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금손, 흙손 할 것 없이 자신의 미적 감성을 가감 없이 들어내는 표현의 시대다. 여기에 여행이 더해지면 어떨까? 서울에서 출발하는 해남남도수묵기행은 1박2일 동안 해남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만나는 시간이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우리 삶 속으로 이어지는 한 폭의 전통문화예술과 마주할 수 있다.
내 맘대로 그려보는 한 폭 수묵화, 화가 시연
남도수묵 속으로 가는 여정7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분주한 새벽을 맞이했지만, 단독으로 움직였다면 어림 반 푼도 없는 착한 가격과 남도의 문화를 만날 생각에 기분은 봄바람처럼 들뜬다. 이렇게 고마운 일정을 마련해 준 것은 해남군과 행촌문화재단이다. 이곳은 지난 2017년부터 남도수묵을 주제로 전통문화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에서 출발해 다시 서울에서 끝나는 1박2일 일정이다. 남도수묵기행이라는 이름처럼 일정은 남도의 수묵을 느끼는 꽉 찬 프로그램으로 이어진다.
6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녹우당과 차의 발원지로 알려진 일지암 등 명승지를 들르고, 남도 한정식을 먹고 차와 막걸리를 마신다. 마을 구경도 하고 수묵과 테라리움 같은 체험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숙소는 사찰에서의 템플스테이로 3번의 공양과 산책, 판소리 공연 등이 더해진다. 얼핏 보면 남도수묵과 상관없을 것 같지만 사실 이보다 더 깊게 우리 수묵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까지 이어지는 전통 문화와 자연이 그대로 수묵의 주제이고 대상이기 때문이다.
1일차 - 남도문화와 자연, 수묵화로 그려지다해남에 도착하면 딱 점심시간이다. 남도에 와서 한정식 못 먹으면 서운할 수 있는 여행자의 마음을 헤아렸을까? 해남에서의 첫 만남은 남도 한정식이다. 한정식하면 떠올라지는 갖가지 요리들과 지역 특색이 듬뿍 담긴 젓갈이며 김치, 밑반찬까지 따스하게 잘 차려진 한 상이다. 점심식사 후에는 수묵 체험을 위해 수윤아트스페이스로 향한다. 수윤아트스페이스는 행촌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자연 복합문화공간이다. 전시와 교육, 체험과 나눔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하며, 주민들이 자연과 예술에 어울려 한 바탕 놀 수 있는 곳이다. 남도수묵기행 참여자들은 행촌문화재단 관장님의 전시 설명을 듣고 수묵화가와 함께 수묵그리기 시간을 갖는다. 수윤아트스페이스 방문 전후로 마을 구경을 할 수 있다. 때때로 마을에서 잔치가 열리거나 장이 서면 동네 구경과 함께 지역민들 속에 잠시 어우러져 머물 수 있는 시간도 일정에 포함한다.
남도수묵기행의 숙소는 천년고찰 대흥사다. 다소 종교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불편을 감수해야 하며, 규율이 엄격할 것이라 미리 짐작하게 하는 템플스테이지만, 남도수묵기행에서의 템플스테이는 다르다. 사찰의 역사는 곧 우리의 역사라는 행촌문화재단의 방향에 따라, 템플스테이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전통문화와 자연을 체험하는 시간이 되어준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템플스테이 전용 한옥은 보일러와 화장실을 갖춰 따뜻한 잠자리와 편안한 목욕이 가능하다.
2일차 - 풍류를 아는 자, 절로 그려진 수묵화둘째 날 첫 번째 일정은 차 문화의 발원지로 알려진 일지암 산책이다. 1.1km의 오르막이지만 아스팔트 바닥이라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 어느덧 일지암에 다다르니 탁 트인 전경과 새소리, 풍경소리가 어우러진 산사의 아침과 마주한다. 일지암에서도 우리 문화를 만나는 시간이 마련된다. 판소리와 다도체험이다. 숲 속 암자에 앉아 새소리, 바람소리 어우러진 명창의 소릴 듣다니! 암자를 지키는 스님이 따라주는 차 한 잔 맛보다니!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감동이 온 산을 휘감아 심신을 뒤덮는다.
