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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서 사는 사람
성경본문 : 느헤미야 11: 1-9
1. 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그 구분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하였으며 2.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 3. 이스라엘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은 유다 여러 성읍에서 각각 그 본성 본 기업에 거하였고 예루살렘에 거한 그 도의 두목들은 이러하니
4. 예루살렘에 거한 자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명이라 유다 자손 중에는 베레스 자손 아다야니 저는 웃시야의 아들이요 스가랴의 손자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스바댜의 현손이요 마할랄렐의 오대손이며
5. 또 마아세야니 저는 바룩의 아들이요 골호세의 손자요 하사야의 증손이요 아다야의 현손이요 요야립의 오대손이요 스가랴의 육대손이요 실로 사람의 칠대손이라
6. 예루살렘에 거한 베레스 자손의 도합이 사백 육십 팔명이니 다 용사이었느니라
7. 베냐민 자손은 살루니 저는 므술람의 아들이요 요엣의 손자요 브다야의 증손이요 골라야의 현손이요 마아세야의 오대손이요 이디엘의 육대손이요 여사야의 칠대손이며
8. 그 다음은 갑배와 살래 등이니 도합이 구백 이십 팔명이라
9. 시그리의 아들 요엘이 그 감독이 되었고 핫스누아의 아들 유다는 버금이 되어 성읍을 다스렸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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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청년회 수련회 때에 “하나님의 성을 쌓자” 라는 주제로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그 때에 택한 성경이 느헤미야였습니다. 제가 느헤미야를 택한 것은 우리 청년들이 세상의 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을 견고히 쌓고, 예루살렘에서 사는 사람과 같은 신앙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랬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배운 말씀을 오늘 본문으로 택하였습니다. 오늘은 수련회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공부하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느헤미야서는 성벽재건 운동과 영적 부흥 운동의 내용입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주전 586년에 멸망을 당한 유대백성들은 포로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은 중요한 자리로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은 왕을 가장 가깝게 모시며 왕이 마시는 술을 바치는 일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러기에 술 맡은 관원은 왕이 가장 신임하는 신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포로이면서 이렇게 높은 자리에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였습니다.
그러한 포로의 시기에 유대백성들이 3차례에 걸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먼저 제1진과 2진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을 쌓기 시작하는데 방해 세력의 힘으로 인하여 그만 중단이 되고 맙니다. 이 소식을 왕궁에서 들은 느헤미야는 듣고 몹시 괴로워하며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말씀을 드렸으나 왕은 만류를 합니다. 그러나 조국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있는 느헤미야였기에 왕은 하는 수 없이 하락하여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백성들을 이끌고 귀환하게 됩니다. 그것이 3차 귀환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 느헤미야는 왕궁에서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많은 어려움과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수축해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벽을 쌓기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성벽공사를 방해하는 세력은 여전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여전히 성벽 공사를 방해하였습니다.
실제로 느헤미야 4장 7절과 8절을 보면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잘 되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연합군을 형성해서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기로 함께 모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성벽을 쌓았기에 백성들은 한 손으로는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고, 건축하는 자는 칼을 차고, 나팔을 부는 사람을 항상 옆에 두고 쌓아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쌓은 성벽을 52일만에 기적적으로 완성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예루살렘 성벽을 쌓고 난 이후에 예루살렘성 안에서 거주할 사람들을 선정하는 과정과 성 안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수축할 때는 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성벽을 완성한 이후에도 이러한 위험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예루살렘성 안에서 산다는 것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제 적군이 쳐들어와서 공격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예루살렘성 안에서 살기보다는 위험부담이 적은 자기의 고향에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예루살렘성 안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 누군가는 예루살렘성 안에서 살아야 예루살렘 성을 지킬 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지키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좋은교회도 어떻게 보면 그 동안은 예루살렘 성을 쌓는 데에 온 힘을 모았고, 이제는 예루살렘성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성을 쌓는 일에는 모두 동참을 하지만 예루살렘성 안에서 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참여하지만 교회의 중심에 서서 십자가를 지고 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교회에 발을 깊숙하게 들여놓기보다는 한 발은 교회 안에 다른 한 발은 세상에 놓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바벨론 왕궁의 느헤미야로 사는 것보다는 예루살렘 성을 쌓고 예루살렘성 안에 사는 느헤미야가 더 복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교회는 왕궁의 술 맡은 관원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을 수축하는데 믿음으로 뛰어드는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고, 예루살렘성 안에서 사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찾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들 중에는 느헤미야와 같이 하나님의 성을 쌓는데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고, 예루살렘성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에 참여하는 사람은 느헤미야와 같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하나님의 성을 위하여, 그리고 예루살렘성 안에서 사는 데에 인생을 걸 수 있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이 되기 위하여 몇 가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첫째, 중심에 서는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성 안에서 산다는 것은 중심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중심은 언제나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 그들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중심에 서는 사람들이 됩니다. 