 말은 훈민정음에 나오는 말입니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왜 창제하였는지 설명하면서 '어리석은 백성을 어엿비 여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엿비’라는 말은 당시에는 불쌍하다, 가엽다 정도의 의미로 쓰였던 말입니다. 따라서 백성을 불쌍하고 가엽게 생각해서 한글을 만드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를 애민(愛民) 정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중생을 어여삐(어엿비 여기사~" 불경에 서도 자주 나오는 말씀입니다. 아기를 불쌍하게 여기고 가엽게 생각하는 할머니의 마음과 같은 불보살님들이 가지고 계신 자비심은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아름답다는 어떤 뜻일까요? 아름답다'라는 말의 어원을 찾아보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아름'이란 말에 '답다'라는 접미사를 붙여 쓰는 것이니 말의 핵심은 '아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답다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째는, 아름은 알다(지,知) '알음'으로부터 나왔다고 하기도 하고, 둘째, 두 팔 벌려 안는다는 아름(포,抱)으로부터 생겼다고도 하며 셋째, 석보상절(釋譜詳節)에는 '아름답다'를 '아답다'라고 하며 나아(我)를 썼으니, '아름답다'는 결국 '나답다 · 나다운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또, 수행(修行)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아름답다는 '알움답다'로 쓰기도 했다는데, 그 뜻은 '알을 깨고 움(싹)이 튼다 · 속에 있는 타고난 씨앗을 스스로 싹 틔운다''는 말로 풀이되면서 참된 나를 발견하는 깨달음의 시초가 되는 말이라고도 합니다.
그렇게 볼 때 "아름다움의 본질"은 아는 것일 수도 있고, 안아주고자 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자신의 속에 들어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고 자기답게 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종합해 보았을 때 "아름답다"는 말은 세상의 진리를 알고 모든 중생을 사랑하며(껴안고) 지금 모습 그대로 현실에 충실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아름다움의 뜻이라 생각해 봅니다. 예쁘고 아름답다는 세속의 표현은 수시로 변하고 영원하지도 않은 무상한 물질에 대한 홍복을 찬미의 단어라면, 불가에서 예쁘고 아름답다는 표현은 세세생생 변치 않는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중생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자비심과 깨달음을 얻겠다는 보리심의 깊은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불상을 보고 우리는 아름답다고 예쁘다보다는 아름답다고 말을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생물과도 다른 부처라는 존재의 철학적 의미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오랜 수행의 과정을 거쳐 깨달음을 얻은 여래임을 중생들에게 확신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해 상징적인 모습, 인간과 구별되는 32가지 좋은 상호와 80가지 외적 특징을 32상 80종호라 합니다.
육안으로 보이는 외형상의 '예쁨'과 '아름다움'은 홍복이라 할 수 있고,
심안으로 보는 깊은 마음의 예쁨과 아름다움은 청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밖으로 보이며 영원하지도 않은 얼굴을 성형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마음을 성형해야 할 것이라고 사유해 봅니다.
2565. 8. 27 종진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