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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3장
보편의 원칙으로 인류에게 주어진 혼인의 정신
송영찬 목사,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정상적인 남녀가 온 인격을 다하여 서로를 사랑하며 그리워하는 내용을 다룬 1장에 이어 2장에서는 술람미 여인이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솔로몬에 대한 인내와 관용, 그리고 솔로몬을 사랑하는 기쁨 속에서 한껏 승화된 사랑의 즐거움을 서로 나누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비록 신분의 격차를 뛰어 넘은 솔로몬의 청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솔로몬의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응답을 하기에 이른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할지라도 여전히 자신이 겪고 있는 심적인 갈등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다(아 3:1-5). 하지만 모든 갈등을 떨어버리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아 2:16)는 아가서의 주제를 따라 확고하게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결심을 한다. 여기까지 제2부가 끝나고 마침내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혼인식이 전개됨으로써 제3부가 화려하게 전개된다(아 3:6-5:1).
이와 같은 맥락 속에서 제3부는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이 혼인식을 위해 화려하게 제작한 이동용 침대를 타고 혼인식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장면이 전개된다. 예루살렘 여인들의 합창으로 혼인식을 알리는 서곡이 울려 퍼지고(아 3:6-11) 신부의 예루살렘 입성과 함께 왕궁에서 거행되는 혼인식이 펼쳐진다. 이 혼인식에서는 신부에 대한 신랑의 찬미와 그에 대한 신부의 응답이 교창으로 진행되는데 왕궁에서 거행되는 혼인식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아 4:1-5:1)로 구성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 아가서 3장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① 솔로몬의 청혼을 받아들인 술람미 여인의 갈등(아 3:1-5) : 솔로몬의 청혼이 있기까지 술람미 여인이 겪어야 했던 마음고생과 갈등을 극복하고 그 청혼을 받아들이기까지의 모습을 회상하고 있다.
② 혼인식 행렬에 대한 묘사(아 3:6) : 거친 광야를 건너서 마침내 화려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신부의 행렬 모습이 묘사된다.
③ 신부를 호위하기 위한 군대에 대한 묘사(아 3:7-8) : 신부를 호위하고 있는 솔로몬 군사들의 늠름한 모습이 묘사된다.
④ 신부를 위한 연에 대한 묘사(아 3:9-10) : 솔로몬이 신부를 위해 만든 최상의 호화스런 연에 대한 모습이 묘사된다.
⑤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에 대한 묘사(아 3:11) : 솔로몬이 어머니가 새로 만들어준 화관과 예복을 입고 신부를 기다리는 모습이 묘사된다.
1. 솔로몬의 청혼을 받아들인 술람미 여인의 심적 갈등(아 3:1-5)
3:1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구나
3:2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구나
3:3 성중의 행순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3:4 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미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3:5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필자역)
술람미 여인의 회상(narrative)
밤중에 내 침상에서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를 찾았도다. 내가 그를 찾았으나 그를 찾지 못하였구나. “내가 이제 일어나서 성읍의 거리를 돌아다니리라. 거리들과 광장들에서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 하며 내가 그를 찾았으나 그를 찾지 못했노라. 성읍을 순찰하는 파수꾼들을 만나 내가 그들에게 묻기를,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를 당신들이 보았나이까?” 하였는데 내가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내 영혼이 사랑하는 자를 발견하고 내가 그를 붙잡고 놓지 않았도다.
술람미 여인의 노래(독창)
내가 그를 내 어머니의 집,
그녀가 나를 잉태하였던 방으로 그를 데려오기까지.
암노루들과 들의 암사슴들을 두고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라.
예루살렘의 딸들아.
그가 원하기까지
너희는 그 사랑을 흔들지도 말고 깨우지도 말아다오.
<제2부. 끝을 알리는 피날레>
정상적인 여인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청혼을 받게 되면 가슴이 들뜨고 혼인에 앞서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솔로몬의 청혼을 받아들인 술람미 여인 역시 정작 혼인식을 앞두고 심적 갈등을 느끼게 된다. 사랑의 기쁨이 큰 만큼 그 사랑을 받아들임에 있어서의 갈등은 오히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과의 혼인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있음을 대변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단락은 앞으로 전개될 혼인식의 기쁨을 배가시키고 있다.
반면에 술람미 여인의 심적 갈등은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아 3:1)에서 극적으로 표현된다. 여기에서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과의 혼인을 앞두고 깊은 정신적 고민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고민은 고통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앞으로 전개될 혼인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에서 나오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라 할 수 있다.
