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217편
*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및
선시(禪詩)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訟)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現)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歷史的)
문헌 기록상(文獻記錄上)
오도송(悟道頌)을
가장 먼저 남긴 이(僧侶)는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禪師)
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구분이 부질없는 일임에야
사람들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은 슬퍼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을
올려놓으니
그 깊은 뜻이야
어찌 우리가 모두 다 헤아려
알 수 있으랴만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기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 祖師)
선시(禪詩)와
임종게(臨終偈) 및
오도송(悟道頌) 설해(說解)
"
산나무 열매 떨어지고
(風動果頻落)
부휴 선수(浮休善修) 선사
풍동과빈락 風動果頻落
산고월이침 山高月易沈
시중인불견 時中人不見
창외백운심 窓外白雲深
소슬한 바람이 불어오자
산 나무 열매 자꾸 떨어지고
산이 높고 깊으니
달이 벌써 지려하네
시간은 어느새 깊어
내 곁에는 아무도 없는데
창 문 밖 하늘 위에는
흰 구름만 자욱하구나.
"
위(上記)의
시(詩, 게송, 禪詩)는
조선 중기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5~1615) 선사(大禪師)
스님(僧, 沙門)의
시(詩, 게송, 禪詩)이다.
깊고 깊은 고요한
산 속(山中)의 정취가
위(上記)의
시(詩, 게송, 禪詩)에서
조용히 풍겨 나온다.
사람(人間 중생)이
자기(自己 自身)만의
시간(時間, 공간)을 갖고
살아 가는 것이
매우 어려운 세상(世上)을
우리는 살고 있다.
매일 매일
누군가를 만나서
서로 서로 사교를 하고
어떤 일에 매달려
그 뒷 치다꺼리에 몰두하며
절치부심하다 보면
미처
자기 내면(自己 內面)을
들여다 보고(觀照)
살피고 헤아려서
성찰(省察)할 겨를(시간, 틈)이
없어져 버린다.
또한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먹고 살기 위해 노력(努力)
하는 것(행위)이
결국
바로 내(我)가 아닌
타인(他人, 他者, 남)들의
시선(視線)을 따라서
맞춰가며
끝없이
객관 경계(客觀境界)를
쫓아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靈魂)의 거울(鏡)
앞에 서서 자신(自己 自身)을
비추어보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가 당면(當面)한
이 시대(現在時代)는
사람(人間 중생)이
자기 자신을 살피고 헤아려서
성찰(省察)하고
자신을
영혼(靈魂)의 거울(鏡) 앞에
비춰 반조(自己 返照) 하지 않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세상은
스스로 반성(返省) 하기를
싫어하면서
일방적인
고집(固執, 我集, 집착)으로
사는 것 같다.
탐진치(貪嗔痴)
욕망(慾望)의 공간(空間)을
채우기에 그저 급급(急急)하고
정신적(精神的)
쉼(休息)의 여백(餘白)을
사양하는 것만 같다.
도인(道人,
수행자, 禪人, 修學人)들의
삶(生涯)의 자취(흔적 自就)를
한 번 돌아 보라.
그(道人, 수행자,
禪人, 修學人, 종교가)들은
자기(自己 自身)
고독(孤獨, 외로움, 혼자 됨)을
소중(所重)히 여기고 아끼며
감사(感射)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道人, 禪人,
修學人, 수행정진자)들은
결코
고독(孤獨)해 하거나
외로움에 몸부림치지
않는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롭기 때문에
그 소중한 시간을
사랑하며
더욱 굳건히
자신을 돌아보고
살피고 헤아리는 성찰(省察)의
시간(時間)으로 삼아서
더욱 잘 견딘다.
혼자만의 세계에는
언제나
자화상(自畵像)을 직시하고
똑바로 비추어서
똑바로 보는
마음의 거울(心鏡)이
있는 것이다.
이렇 듯
우리가 인생(人生, 일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스스로
자기 자신의 자화상(自畵像)을
똑바로 직시(直視)하고
바로 보는 일은
더없이
매우 중요(重要 요긴)한
일이다.
아무도 없는
홀로의 시간(時空間)에
자연(自然)을 벗하여
세상을 관조(觀照)하면
초연(超然)한
자기 본래 모습(本來面目)이
만상(萬相)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
부휴당 선수(浮休善修,
1545~1615) 선사(禪師)
스님(僧, 沙門)은
조선시대
이조 중기(李朝中期)의
스님(僧, 大沙門)으로
부용 영관(芙蓉靈觀)
선사(禪師) 스님(僧, 大沙門)의
법(정통법맥)을 이어 받은
제자(弟子)이다.
20살에
출가(出家)한 것으로
기록(記錄)되어
전하며
사명대사(泗溟大師,
유정(惟政) 1544~1610))
스님(僧, 沙門)과 함께
당시에
널리 명성(名聲)을 떨쳤던
스님(僧, 沙門)이다.
독서(讀書)를 많이 하여
박학다식(博學多識)하였으며
글씨(書道)도 잘 썼다.
한 때
지리산에 머물 때
어떤 미친 중(狂人僧)의
무고(無告, 거짓말)로
제자(弟子)
벽암 각성(碧巖覺性)과 함께
옥(獄)에 갇히는 수난(苦)을
당했으나
나중(後日)에
무죄(無罪)가 밝혀져
오히려
왕궁(王宮)에 초대 받아서
부처님의 도(一心成佛大道)를
설(說法)해주고
임금(王)으로 부터
후한 선물(選物)을 하사 받고
나왔다.
뛰어난
인품(人品, 인격과 품성)과
덕화((德和, 덕으로 온화함)에
부휴 선수(浮休善修,
스님(僧, 沙門)을 따르는
무리(從徒)가
항상(언제나)
700여명(700餘名)에
달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덕유산에 은거하면서
무주 구천동에서
한때
간경(看經)에 여념없이
지낸 적도 있다.
그 후 송광사에 머물다가
나중에
칠불암(七佛庵)에 가서
그 곳에서
광해군 7년
제자(弟子)
벽암 각성(碧巖覺性)에게
법(佛法, 정통법맥)을
부촉(付囑)하고
세수(世壽) 73세(七十三歲)
법랍(法臘) 54세(五十四歲)로
입적(入寂, 열반, 해탈)
하였다.
※
ㅡㅡㅡㅡ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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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