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예배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 예배에 대한 관심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그래서 내 걸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주제는 "예배 회복"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예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입니까? 그것은 그만큼 현대인들이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요인은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바쁘고 생각이 복잡해서 예배는 드리지만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경우... 또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레저 등에 심취해 있어서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몸 상태나 정신 상태가 좋지 못하여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경우... 혹은 예배 인도자나 설교자, 혹은 예배를 위하여 봉사하는 분들의 준비 부족 등... 여러 요인에 의하여 은혜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예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은혜 받지 못하니까 그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자기가 은혜 받지 못한 원인을 다 남의 탓으로만 돌립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은혜 받지 못한 원인이 정말 남에게 있는 것입니까?... 남 때문에... 상황 때문에... 내가 은혜 받지 못한 것입니까?...
물론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되나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은혜 받을 자세만 되어 있으면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은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마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꼭 만나려는 사람은...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으려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가짐부터가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세도 달라야 합니다. 이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 레위기이며... 그중 오늘 본문이 그 시작으로서 5대 제사를 말씀하고 있는데 이 5대 제사는 오늘날의 예배의 전신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5대 제사가 무엇이며 그 정신은 무엇인가를 살펴봄으로 예배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규명하여 오늘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를 더욱 새롭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첫 번째로 번제(A burnt offering)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번제는 구약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제사로서 이 제사의 특징은 제물을 조금도 남김없이 다 불태워 버리는데 있었습니다.
그 의미는 제사를 드리는 자가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서... 또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완전히 불살라 드리는 완전한 "자기 부인"을 통한 하나님을 향한 "전적 의지" 혹은 "전적 의탁"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배드리는 자가 먼저 자기 부인을 철저히 하고 예배에 임한다면 그는 반드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을 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번제는 바치는 그 제물이 흠없는 제물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 번제를 드리는 자는 자기가 바치려는 제물이 흠이 있는가 없는가를 먼저 철저히 점검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흠이 있는가 없는가를 점검하는 과정을 거친 후... 흠이 없을 경우에 그 제물이 바쳐졌던 것이지 만일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것이 발견되기만 하면 제사장에 의하여 그 제물은 되돌려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또한 오늘의 예배에 귀하게 적용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자가...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를 받기 전 먼저 자기를 드려야 하는데 온갖 잡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가운데 예배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린다면... 또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미움 시기 질투 원망... 이런 오만가지 생각으로 가득찬 가운데 예배를 드린다면... 그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마치 흠없는 제물이 아니라 흠있는 제물과 같은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치 않는 예배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 전에 먼저 자기 마음을 점검하고 잘 다스려야만 할 것이고 하나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야만 할 것입니다.
또한 번제는 제사 드리는 자가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이 안수란 자신의 모든 것을 제물에게 전가시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모든 죄도 다 제물에게 전가하고 자신의 모든 허물도 다 제물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예배드리는 자들도 먼저 자신의 모든 죄와 허물을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는 그런 작업이 필요한데 우리가 예배 시간에 행하는 고백의 기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고백의 기도시간은 매주일 건성으로 드려서는 안되고 정말 고백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죄와 허물을 하나님 앞에 다 고하고 그리고 죄 사함을 받아야만이 예배자로서 하나님 앞에 있을 수 있는 것이지 만일 그렇지 않고 고백의 기도를 대충하고 만다면 그는 틀림없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할 것이며 은혜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번제의 특징은 번제를 드리는 사람은 자기가 직접 그 제물을 잡아야만 했는데 이것은 예배드리는 자의 정신과 자세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예배드리는 자가 모든 것을 다 예배를 진행하는 목사님에게 맡기고 나는 은혜만 받겠다 당신은 나에게 은혜를 끼쳐봐라... 하는 식으로 예배에 임한다면 이것은 옳지도 않고 그런 사람은 절대로 은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자신의 죄인됨을 알고 또 허물이 많은 존재임을 알고 먼저 진심으로 고백의 기도를 드리며 눈물을 흘린 후에 죄 용서함을 받고 찬송을 부르고 설교를 들으며 예배에 임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그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듬뿍 받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마는 예배를 예배되게 하고... 진실로 나의 예배를 개선하고... 예배를 회복하기 원한다면... 먼저 예배자 자신이 바르게 되어야 한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고 항상 예배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은혜로운 예배 말씀이 꿀송이처럼 단 예배가 될 줄 믿습니다.