본문에서 ‘밤에’(תולילב)라는 단어는 어느 특정한 날을 지시하기보다는 일상적인 시간을 지시한다. 때문에 본문은 어느 특정한 날에 일어난 일을 말하기보다는 일상적인 술람미 여인의 심적 갈등상태를 대변하면서 술람미 여인이 얼마나 솔로몬과의 혼인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는가를 강조해 주고 있다. 이러한 묘사는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험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혼인을 앞둔 술람미 여인의 두근거리는 심적 갈등에 직접 참여하게 만든다.
이 단락에서 여자는 한밤중에 자신의 침상에서까지도 사랑하는 남자를 찾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침상에서 남자를 발견하지 못하였고 남자에 대한 열망이 마침내 남자를 찾기 위하여 그녀를 침상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구나 성중의 행순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미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아 3:2-4).
이렇게 사랑하는 자를 그리워하다가 찾아 나서는 표현은 일반적인 시문학적 특성으로 알려진 ‘탐구 모티프’(search motif)로서 사랑하는 대상의 매력과 훌륭함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그 대상을 사랑하는 자기의 사랑하는 심정도 정당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매우 보편화된 표현 방식이다. 아울러 이러한 ‘탐구’ 과정은 일반적으로 주인공의 성장을 알리는 변화의 과정으로 이때 주인공은 여러 가지 경험을 거치면서 독자들이 기대하는 이상형에 도달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여기에서 이 탐구 모티프는 마치 환상적인 배경을 강조하기 위해 밤중에 발생한 것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만화경을 보는 것처럼 장면이 빠르게 바뀌면서 술람미 여인의 심적 갈등이 극적인 반전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술람미 여인이 실제로 이러한 사건을 경험했다기보다는 술람미 여인의 심적 상태가 급속도로 발전되고 있다는 점을 짧은 시간을 통해 독자들에게 각인시키는 시각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
본문에서 술람미 여인은 거리로 나와 큰길을 다니며 사랑하는 솔로몬을 애타게 찾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동일한 모티프는 잠언에서도 등장한다. 잠언에서는 창기가 하룻밤을 같이 보낼 남자를 유인하는 모습(잠 7:10-13)에서 그리고 지혜가 자신의 말을 전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자리를 잡고 지혜의 말을 들으라고 초청하고 있는 모습(잠 1:20-21; 8:1-4)에서 각기 ‘탐구 모티프’(search motif)가 등장하는데 공교롭게도 이 두 ‘탐구 모티프’는 내용 면에서 서로 극적인 대조를 보여준다.
아가서는 이러한 모티프와는 분명 다른 차원을 보이고 있는데 술람미 여인이 정서적인 위험을 무릅쓰고 솔로몬을 실제로 찾아 나서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실제가 아닌 비유로 제시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술람미 여인의 의지적인 결단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술람미 여인의 의지적인 결단은 ‘내가 일어날 것이다’, ‘내가 돌아다닐 것이다’, ‘내가 찾을 것이다’는 자기 권유형인 연속적인 3개의 동사들로 강화되고 있다.
찾아 나서는 그 모습은 본래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닌 도덕적으로 중립성을 가지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찾아 나서는 그 실체가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에 딸려 달리 해석될 따름이다. 여기에서는 술람미 여인이 단순히 자신의 동반자를 찾고 있음을 강조하여 그 어떤 방해를 극복하고서라도 솔로몬을 찾고자 하는 자신의 결의를 보임으로써 드디어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합일이 극적으로 가까워지고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이런 심적인 압박감에서 술람미 여인은 사랑하는 솔로몬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마침 성을 돌며 지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로부터도 아무런 소식을 알아내지 못하고 그들을 떠나게 되는데, 그때 극적으로 사랑하는 솔로몬을 만나게 된다. 그러자 술람미 여인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듯이 솔로몬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모습을 아가서는 매우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아 3:4b)고 표현하고 있다. “그녀가 나왔던 어머니의 집”과 “나를 잉태한 그녀의 방”은 매우 에로틱한 표현으로 자신과 남자와의 합일을 숭고하고 성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 양식은 앞서 2장 4-7절에서도 이미 언급된 바 있다.
혼인의 순결과 고상함을 제시한 아가서의 서론부(아 1:2-2:7)와 마찬가지로 제2막 역시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들과 들의 암사슴들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하노니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아 3:5; 2:7 참고)로 끝나고 있다. 이어 제3막이 전개되는데 드디어 기대하고 있는 혼인식을 향해 나아가는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이 펼쳐진다(아 3:6-11). 아가서는 이 장면을 극적으로 표하기 위해 술람미 여인이나 솔로몬의 목소리가 아닌 합창단의 합창으로 통해 묘사하고 있다.
