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바다는 어머니다! (隨筆)
지온 김인희
코로나 19의 팬데믹이 먼 나라 세계를 바이러스로 꽁꽁 묶어 지구촌이라는 공동체 의식 안으로 가두어 버렸다. 우리나라 코로나 19의 초기 대응은 감동의 드라마였다. 정부와 의료진들과 온 국민이 혼신을 쏟아부은 사투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마스크 때문에 약국 앞에서 장사진을 이룬 모습은 전대미문이었다. 학생들로 시끌벅적해야 하는 학교는 텅 빈 창고와 다를 바 없었고 학생들이 없는 운동장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시장통에는 오가는 사람들의 왁자지껄 대신 상인들의 한숨 소리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공공장소에 갈 때 마스크는 필수로 챙겨야 하는 일상이 되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는 예쁜 아기의 얼굴을 덮은 마스크가 전혀 생경하지 않았다. 대학생들이 등교 수업 대신에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면서 대학생이 없는 대학가의 원룸과 상가들의 고충은 도미노 현상이 되었다.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 기원하는 것은 다만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역사의 기록을 다시 쓴 긴 장마로 인한 수해를 미처 복구하기도 전에 밀어닥친 태풍의 질타에 아연하고 한 가닥 희망마저 잃고 주저앉게 했다.
코로나 19의 어두운 위력은 고스란히 나에게도 드리웠다. 나는 십 년이라는 긴 시간을 동고동락했던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충격으로 휘청거렸다. 남편은 직장 생활하느라고 힘들었으니 기회 삼아 편히 쉬라고 위로했다. 자녀들도 어깨를 감싸주면서 고사리손으로 토닥토닥 두드리면서 희망을 속삭였다. 가족들 앞에서 밝은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지내려고 노력했다. 온종일 일하고 퇴근한 남편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리면서 미주알고주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연신 토해냈다.
그러나 혼자 있는 시간에는 거침없이 추락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천 길 낭떠러지에 홀로 서서 위태위태한 발밑을 주시하는 듯 두려웠다. 직장 상사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에 부르르 떨면서 식사를 거르고 잠을 설치는 날들이 이어졌다. 직장 상사는 직장이 바쁘고 어려울 때 삼고초려하여 제갈공명을 모시는 유비의 심정으로 애원한다면서 세 번 나를 찾아왔었다. 십 년이라는 긴 시간을 주인의식을 가지고 몸 사리지 않고 로봇처럼 일했었다. 그래서 더 가혹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는지 모른다. 내 믿음을 송두리째 곤두박질하게 만든 배신감에 뜨거운 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옹달샘처럼 솟구쳐 흘렀다.
태양이 몸부림치는 8월 한 달 동안 방학을 맞은 두 자녀와 옴짝달싹 못 하고 집안에 갇혀있었다. 긴 장마에 발이 묶여 아웅다웅하고 티격태격하면서 지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의 우울함과 분노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거침없이 도달하는 상황에 몸서리치게 놀랐다. 스스로 자책하는 시간이 켜켜이 쌓이더니 작은 것도 참지 못하고 화를 폭발하면서 가족의 가슴에 화살을 쏘고 있었다. 나는 괴물처럼 변해가는 스스로에 충격을 받고 뛰쳐나왔다.
내 얼굴에는 눈물이 범벅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처럼 상처를 끌어안고 울면서 가족에게 내 슬픔을 전가하고 있는 현실을 죽도록 미워했다. 나는 짐승처럼 울부짖으면서 보령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내 아픔을 꺼내놓고 치유를 받고 싶었고 내 슬픔을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을 그리워하면서 하늘에 있는 어머니를 부르짖고 있었다.