다음 두번째로 드릴 말씀은 소제(A grain offering)입니다.
이 소제란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충성을 의미하는 제사인데 이 소제의 특징은 하나님께 드리려는 곡식을 곱게 빻는데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완전히 분해하여 가루가 될 때까지 빻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번제는 바치려는 제물을 완전히 다 태우는데 그 특징이 있다면 이 소제는 바치려는 곡식을 완전히 다 가루로 만드는데 있는데 태우는 것은 불을 질러서 확 태우면 되지만 가루를 만드는 것은 정성도 들어가야 할 뿐만 아니라 시간도 제법 걸리는 말하자면 꽤 힘든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제를 드리려는 자는 반드시 이러한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오늘날의 예배도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드리려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다 빻아서... 고운 가루로 내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그런 인식과 실제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소제에는 제사 드리는 자가 곡식을 완전히 가루로 빻은 후에 그 위에 고운 기름인 유향을 부었습니다.
그런데 이 유향은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보통 기름이 아니고 아주 귀한 기름일 뿐만 아니라 이 유향이 의미하는 것은 기도이기에 이 소제에 유향이 첨가된다는 것을 오늘 날의 예배에 적용하면 먼저 울퉁불퉁한 자신을 완전히 갈고 그 위에 기도의 유향을 부어야 그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가 되고 그런 예배를 통해서 은혜도 받고 하나님도 만나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곡식을 고운 가루로 완전히 다 빻은 다음에 그 위에 유향은 부어야 하나 반드시 넣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누룩과 꿀이었습니다.
누룩이란 실제보다 크게 부풀리는 것이 누룩이고 꿀은 어떤 물체 위에 달콤한 것을 바르는 것으로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빻아 드릴 때에 실제보다 좀 부풀려 드리는 것은 옳지않을 뿐 아니라 달달하게 꿀을 발라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도 옳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세번째로 드릴 말씀은 속죄제(The sin offering)입니다.
속죄제는 말 그대로 죄를 사함받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로서 삶의 한 가운데서 죄를 짓고 살던 사람이 자신의 그 죄를 인식할 때마다 그 죄를 속하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를 말하는데.. 이 속죄제는 제사장이나 회중 혹은 족장이나 평민 등 누구든지 다 해야만 하는 제사로서 예외가 없는 제사였습니다. 그만큼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속죄제를 보면 제사 드리는 방법은 번제와 비슷하나 이 제사가 번제와 구별되는 것은 번제는 매일 정규적으로 드려야만 하는 제사라면 이 속죄제는 죄를 깨달을 때만 드리는 제사라는데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 속죄제를 오늘 날의 예배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광야와 같은 이 땅에서 살다가 만일 의도적이든 실수로든 죄를 짓게 된다면 반드시 회개의 제사 즉 회개의 예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회개의 예배가 보통 예배가 아니라 정말 지성을 다하여 드리는... 자신을 다 태워 드리는 번제와 같은 예배로서 드려질 때 그에게 죄사함의 은총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렇게 하지 않고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깊이 뉘우치지도 아니하고... 철저히 회개하지도 아니하고... 그저 건성으로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됩니다. 이런 식으로 예배한다면 그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대부분 볼펜이나 만년필을 사용합니다마는 저는 아직도 연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연필을 보면 그 끝에 지우개가 달린 것이 있고 지우개가 달리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이 연필 끝의 지우개는 처음부터 달린 것이 아니고 한동안은 그냥 연필만 써오뎄는데 죠셉 딕슨이란 사람이 연필로 글을 잘못 썼을 경우 잘못된 그 글을 즉시 지울 수 있도록 연필 한쪽 끝에 지우개를 다는 좋은 아이디어를 내었는데 저는 속죄제도 마치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마치 죄를 그때 그때 지우는 지우개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네번째로 드릴 말씀은 속건제(The guilt offering)입니다.
