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힘든 과정에서도 이태는 그들과 비교하여 조금 나은 형편이었다.
이태는 지방 대학 법학과를 나온 뒤 대기업 계열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한날, 이태는 회사 사장과 언쟁 끝에 실수로 그를 넘어뜨렸다.
그 결과 사장은 안타깝게도 현장에서 즉사하였다.
‘헉! 이럴 수가!’
그날 일은 사장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
자금부 대리로 근무하던 이태가 앞으로 이중장부 만드는 것을 거부하고, 노조 파괴 공작 일마저 그만두겠다고 한 까닭이었다.
“야, 이 새끼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뭔 놈의 말이 많아? 응?“
“정상적으로 세금 납부하는 게 기업의 도리라고 배웠습니다. 또한, 노조 활동은”
그러자 바로 사장의 손이 날아왔다.
짝!
헉!
순간 이태는 억장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참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다음에 나온 사장에 말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이래서 지방 대학 출신은 안 되는 거야. 알아?”
“뭐요!”
“내가 그리 인사과 놈들에게 SKY 출신을 뽑으라고 했건만, 쯧.”
그 말에 격분한 이태는 화가 치밀어 사장을 밀쳤다.
에라이!
쿵!
그만 그가 넘어지면서 책상 모서리에 뒷머리를 박아 사망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일로 이태는 이례적으로 10년 형을 받았다.
변호사 말론 과실치사라고 해서 3년 형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애써 이태에게 중형을 선고한 것이다.
이태는 이게 당시 교제하던 연인, 유리의 아버지 소행이라고 믿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검 중수부 차장검사였다.
그가 둘의 만남을 방해하려고 재판부에 압력을 넣은 게 분명했다.
이 사실을 검찰청 수사요원으로 있던 대학 동기생에게 들은 것이다.
“분명하다. 검찰과 법원이 한패야.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겠어.”
“안돼. 그럴 순 없어.”
하지만 항소를 위해 변호사에게 요청하였는데, 돌연 그가 사임하였다.
그러면서 그 변호사가 덧붙인 말은 기도 차지 않았다.
그 역시 대학 동기생과 같은 생각이었다.
“이길 수 없는 게임입니다. 상대는 중수부 차장검사니까요.”
결국 이태는 항소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태는 순간, 유리가 생각났다.
대학 후배이자, 연인인 그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 그래서 그동안 면회를 오지 않았구나.’
이태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총반장의 사무실이라면 밖으로 통하는 전화가 분명히 있겠다 싶었다.
과연 TV 옆에 전화가 있었다.
“전화 한 통만 쓰겠습니다.”
“그려. 저기 있네.”
총반장은 대수롭지 않게 전화기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아마 술에 취해 상황판단이 안 되는 듯 보였다.
이태는 다급한 마음으로 전화기를 잡았다.
“여보세요? 유리?”
천만다행이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이태 오빠?”
그녀가 전화를 받자, 이태는 눈물이 핑, 돌았다.
“유리야. 괜찮아? 밖이 난리인 데, 다친 데는 없어?”
“응. 난 괜찮아. 그동안 면회 못 가서 정말 미안해.”
이태는 그녀의 말에 더욱 감동했다.
“오빠도 알다시피 지금 세상은 엉망이야.”
“그래, 그건 나도 알아.”
유리의 목소리를 듣자 이태는 눈물이 핑, 하고 돌았다.
그런데 그녀의 다음 말은 충격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오빠 정말 미안해. 우리 가족 모두 시베리아로 갈 모양이야. 얼굴도 못 보고 가서 정말 미안해.”
“뭐? 시베리아로?”
“미안해.”
이태는 전화기를 떨어뜨릴 뻔하였다.
이곳에서 유일한 희망이 그녀를 보는 것인 이태는 고개를 떨구었다.
“아니, 괜찮아. 대신, 꼭 살아 있어야 해. 내가 반드시 널 찾아갈게.”
“오빠도! 용기 잃지 말고.”
“그래, 그곳에 가면 편지라도 보내줘.”
그러자 그때 총반장이 큰소리로 웃었다.
“편지? 야, 세상이 곧 엉망이 될 텐데 편지가 오겠냐?”
전화를 끊은 이태는 괜스레 눈물이 나왔다.
그러면서 재차 이 사실을 숨긴 교도소 측에 욕지기가 나왔다.
“시벌놈들!”
* * *
그 시각, 정부 과천청사 회의실.
법무부 교정국장과 간부들 그리고 교정위원회 위원들이 회의하고 있었다.
여기엔 전국 교도소 중 대표 자격으로 무산교도소장, 한기백도 있었다.
“사안이 심각합니다.”
머리가 벗어지고 몸이 비대한 교정국장이 말문을 열었다.
이에 간부 중 측근 한 명이 맞장구쳤다.
“그렇습니다. 오전에 대통령 각하께서 시베리아 이주 건에 서명하셨습니다.”
웅성웅성
그는 말을 이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하였습니다. 총리 지시대로 우리 직원들과 가족들도 속히 이주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러자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의 한숨이 나왔다.
