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2) 클림트의 ‘다나에’

[수호천사]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2) 클림트의 ‘다나에’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경향신문 입력 : 2011-01-09 20:59:51ㅣ수정 : 2011-01-10 02:37:52

혁명 같은 사랑을 꿈꾸는 여인　

잠을 자고 있는 걸까요?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그녀는 꿈 같은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곡옥처럼 예쁜 자태로 사랑을 연주하는 여인,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사랑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긴 저 여인은 누굴까요?
 

클림트, 다나에, Gustav Klimt (1862–1918), Danae, 1907-08, oil on canvas, 77 × 83 cm, Leopold Museum, Vienna, 오스트리아
1907~08년, 캔버스에 유채, 77*83㎝, 개인소장.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Gustav_Klimt_010.jpg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8/Gustav_Klimt_010.jpg

Consort	Zeus, Polydectes (almost)
Parents	Acrisius and Eurydice
Children	Perseus

저, 세상을 바꿀 꿈을 꾸고 있는 여인은 바로 다나에네요. 과연 제우스와 사랑에 빠진 여인답습니다. 티치아노의 다나에는 황금소나기로 변한 제우스가 빛나고, 렘브란트의 다나에는 남자를 기다리는 따뜻한 연인의 그리움이 강조되어 있다면, 클림트의 다나에는 사랑 속에서 혼연일체가 된 관능적 여인의 모습입니다. 저 그림은 관능이 한낱 말초적 감각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총체적인 경험임을 알려주는 교과서 같습니다.

다나에의 몸짓과 표정에 매혹되어 살짝, 그녀가 처한 현실이 뒤로 밀려나지만, 보십시오, 그녀는 거의 정사각형의 틀에 갇혀 있습니다. 저 틀은 의도된 겁니다. 청동의 탑이지요. 아버지의 탑입니다. 클림트는 아버지의 탑에 갇혀있었던 여인을 해방할 힘이 뭔지 알고 있었던 거 같지요?

다나에는 아르고스의 공주입니다. 당연히 아버지인 왕이 금이야, 옥이야, 하는 아버지의 관옥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인 아크리시오스(Akrisios)왕이 신탁을 받습니다. 신탁은 언제나 그 사람의 콤플렉스를 건드리지요? 왕에게 내린 신탁은 금지옥엽인 다나에가 낳은 아들이 왕을 죽일 거라는 거였습니다.

신탁에 사로잡힌 왕은 딸을 잡습니다. 육중한 청동의 탑을 세우고, 딸을 가두고, 자물쇠를 채우고, 보초를 세웁니다. 다나에는 아버지의 탑에 갇혀 있습니다. 새로운 경험이 흘러들어올 것 같지 않은 육중한 탑 속에 외롭게 갇혀있는 거지요. 안전하지만 존재이유도 없는 답답한 그곳은 어쩌면 우리의 처지 아닌가요?

현대를 사는 우리는 아버지의 탑에 갇혀 있습니다. 돈의 탑에 갇혀 있고, 시선의 탑에 갇혀 있습니다. 갇혀 있는 우리는 탐욕의 노예고, 권력의 노예고, 시선의 노예고, 체면의 노예고, 시간의 노예고, 하다못해 다이어트의 노예입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먹고, 놀고, 편하게 자지 못합니다. 많이 벌어도 언제나 2% 부족하고, 한 목숨 살리기 위해 너무 많은 걸 가지고 있지만 ‘나’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활동적 자폐가 아버지의 탑에 갇혀 있는 현대 도시인의 특징입니다.

그곳에서 하늘의 신 제우스를 만난 것입니다.나는 철두철미하게 방어의 벽 속에 갇혀 있는 다나에를 만나기 위해 황금 빗물로 스며든 제우스의 사랑에 감동합니다. 왜 나는 감동을 받는 걸까요? 아, 제우스가 왔습니다. 황금소나기로 왔습니다. 황금소나기로 내려와 스며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보십시오, 황금빛 환상적 사랑에 반응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나에의 표정과 자태를. 사랑은 막을 수 없습니다. 청동의 탑 속에 갇혀서도 완벽하게, 완벽한 세상, 꽉 찬 세상을 만드니까요.

클림트의 다나에는 꽉 찬 느낌이 들지요? 사랑을 나누는 다나에는 감옥의 탑을 황홀한 사랑으로 꽉 찬 성소로 바꿉니다. 그 변화의 에너지로 아버지의 딸은 아버지를 벗어납니다. ‘나’의 삶에 스며든 하늘로 인해 다나에는 하늘을 품고 아버지의 탑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형식은 쫓겨난 거지만, 내용은 해방입니다.