2. 혼인식장을 향하는 신부의 행렬(아 3:6)
3:6 연기 기둥과도 같고 몰약과 유향과 장사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기롭게도 하고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고
(필자역)
<제3부.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
여인들의 등장(합창, 혼인식을 알리는 서곡)
이는 누구인가?
광야에서 올라오는 이.
몰약과 유향의 연기 기둥(들)과 같고
상인들의 온갖 향품들로 향기를 내는구나.
고대 근동의 혼인식은 종교적 예식이 아닌 집안간의 예식으로 진행되었다. 이것은 룻과 보아스가 제사장 앞에서가 아니라 장로들 앞에서 혼인식을 한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룻 4:10-11). 때문에 혼인식이 성전에서 행해지지 않고 솔로몬의 왕궁에서 거행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혼인식은 먼저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향하고 신부를 그들이 새로운 거주지로 인도하는 행렬로 절정을 이루고 이어서 피로연이 베풀어져 한 주일 혹은 그 이상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비록 피로연이 계속된다 할지라도 신랑과 신부는 초야에 들어가는 것으로 혼인식은 완성된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혼인 관습에 따라 신부가 신랑을 따라 나서는 장면은 혼인식의 정절에 이르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아가서는 이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연기 기둥과도 같고 몰약과 유향과 장사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기롭게도 하고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고”(아 3:6)라는 합창단의 웅장한 소리로 묘사하고 있다.
본문의 행렬에서 신랑과 신부가 함께 하고 있는지, 아니면 솔로몬은 왕궁에서 신부인 술람미 여인을 기다리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두 사람이 모두 이 행렬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지만, 왕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솔로몬의 경우에는 술람미 여인만이 이 행렬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아가서는 합창단의 목소리를 통해 이 신비롭고 놀라운 광경을 ‘이는 누구인가?’(תאז ימ)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표현은 6장 10절과 8장 5절에서도 사용되는데, 이와 비슷한 용례로 사용된 이사야 60장 8절의 내용을 함께 보면 이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가서 8장 5절의 표현을 보면,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자는 앞으로 있을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올라오고 있는데, 그 내용은 “그 여자의 사랑하는 자를 기대하고” 오는 것으로 표현된다. 3장에서도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의 왕비가 될 것을 기대하고 광야에서 올라오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사야 60장 3-9절의 표현에서도 장차 있을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기대’를 선포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열방과 열왕, 그리고 바다의 풍부, 스바 사람들의 금과 유향, 게달의 양무리 등이 “구름 같이, 비둘기가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같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가서 3장의 표현은 ‘술람미 여인의 영광’과 ‘술람미 여인이 기대하는 솔로몬’이 강력하게 표현되고 있다.
광야에서 올라오는 그 광경은 무수한 연기 기둥들로부터 시작되는데, 그 연기 기둥들은 몰약과 유황과 상인들의 모든 향료로 향내를 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혼인식 행렬 앞에서 타고 있는 향품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혼인식 행렬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묘사하면서 거기에 향내가 가득함을 강조함으로써 이 전시품들의 가격이 어떠한가를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값비싼 향로와 화려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시각적인 표현을 통하여 혼인이 인생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임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따라서 혼인에 의한 남녀의 결합을 최상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조금도 진부한 방식이 아니다.
혹 이 연기를 가리켜 하나님의 현현(theophany) 또는 임재(present)의 상징이라고 해석하는 주석가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합당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비록 출애굽기 모티프에서 연기나 구름 기둥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할지라도 본문과 연결시킨다는 것은 많은 무리가 따른다. 오히려 본문의 장면은 순수한 신부의 행렬을 최대한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문학적 기법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3. 신부를 호위하는 군사들의 모습(아 3:7-8)
3:7 이는 솔로몬의 연(輦)이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인이 옹위하였는데
3:8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을 인하여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필자역)
여인들의 합창(합창, 혼인식 행렬에 대한 묘사)
보라, 그의 침상은 솔로몬의 것이라.
이스라엘의 용사들 중 60명의 용사들이 옹위하였구나.
그들 모두 칼을 잡은 자들이며 전쟁을 배운 자들이니
밤의 위험 때문에 각자 허벅지에 칼을 찼구나.