‘결국, 이리 해야 한단 말인가.’
무산교도소장은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교정행정직 공채로 들어와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하여 이 자리에 올라온 그였다.
그동안 수많은 재소자에게 린치당하고, 칼 맞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제 한 교도소의 책임자로 멋지게 교정행정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괴물의 출현으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때였다.
“그래서 말인데,”
교정국장은 좌중을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몹시 난처한 경우에 습관처럼 나오는 그의 행동이었다.
“전국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들의 처리 말씀입니까?”
그때 눈치 빠른 간부 중 한 명이 국장의 말을 되받았다.
그의 입에서 재소자 처리 문제가 나오자, 장내는 벌써 술렁였다.
“그렇소. 이미 법무부의 방침이 나오긴 하였소.”
국장이 짧게 말하곤, 또 좌중을 둘러보았다.
“방침이라면? 어떤?”
성질 급한 교정위원 중 한 명이 재빠르게 물었다.
이에 국장 옆에 있던 측근이 말 대신 자기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하였다.
‘ㄱ ㅐ ㅅ ㄲ ㅣ들, 미친 것 아냐?’
무산교도소장은 측근의 행동에 몹시 불쾌했다.
“모조리 죽이고 간단 말씀입니까?”
국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각 교도소 재량에 따라 1/3에서 절반 정도입니다.”
“기준은요?”
“조폭, 흉악범죄자, 전과 3범 이상 폭력, 살인 등 S3, S4 급들만 해당합니다.”
“절반씩이나?”
“아! 물론, 선정은 각 교도소장의 몫입니다.”
술렁술렁
헐!
“될 수 있는 대로 이 기준에 맞추자는 겁니다. 사회정화 차원도 있고, 남아 있는 재소자들의 식량 문제도 포함되어 있어요.”
교정위원의 질문에 국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모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천정을 보거나 땅만 꺼지라고 보고 있었다.
다들 나름대로 예상한 모양이었다.
단, 한 사람 무산교도소장은 예외였다.
그는 탁자를 세게 친 뒤, 벌떡 일어났다.
“안 됩니다!”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측근이 나섰으나, 국장이 말렸다.
“이봐요, 한 소장! 당신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잘 생각해 보시오. 한 달 동안 지켜본바, 괴물들은 감염되기 전 상태가 감염된 후에 그대로 나타난 것이 확인되었소.”
“그게 무슨?”
“이를테면 군인이었던 자는 군인이라는 괴물로, 운동선수였던 자는 마찬가지로 감염된 후 운동선수처럼 되오. 이런 괴물들은 힘뿐만 아니라, 파괴력이 막강하단 말이오. 그러니 살인, 폭력 전과자들이 감염된 후 어찌할 건가는 뻔한 이치 아뇨?”
이어 측근이 국장의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남아 있는 생존자들을 보호하려면,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그는 장내가 술렁이자,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불행의 씨를 모조리 말리는 게 상책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국장과 측근의 말에 교정위원들은 애써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무산교도소장은 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정부 방침이란 말입니까? 아니, 그들도 이 나라 국민이 아니랍니까?”
“그건 그렇지.”
“우리가 재소자를 죽이다뇨! 도대체 이런 발상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겁니까!”
무산교도소장의 예상외 발언으로 몇 교정위원들이 수군거렸다.
“맞아. 유대인 학살도 아니고. 우리가 무슨 권한으로 그 사람들을 죽인단 말이야.”
“설령, 죽인다고 하더라도 어떤 방법을 쓸 거냐고?”
“맞아. 교수형? 가스 살포? 그 많은 자를? 이건 진짜 미친 짓이야.”
하지만 그 목소리는 너무 작아, 국장이 있는 자리까지 전달되지 못하였다.
그러자 국장이 탁자를 탕, 하고 쳤다.
“누구의 발상이라 ……. 알고 싶소?”
“네, 알고 싶습니다.”
무산교도소장이 퀭한 눈으로 반발하자, 국장은 내부 기밀문서 하나를 꺼냈다.
“국정원장, 법무부 장관, 국회의장, 집권당 대표 등의 서명이 들어갔고, 종국엔 대통령이 서명했소.”
국장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대통령까지?’
다시 장내가 술렁였다.
우~. 우~.
“이럴 수가 있나?”
그런데도 무산교도소장은 끝까지 반발했다.
“초안을 법무부 교정국에서 작성했군요. 그건 분명히 국장님과 측근들의 머리에서 나왔을 테고. 어찌 되었든 저는 반대입니다.”
“뭐요? 한 소장!”
한기백은 오늘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의결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교정위원 중 양심이 있는 자들은 마찬가지로 반대할 것을 믿었다.
그때, 회의실 문을 박차고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국장에게 귓속말했다.
수군수군.
“뭐? 그게 사실이야!”
이에 놀란 국장은 측근에게 소리쳤다.
“빨리 TV 켜봐.”
경기도 소재 모 교도소 정문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재소자들이 집단으로 탈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오는 족족, 그들은 괴물들에게 이리 물리고 저리 뜯기고 있었다.
카아아아악!!!, 아악! 아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