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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 Ⅰ (삼상 17:1-11)
영적적용 : 쓴뿌리론
작성자:한성진 목사
요약
골리앗은 쓴뿌리 인격의 상징이다. 쓴뿌리의 직접적인 원인은 장기간의 마음
의 상처와 간접적인 원인은 믿음의 약화에서 생겨난다. 쓴뿌리는 비정상적인
기형의 인격이며 파괴성 배타성 지배성 신속성 집착성 치명성 예비성 기만성
극단성 호전성 고난성 등의 특징을 지닌다.
설명
본문은 골리앗을 통하여 비정상적인 쓴뿌리 인격이 무엇임을 교훈한다.
☆ 쓴뿌리 인격의 원인
1. 첫째는 마음의 상처 때문이다.
1절 "블레셋 사람들이 ‥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치매"
2. 둘째는 믿음의 약화 때문이다.
2절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치고"
☆ 쓴뿌리 인격의 특징
1. 쓴뿌리는 기형적이다.
4절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2. 쓴뿌리는 파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5절 상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3. 쓴뿌리의는 남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5절 하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4. 쓴뿌리를 가진 사람의 행동을 막을 자가 없습니다.
6절 상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5. 쓴뿌리는 신속한 공격적 성향을 갖는다.
6절 하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6. 쓴뿌리는 강한 집착력을 갖는다.
7절 상 "그 창자루는 베틀 채 같고"
7. 쓴뿌리는 치명적인 상처를 받거나 준다.
7절 중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8. 쓴뿌리는 놀랍도록 상황을 미리 대비합니다.
7절 하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9. 쓴뿌리는 지레짐작한다.
8절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10. 쓴뿌리는 타협이란 없고 언제나 극단적이다.
9절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11. 쓴뿌리는 남이 자기를 건들기를 고대한다.
10-11절에 "그 블레셋 사람이 ‥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12. 쓴뿌리는 자타 간에 큰 고통을 준다.
16절 "그 블레셋 사람이 사십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
강해
오늘부터 몇 회에 걸쳐 "골리앗"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은
블레셋이 전에 믹마스 전투에서 당한 설욕을 보복하려고 다시 이스라엘을 쳐들어
와 괴롭힘이 그 역사적인 배경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사람 속에 남아 있는 쓴뿌
리 암초에 관한 교훈을 발견합니다. 태중에서부터 시작하여 일생을 통해 형성된
이 내적상처가 골리앗같이 크고 무서운 비정상적인 인격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우
리는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내적인 상처를 치유하지 않는다면 하
나님과 대인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커다란 파괴를 가져오기 때문에
참으로 주의해야 할 사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을 쓴뿌리 인격이라 하는데 쓴뿌리란 넓은 의미에서는 죄를 가리키고, 좁은
의미에서는 악한 기형적인 인격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연산군이나 히틀러나 이런
사람들이 다 쓴뿌리 때문이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히12:15에 "너희는 돌
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라"고 경고했
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골리앗을 통해서 보여주는 쓴뿌리의 정체를 깨닫고자 합니다.
☆ 쓴뿌리 인격의 원인
1. 쓴뿌리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인데 먼저는 마음의 상처 때문입니다.
