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풀
한겨울에 여름꽃을 떠올리는 건 또 무슨 심사일까 싶지만, 이 엄동설한에 야생에 서 담아올 꽃이 없으니 묵혀두었던 사진을 뒤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파리풀은 여름부터 언제쯤 소개할까 몇 번을 망설였던 꽃 중 하나이다. 하지만, 고운 자태를 자랑하는 꽃들에 밀려난 나머지 철 지난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다. 파리풀이 필 때쯤의 낮은 야산은 꽃이 참으로 귀하다. 끈적거리고 더운 산행길에 만나는 꽃이라고 해봐야 까치수염 정도이니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산을 오르다가 허탕만 치고 돌아오기에 십상이다. 땀을 뻘뻘 흘리고 하산하는 길엔 앵앵거리는 풀 모기들까지 신경질 나게 머리주위를 맴돈다. 그즈음 약간은 음침하고 반 그늘진 야산에 피는 꽃이 바로 파리풀이다. 꽃도 작은데다 조명도 어두워서 숨을 멈춘 채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좀처럼 담기 어려운 꽃이기에 집중하여 접사로 담고 나면 굵은 땀방울이 소나기 내리듯 떨어지곤 한다. 파리풀은 꿀풀목 파리풀과 파리풀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서 학명은 Phryma leptostachya var. asiatica H.Hara이다. 키가 큰 것은 어른 허벅지까지 닿는 경우도 있으며, 길쭉한 타원형 잎은 긴 잎자루를 갖고 있으며 마주나고, 잎 양면에 털이 많이 나 있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7~9월 사이에 연한 보라색 빛을 머금은 흰색 꽃이 긴 꽃대에 이삭처럼(이삭꽃차례) 모여 핀다. 꽃턱잎이라고 부르는 포(꽃대의 밑이나 꽃자루의 밑을 받치고 있는 녹색 비늘 모양의 잎)는 좁은 달걀 모양이며, 꿀풀 모양을 닮은 화관(꽃부리)은 윗입술은 짧고 얕게 2개로 갈라지지만, 아랫입술은 좀 더 길게 3개로 갈라진다. 암술 한 개에 수술은 4개이며, 그 중 두 개는 다른 것에 비해 길다. 꽃이 만개하면 옆으로 향하고 꽃이 진 다음에는 밑으로 쳐져서 거꾸로 달리는데 그 모양이 마치 파리가 붙은 것 같아 파리풀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뿌리에 독성이 있어 즙을 내어 밥에 섞어 놓아두면 파리를 유인하여 죽이는 데 사용한 이후로 파리풀이라 불렀다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파리풀의 즙을 승독초(파리에 독이 되는 풀)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조상은 재래식 화장실에 파리풀 즙을 뿌려 파리 애벌레를 죽이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파리풀은 나물로 먹지 못하는 독초이나, 뿌리 또는 포기 전체를 짓찧어서 종기나 옴, 벌레 물린 데 처방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