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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其白(지기백) : 흰 것(白)을 알고
守其黑(수기흑) : 검은 것(黑)을 지키라,
爲天下式(위천하식) : 천하의 본보기(式)가 될 것이다.
爲天下式(위천하식) : 천하의 본보기(式)가 되면,
常德不忒(상덕불특) : 항상 덕에서 어긋나지 않아,
復歸於無極(복귀어무극) : 무극(無式)으로 돌아가리라.
知其榮(지기영) : 영예(榮)를 알고
守其辱(수기욕) : 욕됨(辱)을 지키라.
爲天下谷(위천하곡) : 천하의 골짜기(谷)가 될 것이다.
爲天下谷(위천하곡) : 천하의 골짜기(谷)가 되면
常德乃足(상덕내족) : 항상 덕을 갖추게 되어
復歸於樸(복귀어박) : 통나무(樸)로 돌아가리라.
樸散則爲器(박산즉위기) : 통나무(樸)가 쪼개어져 그릇이 만들어지는 것이니,
聖人用之(성인용지) : 성인은 통나무(樸)를 써서
則爲官長(즉위관장) : 백관(官)의 으뜸(長)이 되는 법이다.
故大制不割(고대제불할) : 고로 훌륭한 다스림(大制)은 쪼개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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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다움(雄)을 알면서 여성다움(雌)을 지키라.
천하의 시냇물(谿)이 될 것이다.
천하의 시냇물(谿)이 되면,
항상 덕에서 떨어지지 않게 되어,
갓난아이(嬰兒)로 돌아가리라.
흰 것(白)을 알고 검은 것(黑)을 지키라,
천하의 본보기(式)가 될 것이다.
천하의 본보기(式)가 되면,
항상 덕에서 어긋나지 않아,
무극(無式)으로 돌아가리라.
영예(榮)를 알고 욕됨(辱)을 지키라.
천하의 골짜기(谷)가 될 것이다.
천하의 골짜기(谷)가 되면
항상 덕을 갖추게 되어,
통나무(樸)로 돌아가리라.
통나무(樸)가 쪼개어져 그릇이 만들어지는 것이니,
성인은 통나무(樸)를 써서 백관(官)의 으뜸(長)이 되는 법이다.
고로 훌륭한 다스림(大制)은 쪼개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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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강남 역>
남성다움을 알면서 여성다움을 유지하십시요.
세상의 협곡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협곡이 되면
영원한 덕에서 떠나지 않고,
흰 것을 알면서 검은 것을 유지하십시오.
세상의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세상의 본보기가 되면,
영원한 덕에서 어긋나지 않고,
무극無極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영광을 알면서 오욕을 유지하십시오.
세상의 골짜기가 될 것입니다.
세상의 골짜기가 되면,
영원한 덕이 풍족하게 되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다듬지 않은 통나무를 쪼개면 그릇이 됩니다.
성인은 이를 사용하여 지도자가 됩니다.
정말로 훌륭한 지도자는 자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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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을 알면서도 암컷을 지키면
천하의 계곡이 된다.
천하의 계곡이 되면 언제나 덕이 떠나지 않는다
덕이 떠나지 않으면 어린아이로 되돌아간다
깨끗한 것을 알면서도 더러운 것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언제나 덕이 족하다
덕이 족하면 통나무로 돌아간다
흰 것을 알면서도 검은 것을 지키면
천하의 모범이 된다
천하의 모범이 되면 언제나 덕이 어그러지지 않는다
덕이 어그러지지 않으면 무극으로 돌아간다
통나무가 흩어지면 그릇이 되고
성인이 쓰이면 군왕이 된다
무릇 큰 제도는 갈라짐이 없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恒德不離. 德不離, 復歸於嬰兒. 知其白,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恒德乃足. 德乃足, 復歸於樸.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恒德不忒. 德不忒, 復歸於无極. 樸散則爲器, 聖人用則爲官長. 夫大制无割.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노자(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2003. 6. 30., 김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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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당 역>
남성다움을 알면서
여성다움을 유지하면
세상의 협곡이 될 것이다.
세상의 협곡이 되면
영원한 덕에서 떠나지 않고
갓난아기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흰 것을 알면서
검은 것을 유지하면
세상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세상의 본보기가 되면
영원한 덕에서 어긋나지 않고
무극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영광을 알면서
오욕을 유지하면
세상의 골짜기가 될 것이다.
