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에서 본 참 믿음
(수 3:1-4)
1.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2. 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이 시간에는 "요단강에서 본 참 믿음"이라는 제목입니다. 참 믿음인지 아닌지를 보려면 어떤 일을 당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참 믿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고 계속하지만 가짜 믿음은 곧 포기하거나 배반하고 맙니다. 그래서 고전3:12-15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단강이 바로 그것입니다. 요단강은 참 믿음이 아니고는 건너갈 수 없는 강이기 때문입니다. 홍해는 하나님의 은혜와 모세의 믿음으로 갈라져서 밤에 얼떨결에 건넜지만 요단강은 흐르고 있는 강을 갈라질 줄로 믿고 대낮에 밟고 건너야 합니다. 목숨 걸고 하는 일이니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강을 건너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단강을 건너는 믿음이 아주 중요합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1.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담대한 믿음입니다.
1절에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그랬습니다. 여기 "더불어" 그랬고 이처럼 여호수아는 요단강 앞에서 백성들과 함께 3일을 유숙합니다.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유숙했는데 이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된 연합의 비밀을 보여줍니다.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했기 때문에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한바 된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6:4-6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했습니다. 여기 세례는 믿음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혼자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바울은 이 연합의 축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엡 1장에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았고(3절) 그 안에서 예정함을 받았고(4절) 자녀들이 되었고(5절) 은혜를 받았으며(6절) 죄사함을 받았으며(7절) 그 안에서 기업이 되고(11절) 그 안에서 성령의 인침을 받았다(13절)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엡2:4-6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 셨다고 찬미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태운 배가 폭풍을 만났을 때 제자들은 두려워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니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그 믿음으로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 된 자를 예수 이름으로 고쳤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없지만 내 안에 예수님은 하실 수 있고, 나는 무지하지만 내 안의 예수님은 지혜롭고, 나는 약하지만 내 안의 예수님은 강하시다는 믿음 가지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의식하며 담대한 믿음에 서는 믿음입니다. 내가 맞서는 것 같지만 예수님과 함께 맞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4:13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믿음으로 죄악도 이기시고 바람과 바다도 잔잔하게 하시고 사탄도 굴복시키시고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예수와 하나된 자이므로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 가지고 나가면 우리 앞에 요단강도 갈라지고 여리고도 무너지고 하늘에서 만나와 반석에서 생수가 터집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고 해냐지 전능하신 예수님을 제외하고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서운해 하십니다.
2. 참 믿음은 하나님 중심의 믿음입니다.
3절에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했습니다. 여기 여호와의 언약궤는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요 하나님의 말씀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성물입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의 행동의 원리였습니다. 언약궤가 머물면 이스라엘도 머물고 언약궤가 행하면 이스라엘도 행하고, 한 곳에 언약궤가 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를 중심으로 진을 쳤습니다. 언약궤가 행동의 원리요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 중심으로 했고, 하나님의 뜻대로 했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열심히 해도 내 뜻대로 하는 열심이라면 불합격입니다. 내 뜻과 내 방법을 내려놓을수록 빠릅니다. 내 못난 주장 때문에 수많은 세월 허송세월했습니다. 그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을 내려놓기까지 그 허송세월은 계속됩니다.
어떤 중년의 독신자가 결혼을 하려고 어떤 여자 분을 만났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그 여성은 사업도 하고 여러 면에서 훌륭했지만 개성과 주장이 너무 강해서 음식을 대접한다든지 무엇을 할 때 상대방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함께 사는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우리 주관과 개성이 강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말고 항상 주의 말씀대로 하려고 하고 "주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주의 뜻대로 하시고 또 써주시길 원하나이다." 이렇게 늘 겸손하게 엎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것이 바로 가나안 복지 천국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게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3. 참 믿음은 말씀 중심의 믿음입니다.
4절에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했습니다. 여기 언약궤와의 상거가 이천 규빗이었는데 그 거리는 약 1km입니다. 이천 규빗은 떨어져야 멀리서 불기둥 구름기둥을 보고 비로소 행할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가까우면 구름기둥의 안개 속에서 구름의 이동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체험중심이 아니라 말씀중심으로 나가야 함을 봅니다. 자기 느낌이나 감정은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변합니다. 체험을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체험 위주가 되면 안정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사탄의 시험도 있고 내 생각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초신자나 위기나 절실한 순간에는 체험도 주시지만 대부분 말씀 위주로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참고로 이천 규빗의 2는 증거의 수요, 천은 충만수이지만 만만에 비해 제한된 수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과 그의 뜻을 증거하는 말씀으로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으로 구원 얻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데 그 뜻이 변치 않도록 하기 위해 더 이상 기록될 수 없는 기록의 종결성을 가진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의지해야지 체험과 상황이나 이론에 의지하면 큰 시험에 빠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그 말씀보다 광야의 환경과 상황에 더 압도되었고, 가나안을 정탐한 후에도 그들의 강대함과 힘에 압도 당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함으로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간 방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 속에서도 말씀에 견고히 서서 그 말씀에 기초하여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단강 너머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무궁한 복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없이는 갈 수 없고 믿음 없이는 누릴 수 없는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하심을 믿는 담대한 믿음, 하나님 중심의 믿음, 성경 중심의 믿음으로 우리를 예수 안에서 천국의 복을 주신 것을 늘 감사하고 찬송하며 살아가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천국의 복을 누리고 또 누리는 참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