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와 여호수아
모세는 종교적 인물로 아주 유명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역사적 사실만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대교는 모세 5경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한 역사적 사실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서에서만도 모세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고 하였다. 그런 문제를 우리는 건드리지 않기로 합시다. 성서에서는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을 종교적으로만 다룬다. 성서에 의하면 이집트에서는 하피루(Hapiru)로 불리는 계층(하피루는 종족과는 무관하게 노동을 하고는 돈을 받는 하층민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집트 왕 파라오는 이들을 더 낮추어 노예로만들어버렸다. 이로서 모세를 비롯한 유대인들이 심한 노동에 시달렸다.
유대인의 왕의 계보에 의하면 모세의 12세 손이 솔로몬이다.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한 시기는 BC 1250년 경이라고 하니 람세스 2세의 통치 시기이다. (일부에서느 BC1440년 경이라고 하나 잘못이라고 한다.)
이집트인이 취한 조치의 하나는 히브리인의 인구증가를 막기 위해서 히브리인의 출생하는 모든 남아를 죽여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모세의 탄생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갓난아기를 역청을 바른 바구니에 담아서 강에 띄어 보낸 일이다.-- 이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어 생략합니다.) 그의 행적을 보면 그는 버림받은 아이가 아니라, 종교, 세속, 군사문제에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음이 분명한 엘리트 출신이다.
어쨌거나, 전승을 분석하면 그는 이집트 궁성에서 40년을 보냇고, 다음 40년 동안은 히브리인을 이끌고 시나이 반도를 돌아다니면서 유목생활을 하였다. 앞에서 보았듯이 가나안 땅은농사를 지을 수 있어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이다, 여기서는 이 땅의 주인이 정착하여 성을 쌓고, 농경생활을 하였으모, 이집트에서 넘어온 헤브라이족들은 그곳으로는 가지 못하고, 시나이의 거친 땅을 돌아다니면서 유목생활을 하였던것이다. 그들도 기회가 오면 그곳으로 들어가서 농경생활을 누리고 싶지만 그런 여건이 되지 못하였다.
시나이 반도를 떠돌던 모세는 유명한 종교적 체험을 하게된다. ‘가시덤불이 불이 타면서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유명한 종교적 체험이다.(10계명 등 종교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이때 모세를 따라다닌 젊은 지도자 여호수아가 있었다. 모세가 죽자 여호수아가 유대인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젖과 꿀이 흐를는 기름진 땅을 차지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힘의 우위가 느껴지면 거침없이 성을 공략하였다. 성을 공략할 때는 저항하는 성 안 사람들을 몰살한다든지, 아주 잔인하고 혹독했다고 한다. 이 일도 종교적으로 화장하여 여호수아를 좋게 평가하지만 ------,
그러나 유목민은 일반적으로 성격이 거칠고, 유일신 종교는 살아남기 위해서 다신교 신앙보다는 더 잔혹하다고 한다. 여호수아를 그렇게 설명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유대인이 성벽 안에 들어가서 세력을 뻗치기 시작한 것은 여호수아라고 한다.
종교 이야기는 미뤄두고, 역사 이야기를 하자면 이처럼 유대인은 가나안 땅의 부분부분을 차지하여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