다시 내려온 대흥사에서 점심 공양을 마치고 새금다정자로 향한다. 새금다정자는 차를 사랑하는 주인이 한옥과 차를 접목한 공간이다. 달곰쌉쌀한 인생 같은 차 한 잔 나누며 한옥 정취에 빠져본다. 마지막 일정은 3대를 이어 막걸리를 빚는 삼산주조장이다. 한 잔 막걸리 안에 백년 역사가 들어있다. 여정의 마무리로 손색없는 맛이다.
쏜살같이 지나간 1박2일, 막걸리 핑계 삼아 엉덩이 붙이고 일어나고 싶지 않지만, 서울로 향하는 버스가 기다린다. 해남의 추억을 주머니에 쏙 담아 집으로 돌아간다.
일상 속 살아있는 전통 한 폭여행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 남도수묵기행의 여운이 끝나지 않는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우리가 그곳에 있었고, 그런 나를 한 번 보고 나니 전통이라 부르던 장면들이 계속 삶 속으로 투영된다. 화분 하나에도 생명이 느껴지고, 문 여닫는 소리에도 한옥 기와가 떠올라진다. 풀과 나무를 보면 흙손임에도 그림을 그리고 싶고, 평소 눈여겨보지 않던 국악 방송에 리모컨을 멈칫한다. 모든 순간이 수묵화 한 장이다. 작은 동네책방에서 만나는 수묵화가 담긴 책갈피며 연필, 홍매화 붉게 그려진 찻잔에 지갑이 열린다. 용돈 바닥을 조심해야 한다. 남도수묵기행, 그 여정이 그곳에서 끝나지 않고 오래도록 내 주변에 머문다. 아름다운 우리 문화, 자연과 더불어 있는 그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이제 깨달아 진다. 여정은 계속된다. 전통은 내 아래 숨어있던 배경색이었다.
매일, 모든 곳에 쓰고 싶어지는 테이프(국립중앙박물관 북스토어)
모니터 옆에 두고 싶은 작은 꽃병(국립중앙박물관 북스토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근대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 특별전시가 진행 중이다. 박물관 내에는 전시 외에도 다양한 우리문화 상품들을 판매한다. 구입해 소유하지 않더라도 눈으로 보는 것마저 호강이다. 곱고 아름답다. 무엇보다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것 같은 익숙함을 발견할 것이다.
여행정보행촌문화재단
- 주소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남로 45
- 문의 : 061-533-3663
- 홈페이지 : http://haengchon.or.kr
해남종합병원설립자 행촌 김제현박사를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문화재단으로 행촌미술관과 창작공간 이마도작업실, 수윤아트스페이스를 운영한다. 행촌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남도수묵기행은 2019년 3월부터 10월까지 총 18회 운영한다. 비용은 템플스테이와 식사, 체험비 등 10만원 내외다. 홈페이지에 예약이나 문의사항을 남기면 재단에서 전화를 걸어준다. 일정 및 프로그램에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 전화로 보다 자세한 사항을 문의하면 좋다.
국립중앙박물관
- 주소 :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 문의 : 02-2077-9000
- 홈페이지 : www.museum.go.kr
서울 용산구에 자리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역사와 문화의 가치를 전하는 박물관으로 연중 다양한 전시와 교육을 진행한다. 지난 4월 16일부터 2019년 6월 2일까지 ‘근대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 특별전시를 연다. 근대 서화의 거장 심전 안중식 선생의 서거 100주년 기념전으로 당대 근대서화 작품 100여 건을 전시한다. 관내 북스토어에서 우리 문화가 디자인된 다양한 문화상품들도 만날 수 있다. 특별전 입장료 성인6,000원, 어린이 및 청소년 4,000원
글, 사진 | 김애진(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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