1절에 "블레셋 사람들이 그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치매" 그랬습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쓴뿌리의 원인이 마음의 상처 때문임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마치 본문의 블레셋이 믹마스 전투에서 사울과 요나단에게서 치명적인 설욕을 당
하고 그 상처 때문에 이스라엘을 침공한 것과 같습니다. 믹마스 전투 때 그들은
완벽한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지만 크게 당했습니다. 기대가 크면 상처도 큰 법입
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때의 설욕을 잊지 못하고 천추의 한을 품고 보복하기 위
하여 온갖 힘을 길러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쳐들어 왔습니까? 유다에 속한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
입니다. 그들이 가장 강하고 중심부인 유다까지 쳐들어 왔다면 블레셋이 이미 전
쟁의 기선을 장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소고라고 했습니다. 소고란 '가시가
많은 곳'이라는 뜻입니다. 가시는 찔러 아프게 하는 물질의 상징입니다. 또 아세가
라고 했습니다. 아세가는 '파헤친 땅'이라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심히 훼손되고 파
괴된 땅이었습니다. 대개 땅은 마음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가 땅을 치지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많은 마음의 상처를 의미합니다. 그 두 사이의 에베스담
밈에 블레셋이 진을 쳤습니다. 이 에베스담밈이란 '피의 경계선'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원한이 서리고 맺힌 장소였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지명까지 이런 뜻을 가
지고 있는지 이래도 풍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놀라울
만큼 정확하고 수없이 반복되는 많은 영적인 비유들을 보면서 경탄하지 않을 수
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상의 말씀에서 쓴뿌리의 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찌르는 가시같
은 여러 고통을 통하여 받은 깊은 내적인 상처 때문입니다. 심하면 그 상처가 사
람을 무서운 악마로 만들기도 하고 혹은 실족시켜 지옥에까지 떨어뜨리기도 합니
다. 불완전한 세상이기에 실족시키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시키는 자에게
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쓴뿌리는 그 영향이 연쇄적이라는 것입니다. 즉 내가
상처를 받으면 나는 또 그 쓴뿌리로 다른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그것 때문에 쓴
뿌리가 된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또 다르게 고통을 줍니다. 그래서 세상에 무
시무시한 일들이 이 내적상처 때문에 일어납니다.
2. 또 쓴뿌리의 다른 원인은 믿음의 약화 때문입니다.
2절에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치고 블레셋 사람을
대하여 항오를 벌였으니" 했습니다.
블레셋이 쳐들어 오자 이스라엘은 엘라 골짜기에서 그들을 막았습니다. 여기 엘
라 골짜기는 '상수리나무의 골짜기'라는 의미로 신앙을 상징합니다. 본래 이스라엘
에서 상수리나무는 종교의 상징입니다. 타락했을 때는 우상의 장소요, 좋은 의미
로는 경건한 겐족속의 거주지입니다. 겐족속의 기호가 상수리나무였습니다. 마치
우리가 십자가 보고 찾아가면 그곳에서 교인들을 만나듯 그 민족들은 각 나라에
흩어져 살았지만 상수리나무 아래만 찾아가면 자기 민족을 만날 수가 있었던 것
입니다. 그래서 상수리 나무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신앙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엘라골짜기는 본래 물이 많이 흐르는 골짜기이지만 여름 건기에는 물
이 흐르지 않습니다. 이 때가 바로 이 여름이었습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을 하지만
은혜가 메마를 때를 가리킵니다. 이 때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이 때가 쓴뿌
리의 때입니다. 쓴뿌리는 성령이 충만할 때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화될 때 옛날의 상처가 다시 되살아 나서 사람을 괴롭힙니다. 믿음이 약화될 때
이미 치료받은 상처도 다시 도집니다. 마치 젊은 시절의 상처가 나았다가도 노년
기에 다시 도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왜 하나님의 치유를 받았는데 다시 아픈
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상처가 또 다시 아픔으로 몰
려올 때 자신의 믿음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내적치유에 대해
많이 듣지만 다시 도지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이 전쟁이 터진 이유도 역시 그래서였습니다. 사울이 여호와의 신으로 충만할 때
는 강력한 지도력으로 블레셋을 압도할 수 있었으나 여호와의 신이 떠나자 그의
영도력은 급격히 약화되어 급기야는 블레셋에게 틈을 보여 침공을 당하게 되었습
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은혜 떨어지면 언제나 본바탕이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쓴
뿌리의 제 이차적인 원인이면서 도리어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
에 많은 문제들도 이 쓴뿌리 인격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원인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충만받아 영육간에 건강
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믿음 떨어지면 심지어는 과거의 축복도 고통으로 인식되고 은혜도 무거
운 짐으로 인식이 되어집니다. 좋은 예로 솔로몬 통치 시기에 백성들의 세금생활
과 그가 죽은 후의 세금에 대한 느낌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솔로몬의 태평
성대의 통치시기에 백성들은 세금을 많이 냈지만 조금도 무거운 줄 몰랐고 그들
의 삶은 풍족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자 그들은 세금의 무거운 짐을 느끼
기 시작했고 드디어 호소하다가 들어주지 않자 결국은 남북왕국으로 분열하는 가
시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믿음 떨어지면 낮은 자리에서 일생을 헌신하고서도 그
것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어차피 세상에서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
므로 쓴뿌리의 원인을 밖에서 찾기보다 도리어 안에서 찾아 믿음 안에서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쓴뿌리 인격의 특징
1. 쓴뿌리는 기형적인 인격으로 나타납니다.
