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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5 일요가족법회 지안 큰스님 법문
滿樹高低爛漫紅(만수고저난만홍)
높고 낮은 온 나무 가지에 붉은 꽃 흐드러지게 피었고
飄飄兩袖是春風(표표양수시춘풍)
하늘하늘 양 소매가 날리니 봄바람이네
現成一段西來意(현성일단서래의)
조사께서 서쪽에서 온 뜻을 나타내는 것이니
一片西飛一片東(일편서비일편동)
한 잎 조각은 서쪽으로 또 한 조각잎은 동쪽으로 날아가네
우수경칩이 지나고 봄이 돌아왔습니다. 반야암 곳곳에 매화가 피었습니다. 특히 붉은 매화가 햇빛을 받아 찬란한 모습입니다. 봄소식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모습과 똑같습니다. 지인이나 친척집에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은 봄이 와서 꽃이 피는 소식과 똑같습니다.
위에 읊은 시는 남송 때 스님이신 佛光了元(불광요원, 1226~1286) 선사의 ‘제앵화(題櫻花·벚꽃에 붙여)’라는 봄소식을 알리는 4행시입니다. 이 시는 佛光了元(불광요원) 스님께서 일본에 가셔서 벚꽃을 소재로 지은 시입니다. 며칠 전, 이 시를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滿樹高低爛漫紅(만수고저난만홍)
높고 낮은 온 나무 가지에 붉은 꽃 흐드러지게 피었고
온 나뭇가지에 – 높은 곳이나 낮은 곳 차별없이 흐드러지게 꽃이 피었다는 것입니다.
飄飄兩袖是春風(표표양수시춘풍)
하늘하늘 양 소매가 날리니 봄바람이네
‘飄飄’는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나타낸 말입니다. ‘兩袖’는 양손 소맷자락을 가르킵니다. 봄이 오니 양손 소맷자락이 봄바람에 날리는 것입니다.
現成一段西來意(현성일단서래의)
조사께서 서쪽에서 온 뜻을 나타내는 것이니
불교의 핵심 진리를 나타내는 말에 ‘祖師西來意(조사서래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西來意’란 달마스님께서 서쪽에서 온 뜻을 가르킵니다. 달마스님께서 인도에서 중국에 오시어 선법을 펼치신 그 뜻이 무엇인가? 라는 뜻입니다. 諸佛出是處(제불출시처)라는 말도 있는데 모두 불교의 핵심을 나타낸 말입니다. 이는 불교의 핵심이 되는 질문으로 불교의 핵심은 인생의 핵심입니다. 불교는 인간의 삶 자체를 직시하는 관점을 가지고 모든 교리를 전개합니다. 꽃이 붉게 피어 있고 봄 바람이 양 소매에 불어오는 것, 이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근본 진리라는 말입니다.
一片西飛一片東(일편서비일편동)
한 잎 조각은 서쪽으로 또 한 조각잎은 동쪽으로 날아가네
오늘은 영가의 49재 마지막재도 봉행하고 있어서 친지분들이 와계시고, 일요가족법회에 모이신 거사님과 신도님들께서는 정기적인 행사인 이 법회에 참석하시고자 와 계십니다. 사람은 두 가지 상반되는 극적인 상황이 있습니다. 이를 ‘極限的 狀況(극한적 상황)’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生死(생사)의 두 가지 상반되는 극적인 상황 위에 우리의 인생이 실려 있습니다. ‘내 인생은 生死(생사) 위에 실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태어날 때에는 태어나고 돌아갈 때에는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죽으면 슬퍼하고 애도하고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生死(생사)를 똑같이 봅니다. 죽음이 불행한 일이고 슬픈 일이라면, 역으로 생각하여 태어난 것도 불행한 일이요 슬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태어난 것을 축하하여 백일 잔치를 하기도 하는데 돌아가시면 슬퍼하고 애도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한 사람은 태어나고 다른 한 사람은 죽습니다. 봄바람에 꽃이 날려 한 조각은 서쪽으로, 다른 한 조각은 동쪽으로 날아가는 그 이치와 같습니다. 꽃이 동 서로 날아가는 것이 生死(생사)와 같습니다. 오늘이 영가 49재 마지막 날이어서 영가법문도 곁들여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깊어질수록 마음 속 의식이 변합니다. 마음 속에 들어있는 생각이 변하여 똑같은 상황에서도 갑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을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다릅니다. 생각을 좀 더 깊이 하여 세상을 달관하여 살아가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수행하는 것이고 살아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사람은 누구나 극적인 상황 – 제가 극적인 상황을 生死(생사) 두 가지로 표현해 보았습니다만, 사실 우리는 평범한 일상생활의 매일 매일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들도 또 다른 차원에서 보면 모두 극적인 상황입니다. 밥을 먹는 것도 극적인 상황이고, 화장실에 가는 것도 극적인 상황입니다. 이 세상은 모두 극적인 상황입니다.
