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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도 고난주간 설교 7편
[고난주간 새벽기도회] 월요일
예수님께 올인하자 (요 12:1-8)
이 시간에는 “예수님께 올인하자”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올인(All-In)이라는 말은 요즘 유행하는 “모든 것을 다 건다.”라는 뜻입니다. 어떤 것에 나의 모든 것을 다 거는 것을 올인이라고 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을 건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베다니에 사는 마리아였습니다.
1. 주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1절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쪽 4km지점 나병병자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사회에서 격리된 세상에서 버림받은 곳이었습니다. 그런 비천한 곳에 예수님께서 손수 찾아오실 뿐 아니라 죽어가는 시몬을 나병에서 살려주시고 또 죽어 냄새난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려주셨으니 그 은혜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래서 시몬의 집에 함께 모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처럼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할 우리들을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 아니라 나를 살리시고 의롭게 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시기 위해서 다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주를 위해 살 수 있습니다.
2. 위험을 무릅썼습니다.
2절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시몬의 집에서 여럿이 모여 잔치했는데 이 만찬은 예수를 위한 잔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앞 절 요11:57을 보면 당시 상황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라는 포고령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잡아서 처단하고자 혈안이 되어 눈을 부릅뜨고 찾아다니던 서슬 퍼런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예수를 숨겨주거나 동조하면 죽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마련했다는 것은 목숨 걸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진정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받았다면 어떤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신앙에 온전히 올인하시기 바랍니다.
3. 예수를 위해 아깝지 않았습니다.
3절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은 ‘나드(Nard)’향유는 귀하고 비싸서 왕과 같은 고귀한 신분에 바쳐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나드 한 근은 약 348g 정도이고, 약 삼백 데나리온, 즉 약 300일의 품삯에 해당하는 값비싼 것이었습니다. 이 나드향은 신부가 신혼 초야를 위해 일생 준비한 것이라 하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마리아는 자기의 모든 것까지 헌신하는 것으로 아깝지 않았습니다.
4. 예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다시 3절에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당시 만찬의 절정에 주빈에게 향유를 부음으로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은 유대의 전통적 관습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그 향유의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난 다음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는데 머리털은 자존심과 아름다움을 뜻하며 여자로써 생명과 같이 귀한 것입니다.
그러자 마26:13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의 모범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후5:15에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그 은혜를 진실로 감사하면서 보답하는 마음으로 마리아처럼 예수를 위해 온전히 살아가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난주간 새벽기도회] 화요일
세상 끝 날까지 (요 13:1-11)
마지막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살아온 삶의 평가를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시작은 물론 끝까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1. 그 모습은 사랑입니다.
1절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왔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인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모습일 뿐 아니라 우리는 여기서 세상 끝 날까지 세상을 살아가는 비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일4:12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했고, 16절에는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했고, 18절에서는“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고 했습니다.
죽음도 심판도 이깁니다. 하나님이 온전히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주십니다. 사랑이 그렇게 위대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데도 그렇지 못하다면 사랑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능력도 사랑에 비하면 어린이와 같은 것입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성숙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그 모습은 씻음입니다.
4-5절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당시 풍습으로는 선생이 제자의 발을 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신 것은 15절에 나오듯 모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씻어야 합니다. 8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발 뿐 아니라 영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씻음을 받고 혹은 씻고, 세상 끝 날까지 못 씻고 간 사람이 있습니다. 죄를 못 씻고, 미움을 못 씻고, 세상 미련을 못 씻고, 어떤 마음의 상처라도 다 씻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예수님과 상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혹은 신부로 아신단 말씀입니다. 이걸 모르고 세상을 나 홀로 고독하게 기쁨도 모르고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 끝까지 열심히 해야 할 일은 씻어야 합니다. 몸은 씻었으니 발만 씻으면 됩니다. 무슨 뜻이냐면 성도는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에서 죄만 버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3. 그 모습은 맡김입니다.
2절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했고, 10-11절에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했습니다. 이것은 마지막 가시는데 주님의 마음이 뭔가 찝찝한 마음일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자 중 하나가 예수를 판다니 얼마나 비극입니까?
