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
‘내향적 감각형’ 인간②
◇ 삼성, CJ, 한솔그룹, 중앙일보를 창업한 대한민국의 기업인 이병철(1910~1987) *사진 = 호암재단
흐트러짐이 없이 깔끔하고 튀지 않는 세련된 옷차림은 상당히 감각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는 옷차림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은 직관적 유형의 현대 그룹 창업자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과 대조적이다.
호암은 사업을 구상할 때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자료 수집과 빈틈없는 대책 마련을 중시했고 계획대로 정확하게 실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좀처럼 화내는 법이 없고 아래 사람들에게 보고 받을 때도 좋다 싫다 표현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메모하다 글씨가 비뚤어지면 다시 썼고, 삼성 사옥을 지을 때 외벽의 색상과 대리석 간격을 일일이 직접 결정했다는 일화가 있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면서 실행 능력과 미적 감각이 뛰어난 내향적 감각형 성격의 한 단면이다. 이와 함께 미술품 수집에 대한 애착과 건축, 국악, 서예에 대한 깊은 조예와 관심 역시 높은 수준의 감각적 면모를 보여 준다.
사업뿐만 아니라 목욕과 같은 일상생활조차 일정대로 정확하게 실행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정해진 시간에 목욕물 온도를 미리 맞춰 놓을 수 있을 정도였고, 호암이 목욕하는 동안은 아들들이 아버지에게 들킬 염려 없이 마음 놓고 몰래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호암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 가톨릭 신부에게 24개의 종교적 질문을 던진다.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는지,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종교란 무엇이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인지와 같은 근원적 질문을 포함한다.
질문 자체는 종교의 본질에 관한 진지하고 철학적인 내용으로 보이나 그 이면에는 직관적 통찰보다는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관점에서 종교를 바라보는 사고방식이 엿보인다.
추상적 질문을 던지면서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답을 구하는데, 이는 본질을 꿰뚫는 직관형이나 관념적(추상적) 사고로 시작되어 주관적 관념으로 귀결되는 사고형의 사고방식이기보다는 구체적 현실에 바탕을 둔 감각형의 사고방식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또 이런 일화도 있다. 호암이 한번은 일식을 제대로 배운 신라호텔 조리부장에게 초밥에 밥알이 몇 알이나 들어가는지 묻자 조리부장이 당황하며 그 자리에서 밥알을 세어 답했다.
그러자 호암은 낮에 먹는 초밥의 적당한 밥알 개수와 저녁에 술안주로 먹기에 좋은 밥알 개수를 정확히 알려 주어 조리장을 부끄럽게 했다. 이 역시 구체적인 자료를 중시하는 감각적 성격의 유형일 가능성이 큼을 시사한다. <계속>
글 | 김창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