4절에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라고 했습니다.
당시 블레셋은 헬라문화권의 영향을 받아 전군을 대표한 선봉장끼리의 전투를
시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골리앗이라는 거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골리앗은 아낙의 후손으로서 기형적인 거인족입니다. 여섯규빗 한뼘이면 45×6에
20을 더하면 290cm니까 3미터의 키입니다. 몸무게를 따지면 약 300kg은 넉넉히
될 것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장수였으니 그 무술에 단련된 사람을 누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더구나 가드 사람었습니다. 가드의 그 뜻이 '포도주틀'이
듯 그 곳은 포도주의 주산지입니다. 포도주는 인격을 망치는 물질입니다. 그러므
로 골리앗은 마음의 상처를 받고 태어난 비인격적이요 기형적인 무서운 쓴뿌리의
인격을 상징합니다. 사람이 마음의 상처를 깊이 받으면 이렇게 기형적인 무서운
인격이 만들어집니다.
이 상처가 하나님과의 관계일 때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대항 혹은 도덕의 불
감증과 윤리의 상실 등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상처를 주신 것이 아니
라 스스로 종교적인 모순에 빠져 자가당착으로 상처를 받는 것을 뜻합니다. 또 자
신과의 관계일 때는 자기비하 무가치 거부 증오 혐오 용서치못함 열등감 우울증
자폐 자기사랑 이기주의 배타주의 의존주의 등으로 나타나고, 타인과의 관계일 때
는 반사회적 적대적 시기 질투 분쟁 믿지못함 불쾌하게 하고 방해함 등으로 나타
나게 됩니다.
그 증상들을 보면 특별하게 화를 낼 일도 아닌데 심하게 화를 낸다든가 반대로
심하게 두려워 하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혹은 자기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표
출하여 대인관계가 파괴되어 외톨이가 된다든가 혹은 감정이 격해지면 신체적으
로도 여러 반응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무감각하고 정지하
는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것은 증세가 심하지 않을 때고 좀 더
심해지면 무서운 구두쇠 돈벌레가 되기도 하고, 남에게 인정사정을 두지 않는 포
악하고 냉정한 인격자가 되기도 하고, 지나칠만큼 성실한 완벽주의자가 되기도하
며, 남의 잘못을 용납하지 못하는 협소한 인격자가 되기도 합니다. 혹은 돈에 궁
색했던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은 돈이 우상이 되어 돈을 벌기만 하지 쓰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이것이 다 기형적인 인격의 병이요 쓴뿌리의 무서운 골리
앗입니다.
2. 쓴뿌리의 머리 속에는 파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5절에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했습니다.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것인데 놋쇠는 언제나 심판이나 파괴를 가리킵니다. 그
러니까 쓴뿌리를 가진 자의 생각은 늘 파괴적입니다. 그들은 건설적인 생각을 하
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자비한 파괴의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테러분자
들이 생기거나 아니면 스스로 자살을 하고 맙니다. 이런 사람들은 문제를 만들어
내는 기계와 같습니다. 또 원수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은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
인 면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사전에는 안된다 못한다 죽겠다 등의
단어만이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이 쓴뿌리의 인격을 처리하지 못하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아직 원수
에 대한 원한이 있는데 어떻게 은혜 속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혹은 그리스도 안
에서 주신 은혜와 창조적인 자기에 대한 확신보다는 상처에 근거한 우울하고 실
패와 파괴의 자화상에 집착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
니까? 그에게는 미움이 있습니다. 용서치 못함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있습니다.
교만이 있습니다. 불신이 있습니다. 각자가 경우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막
는 치명적인 요건들이 존재하는 한 은혜 속에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치유의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천국이 생명나무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하기 위해서
있었습니다(계22:2). 이 잎사귀는 성령의 치유의 은총을 상징합니다. 그럼 만국이
무엇입니까? 주관적인 면에서 보면 성도들 각인의 심령이 나라요 만국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는 먼저 이 쓴뿌리의 죄의 인격부터 처리 받아야 하겠습니다.
3. 쓴뿌리의 마음은 남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시 5절에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
랬습니다.