이처럼 우리가 세상 끝 날까지 살아갈 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그런 찝찝한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토록 기도하고 노력했지만 가족이 신앙을 하지 않는다든지, 하지만 미흡하다든지 가룟 유다처럼 아직 몸마저 씻지 못한 경우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유다와 다투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27절에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셨습니다.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벧전4:19을 보면 우리의 목숨도 조물주께 맡기라 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안 된다고 낙심하지 말고 기도는 하되 아버지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평안의 길이요, 응답을 속히 받는 길입니다.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도 나의 교만이요, 내가 덜 죽어서입니다. 나를 죽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안 되게 하신 것입니다. 나 혼자 일군인 줄 알았는데 내가 떠나니까 되더라는 간증도 있습니다. 기도했다면 생전에 안 되는 것 죽으면 다 됩니다. 죽어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되도 감사 안 되도 감사,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로 죽어보세요. 그러면 됩니다. 바울도 3번이나 기도했지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 끝 날까지 승리하며 살기 위해서 우리 주님을 본받으십시다. 우리 모두 주님처럼 사랑하십시다. 섬기십시다. 씻으십시다. 기도합시다. 그리고 맡기는 가장 아름답고 복된 승리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고난주간 새벽기도회] 수요일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 (눅 22:24-34)
우리는 본문에서 참으로 민망한 일을 봅니다.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는 다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성찬예식을 마치시고 자기를 유다가 팔 것이고 인자는 작정된 대로 갈 것이라는 마지막 말씀을 하셨는데도 제자들은 누가 더 크냐 하며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대속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직도 영광의 메시야로 임하실 것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나라가 임하시면 그 때 서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런 다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에게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1. 섬기는 자가 크다.
25-2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하나님 나라는 세상과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나보다 높게 여기고 낮아지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2. 주와 함께 고난당하는 자가 크다.
28-30절에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주님의 나라 임하실 때 하나는 좌정승 하나는 우정승에 앉게 되게 해달라고 청했을 때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마20:22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위해 수고하고 고난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3. 앞장 서는 사람입니다.
31-32절에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이 말씀은 네가 곧 나를 배반할 것이라는 시몬 베드로를 향한 예언임과 동시에 부탁이요, 네가 돌이켜 형제들을 굳게 하는데 앞장선다면 큰 자가 될 것이라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유다지파가 영적장자 지파가 된 것도 앞장서서 형제들을 돕고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주간을 당하여 얼마나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십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주님의 고난을 앞에 두고 서로 자리나 탐하며 싸우는 제자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 앞에 큰 자가 되려면 십자가를 지시고 앞서 가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고, 예수님처럼 섬기고 고난 받고 형제를 굳게 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난주간 새벽기도회] 목요일
기도로 승리하신 예수님 (눅 22:39-46)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이 시간에 “기도로 승리하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입니다. 골2:15에 “십자가로 - 이기셨느니라” 하셨는데 예수님의 승리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바로 기도였습니다. 본문의 감람산의 기도 장소가 바로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겟세마네’란 ‘기름 짜는 틀’이란 뜻으로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시내 건너편에 있는 감람산의 서편 기슭에 위치한 동산입니다. 그 동산에 감람나무가 많아 감람기름을 짰는데, 예수님의 기도가 꼭 그 기름을 짜는 듯한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에 승리하셨기에 죽음의 고통과 두려움을 이기시고 아버지께 순종하실 수 있었고, 끝까지 원수들을 용서하시며 축복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신앙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기도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도에서 승리할 수만 있다면 시험도 원수도 죽음도 마귀도 그 어떤 것도 다 이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승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기도에 길들여야 합니다.
39절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는데 습관이 된다는 것은 몸과 마음을 길들였다는 뜻입니다. 처음 기도하려면 몸도 마음도 안 따라와 줍니다. 그러나 며칠만 노력하면 몸과 마음이 알고 따라오기 시작합니다. 자다가도 그 시간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장소도 자주 하던 장소가 좋습니다. 교회가 가장 좋습니다. 불을 지핀 방이 따뜻한 것처럼 기도의 불을 지피니까 방해의 세력이 떠나고 아버지 품 안처럼 포근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함께 할 동지가 필요합니다.
40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지 못한 실망스런 그들이었지만 함께 할 기도의 동지가 있으면 좋다는 교훈을 줍니다. 이런 기도회가 그래서 좋습니다. 서로 도와 기도를 중단하지 않고 할 수도 있습니다. 2명은 대등한 관계여도 되지만, 3명이 이상일 때는 반드시 그 중 한 명이 대장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대장이신 것과 같습니다.
3. 기도의 분위기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41절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돌 던질 만큼이란 발성기도를 전재로 한 것으로 너무 가까워도 방해가 되고, 너무 멀어도 기도의 분위기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여럿이 함께 기도하거나 기도를 도울 음악이 있으면 가까워도 음성이 상쇄되어 방해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세도 무릎을 꿇으면 가장 좋고 자세의 안정을 위해 상이나 좌식의자도 도움이 됩니다.
4.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세요.
