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종교적 체험과 누미노제(Numinose) 종교적 체험의 원형은 샤머니즘에서 볼 수 있다. 샤머니즘에서의 종교적 체험은 모든 종교의 원시적 형태이며 인간의 원초적인 종교성을 보여준다. 종교학자 엘리아데(Eliade)(주7)는 동서고금의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종교 체험의 구조와 기능과 의미를 분석했는데 그는 ‘샤머니즘’(1964)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샤먼의 입무의례(入巫儀禮)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자료들을 보면 샤먼은 거의 죽음을 경험할 정도의 고통스러운 입무의례를 통하여 엑스터시(ecstasy) 상태에 도달하게 되며 이 때 세속적인 인간이 해체되고 영계를 넘나드는 능력을 받게 된다. 이런 샤머니즘의 신비한 엑스터시 상태는 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고대문명권의 제의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 주7 : 루마니아 태생의 미국 종교철학자(1906-)로 역사와 문화의 차이를 초월한 인류 공통의 신화, 상징, 의례 등을 연구하며 무의미라는 깊은 위기 상태에 빠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종교성에의 회귀를 희망으로 제시하고 있다. 많은 저서가 있으며 그 중에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샤머니즘에 대한 연구를 집대성한 ‘샤머니즘(Shamanism - Archaic Technique of Ecstasy, 1964)'이 있다. 샤먼을 우리나라에서는 무당이라고 하고, 엑스터시 상태에 빠져 능력을 받는 것을 ‘신이 내렸다.’ 또는 ‘신접했다.’고 한다. 신접한 무당으로 최고의 영력을 인정받았던 전 단군교 교주 김해경은 그의 책 ‘주여, 사탄의 왕관을 벗었나이다.’(홍성사, 1993)에서 시퍼런 작두날 위를 맨발로 걷고, 사람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하며, 귀신과 대화를 나누는 등 그가 무당으로서 경험한 많은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러한 샤머니즘의 종교적 체험에는 그것이 미개인과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나 나타나는 것으로 간단히 무시해 버릴 수 없는 종교적 단서가 있다. 즉 합리적 이성으로 무장된 현대인의 깊은 내면에도 이와 같은 비합리적인 종교성이 내재하고 있고(주8), 샤머니즘의 입무의례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종교적 체험이 고등종교에서도 신의 현현(顯現)이라 할 수 있는 계시(Revelation)나 깨달음(覺)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활활 타오르는 불 가운데서도 타지 않는 떨기나무의 두려운 신비 앞에서 신의 음성을 듣고 무릎 꿇고 바짝 엎드린 채 두려움과 떨리는 황홀을 동시에 체험하며 신의 사자로 변했던 모세의 종교적 체험을 오늘날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체험하고 또 그 체험 때문에 종교적 삶으로 변하고 있다. 죽었던 예수와 함께 잠시 생활하고, 골방에 모여 미친 듯이 기도하는 중에 불의 혀 같고 바람 같은 영에 휩싸이는 신비한 체험 후에 삶의 방향이 전폭적으로 바뀌었던 예수 제자들의 체험은 오늘날도 많은 기독교인이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체의 금식과 금욕을 통하여 뼈와 가죽만 남은 싯다르타가 보리수 아래에서 엑스타시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 상태에서 신비한 직관을 통해 온갖 육체적 욕구와 악귀들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일체 부동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지금도 불가에서는 그러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종교적 체험들이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 주8 : 앞서 소개한 책에서 김해경의 고객들을 보면 주요잡지사, 서동권 전 안기부장,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김복동 의원, 탤런트 박규채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인사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체험들은 샤머니즘의 입무의례에서와 매우 유사한 종교적 체험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고통과 두려움을 거쳐 죽음과 재생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신비한 황홀경에 빠지는 엑스타시 상태가 된다는 것이 이 모든 종교적 체험에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신접하거나 계시(또는 성령)를 받는 사람은 대개(주9) 육체적으로 몹시 지치거나 탈진상태일 경우가 많고 또 고통 속에서 죽음의 공포나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았을 때의 겉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빠져 있을 때가 많다. 샤먼의 입무의례에서는 일부러 그런 상태를 조장하고 심지어는 자해를 하도록 하여 초죽음 상태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황량한 광야에서 양을 찾아 헤매던 모세나 골방에서 여러 날 간절하게 기도하던 제자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매우 지친 상태였을 것이다. * 주9 : ‘대개’라고 한 것은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건강한 일상적 상태에서도 계시를 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뒤에 소개할 체험 사례에서 건국의대 장상근 교수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병원에서 일상근무를 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또한 고통스러운 입무의식을 통하여 샤먼이 되는 자는 육체를, 세속적 삶을 포기하는 경험을 하게 되며 곧 이어 영매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러한 죽음과 재생의 경험은 모세나 예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집트 왕자였다가 40년이나 전혀 소망이 없는 양치기 생활로 인생이 곤두박질친 모세가 보아서는 안 될 절대자를 만난 순간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마침내 내 인생은 여기서 종지부를 찍는구나.’