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하늘을 날다 (수도원 체험기) 최 화 웅(비오)
“주님, 누가 당신 천막에 머물 수 있습니까? 누가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지낼 수 있습니까?" (시편 15, 1)
2008년 7월 20일 부산에는 연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광안리해수욕장의 보리밥집에서 발다살 신부님의 애마(愛馬), 흰색 아반테가 장정에 올랐습니다. 섭씨 30도를 넘는 무더위에 신부님의 낡은 차에 달린 에어콘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손바닥만한 내비게이션이 유일한 길잡이였습니다. 내비게이션 화면에는 부산으로부터 강화까지 467Km에 6시간이 걸린다고 알렸습니다.
(아반테) 저는 앞자리에서 내비게이션을 지켜봤습니다. 칠곡을 지나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섰을 때였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화면에 우리 자동차가 한 가닥 외길을 따라 위로만 계속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놀란 저는 “신부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지금 우리 차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잖아요.”하고 소리쳤습니다. 운전 중인 신부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아니요, 이 내비게이션에 새로 개통된 길이 아직 업그레이드되지 않아서 그런가 봐요.”라고 태연히 말씀하셨습니다.
(수사님들의 공동체 회의 모습) 처음 제가 수도원체험을 하고 싶다고 청했을 때 신부님께서는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고요. 먼저 공동체에 물어봐야 합니다. 그래서 결정이 나면 언젠가 살 수 있겠죠. 그런데 수사님들과 꼭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해를 넘긴 어느 날 공동체의 입회 허락이 났다는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우리 식구들과 꼭 같이 살아야 합니다. 기도, 노동, 공부 아시겠죠? 특별대우는 결코 없습니다.”그리고는 주방소임을 대비해서 몇가지 요리를 미리 연습해 둘 일과 특강을 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강화로 가는 마음은 새 삶의 기대만큼이나 두려움도 컸습니다. 큼직한 여행 가방에 성경과 기도문, 특강자료와 노트북, 약과 몇 권의 책, 옷가지와 우의, 그리고 SB카레 2통과 누룽지4봉지, 그리고 치즈를 한 통 챙겨 넣었습니다. ‘꼭 같이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수도원체험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은 올라가는 차 안에서 반복되었습니다. 밤 10시가 가까워서야 강화에 도착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날아오른 하늘나라는 인천직할시 강화군 불은면 넙성리 24의 2번지 산골마을이었습니다. 어름프레 수도원은 어둠에 묻혀 개구리울음과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나그네의 심정을 외롭게 했습니다. 순간 저는 납치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제가 받은 강화의 첫 인상은 비 그친 뒤의 습한 어둠과 침묵,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가 전부였습니다.
(신학원 전경) 경당 아래 손님방으로 안내된 뒤 수사님들의 여름방학 중 일과표와 소임배당표를 전해받았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첫 소임은 내일부터 개밥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깊은 밤 샤워로 세속에 찌든 몸을 시원하게 씻어내렸습니다. 오랜만에 모기향이 코끝을 진하게 스쳤습니다. 창으로 개구리의 세레나데와 여름밤의 서늘한 산기운이 그리움처럼 찾아들었습니다. 방안은 온통 낯설고 서먹서먹하기만 했습니다. 모든 게 어리둥절했지만 마음만은 그리운 고향의 품에 안긴 듯 쉬 꿈나라로 들었습니다.
수도원체험은 “수사님들과 꼭 같이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내게 주어진 수칙이요 규율이었습니다. 금주금연에 전화와 신문방송이 차단되고 개인적인 외출이 제한되었습니다. 오직 하루 한차례 엘리사벳과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을 뿐입니다. 저는 굳게 다짐했습니다. 병영생활 이후 40여 년 지나 주어진 육체적 구속에서 영혼을 치열하게 자유케하리라. 주님 안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다시금 찾으리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 성심이여 온 세상에서 사랑 받으소서.” 아멘.
|
|
첫댓글 드디어 시작된 수도생활이군요,
낡은 네비게이션이 시작부터 하늘나라로 길을 내었네요
쉽지않은 체험생활!
읽으며, 느끼며 신앙의 느낌을 더하는 귀중한 시간 되도록 하겠습니다.
나누어 주신 체험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실것입니다.
저역시 수도생활을 시작한지 25년..... 그동안 많이 퇴색(?) 되어버린것 같은 제 삶의 여정에 이글은 첫마음을 생각하게 했답니다. 육체적 구속에서 영혼을 치열하게 자유케 하리라. 주님안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는것....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겠노라고 다짐하며 시작했던 여정에 한눈도 많이 팔았지요. 다시 그분의 것이 되기 위해 오늘도 작은결심하나 품어보는 대림1주의 화요일입니다. 행복하세요. 하느님 안에서 마음껏!!!1
선생님은 정말 특별한 체험을 하셨네요. 이 또한 축복이고 은총입니다.
선생님의 글을 통해 저희도 함께 수도원에 있는 것같은 착각이 듭니다.
이 대림시기에 마음을 정화시키고 회개하며 새롭게 주님을 맞이하렵니다.
선생님 가정에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려요. ^*^
국장님 돈주고도 못 해볼 귀한 체험 나누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벌써 다음 글이 궁금해 집니다.
공지영의 수도원기행을 몇 번을 연거푸 읽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이번은 수도원의 체험을 낱낱이 공개하는 체험기를 기다렸었는데 드디어 막이 오르셨습니다.제가 마치 수도원 체험을 하듯 설레이고 긴장되는 이 마음은 뭔지~~ 주님 안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자 하셨던 그 마음 ~저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체험기 끝까지 질 읽고 신심을 더 키우고 느끼고자 합니다.소중한 체험기 잘 읽고 묵상하겠습니다.
그리움님의 글을 읽으며 나는 수녀원 체험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문득 하였습니다.
수녀님들이 허락해 주실지 모르겠지만.
육체적 구속에서 영혼을 치열하게 자유케 하리라.
신앙생활 하면서 지치고 힘들때 돌파구로 한번쯤
수도생활을 동경해 봤습니다.
직접 체험한 소중한 수도생활글 감사합니다.
다음글 벌써 기대하고 기다려지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모든 전경이 선명하게 그려지네요.^^
앞으로 펼쳐질 수도원 생활이 기대가 되고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