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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 | 거망지맥 30km..글구... 진양기맥 걷기(하) | 2010-05-06 오전 8:42:38 |
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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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읍내에서 저녁을 먹고 근처의 찜질방으로 찾아들어가 내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기로 하고 피곤한 몸을 누윈다. 그러나 싸우는듯 한 경상도 사투리의 소음에(?)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엎치락 뒷치락. 잠이 들은 것인지? 안들은 것인지? 비몽인지? 사몽인지? 그런데 딸내미가 03시 30분이라고 어깨를 흔들어 눈은 떴지만 온몸이 찌푸둥한 것이 컨디션이 별로이다. 그러나 오늘도 새벽부터 걸어야할 신세이니 눈을 비비며 일어나 04시에 밖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의 탕으로 들어간다.
찜질방에서 나와 어제의 김밥집으로 가, 김밥 세 줄을 사서 배낭에 챙겨 넣고 된장찌개를 시켜 새벽밥을 먹으나 깔깔한 입맛. 그러나 오늘도 걸어야할 거리가 24km라니 억지로라도 꾸역꾸역해야 한다.
택시를 타고 다시 바래기재에 도착하니 05시 20분. 오늘의 들머리는 어제 올라간 능선의 반대 방향이다. 어김없이 개들은 짖어대는데, 오늘은 묶어 놓지도 않아 두 마리의 커다란 개가 우리 근처까지 가까이 닥아와 왈왈댄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무서움을 느끼며 더 빨리 산행준비를 끝내고 새로 만든 도로의 중앙분리대를 힘겹게 넘어 재빨리 산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 높지 않은 야산길에는 소나무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늘어서 있다. 새벽에는 더 한층 상큼함을 느낄 수 있는 소나무 향에 코를 벌렁이며 심호흡도 열심이 한다. 아~~~ 좋아~~좋아~~바로~~ 이 맛이야.
10여분쯤 걸었을까? 어제는 하루 거른 뒤가 갑자기 무지근해 진다. 길을 벋어나 급하게 주저앉은 곳이 정면으로 해뜨는 방향. 막 떠오르기 시작하는 해를 바라보며 잠시 근심을 잊는다. 그런데 내가 주저앉은 자세와 모양이, 만약 내가 여자라면 막 떠오르는 저 태양의 모든 정기를 온몸으로 받을 수도 있는 모양새다. 어떠한 여자이건 간에 저렇게 아름답고 강렬하게 떠오르는 태양의 정기를 받아 들인다면 분명 한 인물하는 놈이 태어날 수도 있을터인데. 내가 남자인 것이 아~~~ 쉽~~~~~다. 쩝.
계속되는 아드막한 야산길은 모두가 소나무 숲. 가끔은 낙엽송도 눈에 띄지만 그 것이 무슨 대수랴. 연상 코를 벌렁거리고 걸으며 60 중반이 넘도록 이렇게 튼튼한(?) 다리를 주셔서 이렇게 좋은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께 무한 감사를 보낸다.
07시 30분쯤. 이차선 도로인 개목고개 부근인데 딸내미 눈에 띈 두릅나무에는 새 순이 4, 5cm쯤 올라와 있다. 이런 것을 보면 그냥 못가는 딸내미가 배낭을 벋으려 하나 나무들이 서있는 모양이 야생이 아니고 재배하는 것 같다. " 얘~~ 재배하는 거야. 그냥 가자. "아버지~~ 점심용으로 서너 개만 딸께요" 못말리는 딸내미 둔 덕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망보기꾼이 된다.
서너 개를 따서 얼른 배낭 속에 감추고(?) 거창군 마리면이라는 교통 입간판이 서있는 개목고개를 건너 앞쪽의 산으로 들어가 잠시 걸으니 야생과 재배의 두릅나무가 혼재(混在)해 있는 두릅밭이다. 야생만 따기로 무언(無言)의 합의를 하고 둘은 배낭을 벋어 던지고 얼마간 두릅 따기에 열중한다. 그러나 나는, 따는 것 보다는 그애가 따서 갖다 놓은 두릅을 안주로 주님(酒님) 모시기에 바빴었다.
길은 계속 평이한데 길가에는 진달래는 물론이고 진분홍색의 산복숭아꽃도 종종 피어있고 멀리 보이는 여기저기 산등성이에는 산벚꽃이 한창이다. 가끔은 막 피어 올라와 조그마한 잎 두 장을 달고 있는 취도 보이고 눈 밝은 딸내미는 달래도 몇뿌리 캐 점심용으로 보관한다. 소풍(逍風)온 것 같다고 쫑알대는 딸내미에게... "너... 원족이라는 말 알아? 우리 어린 때는 소풍을 원족(遠足)이라고 했어"
도로 하나 사이를 두고 어제는 이 시간대에 겨울 산행을 했는데 오늘은 상춘(償春) 산행이라니. 허기사 오늘은 어제보다는 기온도 좀 올라갔고, 어제는 1,000m급 이상의 산이었지만 오늘 코스에서는 최고봉이 740m쯤이라는데 그 것도 오늘 우리가 걸어야 하는 구간의 제일 마지막 부근에 있단다.
