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김
앙드레김은 환상적인 그 만의 뛰어난 세계를 구축한 보기 드문 거목이었다.
이제는 다시 그를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앙드레 김의 날'이 있었다는 걸 우리가 알고 있었나? 마이클 잭슨이 수십 벌에 달하는 그의 옷을 구입했다는 사실은? 1980년대에 이미 미스유니버스 대회 지명디자이너로 활동하고, 또 이탈리아 대통령 문화공로 훈장을 수상했으며, 2000년엔 프랑스 예술문학훈장을 탄 앙드레 김은, '걸어 다니는 한국 홍보대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그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통과해 온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한국전쟁과 분단을 통과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무기로 세계인과 상대해 빛나는 성취를 이뤄낸 인물로 말이다. 더불어 그가 압축성장을 이뤄낸 한국의 1970~80년대 문화와 예술을 풍성하게 만든 큰 축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세계평화아동축제 아동평화대사나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 등 자선활동에도 깊숙이 관여하며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몸소 실천했다는 면에서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영화를 사랑한 만큼, 패션을 더 넓게 예술로 이해하는 동시에 또 인간을 위한 예술을 하려고 노력한 앙드레 김은 정말 패션계의 큰 별이었다.
앙드레 김 아들 김중도씨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앙드레 김의 아들은 김중도씨다. 1982년 공개 입양을 통해 부자지간의 연을 맺었다. MBC
<기분좋은 날>에서 아들에 대해서도 "아들이 장가가던 날 아들의 빈방을 쳐다보며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난다"며 애틋한 부정을 보였고,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학교 선배에게 폭행당하고 집에 돌아온 아들과 함께 학교를 찾아간 일화도 있는 '열혈 아버지'이기도 했다.
<앙드레 김에 관한 유우머>
앙드레 김과 그의 아들은 유럽으로 패션쇼를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어린 아들은 기내에서 떠들었다.
앙드레 김 : "촤~알스 떠들면 안돼요."
그러나 그의 아들은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앙드레김:촤~~~아~~알~~~쓰~~
비행기 안에서 조용히 해야 해요"
지나가던 스튜어디스
'역시 앙드레 김은 아들의 이름도 국제적으로 짓는구나.'
생각하며 그의 아들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촬스니?"
아들 : "아니요 철수 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