아가서는 이 부분에서 혼인식 행렬에 최상의 찬사를 보내고 있는데 술람미 여인이 멋지게 장식된 이동용 침대를 타고 왕궁 친위대로 구성된 경호를 받으며 당당하게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모습을 담대하게 묘사하고 있다. “볼지어다 솔로몬의 가마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명이 둘러쌌는데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아 3:7-8)는 묘사는 혼인식 행차가 얼마나 위풍당당하고 위용이 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연’은 솔로몬이 특별한 목적, 즉 술람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술람미 여인이 먼 길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화려하게 제작한 이동용 ‘침대’를 가리킨다. 히브리어에서 연(הטמ)은 가마가 아니라 ‘침대’를 뜻한다. 솔로몬은 그 이동용 침대를 지키기 위해서 칼을 찬 용사 육십 명을 동행하게 하였다.
술람미 여인이 모든 여자들도 공히 사랑할만한 기품 있고 인격적이며 매력적인 남자인 솔로몬과 한 몸을 이루는 관계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 여기에서는 ‘솔로몬의 침대’라는 은유적 표현을 통해 여자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최상으로 높여서 ‘여자의 영광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다. 비록 이 단락에서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세 번이나 등장하지만, 그 내용의 핵심에 있어서는 결코 솔로몬 자신은 등장하지 않는다.
신랑의 친구들이 혼인식 행렬에 함께 행진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솔로몬은 이 행렬에 이스라엘에서 가장 근엄하고 경험이 많으며 용감무쌍한 자신의 경호원들을 발탁하여 참여하게 하였다. 다윗은 자신의 개인 호위병으로 30명의 용사를 두었으며(삼하 23:13, 18-19, 23-37), 삼손은 자신의 혼인식에 30명의 친구들과 함께 했다(삿 14:11-20). 이와 비교할 때 솔로몬이 자신의 혼인식 행렬에 60명의 경호원들을 참여하게 한 것은 그 규모가 일반적인 규모를 뛰어 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60명의 경호원 구성이 이스라엘 12지파(각 지파에서 5명씩을 선발하면 60명이 된다)를 대표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는 술람미 여인이 이스라엘의 국모라는 점에서 이스라엘 12지파를 대표하는 60명으로 상징되는 경호원으로 호위를 받게 한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과연 이러한 숫자적 해석 방법이 본문의 이해를 돕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할 수 없게 만든다. 오히려 아가서의 표현은 혼인식 행렬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혼인의 신성함을 부각시키기 위한 표현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4. 신부를 위한 이동용 침대에 대한 묘사(아 3:9-10)
3:9 솔로몬 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연을 만들었는데
3:10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담이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사랑이 입혔구나
(필자역)
여인들의 합창(합창, 술람미 여인의 침상에 대한 묘사)
그 침상은 솔로몬 왕이 자신을 위하여 레바논의 나무로 만들었구나.
그 기둥들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천이라.
그 안에는 사랑이 입혔구나.
예루살렘의 딸들아.
이 혼인식 행렬은 그 규모뿐 아니라 내용 면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술람미가 앉아있는 이동용 침대는 최상급 재료들로 제작되었다. 가장 귀한 레바논 나무로 만들어진 이 침대의 기둥은 은으로, 바닥은 금으로 입혀졌다. 신부가 앉는 자리는 자색 비단으로 장식되었는데 자색은 왕실을 상징하는 색깔이었다. 이처럼 솔로몬은 신부에게 자기가 가진 것 중에서 최고의 것을 제공하였다.
특별히 아가서는 이 최상의 침대를 표현하기 위해 그 안에는 예루살렘 처녀들의 부러움(사랑)이 입혀져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 안에는 예루살렘 딸들의 사랑이 엮어져 있구나”(아 3:10)는 표현은 예루살렘 처녀들이 이 특별한 솔로몬의 침대가 누구의 것일까 상상하면서 그 침대가 자기를 위한 것이라면 좋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그 침대를 부러워하고 있음을 상상케 한다. 동시에 이러한 표현은 술람미 여인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음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본문의 ‘사랑’(הבהא)이라는 단어의 쓰임은 너무나 특이해서 이러한 묘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시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본문은 히브리어에서 볼 때 “그 기둥들은 은으로 그 등받이는 금으로 그 자리는 자주색 깔개로 만들었고 그 안은 사랑으로 장식되었으니 예루살렘의 딸들이 한 것이라”고 직역이 가능하다. 또는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천이라 그 안에는 사랑이 입혔구나 예루살렘의 딸들아”라고 읽을 수도 있다.