중심에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살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예루살렘보다는 오히려 변두리에 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안에서 살면 적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기가 쉬운데 비해서, 예루살렘성 밖에서 살면 적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염려가 적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여기에 속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안이 오히려 더 안전하고 더 복된 곳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 서는 사람들의 길을 가리켜 좁을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중심에 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중심에 서서 일하는 사람은 변두리에 서서 있는 사람이 얻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보니까, 교인 중에는 두 분야에서 중심에 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좋은 일에 중심에 서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좋지 않은 일의 중심에 서는 사람입니다. 좋은 일에 중심에 서는 사람은 남을 돕고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는 언제나 앞장섭니다.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좋은 일을 누가 했나 하고 알아보면 그 사람입니다. 좋은 일에는 반드시 끼여 있어서 중심에 선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좋지 않은 일에 중심에 서는 사람은 좋지 않은 일에 앞장을 섭니다. 교회의 일을 하다 보면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분쟁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는데, 그 일을 수습하다가 보면 항상 끼여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지 않은 일에 앞장서는 사람, 좋지 않은 일에 중심에 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교인들이 많은 교회는 정말 힘들고 어렵습니다. 여러분, 좋지 않은 일에 중심에 서는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왕이면 선한 일, 남을 돕고 섬기는 일, 봉사하고 충성하는 일에 중심에 서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지난 2월 달에 President Day을 맞이하여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58명이 미국의 역대 대통령 41중에서 누가 가장 위대한 리더쉽을 발휘했는가?를 평가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위대한 대통령을 정의하는 개념이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렇게 큰 차이는 나지 않습니다.
조사 결과 1위는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었고, 2위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었으며, 3위는 조지 워싱톤 대통령이었습니다.
이 분들의 공통점은 현장의 중심에 섰던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남북 전쟁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에서, 조지 워싱톤 대통령은 독립전쟁에서 각각 중심에 섰던 분들입니다.
이 세 개의 전쟁은 미국이 흥하느냐, 망하느냐를 좌우하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를 피하지 않고 중심에 서서 지휘했던 대통령이 후대에 가서도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재임 기간 중에 인기에 치중을 해서 정책을 펼쳤던 사람들은 역사의 중심에 서지 못했습니다.
재임 기간 중에 인기절정이었던 레이건 대통령은 11위였고, 카리스마의 상징이었던 케네디 대통령은 8위였고, 스캔들을 일으키고도 인기와 경제호황으로 살아남은 클린턴 대통령은 21위였습니다. 또한 41명의 대통령 중에서 41위를 차지한 15대 대통령인 부캐넌은 링컨 대통령 바로 직전에 대통령을 했는데 인기있는 대통령이 되는데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흑인노예문제에 대하여 입장을 표명을 하지 않아 남과 북으로부터 믿을 수 없는 지도자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그는 결국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가장 변두리에 서는 불운한 대통령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중심에 서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힘들고 어려울 때에 중심에 섰던 사람들이 나중에도 언제나 중심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 예루살렘에서 사는 사람들이 나중에도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안에서 사는 것이 힘들고 위험부담이 있어서 성 밖에 살던 사람들은 나중에도 변함없이 성 밖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교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중심에 서서 한몫 하지 않고 모른 척 하다가, 교회가 나아지고 부흥되면 염치도 없이 중심에 서서 일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좋은교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틀림없이 생겨납니다. 이런 사람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만일 이런 사람들이 중심에 서게 되면 교회는 다시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예루살렘인 좋은교회의 중심에서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중심에서 힘써 교회를 섬기며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드리는 데에 중심에 서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찬양을 해도 중심에 서서 찬양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기도를 해도 중심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요즘 홈페이지 영문판을 만들고 있는데 정보통신팀에도 중심에 서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중심에 서서 하나님께 헌신하며 충성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지난주 청년부 성경공부는 교회생활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생활을 잘 할 수가 있을까를 공부하였습니다. 그 중에 교회를 사랑하기 위하여 세 가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는 ‘가능한 빠지지 말고 참여한다.’둘째는‘봉사와 헌신할 곳을 찾는다’그리고 셋째는 “중심에 서려고 노력한다.”였습니다. 중심에 서려고 노력하는 것이 교회생활을 잘 하는 것입니다. 각자 맡은 사역의 위치에서 섬기는 자세로 중심에 서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에 예루살렘 안에 사는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처음에나 나중에나 언제나 중심에 서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지도자들이 먼저 중심에 섰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수축하고 성 안에서 생활할 사람들을 선정하기 시작을 했는데 세 종류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1절과 2절의 말씀입니다.