여기 어린갑이란 비늘 모양의 철판을 옷감에 다닥 다닥 붙인 갑옷으로 왕이나
대장군만이 착용했습니다. 그런데 그 갑옷의 중수가 오천세겔이라 오천세겔이면
한 세겔이 11.5g이니까 약 57.5kg이라는 엄청난 무게입니다. 그런데 오천이란 고
통의 수 5에 충만수 1000을 곱한 것으로 그에게는 눈물어린 추억의 상처를 나타
냅니다. 그러니까 은혜의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고통의 옷입니다. 거기다 철갑은
바로 철통같이 강한 의지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쓴뿌리가 있게 되면 이를 갈면서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옳지 않다는 마음의 소리도 묵살
합니다. 타인의 훈화도 너부터 잘하라는 식으로 비웃습니다. 그리고 옳은 길을 알
면서도 일부러 그 반대로만 나갑니다. 이런 몹쓸 심통이 있다면 이 시간에 치유받
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쓴뿌리를 가진 사람의 행동을 막을 자가 없습니다.
6절에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했습니다.
여기 놋경갑은 다리를 보호하는 호신구입니다. 그런데 놋이므로 놋다리입니다.
이것은 아무도 그들의 행동을 막을 자가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은 기어코 남을 밟
아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쓴뿌리가 있는 사람들은
남에게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직성이 풀립니다. 어떤
사람 이야기인데 예수 믿기 전에는 동네에서 깡패 아줌마로 통하는 사람이었습니
다. 그는 잘못했어도 한 번도 잘못했다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그의 불
행했던 성장배경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기를 싫어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 예수 믿고 그의 열등감은 치료되었고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했
습니다.
중국 영화에는 이 쓴뿌리에 기초를 둔 원수를 갚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일생을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 형제 혹은 사부 등의 원수를 갚는 일에 바칩니다.
이들이 행동을 막을 자가 없습니다. 그들은 쓴뿌리에 강하게 잡혀 있기 때문입니
다. 어떤 사람은 가난의 쓴뿌리 때문에 일생을 돈벌레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쓴뿌
리는 강한 행동력을 갖기 때문에 무섭습니다. 유대인 의붓 아버지에게 증오심을
품은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모두 학살할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혹시 이런 쓴뿌
리의 심령을 가지고 있다면 이 시간 은혜 받고 놋경갑을 풀어 던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쓴뿌리를 가진 사람은 신속한 공격적 성향을 갖습니다.
다시 6절에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했습니다.
놋단창은 던지는 짧은 창입니다. 그런데 놋단창을 어께 사이에 메었다는 것은 신
속하게 사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상처가 깊은 사람은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즉시 공격해 버립니다. 마치 독오른 독사와도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행동기준은 감정이지 이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개 싸움의 동기
를 보면 과거의 상처가 쌓이고 쌓여서 발생합니다. 그래서 엉뚱한 사람이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6. 쓴뿌리를 가지면 강한 집착력을 갖습니다.
7절에 "그 창자루는 베틀 채 같고" 그랬습니다.
이것은 창자루가 길뿐 아니라 베틀채처럼 가죽으로 감겨 있어 손에서 쉽게 미끌
어지지 않도록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강한 집착력을 가리킵니다. 한 번
쥐면 놓지를 못합니다. 쥘뿐 아니라 휘두릅니다. 그래서 돈도 생기면 그 돈을 강
하게 쥐어 가족의 원성을 사고 혹은 수전노가 됩니다. 이것은 돈만이 아니라 명예
권세 원한 좌절 낙심 염려 배타심 미움 등 한 번 쥐면 놓지를 못합니다. 그것이
원한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권력을 쥐면 죽어서나 내려올까 스스로 내려오
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다 병적인 것들입니다.
7. 쓴뿌리를 가지면 치명적인 상처를 받거나 주게 됩니다.
다시 7절에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그랬습니다.
여기 창날은 상처를 주는 부분입니다. 또 철은 강함의 상징인데 여기 육백세겔이
라함은 6은 짐승 혹은 사람의 수요, 100은 시험과 모두를 가리키는 수인 10에 제
곱을 한 수로 제곱은 영육간 혹은 온전한 전체 혹은 철저를 뜻하는데 이 의미들
을 종합하면 철저한 본능성 혹은 잔악성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쓴뿌리를 가진
사람은 아주 자기나 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줍니다. 이것이 쓴뿌리의 창날입니
다. 그래서 히12:15에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
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
움을 입을까 두려워하라" 고 했습니다.
