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설피(雪)가 남긴 흔적
인묵 김형식
깊은 밤
누군가가
외양간을 들러 간다
처마 밑
달구(狗) 녀석
알면서도 짖는 일이 없다
굶주린
고라니 식구들
"설피를 또 찍고 갔다
* 설피 : 눈이 많은 산간 주민들이 신바닥에 덧대어 신는 덧신
2).내려놓으라
인묵 김형식
화엄사
가시거든
내려놓고 오시라
절집에 오르는 길 우측편에 돌다리
부처님의 언중사리가 그곳에 살고 있다
다리에
새겨놓은
'방하착(放下着) 언중사리
눈 밝은 중생들이 이 다리를 지나면
부처님은 화엄계곡에 사리를 방생하신다
'방하착'
언중사리
방생하라 이르신다
마음을 비우시고 탐진치 내려놓고
화엄사 오르시거든 방생하고 오시라
3).시인 여상현*
인묵 김형식
덧없는 세월 속에 흔적만 남았구려
인걸은 가고 없어도 봄날은 다시 왔도다
여상현(呂尙) 선생님은 한산(韓山) 여주현(呂) 시인의 백씨(氏)
바람에 구름 가듯 살다 간나그네여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바람이 되어
내 조국 이 산야를 얼마나 헤맸던가
성황당 돌무더기 느티나무 그림자
당신을 기다리며 놓을 수 없었던 지난 세월
화순동면 샘골에 놓고 가신 빨간 자전거
그 숨은 뜻을 이제사 알 것 같습니다
당신의 예지력을 그때는 읽을 수 없었습니다
자유여 내 조국이여 한 많은 38선이여
이제는 걸림 없으니 이 땅에 편히 영면하소서
* 시인 여상현:선생은 1914년 전남 화순군 동면(샘골) 451번지 출생하여
1936년 '시인부락, 동인으로 등단, 서정주 시인 등과 시인부락 활
동 1939년 연희전문학교 졸업,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하여 납북, 시집 <칠면조(鳥)》(1947) 상재, 해방기 우리의 시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시인으로 평가, 재조명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