이 속건제는 신앙인이 이웃과 관련하여 물질문제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제사로서 속죄라는 관점에서 보면 속죄제나 속건제가 다같이 죄사함을 받는 제사이나 이 둘이 서로 다른 점은 속죄제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드리는 회개의 제사라고 한다면 속건죄는 돌이킬 수 있는 죄에 대한 회개의 제사라는 점에서 그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돌이킬 수 있는 죄가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죄도 있나.. 하고 물으시겠습니다만, 사실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간음한 이후 이 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그 여자의 남편 우리야를 살해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나중에 그가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 했다고 해서 죽은 우리야가 다시 살아 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해도 그것이 원상복귀가 불가능할 경우에는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남에게서 돈을 빌려 갚지 않고 슬그머니 떼어 먹었는데.. 지금에 와서 그 잘못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 나의 지난 날의 행동은 정말 크게 잘못되었다구나...
그래서 이 사람이 진심으로 깊이 뉘우치고 진심으로 회개하려 한다면 그는 그렇게 회개한 이후 자기만 마음 먹으면 그 물질을 원상복귀 시킬 수도 있으므로 이런 경우에는 속건제를 드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단 속건제사를 드릴 때는 하나님께 제물만 바쳐서는 안 되고 반드시 당사자를 찾아가 용서를 빌어야 하고 또 반드시 당시 범죄한 물건에 5분의 1을 더하여 보상하여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 물가변동도 있고, 불어난 이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10년 전에 누구에게 천만원을 빌려가면서 꼭 갚겠다고 약속하고는 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차일피일 미루다가 끝내는 그것을 떼어먹고 지냈는데 이제 와서 깊이 깨닫고 회개하려 할 때에는 그 당시 빌렸던 원금인 천만원만 달랑 갚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뽕나무 위에 올라갔던 세리장이 삭개오 그는 예수님을 만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남에게 토색한 것이 있다면 거기에 4배나 더하여 갚아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바로 이런 정신이 예배자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원리를 오늘의 예배에 적용한다면 오늘 우리도 말로만 잘못했습니다 회개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되고 삭개오처럼 회개의 진실된 모습이 현실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나야만 하겠습니다.
마지막 다섯번째로 드릴 말씀은 화목제(A fellowship offering)입니다.
이 화목제는 말 그대로 하나님과 사람의 화목을 위한 제사를 의미하며 그 특징은 나눔에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번제나 속죄제나 속건제나 소제의 경우 모든 제물은 다 태워져 다 바쳐지던지 아니면 태워져 바쳐지는 것은 다 바쳐지고 제사장에게 돌아가야 할 몫은 제사장에게 돌아갔는데 이 화목제는 이와는 달라서 기름은 하나님 앞에서 다 불태우고 제사장의 몫으로 정해진 제물의 오른 쪽 가슴과 오른 쪽 뒷다리를 제외한 모든 부분은 제물을 바치는 자가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는 것이 다른 제사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을 오늘의 예배에 적용해보면 일종의 잔치라고도 볼 수 있겠는데 하나님께 예배드린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들이... 예배 후에 함께 모여 떡을 떼고 함께 공동식사를 하는 것... 이런 것이라 생각됩니다.
요즘 우리의 주일 점심 공동식사가 바로 그것이라 말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공동식사를 통하여 서로 화목하게 되는 일이 증진될 뿐만 아니라 서로를 세워주고 서로 온전히 하나가 되어져 가는... 그리하여 이 지상에서의 바른 삶이 실현되는 그런 행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말씀하셨는데 오늘의 이 말씀이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리고 온 맘과 정성 다해 예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금년도도 가을에 접어 들었습니다.
만물이 결실하는 계절 이 가을에 우리의 예배도 한 단계 더 올라가 성장하고 성숙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정확하게 누군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느 분은 이렇게까지 말하였습니다.
이 지상에서 예배를 정성껏 준비하지 못하고 또 예배를 즐길 수 없는 사람들은 천국 가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은 영원한 예배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천국은 영원토록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곳이기에 우리 대구평강교회에 속한 모든 교우들도 다!! 지금까지도 잘해왔지만 이제부터는 더욱 더 잘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온 맘과 정성 다해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놀라운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일들이 예배를 통해서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임 정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