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령
1박 2일 한가한 시간을 즐긴다. 꽃구경한 지 얼마나 되었냐며 아내의 재촉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황매산이다. 5월이면 철쭉으로 전국에 알려져 있다. 몇 차례 찾은 적이 있지만 새롭게 다가간다.
느긋하게 쉬고 있는데 느닷없이 먹는 약이며 옷가지를 가방에 담는다. 점심을 가볍게 먹고 차량의 연료를 확인한다.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린다. 금요일 오후 오늘은 자동차의 흐름에 여유가 있다. 남해고속도로 나들목을 지나 차창 밖으로 내닫는 풍경이 눈앞에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어느덧 목적지로 향하는 진출로를 빠져나간다.
국도는 늘어선 차들로 브레이크에 자주 발이 올라간다. 앞 차량의 꽁무니만 바라보고 멀찍이 따라간다. 4차선 국도를 지나 2차선 지방도로에 접어들었다.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가 오후의 강한 햇살을 양산을 펼쳐 가려 주는 듯 긴 나무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다. 산과 들에는 온통 초록으로 한 가지 색깔로 만들어지기 직전이다. 상록수와 활엽수의 만남이 하나로 어울려지는 시기다.
꼬불꼬불 이어진 황매산 입구 도로 이정표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10여 분이면 도착한다. 매표소를 지나 중턱 주차장으로 향한다. 가끔 내려오는 차가 있다. 산등성이에 해가 걸려 있을 때 도착하기 위해 달려왔다. 축제 기간과는 달리 주차장에는 차량 몇 대만 서 있다. 주변 특산품 판매소에는 상품을 안으로 들이고 문을 닫고 있다.
등산로를 따라 철쭉 군락지를 찾아간다. 고개를 돌려 눈을 들어 산으로 향하는데 붉디붉은 꽃은 보이지 않고 푸른 잎만이 가득하다. 행여나 하는 생각으로 제1 군락지와 2 군락지를 찾는데 마찬가지다. 꽃잎은 흔적도 없다. 아내의 손을 잡고 꽃 대신 신선한 산 공기나 가슴 가득 담아 가자며 산 정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는다. 태양이 정상에 걸렸다. 그늘이 석양으로 바뀐다. 쌀랑해지는 날씨 탓에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한다. 내려가는 길옆에 10여 미터 길이로 철쭉이 마지막 꽃잎을 머금고 있다.
처음 계획을 바꾸어 전원주택을 마련해 둔 곳으로 향한다. 길 안내를 검색하는데 고속도로와 국도 모두 걸리는 시간은 같다. 거리가 20킬로 짧은 국도를 선택하였다. 황매산에서 쌍백면까지는 아는 길이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초행길이다. 산속으로 들어선 길은 W 모양처럼 지그재그 운전에 몸이 흔들린다. 얼마를 달렸을까. 산등성이가 눈 아래 펼쳐 보인다. 이런 풍광이 또 있을까. 고향 근처에 있는 지역인데 지금까지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곳이다. 고개 정상에는 휴게소가 있지만, 점점 바깥 사물 구분이 어려워진다. 고개를 넘어 내려오니 여기는 의령군의 이름난 벽계 유원지 입구요 동굴 속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일붕사 근처다. 깊고 깊은 곳에 자리한 궁유전통 시장이 가까이 있다. 높디높은 고개의 품에 안겼다. 시원한 공기만큼이나 늦은 시간이 아쉬울 뿐이다. 석양에 굽이굽이 이어진 봉우리는 비교할 바 없이 진풍경이다. 늘 지나다니는 고향 가까운 곳에 이런 풍광을 여태 누리지 못하다니. 자연의 운치를 느긋하게 볼 수 없는 것이 다음을 기약하게 만든다.
늦어지는 저녁 탓에 속을 채우고 갈 밥집을 찾는다. 어두워진 시간에 차량 속도를 줄이는데 눈앞에 간판이 보인다. 밥 부잣집이다. 간판이 재미있다. 어떤 음식을 먹든 선택을 할 여유가 없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데 텅 비었다. 부부 둘밖에 없다. 식당 안 모습에 호기심이 생긴다. 어른 두 아름이 넘는 나무 원목으로 앉은뱅이 식탁이 세 개가 자리 잡고 있다. 의자도 일부는 원통형 나무다. 무게가 있어 함부로 옮기는 것도 마땅찮다. 음식 주문을 하고 주인에게 연유를 묻는다. 이전에는 찻집으로 운영되었는데 식당으로 바꾸면서 시설물을 활용하고 있단다. 칸막이는 전통 한옥 문틀을 가로로 눕혀 원통 나무에 홈을 파고 설치되어 있다. 갖가지 나물이 얹힌 비빔밥은 입맛을 돋운다. 반찬으로 나온 연근조림은 처음 먹어보는 맛이다. 연분홍색을 입히고 구멍마다 두부를 짓이겨 채워 놓았다. 씹는 맛과 소리가 사각사각한다. 먹고 또 먹어 추가로 내어준다. 밥 한 숟갈은 덤이다. 늦은 저녁이 오랜만에 입안을 즐겁게 만들었다. 다시 찾고 싶은 밥집이다.
든든해진 속 덕분에 자동차 속도는 여유가 있다. 낙동강을 따라 봄밤의 기운을 차창을 활짝 열어 가슴 깊숙이 호흡한다. 계획 없이 출발한 봄나들이는 또 다른 멋을 안겨준다. 숙소까지도 삼십 분이면 도착한다. 해 질 무렵에 꽃잎이 남아있는 철쭉꽃을 고마워하며 온 산 가득 채워진 철쭉 구경은 다음 해로 미루었지만 한태령의 참맛을 만끽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