반면에 개역성경은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담이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사랑이 입혔구나”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개정개역에서는 “기둥은 은으로 입히고, 닫집은 금으로 꾸미고, 자리에는 보랏빛 털을 깔았구나. 그 안은 사랑으로 가득 찼구나.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라고 번역하고 있다.
KJV는 “He made the pillars thereof of silver, the bottom thereof of gold, the covering of it of purple, the midst thereof being paved with love, for the daughters of Jerusalem”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NIV는 “Its posts he made of silver, its base of gold. Its seat was upholstered with purple, its interior lovingly inlaid by the daughters of Jerusalem”으로 각각 번역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번역본들을 따라 본문을 유추한다면 이 이동용 침대의 핵심은 다름 아닌 ‘사랑’(הבהא)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술람미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사랑이었든지, 혹은 예루살렘 여인들의 사랑으로 장식되었든지, 또는 이 침대의 내부가 온통 사랑으로 치장되었다고 하든지, 나아가 이 솔로몬의 특별한 작품을 ‘사랑’이라고 칭하든지, 그리고 이로부터 발전하여 화려하고 장엄한 이 행렬의 전체를 ‘사랑’으로 확장해서 인식하든지 간에 이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야 말로 여기 진행하고 있는 모든 혼인식 행렬에서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혼인의 정신이 다름 아닌 ‘사랑’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혼인이 지향하는 최고선 역시 ‘사랑’으로 귀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후에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가리켜 본문과 동일한 단어인 ‘사랑’(הבהא)으로 지칭하고 있다(아 7:6).
이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 진행하고 있는 혼인식 행렬을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그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그들을 하나로 엮어주고 있는 ‘사랑’이야 말로 이 혼인식 행렬의 참된 주인공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사랑이야말로 남편과 아내가 혼인제도를 통하여 하나가 되게 하는 하나님의 본래 의도를 되찾게 하는 원동력(창 2:24)이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5.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에 대한 묘사(아 3:11)
3:11 시온의 여자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 모친의 씌운 면류관(冕旒冠)이 그 머리에 있구나
(필자역)
여인들의 합창(합창, 신랑에 대한 묘사)
나오너라, 시온의 딸들아, 보려무나.
화관을 쓴 솔로몬 왕을.
그 화관은 모친이 씌운 것이라.
그의 혼인식 날에
그의 마음에 기쁨의 날에.
남녀의 혼인은 본래 존엄하고 고귀한 사건이다. 혼인식에 참여하는 남자와 여자는 평범한 인간이지만 신부를 신랑에게로 데려오는 예식은 그 둘을 왕적인 신분으로 고양시킨다. 이때 혼인은 동시에 하나님이 여자를 첫 번째 ‘왕’인 아담에게로 데려오셨을 때인 창세기 2장의 모티프를 재현하게 된다. 그것은 타락으로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던 남녀의 연합을 보여줌으로써 창조의 기적을 상기시킨다. 이런 점에서 본문은 왕관을 쓴 솔로몬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의 어머니가 씌운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아 3:11)는 합창단의 선포는 모든 신랑에게 주어지는 왕적인 권위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본문에서 ‘왕관’ 혹은 ‘면류관’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솔로몬이 지금 머리에 쓰고 있는 화관(רטע)은 한 나라의 왕이 착용하는 왕관이나 면류관이 아닌 혼인식 때 착용하는 화관(花冠)임이 분명하다. 이 사실은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머리에 맞도록 만든 새로운 왕관이라고 묘사한 것으로 확실해진다.
당시의 혼인식에서 신랑의 어머니가 하는 역할은 혼인식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신랑의 어머니는 혼인식날 신랑의 머리에다 환관을 만들어 씌어주는 역할을 했는데, 이때 화관은 신랑과 신부가 연합됨으로써 얻게 되는 사랑의 기쁨을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어머니가 신랑의 머리에 화관을 씌어주었다는 것은 마침내 혼인식의 절차에서 최정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합창단들이 시온의 딸들에게 모두 나와서 화관을 쓰고 있는 솔로몬을 보라고 외치는 것은 이 혼인식이 정결하고 흠이 없으며 온전한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로써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혼인식은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증인이 되고 축하하는 가운데서 정점을 찍게 된다.
솔로몬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평소에 왕관을 착용함에 있어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혼인식에서 화관을 착용하는 것은 그것과는 절대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혼인식 화관은 인류 보편의 원칙인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화관을 쓴 모든 신랑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상의 권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금 솔로몬이 착용하고 있는 화관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그 권위가 주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