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 표시된 뉴스 보며 양치질
변기가 소변으로 체지방 측정
IoT 시대, 영화 속 상상 현실로
하이패스·병원 처방전 전산화
이미 일상에 파고든 사물인터넷
모바일 빅뱅 이은 새로운 혁명
2020년 2000조 원 시장 전망
보안 해결 안 되면 엄청난 재앙도
2020
년 9월7일 월요일 오전 7시. 직장인 김윤서 씨(37)는 베개에서 들려오는 기분 좋은 알람소리에 잠을 깼다. 일어나 기지개를
켜자 침실 커튼이 저절로 열린다. 손목에 찬 밴드로 커피머신과 토스터기를 작동시킨 뒤 욕실로 갔다. 샤워룸에 들어서는 순간 적당한
온도로 데워진 물이 내려온다. 수온 자동조절 시스템이 사계절과 가족 개개인에 맞춰 알맞은 온도를 찾아준다. 양치질하면서 거울에
표시되는 오늘의 날씨와 일정, 뉴스를 확인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건강 정보가 거울에 나타난다. 변기가 소변과 체중, 체지방 등을
측정 분석해 건강 상태를 알려준다.
공상과학(SF) 영화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불과 5~6년 뒤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기술이
바꿔놓을 우리의 일상이다. 세계는 이미 스마트폰 보급에 따른 ‘모바일 빅뱅’을 경험했다. 다음은 ‘IoT 빅뱅’이 올 것이란
전망이다.
◆‘IoT 빅뱅’이 온다= IoT는 유·무선 통신망으로 연결된 기기들이 사람의 개입 없이 센서 등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서로 주고받아 스스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IoT는 어렵고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이미 우리 주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통행료가 징수되는 하이패스, 성범죄자의 위치를 관리기관에 수시로
전송하는 전자발찌 등이 대표적인 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20년 세계 IoT 제품·서비스 공급업체의 수익이 3000억 달러(약 318조 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로 인해 창출되는 세계 경제의 부가가치는 1조9000억 달러(약 20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국내 IoT
전문가로 꼽히는 김지현 SK플래닛 상무(KAIST 교수)는 “앞으로 정보통신기술(ICT) 변화의 핵심 축은 모든 사물에 컴퓨팅과
네트워크 기능이 탑재되는 것”이라며 “IoT 시대엔 ICT가 0차 산업이자 모든 산업의 근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객 동선 따라 다니며 마케팅= “피비, 메이시스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엔 당신이 좋아하는 100가지 품목들이 있어요. 50킥스(포인트)는 선물로 드릴게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20대 여성 피비가 백화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스마트폰에 뜬 알림 메시지다. 백화점 내 핸드백 판매
코너로 발걸음을 옮기자 그가 좋아할 만한 가방 사진과 함께 “핸드백 코너에 오신 걸 환영해요. 좋아하는 핸드백의 정보를
확인하세요”란 메시지가 나온다. 피비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동선에 따라 메시지가 바뀐다.
미국 벤처기업 샵킥(Shopkick)이 지난해 11월 미국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와 손잡고 시작한 IoT 서비스다. 메이시스는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지점에 근접 마케팅이 가능한 이 서비스를 먼저 적용했다. 샵킥은 미국 메이저리그(MLB), 아메리칸 이글
아웃피터스 등으로 제휴 업체를 늘리며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메이시스뿐만이 아니다. 국내외 기업들이 앞다퉈 IoT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기존 전자태그와 센서를 활용했던 생산·제조설비뿐
아니라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상점에 이르기까지 IoT 구축 경쟁이 치열하다. 소비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해 ‘맞춤형 마케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병원 100% 스마트화= IoT는 의료계에도 혁신의 바람을 몰고 왔다. 국내 대형 병원 대부분은 이미 스마트 병원이다. IoT 기술을 도입하고 있단 얘기다. 처방전과 필름은 자취를 감췄다. 모두 전산화, 영상화됐다.
검진을 예약하면 당일 아침 스마트폰을 통해 문자메시지로 알려준다. “오전 9시15분 내과 OOO 교수 검진 예약돼 있습니다.”
접수를 마치고 진료실 앞에 도착하면 모니터에 내 차례가 뜬다. 기다리는 동안 병원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내 질환에
대한 정보는 물론 혈액검사와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도 확인할 수 있다. 검진이 끝난 뒤 수납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 무인수납기로 결제하면 된다.
해킹땐 사생활 그대로 노출
스마트 병원은 의료와 IoT 기술 융합에 따른 혁신의 시작에 불과하다. 지난해 8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병원. 정형외과 의사인 크리스토퍼 케딩 교수는 십자인대 수술을 집도했다. 수술 장면은 다른 곳에 있는 의료진과
의대생들에게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케딩 교수가 쓰고 있는 스마트 안경 구글 글라스를 통해서다.
◆‘사물인터넷 시대’의 그림자=IoT 기술이 발전할수록 다양한 사물에 인터넷이 연결돼 인류의 삶이 편리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그림자도 있다. 보안 허점이 늘어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급격히 높아진다는 것이다.
IoT 시대가 오기 전 정부와 기업에서 보안 위협에 대한 논의를 충분히 진행하지 않으면 ‘해킹 대란’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보안업체 프루프포인트는 올해 초 스마트 가전을 해킹해 ‘좀비 가전’을 만든 뒤 악성 이메일 75만건을 발송한 사이버 공격
사례를 공개했다. 스마트 가전 해킹이 공식적으로 보고된 첫 사례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초까지 진행된 이 악성 메일 유포엔
스마트TV와 냉장고, 홈 네트워크 라우터 등 PC나 노트북이 아닌 스마트 가전이 활용됐다.
프랑스 기업용 소프트웨어업체 액스웨이의 크리스토프 파브르 최고경영자(CEO)는 “IoT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물리적인 세계에 인터넷이 녹아들어 발생하는 보안과 사생활 침해 위협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설리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