백범 김구선생님은 상해 임시정부 주석을 하신 분으로 『백범일지』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말(韓末) 민비가 시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백범은 울분을 참지 못해서 주막에 나와 술을 마시고 울분을 주체하지 못하다 마침 거기에 와 있던 일본인 한 사람을 주먹으로 때려 죽게 했습니다. 그리고 대담하게도 주막 기둥에 ‘나라 어머니 원수를 갚았다’는 뜻의 ‘國母報讎(국모보수)라는 글을 써 붙이고 나왔습니다. 이 사건으로 백범은 전국에 수배가 내려져 쫓기는 신세가 되어 곳곳을 숨어 유랑하다 은신처를 찾아 마곡사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드디어 일인 경관에 체포되어 수감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리하여 백범은 교도소를 옮겨 다니게 됩니다. 그가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에는 애국지사들의 면회가 잇따랐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부친,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족 등 애국지사 가족들이 자주 면회를 왔습니다. 한 번은 이들이 면회를 와 백범에게 준비해 온 음식(私食)을 백범이 먹도록 면회실에 내어 놓았습니다. 이를 본 백범은 음식을 먹어 씹어 삼키지 않고 입 안에 음식을 손으로 쑤셔 넣었습니다. 음식을 입안에 가득 머금어 숨이 차 말을 못하던 백범이 손가락으로 면회 온 분들에게 돌아가시라 인사를 하고는 감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창살이 막힌 옆방에 애국청년 한 사람이 수감되어 있었는데 얼굴이 창백하고 몸이 몹시 여위어진 청년이었습니다. 백범은 이 청년을 손가락으로 부르고 창살 사이로 음식을 토해 내어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눈물겨운 장면이지요. 음식을 감방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백범은 입 안에 가득 넣어 감방으로 들어와 수감된 애국청년에게 준 것입니다. 그야말로 지극한 보살정신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백범은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글귀가 있습니다. ‘得樹攀枝未足奇(득수반지미족기)오 懸崖撒手丈夫兒(현애살수장부아)라’ 한 구절로 『금강경오개해』야보의 송 가운데 들어있는 구절입니다. “절벽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은 기특할 게 없고(어려운 것이 아니란 뜻), 깎아지른 절벽에 손을 놓고 떨어질 용기가 있어야 장부이다.”라는 뜻으로 깊은 선리(禪理)가 숨어 있는 구절입니다. 마음이 부처라 하지만 마음도 부처도 없어야 한다는 법문이 설해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절벽에 서 있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위험천만의 모습으로 있습니다.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출격장부라면 그냥 손을 놓아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의 뜻입니다. 한 때 마곡사에서 승려생활을 한 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님은 圓宗(원종)이라는 법명을 받고 스님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곡사에는 백범이 스님이 되기 위해 삭발했던 삭발바위가 있습니다. 백범은 마곡사에 있을 때 대혜 종고선사의 『서장』을 비롯해 몇 권의 책을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평범한 생활 속에서 매일 똑같은 일들이 이어져 가지만 그 속에도 극적인 일들이 있습니다. 극적인 일들을 통해 깊이 느끼면 의식세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生死(생사)가 상반되는 극적인 상황 위에 누구나 살고 있습니다.
靈駕 多劫生來 一切罪障 悉皆消滅 不沓冥路 怨親宿業頓蕩盡 四大各離如夢中 六塵心識本來空 生本無生 滅本無滅 生也不道 死也不道
(영가 다겁생래 일체죄장 실개소멸 부답명로 원친숙업돈탕진 사대각리여몽중 육진심식본래공 생본무생 멸본무멸 생야부도 사야부도)
누구나 시절 인연을 따라서 금 세상에 왔다가 또 시절 인연을 따라서 갑니다.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가는 것이 生死(생사) 경계입니다.