8. 쓴뿌리는 놀랍도록 상황을 미리 대비합니다.
다시 7절에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했습니다.
여기 자기가 방패를 들지 않고 방패든 사람이 앞에서 행하는 것은 참 특이한 현
상입니다. 이 방패가 앞서는 현상은 바로 쓴뿌리를 가지면 상황을 미리서 대비한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 만일 이렇게 하기만 하봐라 가만 두지 않을
거다' 하면서 할 일을 미리 다 궁리해 놓습니다. 이 대비가 얼마나 철저한지 모릅
니다. 이것을 앙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픈 데를 건들면 즉각 태세에 들어갑니
다. 대단히 위험하고 무서운 사람입니다.
9. 그런가 하면 쓴뿌리는 미리서 지레짐작까지 합니다.
8절에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
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했습니다.
여기 제 멋대로 말하는 골리앗을 보십시오. 이처럼 쓴뿌리를 가진 사람은 대개가
황당한 지레짐작을 합니다. 그들은 강한 피해의식이 있기 때문에 남을 의심하고
남을 적으로 생각하기 일수이며 따라서 언제나 남을 경계하고 작은 일을 가지고
도 사건을 비약시켜 큰 곤욕을 줍니다. 이런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일하
는 사람들은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그래서 공연한 의심도 받고 철저히 단결된 그
들에 의해서 집단적인 공격도 받습니다.
10. 쓴뿌리는 타협이란 없고 언제나 극단적입니다.
9절에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
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 얼마나 극단적인 발언입니까? 이처럼 쓴뿌리의 소유지들은 이것 아니면 저것
이지 이해도 타협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오랜 상처로 인해 원한으
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종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죄의 쓴뿌리
는 우리 인격을 지배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공존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누가 지배하느냐가 있을 뿐이지 공존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의
두 왕권이 갈등합니다. 그러나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 승리하듯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11. 쓴뿌리는 심지어 남이 자기를 건들기를 학수 고대하기까지 합니다.
10-11절에 "그 블레셋 사람이 또 가로되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
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
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했습니다.
여기 골리앗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여 싸울 환경을 만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이렇게 쓴뿌리는
싸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생기기를 고대합니
다.
12. 쓴뿌리는 자타 간에 큰 고통을 줍니다.
16절에 "그 블레셋 사람이 사십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 했습니
다.
40은 시험과 시련과 고통과 연단의 수입니다. 여기서 객관적으로는 시험의 의미
입니다. 이처럼 쓴뿌리가 나면 괴로움을 줍니다. 그래서 본인도 괴롭고 가정도 괴
롭고 교회도 사회도 모두 괴롭습니다. 이러한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회는
불행합니다. 그러나 주관적으로 보면 모든 성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연단의 상
징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쓴뿌리는 인간의 보편적인 죄의 현상으로 그러므로
성도라면 홍역처럼 한 번은 필연적으로 치루어야 합니다. 인간은 잠재적인 측면에
서 모두 죄라는 쓴뿌리 보균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의 이것들이 드러남으로
그것을 처리하기 위한 믿음의 연단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이해를 위해 이 골리앗 사건의 영적인 시점을 알아야 합니다. 앞서 배운
대로 이 사건은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후의 사건입니다. 즉 우리 안에서 그리스
도의 통치가 시작되는 시점입니다. 이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의 쓴뿌리들을
처리하시기 위해서 드러내시기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이것의 처리 기간을 상징하
는 40의 수를 통과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40수를 통과한 사람들은 모두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40수는 평안의 수가 아닙니다. 훈련의 수요 내가 죽는 수입니
다.
눅12:49-53에 "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
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잠정적이지만 일시 동안은 도
리어 갈등의 기간을 거칩니다. 이 집안의 분쟁은 문자적으로는 가족을 의미하지만
좁게는 각인의 심령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우리 속에 원수가 가장 많습니다. 그래
서 골리앗이 그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우리 속의 골리앗이 처리받기 위해서 자기
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골리앗의 정체를 발견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정도와 종류는 달라도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다. 그 상처로 골리앗이 발생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
님 앞에 나아와 마음의 치료를 받으십시다. 골리앗을 죽이십시다. 그래서 온전히
마음의 화평을 누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