한 시간을 자동차로 달려서 보령 바다에 다다랐다. 8월 끝자락의 태양은 한여름의 열과 빛을 여과 없이 내리쏘고 있었다. 피서객들이 떠나버린 바다는 고요했다. 코로나 19로 세계인의 축제인 머드축제가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는 비보 탓이었을까? 고요한 바다의 정취가 슬픔으로 부딪혔다. 나는 신발을 던져버리고 한적한 백사장을 걸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었다. 다시 저쪽 끝에서 이쪽 끝까지 걸었다.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처음에 백사장에 맨발로 들어섰을 때는 불에 달군 숯불 위를 걷는 것처럼 발바닥이 뜨거웠다. 소라껍데기와 조개껍데기의 잔해들로 찔린 발바닥은 대못에 찔린 듯 깊은 고통이 파고들었다. 그러나 산더미처럼 쌓인 마음의 상처를 하나씩 토해내면서 걸을 때 발바닥에 간질거리는 뜨거움과 찔림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처럼 시원한 감촉으로 다가왔다. 미움과 원망에 혈안이 되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던 내게 보령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촉감과 하모니를 이루면서 온몸을 휘감아왔다.
한참을 걷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백사장에 밀착되어 다가오는 밀물은 작은 조가비들의 잔해를 데려다 놓았다. 목화솜처럼 몽글몽글 피어나는 물방울을 뭉텅 내려놓고 있었다. 밀물은 다시 썰물이 되어 물러갔다. 방금 데려다 놓았던 조가비들의 잔해를 어르다가 미련 없이 떠나갔다. 또다시 밀물이 되어 다가오고 썰물이 되어 떠나가는 자맥질은 끝없이 이어졌다. 마치 그것만이 충실한 임무인 것처럼 쉬지 않고 원망도 없이 지치지 않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우뚝 멈추고 난 후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었다. 내 발을 간질이는 백사장과 조개와 소라가 들려주는 전설이 들려왔다. 가없는 자맥질을 멈추지 않는 물살과 먼 수평선의 파도는 답답한 내 가슴에 파고들어 후련하게 했다. 먼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외로운 작은 섬은 시나브로 시간이 흐르면서 외롭게 보이지 않았다. 파도가 연주하는 여림과 강한 포르테의 박자에 맞추어 물살은 왈츠를 추었고 갈매기는 소프라노와 알토로 완벽한 합창을 연출했다.
그 아름답고 웅장한 바다의 한 귀퉁이에서 한 여인을 발견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겠다던 시인의 시구를 읊조리던 소녀는 성인이 된 두 자녀를 둔 지천명이 되었다. 잎새에 스치는 작은 바람조차 바르르 떨고 몸서리치면서 순수를 지켜내겠다고 노래하던 여인이 세상 풍파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품을 파고들 듯 백사장에 살포시 앉아 물살의 자맥질에 상처를 내맡겼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쓰다듬어주는 짭조름한 바람에 고개를 조아렸다. 햇살을 받아 다이아몬드 몸짓이 된 작은 모래알을 한 움큼 쥐었다. 무수한 모래 알갱이들이 백사장을 이루고 거센 파도에도 꼼짝하지 않는 사연을 귀담아 두었다.
그리고 나는 일어서서 위풍당당 걷기 시작했다. 나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보령 바다에서 잠시 머무른 시간은 어머니의 품에서 단잠을 잔 듯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힘이 꿈틀하고 태동했다. 내가 받은 위로의 에너지를 피서객이 뜸해서 우울했던 해수욕장과 온라인 개최로 인해 쓸쓸했던 머드축제장에 덜어주고 돌아섰다. 찬란한 미래를 초대하면서 보령 바다가 준 위로를 차곡차곡 마음에 담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저녁 찬거리를 장만했다. 거실 한가운데 큰상을 펴고 온 가족이 둘러앉은 저녁 식사는 상다리가 휠 정도의 만찬이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 가정을 수호하는 어머니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남편과 자녀들이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지쳤을 때 휴식을 얻을 수 있는 보령 바다와 같은 아내와 어머니가 되어주고 싶다. 내게 어머니가 되어준 보령 바다처럼 나도 가족에게 따뜻한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
첫댓글 보령 해변시인학교 문학부문 공모전
<보령바다는 어머니다!> 수필 출품작
11월 1일 詩의 날에 동상 수상했습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었습니다.
수상을 했고, 사회복지사가 되었습니다.^^
정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