영가가 한 생애를 살다가 아쉽게 오래 수를 누리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아깝기 짝이 없고 허망하게도 느껴지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언젠가 갈 예약을 다 해놓았습니다. 다만 날짜를 모를 뿐입니다. 예전 큰스님들은 갈 날짜도 미리 정해 놓으셨다고 하지요. 우리 모두는 금일 영가처럼 사바세계를 마칠 때가 있습니다. 세속의 기준에서 五福(오복) 중 壽(수)가 가장 먼저 있긴 하지만 우리도 예약은 다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 나서 살아서 생각하던 온갖 감정 – 보고 듣던 六識(육식)이 업덩어리 속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하여 사진도 복원되고 살아 있을 때의 목소리도 복원이 됩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몸은 없어져도 마음은 죽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속의 생각인 五蘊(오온)에 저장됩니다. 요즘은 기술의 발달로 ChatGPT에서는 내 사진을 불러다가 뉴욕에 있는 사진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ChatGPT라도 생사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영가 법문은 영가를 위해서 살아생전에 남아있던 생각의 찌꺼기가 다 녹아져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향 한 가지를 사르고 위패를 영단에 모셔놓고 향로에 꽂아 드렸소이다. 이 인연으로 살아생전에 보고 듣고 하던 六根(육근)의 감관을 통해 만들어졌던 생각이 때로는 한도 되고, 때로는 집착도 되고, 貪瞋痴(탐진치)가 되었던 것들이 끓는 물에 얼음이 녹듯이 다 녹아 내려지이다. 남아 있는 찌꺼기들이 다 씻어져 버려지이다.’라는 뜻입니다. 누구나 죽고 나면 살아있던 것들이 꿈입니다. 어제는 이미 과거입니다. 어제까지의 사실은 간밤에 꿈을 꾸고 나서 머리에 떠올린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지나고 나면 꿈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했던 것도 미워했던 것도 꿈이라는 겁니다. 四大各離如夢中(사대각리여몽중) - 죽고 나면 살아있던 생명이 꿈과 같습니다. 六塵心識本來空(육진심식본래공) -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 감각을 통해서 보고 듣고 생각을 느끼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空(공)하다는 것입니다. 살아서도 꿈에서 산 것이지 진짜 산 것이 아니기에 꿈에서 산 것은 꿈이 깬 경지에서 보면 진짜 산 것이 아닙니다. 꿈에서 죽은 것은 진짜 죽은 것이 아니고 가짜로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生本無生 滅本無滅(생본무생 멸본무멸)인 것입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닙니다.
불교는 본래 生死(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을 줄 알아야 수준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원효스님이 영가법문을 처음 설하셨는데 사복이와 함께 사복이 어머니 장례를 치루면서 했다는 영가법문 이야기가 있습니다.
“莫生兮也 其死也苦 莫死兮也 其生也苦(막생헤야 기사야고 막사헤야 기생야고) - 태어나지를 마시오, 죽는 것이 괴로움입니다. 죽지를 마시오. 태어나는 것이 괴로움입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生死(생사)를 떠나버리라는 뜻입니다.
生本無生 滅本無滅(생본무생 멸본무멸)은 涵虛堂得通(함허득통)스님이 가장 먼저 하신 영가 법문 말씀입니다. 항간에서는 서산스님께서 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원래는 涵虛堂得通(함허득통)선사가 먼저 하신 것입니다. 涵虛堂得通(함허득통)스님이 고려 말·조선 초의 스님이셨으니 조선 중기 스님이신 休靜(휴정)스님 보다 빠르시지요. 이 법문은 生死(생사)가 없다는 법문입니다.
우리가 보통 안좋은 일을 당하면 “액땜을 했다고 쳐라”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生死(생사)는 본래 없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만물은 태어남과 죽음이 있지만, 하늘이나 허공은 태어나거나 죽는 것이 아니듯이 마음도 태어나거나 죽는 것이 아닙니다. 망상 번뇌가 일어난 마음은 진짜 마음이 아닌 가짜 마음입니다.
금일 영가가 부처님의 극락세계에 가시어 안락을 누리면서 남아있는 제자들에게 은덕을 끼치시기를 축원해 드리고 제자되는 분들에게도 각 가정에 부처님의 가호가 있어서 모든 일이 잘 되도록 축원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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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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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성불하옵소서._(())_
고맙습니다 성불하세요 _()_
一片西飛一片東
六塵心識本來空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환한 광명의 세계를 열어줍니다.
홍매도 백매도 복수초도 모두 피안의 소식을 전해주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늘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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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_()_
함허당 득통스님은 무학자초 왕사의 제자로 高末朝初 茶로서 유명하셨고
현정론을 저술하여 정도전의 불씨잡변의 무고한 궤변을 조목조목 반박하신 것으로 유명하십니다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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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
누구나 한 생을 살다가 가지요
잠시 머물다가 어디로 갑니다.
저 꽃도 피었다가 어느 순간에 집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흘러가는 물처럼 삽니다.
뭔가를 보고 듣고 ...모든 것이 꿈이라는데 왜 사람들은 그리 걱정하고 집착하고 목매달까요?
아직 덜 깨달아서 그런지 아니면 습 업때문에 그럴수도 있겠지요
아는 만큼 보이고 근기 힘이 있는 만큼 할 수 있겠죠
나는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십니까?
한 마디로 말하기도 어렵고 고정된 어떤 말을 하기도 어렵다.
다만 잘 살다가 천수를 누리고 가자
아니 살만큼 살고, 하고자 하는 것 적절히 하고, 즐기며 건강히 살다가 적당한 때에 가자
누구나 죽지만
최소한
뜻하지 않은 죽음
할 일도 많이 남았는데 가지는 말자
보고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있는데 말이다.
원망 미움 한을 가지고 가지는 말자
때가 되면 꽃이 피다가 지듯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가지만
잘 살다가 가자
미련 원망 후회 아쉬움 거의 없이 가자
죄 잘못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깨끗히 비우고 가야 한다.
어디로 갈 것인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본인의 몫
욕심없고 미련없고 다 비우고 가야 최소한의 하나의 조건이 될 것이다.
많은 복을 짓고 많은 좋은 일을 해야.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세요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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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