42절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아버지께서 구하기 전에 다 아시니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거역하는 마음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 경외함에 부족함이나 죄가 있다면 예수님처럼 순종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5. 천사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43-44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달리 표현하면 기도의 줄이 잡히는 걸 의미합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처럼 마음도 드리고 힘도 드려 애써서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방언의 도움도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침체와 삭막함을 막기 위해 음악을 틀어놓고 기도해도 도움이 됩니다. 탁상이나 기도의자나 좌식의자의 도움을 받아도 됩니다. 춥다면 전기담요나 장판은 건강에 치명적이므로 두꺼운 옷을 입고 무릎은 담요로 가리세요. 그래서 수도원에서는 모자 달린 두꺼운 옷을 입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의 승리가 모든 것의 승리의 원천입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였고, 제자들의 실패는 기도의 실패였음을 깨닫고 우리 모두 오늘 말씀 깊이 깨닫고 기도의 성공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고난주간 새벽기도회] 금요일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 (눅 22:54-62)
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55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56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57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58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이르되 너도 그 도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59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이르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60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본문은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죽을지언정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10:32-33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잡혀 죽을지도 모르는 베드로의 시험 앞에 자신이 있으십니까?
어떻게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1. 시험을 대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눅22:31에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34절에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셨음에도 그 경고를 깊이 듣지 않고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다고 장담만 할 뿐 시험에 대한 대비가 없었습니다.
마26:40-41에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셨는데 육신의 피곤 때문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시험을 이기는 방법은 기도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험이 다가오기 전에 늘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 들기로 예정된 사람이나 같습니다.
2. 고난도 기뻐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눅22:24에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열 두 제자 모두 제자의 길이 영광의 길인 줄만 알았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그랬듯이 정치적인 영광의 메시야관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그토록 말씀하셨지만 베드로의 마인드에는 아직도 고난에 대한 의미를 담아낼 공간이 없었습니다. 빌1:29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은 생명의 길이요 상급의 길입니다. 마5:10-12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하셨습니다.
3. 성령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마18:10에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이 실수가 두 번째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예고하시자 그리 마옵소서 하고 인정으로 호소하다가 사탄이라는 책망을 들었음에도 또 다시 칼로서 예수님의 앞길을 막았습니다. 베드로가 결정적으로 영력을 잃을 때가 바로 이 때였다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선한 일일지라도 혈기를 사용할 때 믿음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5:16에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했고, 23절에는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성령 안에서 살면 죄도 두려움도 죽음도 이깁니다. 기도 많이 하면 큰 수술을 앞두고도 아무 일 없는 듯 평안할 수 있습니다.
5. 예수님과 멀어지면 안 됩니다.
54절 “예수를 잡아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 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사실적인 기록이긴 하겠지만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은 예수님과 멀어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하셨듯 두려움을 이기는 비밀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준비 없어 부인했는데 우리가 준비 없이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시험을 이기는 길은 오직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자기를 과신하지 말고 어떤 시험도 이길 수 있도록 말씀과 기도로 깨여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난주간 새벽기도회] 토요일
예수의 죽으심의 의미 (눅 23:44-49)
44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49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이 시간은 예수님께서 원수들에게 붙잡혀 마지막 운명하실 때 있었던 일을 말씀드립니다.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이 모든 일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깊은 의미를 준다는 것입니다.
1. 해가 빛을 잃었습니다.
44절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가 제6시였는데 제6시는 정오 낮12시를 말합니다. 가장 뜨겁고 밝을 때인 제6시에서 9시까지 3시간 동안 낮이 밤처럼 어두워졌습니다. 유월절은 일식이 불가능한 만월 때 지켰으므로 일식도 아니고 1차적으로는 우주적 슬픔을 나타내는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이요, 2차적으로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세상이 어두워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없는 삶은 이렇게 죄악으로 어둡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45-46절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마태와 마가에 의하면 휘장이 짖어진 사건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시는 순간에 이루어진 사건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누가의 기록은 순서를 의미하기보다 극적인 효과에 포인트를 맞춘 것으로 보입니다. 휘장이 찢어진 사건은 히10:20절 말씀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허물어짐을 상징합니다.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47절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마태와 마가는 누가와는 달리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했는데(마27:54, 막15:39), 틀렸다기보다 백부장만 아니라 지키던 자들의 말이기도 하니까, 십자가에 달릴 때부터 예수님의 사랑과 거룩과 지진과 흑암 등 예수님의 모든 것을 지켜보던 자들의 형언할 수 없는 느낌으로 의인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십자가 복음과 성령으로 잘 죽어야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아들의 그 영광이 나타납니다.
4. 모두가 사랑했습니다.
48-49절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두 종류의 부류가 나오는데 먼저 구경하러 모인 자들이 그 된 일을 보고 가슴을 치며 돌아간 것은 좋은 분이 돌아가셨는데 안타깝다는 것이고,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라온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은 두려워 모두 도망갔지만 그들은 십자가 아래까지 따라온 것은 주님을 사랑함이 그토록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원히 죄악의 어둠 속에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으로 가는 밝은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어 구원 받을 뿐 아니라, 더 우리가 예수 안에서 죽고 죽어 하나님 자녀로서 영광을 나타내고, 더욱 사랑함으로 주님의 인내와 사랑에 동참하여 영원히 주와 함께 살아가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