그러나 명색이 산 길인데 어찌 평탄만 하겠는가? 망실봉 올라가는 길은 제법 힘드니 나도 모르게 숨을 몰아 쉰다. 헥핵. 힘겹게 올라가 서있는 표지석을 보니 산 높이가 681.2m란다. 아마도 이 산이 오늘 구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인 모양이다. 망실봉은 거창읍 사람들이 자주 찾는 산인지? 정비도 제법 잘 되있고 활공장을 지나니 간이 이동변소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많으면 비례해서 늘어나는 쓰레기들.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힘들게 올라온 것에 대한 보상인지? 앞으로 이어진 길은 소나무가 그득한 소나무 숲길인데 평탄하기만 하다. 자칭 음치라는 딸내미도 기분이 좋은가 보다.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으나 흥얼흥얼. 나 또한 혼자서 흥얼흥얼.
그러나 딸내미가 내색은 하지 않으나 힘이 드는 것 같다. 아마도 무릎 통증으로 거의 한달여를 숨쉬기 운동만 한 여파일 게다. 나도 힘이 안드는 것은 아니지만 평지와 내리막에서는 조금 강한 나이기에 평지임을 핑계 삼아 걸음에 속도를 낸다. 그러나 계속 혼자서 갈 수는 없기에 관술령이라는 곳에서 한 잔 하며 기다릴 요량으로 덧옷을 꺼네 입고 배낭을 뒤적이는데, 어라~~썪어도 준치라더니... 딸내미가 금방 뒤딸아 와서 비탈길을 내려온다. 대장은 아무나 하~~~나~~. 흙뫼회 대장님 화~~~이~~~링~~~ 하옵소서^^
잠시 쉬다가 망덕산 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다시 출발한다. 길은 계속하여 좋기에 내가 또 앞장을 서서 한 시간여를 걸어 무심산악회에서 세운 표지석이 있는 561.8m의 망설봉에 12시 05분에 도착한다. 그런데 '망'이라는 글자만 머리에 입력 됬는지? 나는 이곳이 당연히 망덕산이라고 생각하고 그늘진 곳을 찾아가 점심 준비를 하는데 뒤좇아온 딸내미가 왜 이곳에 있냔다. "아까~~~ 망덕산에서 점심 먹기로 했잖아" "제가 표지석을 분명히 보았는데요~~ 여기는 망설봉이구요...아마 앞에 보이는 저 봉우리가 망덕산일 거에요" ㅠㅠㅠ
그러나 이왕지사 벌어진 장. 나는 버너에 코펠을 올려 두릅을 데치고 딸내미는 달래를 다듬어 놓는 한편 김밥을 꺼내 오늘의 우리 점심상을 펄친다. 이제 막 올라 온 첫 순이기에 더 한층 강한 두릅의 향과 부드러우면서도 싸한 맛의 달래 향에 둘은 동시에 감탄사를 내지른다. "오매~~쥑이삐네~~~ "
좋은 안주 있다는 핑계로 시에라 컵으로 두 잔 가까이 쐬주님까지 모시고 난 후 알딸딸한 기분으로 한 시간 만에 자리에서 일어나 13시 15분에 망설봉을 떠난다.
도상거리 15.2km 지점인 숙지령에 13시 50분 도착하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1.5km를 내려가면 신기마을이라는 곳인데, 그 곳에서 거창으로 가는 버스가 14시 50분에 있다. 우리의 일정은 앞으로도 약 7,8km는 더 진행해야 하는데 슬며시 꾀가 난다. 딸내미도 그애 성격상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힘들어 하는 것이 눈에 보이기에 슬며시 운을 떼본다. "얘야~~ 우리 여기서 신기마을로 그냥 내려가자. 다음 구간은 20km가 되지 않으니 이곳에서 다음 구간까지 한 번에 걷자구나"
신기마을에 도착하니 14시 30분. 오늘도 중도 하차를 했지만 산이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니 산에서의 좋은 감정만 간직하면 될 것 아니냐고 딸내미를 달래며(?) 도상거리 약 17km에 걸은 시간 9시간 10분간의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 이틀간 약 47km 걷는데 23시간 25분 걸렸다. 시간당 평균 2km 남짓이다. 딸내미는 쉬고 밥 먹는 시간 포함하여 시간 당 최소한 2.5km는 걸어야 한다고 계속 강조했지만 이번의 이틀간은 어쩔 수 없었다. 요즈음의 그애 컨디션은 아마도 그애가 산에 입문한 이후 가장 최악이었을 것이고 나 또한 자꾸만 걷기가 싫어지는 근래의 상황을 감안하면 나름 잘 걸은 것이라고 자평 아닌 자평을 하며 1무 1박 3일간의 산행기를 끝낸다. 읽어주셔서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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