라는 두려운 생각이 어찌 들지 않았겠는가?(주10) 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라다니던 스승이 너무나 허망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본 제자들은 심각한 정신적 공황상태를 겪은 후 부활의 예수를 만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래의 전망이 뚜렷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의지할 존재가 없는 상태에서의 막연한 두려움(주11)은 그들이 더욱 간절하게 기도에 매달리도록 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그들은 계시와 성령을 받게 되어 재생의 경험을 하면서 전폭적으로 삶이 변하게 된 것이다. * 주10 : 구약성경에서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인 왕을 뵈었음이로다.’(이사야 6장 5절)라고 한탄하며 공포에 휩싸인다. * 주11 : 사도행전 4장 29절을 보면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도 두려워하며 위협을 없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때는 성령을 받기도 전이었으니 두려움은 더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종교적 체험에서는 절대적 타자와 맞닥뜨린 신비와 황홀함의 엑스타시가 있다.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합리적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주12) 신비한 경험을 하면서 황홀경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샤먼은 고도의 집중력이 생기면서 초능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영계와의 소통도 하게 되며, 이런 상태에서 밖으로 뛰쳐나간 제자들은 군중으로부터 새 술에 취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모세 또한 홀린 듯 취한 듯 흥분된 상태로 두근거리며 집에 돌아가 그의 아내에게 신을 만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 주12 : ‘설명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이라고 하지 않은 것은 종교적 체험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하는 신경신학 등의 시도가 있기 때문이다. 신경신학자 등 일군의 과학자들은 종교적 체험 현상을 신비하게 볼 필요가 없는 뇌 속의 생체반응으로 파악하고 있다. 뒤에서 그 이론을 간단히 소개하고 비판할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체험을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R. Otto)(주13)는 ‘신비스럽고,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것’(Mysterium tremendum et fascinanas)과의 만남이라고 하면서 ‘누미노제’(Numinose)라는 특별한 용어로 표현하였다. 이는 ‘명확한 표상을 이룰 수 없는 초자연적 존재’라는 의미의 라틴어 누멘(numen)에서 따온 신조어로 과학적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초자연적 신비의 경험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종교적 체험을 할 때 인간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두렵고 떨리고 신비스럽고 초월적인 느낌과 함께 또는 초월적인 절대자와의 합일에서 오는 안정감과 절대 평안을 느끼게 된다. 신비스럽고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것과의 만남(누미노제),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신비(기적)의 체험! 이러한 종교적 체험은 지금도 여러 고등종교와 원시적인 무속종교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 주13 : 독일의 종교철학자(1869-1937) 1917년에 출판한 ‘거룩한 것(Das Heilige)'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세기의 합리주의,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고 종교의 비합리적, 신비적 측면을 강조하였다. 동양의 신비주의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 중에서 필자가 체험하고 그래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교적 체험인 성령 체험에 관해서뿐이다. 광대한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운행하며 품고계시는 절대자가 인간 개인 개인에게까지도 자상한 관심을 가지고 만나주시기 위해 보내시는 성령은 기독교에 독특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자가 아닌 분들에게는 생소한 관념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서 성령 체험의 증언을 통해 성령의 존재를 입증하기 전에 다음 절에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이 도대체 무엇인지 먼저 설명하도록 하겠다. [출처] 종교적 체험과 누미노제(Numinose) |작성자 산소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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