다시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그 구분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하였으며,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아멘.
첫째 부류는 백성들의 두목이었고,
둘째 부류는 백성들 중에서 제비 뽑힌 사람들이었고,
셋째 부류는 자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 중에 어느 정도의 숫자는 예루살렘에 살아야 하는데 힘들고 위험하니까 고향에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두목들이 살기로 했고 자원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만 가지고는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백성 중에서 십분의 일을 제비 뽑았습니다.
결국은 강제로 예루살렘으로 이주를 시켰던 것입니다.
여러분, 조금 전에 읽은 말씀을 주의 깊게 보시면 예루살렘에 살기로 처음으로 결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중심에 살겠다고 처음으로 나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지요? 백성들의 두목입니다. 두목은 지도자입니다. 지도자들이 가장 먼저 예루살렘 안에서 살기로 결정을 했다는 거예요. 지도자가 누구입니까? 지도자는 백성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인도하는 사람들이에요.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지도자 한 사람에 의하여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예루살렘 밖에 있는 사람들의 모든 것이 달려 있는 것이지, 예루살렘 밖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의 모든 것이 달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중심에 있는 지도자들에 의하여 외곽에 있는 백성들의 생명이 달려 있는 것이지, 외곽에 있는 백성들에 의하여 중심에 있는 지도자들의 생명이 달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교회가 얼마나 좋은 교회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지도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지도자가 누구냐? 지도자와 같은 교인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두목과 같은 교인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서 좋은 교회냐 좋지 않은 교회냐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루살렘에서 사는 사람들이 되고 싶으세요? 우리 좋은교회의 중심에 서는 사람들이 되고 싶으세요? 두목과 같은 지도자와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두목들처럼, 지도자들처럼 예루살렘성 안에서 살겠다고 먼저 나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 지도자와 같이 먼저 나서는 사람이 많은 교회, 그런 교회가 좋은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자와 여러분이 그런 두목과 같은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교회 일은 먼저 하는 것이 좋습니다. 두 번째로 세 번째로 하는 것도 좋지만 할 수만 있으면 먼저 하려고 애쓰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이 많아야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부터 예배당에 들어오기 전에 헌금함에 헌금을 넣고 봉헌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올해 첫 주부터 하려고 했는데 헌금함을 구입하지 못해서 하지 못하다가 이제야 하게 되었습니다. 열흘 전에 마침 한국에서 오시는 분이 있어서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헌금함을 가져오셨습니다. 제가 헌금함을 보는 순간 교우 중에 한 분이 봉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광고를 했던 거예요. 광고를 하고 나서 혹시라도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믿음 없는 생각을 했었는데, 두 사람이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헌금함은 하나인 데 두 분이 한다고 그러니 고민이 되더라구요. 하는 수 없이 제가 한 분을 만나서 양해를 구했는데 그분이 이해를 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그 헌금을 돌려주려고 했더니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헌금은 이미 한 것이니까 우리 교회가 앞으로 건축도 해야 하니까 건축헌금으로 하지요. 그러시더라구요. 그렇게 해서 마무리가 되었어요. 아주 은혜롭게 끝을 맺었어요.
제가 그것을 보고서 “좋은교회는 역시 되는 교회다”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할렐루야! 서로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교인이 있는 교회가 되는 교회입니다. 서로가 눈치를 보다가 없으면 나중에 하는 수 없이 감당하는 교회는 목회하기도 힘들지만 여러분이 신앙생활하기에도 어렵습니다. 좋은교회는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믿음으로 서로가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앞으로도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무슨 일이든 먼저 하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가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참여하는 사람들이 좋은 것입니다.