다나에의 사랑은 혁명 같은 사랑입니다. 내 속의 하늘을 품어야 혁명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클림트의 다나에는 바로 혁명 같은 사랑의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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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1092059515&code=990000&s_code=ao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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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어서는 그림이 어떤지 알 수 없지요. 이주향 교수의 평론을 실제 그림과 대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티치아노의 다나에 : 황금소나기로 변한 제우스가 빛나고, 

티치아노, 다나에, TIZIANO Vecellio, Danaë, 1544-45, Oil on canvas, 117 x 69 cm, Museo Nazionale di Capodimonte, Naples, 이탈리아 나폴리

티치아노, 다나에, TIZIANO Vecellio, Danaë, c. 1553, Oil on canvas, 119 x 187 cm, Hermitage, St. Petersburg,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티치아노, 다나에와 간호사, TIZIANO Vecellio, Danaë with a Nurse, 1553-54, Oil on canvas, 129 x 180 cm, Museo del Prado, Madrid,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출처 : http://www.wga.hu/support/viewer_m/z.html

티치아노, 다나에와 간호사, 부분, TIZIANO Vecellio, Danaë with a Nurse, (detail)

티치아노는 다나에를 3번 이상 그린 것으로 나타납니다.

맨처음 그린 1544년 작품에는 다나에가 소나기로 변신하여 쏟아지는 제우스를 맞으며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있고 그 발치에 요정이 서 있습니다.(이탈리아 소장)

그로부터 9년 후인 1553년 작품에는 요정 대신 늙은 여인이 황금비를 앞치마로 받고 있습니다.(러시아 소장)

그리고 그로부터 1년 후인 1554년 작품에는 황금비를 앞치마에 받고 있는 여인을 간호사라고 표시했습니다.(스페인 소장)

세 그림에서 커튼의 색상이 달라지고 여인의 허벅지에 걸치고 있는 천의 위치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을 눈치챈 분은 미술 감상 실력이 뛰어난 분입니다. 다나에의 머리를 딴 모습도 약간씩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에는 개가 있습니다.

같은 그림을 여러 번 그리는 이유는 고객이 같은 그림을 나에게도 하나 그려달라고 부탁하기 때문에 비슷한 그림을 여러 번 그리는 것일 겁니다.

우리나라 박수근 화백도 빨래터라는 그림을 7번이나 그렸다고 합니다.

마지막 그림을 확대해서 본 다나에의 정열에 불타는 표정을 보십시오, 얼굴은 상기되어 있고 눈가는 촉촉하면서 욕망에 불타고 입술은 약간 벌어져 있습니다. 더 이상은 설명할 수 없네요 -.-

렘브란트의 다나에 : 남자를 기다리는 따뜻한 연인의 그리움이 강조되어 있다.

렘브란트, 다나에,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Danaë, 1636, Oil on canvas, 165 x 203 cm, The Hermitage, St. Petersburg,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다나에가 갇혀있는 청동탑을 살금살금 새앙쥐처럼 몰래 숨어드는 바람둥이 신 제우스, 신들의 왕이 아니라 카사노바의 모습입니다.

렘브란트, 다나에, 부분 1,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Danaë (detail 1)

사랑에 깊이 빠진 다나에의 몸짓입니다.

렘브란트, 다나에, 부분 2,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Danaë (detail 2)

사랑에 불타는 다나에의 홍조를 띈 볼, 불타는 눈동자와 사랑을 부르는 살짝 벌어진 입술....

렘브란트, 다나에, 부분 3,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Danaë (detail 3)

그리고 사랑을 찾는 간절한 손짓

(사족)

화가들은 인간의 몸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공연히 누드를 그리기 민망하니깐 신화를 빙자하여 누드를 그렸습니다.

중세시대부터는 성서를 핑계로 누드를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냥 누드를 그리면 외설이라고 혹독한 비난을 받기 때문이 이런 비난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고상한 척 신화나 성경 이야기를 그린 누드를 감상하는 부자와 귀족들은 실상 관음증을 즐기는 거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점잖은 척 예술이라고 말하지만 그 심리 밑바탕에는 관음증이 숨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물론 예술과 외설은 구분해야겠죠.

[푸른영(남다니엘)]

잘 읽었어요! 한 치의 두려움없이 사랑하랏! ㅎㅎ

[수호천사]

티치아노와 렘브란트가 그린 다나에를 덧붙였습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혹독한 고난과 금욕을 강요하는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