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9일 목요일. 2월의 생활을 매듭짓는 일기.
2월 1일은 아내의 생일이다. 금년은 만 80회 생일이다. 그래서 딸이 8순 잔치를 하겠다고 좋은 식당에 예약을 한다고 한 것을 못하게 했다. 잔치를 하려면 손님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게 손님으로 초대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우리 식구끼리 식사할 자리를 예약했다고 했다. 그런데 아내가 딸이 이사하면서 우리 집으로 오게된 냉장고 침대 등의 자리와 내부 등을 정리하면서 무리를 했던지, 허리에 통증이 오고 아파서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치료하면서 움직이기가 힘들어져 식사 자리 예약도 취소하게 했다. 그리고 생일에 새로 이사한 딸네 집에서 딸이 간단하면서도 정성껏 준비한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생일 케익을 나누며 축하 행사를 했다. 딸이 이사한 집에서 식구끼리 집들이를 겸한 셈이 되었다. 딸이 엄마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식당에 가서 맛있는 식사를 하자고 했다. 하지만 용돈도 주었고, 더 이상 하지 않아도 생일은 잘 지낸 것이 되었다. 그런대도 딸이 팔순을 보내는데, 식구끼리 식사라도 맛있는 식당에 가서 해야 된다고 해서 12일 월요일에 점심 식사로 맛있는 횟집에서 푸짐하게 딸네 식구들과 식사를 하며 8순의 회포를 풀었다. 아들은 미국에서 축하 전화를 하고 돈을 부쳐왔다. 8순이라고 해서인지 다른 때 보내준 돈보다 5배 정도를 더 보냈다. 8순 잔치도 하면서 여러 사람의 축하도 받았으면 좋을지 모르겠으나, 친척도 친구도 모두 멀리 있고, 가깝게 지내지를 않아서 잔치를 하기에는 우리에게 적당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만 확인했다. 우리 부부는 아프지 않고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말고, 자녀손들에게 도움이 되는 부모로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만을 소원하며 살고 있다.
2월 10일은 설날이었다. 우리나라의 고유 명절인 설날은 많은 사람들의 고향 방문 등 민족의 대이동이 있는 날이다. 금년 설에도 4일간의 연휴가 되고 많은 사람들의 이동으로 도로가 혼잡을 이루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 부부는 갈 곳도 없고 오는 사람도 없어 한가한 명절을 보냈다. 아들은 미국에 있고 딸은 같은 아파트 위아래서 살기에 딸네 식구들과는 매일이 설날과 같다. 아들은 미국에서 전화를 하고 돈을 보내주고, 딸은 과일이며 갈비 등의 고기와 용돈도 주기에 우리의 명절은 물질적으로는 풍성하다. 예전에는 조카들이 다녀가기도 했는데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인지 요즘은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래도 지숙이, 이나, 용석이가 선물은 보내 준다. 나도 답례로 선물을 보냈다. 물질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시대가 되어 서로 돕고 의지하는 풍습은 없어지고 개인주의 사회가 되어 자식들도 친척도 모두 각자의 인생길이 바쁘게 되고,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여유를 즐기는 생활 패턴으로 변하는 사회 모습을 명절 때면 더 실감 하게 된다. 시대의 변화, 세대 차이 등을 잘 인식하며 내 삶도 아름답게 가꾸어 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2월인데 비교적 포근한 날이 많아서 지하철 여행도 7회 했다. 3시간 이상 걸으면 다리에 통증이 와서 걷기가 어려워 3시간 반 정도를 최고로 걸었고, 3시간 이내로 걸을 수 있는 곳에 다녔다. 얼마나 더 도보여행을 할 수 있을 가 가늠이 안 되지만 조금의 아픔은 견디면서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다니려 한다.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면 누군가 자동차로 같이 다닐 수 있다면 좋으련만 기대가 되지 않기에 걸을 수 없다면 오래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금년을 포함해서 3년만 더 살면 아버지의 나이만큼 사는 것이 된다. 아버지의 나이만큼 살고 죽는다면 복이 될 것 같다.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죽음에 대한 염려나 두려움은 없다. 지금과 같은 행복한 삶이 계속 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를 원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수많은 갈등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정치적으로 여야의 갈등을 비롯해서 지역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종교의 갈등, 부자와 가난한 자간의 갈등, 가족 간의 갈등 등, 그 가운데 가족 안에서 세대 간의 갈등을 요즈음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긴장이 되기도 한다. 딸과 나는 41년의 나이 차이가 있다. 딸이 살아 보지 않은 세상을 나는 41년을 더 살았다. 가까이 살고 있으면서 아침 저녁으로 자주 만나는 외손주들과는 70년 이상의 나이 차이가 있다. 많은 나이 차이로 인해 견해가 다르게 나타난다. 자기들이 살아 보지 않은 세상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과거는 미개한 사회로 인정해 버리는 것 같다. 엄청나게 발전하는 사회 속에서 과거의 것은 배울 것이 없고 무시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아예 무시해 버리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해서 서운하게 한다. 손주들은 스마트 폰에 열중하면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무슨 말을 해도 아예 못 들은 척 하거나 대꾸를 하지 않는다. 할아버지와는 할 이야기가 없다는 표정이다. 사안에 따라 손주들에게 간섭하지 말라는 말도 듣게 된다. 빠르게 발전해 가는 문명에 대처할 수 없고 무식하게 되어 천대를 받아 마땅한 처지가 되고 있는 것이 안타갑다. 너무나 모른 것이 많아 자주 묻게 되어도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잘못된 것은 고쳐주면 좋으련만 귀찮아 하고 싫어하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없어 그냥 포기하며 살아야 할, 노년이 감수해야 할 생활인 것 같다. 너무 오래 살면서 세대 차이를 자꾸 되새기며 살아야 할 처지가 서글픔을 더할 것 같아 안타갑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