자동차 운전을 해봐도 그렇잖아요. 앞장서서 먼저 운전하는 것이 쉽지, 뒤에서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신호등에 걸리기도 하고 다른 차가 추월하기도 하고 해서 따라가기가 더 어렵습니다. 좋은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로 합니다. 성 안에 사는 사람들로 인하여 성 밖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이 달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예루살렘 안에서, 교회의 중심에 서서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두목과 같은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루살렘에 살면 이름의 복을 받습니다.
오늘 3절 이하에는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에서 살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이름인데,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을 주축으로 제사장 계열과 족장들, 그리고 레위인 등의 이름입니다. 그들의 이름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느헤미야 전체를 읽어보면 알 수가 있듯이, 느헤미야에는 유독 사람의 이름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 3장을 보면 성벽을 재건할 때에 건축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어문은 누가 건축하고, 옛 문은 누가 중수하고, 골짜기 문은 누가 세우고, 샘 문은 누가 중수하고, 이런 식으로 성벽을 건축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 10장에 보면 성벽 공사를 끝내고 백성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회개와 금식하며 하나님께 죄를 뉘우치면서 ‘이제는 바로 살겠습니다. 이제는 순종하며 살겠습니다’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 앞에 언약을 세우고 서명을 합니다. 그 사람들의 이름이 낱낱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 7장 66절에 보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는 일반 회중이 42,360명, 종이 7,337명, 노래하는 자가 245명으로 총 49,942명입니다. 여기에 2차 귀환 때의 숫자를 더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예루살렘에 살기로 결정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포로에서 돌아온 많은 사람들 중에서 예루살렘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름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을까요?
예루살렘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자체가 복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위험을 무릎 쓰고 예루살렘을 적으로부터 보호하고 지키겠다는 마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름의 복을 주셔서 그러한 사람들의 이름을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이름의 복을 받습니다. 할렐루야!
오늘날에도 예루살렘인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겠다고 결단하는 헌신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의 이름을 하늘나라에 기록하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5절에서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한다”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루살렘에 살아서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복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복은 본인에게도 영광이지만 후손들에게도 영광과 긍지와 자부심이 됩니다. 이처럼 좋은 복은 없습니다. 이러한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욕심을 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쓰여진 이름은 지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새겨진 이름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영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분야에서 이름을 남기고 싶으세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는 사람들이 되어서 이름의 복을 받고 이름을 남기시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평생 믿음으로 예루살렘에 살아서 다음 세대와 후손들에게 삶에 영향을 끼치는 복된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즈음 세계적으로 벤처기업의 열풍이 대단합니다. 일부에서는 과열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미국에서 지난 1년간 전통적인 우량기업들이 모인 다우존스 지수가 8-9%포인트 오른 데 비해서, 나스닥 지수는 108% 포인트가 올랐습니다. 엄청난 거예요. 벤처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벤처기업은 말 그대로 도전정신과 모험심이 밑거름이고 그 다음은 첨단 기술력입니다. 벤처기업은 돈을 가지고 시작하는 기업이 아닙니다. 물론 자금력이 있어야 하지만, 그 보다는 첨단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은요 돈이 없어서 사업을 하지 못하는게 아니예요. 기술이 없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벤처기업은 기술만 있으면 할 수가 있습니다. 특별한 첨단기술만 가지고 있으면 돈을 대겠다는 사람이 줄을 있고 있습니다. 첨단 기술만 있으면 물질로 후원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은 마치 벤처기업을 하는 사람들과 같은 정신이 필요로 합니다. 벤처기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첨단기술이 생명이듯이, 예루살렘에 살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에게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살겠다고 믿음으로 결심하고 헌신하며 나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후원하십니다. 교회의 중심에 서서 하나님의 성을 쌓겠다고 헌신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밀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좋은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샌호세의 실리콘 밸리에서 벤처기업이 성공할 확률은 5%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사는 사람들은, 좋은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100% 성공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 왕의 왕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후원하시고 밀어주시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좋은교회의 중심에 서서 신앙생활을 하실 수 있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회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좋은교회 안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실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좋은교회가 아직은 개척교회라서 힘들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놓치고 나중에 교회가 성장한 후에 중심에 서려고 하면 안 됩니다. 두목과 같은 마음으로, 지도자와 같은 마음으로 먼저 교회의 중심에 서서 십자가와 같은 짐을 지고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며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이름의 복을 받습니다. 예루살렘에 여러분의 삶을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좋은교회에 여러분의 인생을 투자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좋은교회의 중심에서 헌신하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름의 복을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성령께서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교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하나님을 도울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