세상의 골짜기가 되면
영원한 덕이 풍족하게 되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다듬지 않은 통나무를 쪼개면 그룻이 되는데,
성인은 이를 사용하여
지도자가 된다.
정말로 훌륭한 지도자는 자르는 일을 하지 않는다.
<임채우 역>
28 여성스러움을 지켜서
남성다움을 알지만 여성스러움을 지켜서
세상의 계곡이 되니
세상의 계곡처럼 되면
영원히 덕이 떠나지 않으며
어린아이로 되돌아간다.
그 밝은 것을 알되 그 어두운 것을 지킴이
천하의 표준이 되니,
천하의 표준이 되면
영원한 덕이 어긋나지 않으며,
무궁한 세계로 복귀한다.
그 영화로움을 알면서도 그 욕됨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되니,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언제나 덕이 넉넉하며
다시 질박함으로 돌아간다.
질박한 통나무가 깨져서 그릇이 되나니,
성인이 이를 이용해서 군왕이 된다.
그러므로 큰 재단은 자르지 않고 짓는다.
<James Legge 역>
1. Who knows his manhood's strength, Yet still his female feebleness maintains; As to one channel flow the many drains, All come to him, yea, all beneath the sky. Thus he the constant excellence retains; The simple child again, free from all stains. Who knows how white attracts, Yet always keeps himself within black's shade, The pattern of humility displayed, Displayed in view of all beneath the sky; He in the unchanging excellence arrayed, Endless return to man's first state has made. Who knows how glory shines, Yet loves disgrace, nor e'er for it is pale; Behold his presence in a spacious vale, To which men come from all beneath the sky. The unchanging excellence completes its tale; The simple infant man in him we hail.
2. The unwrought material, when divided and distributed, forms vessels. The sage, when employed, becomes the Head of all the Officers (of government); and in his greatest regulations he employs no violent measures.
<Lin Derek 역>
Know the masculine, hold to the feminine
Be the watercourse of the world
Being the watercourse of the world
The eternal virtue does not depart
Return to the state of the infant
Know the white, hold to the black
Be the standard of the world
Being the standard of the world
The eternal virtue does not deviate
Return to the state of the boundless
Know the honor, hold to the humility
Be the valley of the world
Being the valley of the world
The eternal virtue shall be sufficient
Return to the state of plain wood
Plain wood splits, then becomes tools
The sages utilize them
And then become leaders
Thus the greater whole is undivided
<장 도연 역>
제28장 자신의 우매함을 지키면 세상의 본보기가 된다
수컷의 강함이 있음을 알면서도
암컷의 유순한 겸허를 지킨다면
계곡의 물과 같이 될 것이다.
계곡물과 같이 되면
영원히 덕이 떠나지 않으므로
순진무구한 갓난아기로 돌아가게 된다.
깨끗함을 깊이 알면서
자신의 우매함을 지키면
천하의 본보기가 된다.
천하의 본보기가 되면
그 덕은 영원하며 흠잡을 데가 없고
다시 우주의 시초로 돌아간다.
영화로움을 알면서도
그 욕됨을 참고 굴욕을 지킨다면
천하의 산골짜기에 머문다.
천하의 산골짜기에 머물면 덕은 영원히 풍족하고
순박한 상태로 돌아간다.
순박함을 자연의 큰 道로 여기고
성인은 그에 의지하여 통솔한다.
그러므로 훌륭한 통치제도는
억지로 자르거나 분할하면 안 된다.
<왕필 노자주 / 임채우 역>
남성다움을 알고 여성스러움을 지키면 천하의 계곡이 되니, 천하의 계곡에는 영원한 덕이 떠나지 않으며 어린아이처럼 되돌아간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嬰兒.
수컷은 앞서는 성질을 가진 부류이고, 암컷은 뒤처지는 붙이다. 세상에서 앞서려고 하면 반드시 뒤처지게 됨을 알기 때문에 성인은 자신을 뒤에 두지만 앞서고, 계곡은 사물을 부르지 않지만 사물이 스스로 돌아가고, 어린아이는 꾀를 쓰지 않지만 저절로 자연의 지혜에 합치한다.
雄, 先之屬. 雌, 後之屬也. 知爲天下之先[者]必後也.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也. 谿不求物, 而物自歸之. 嬰兒不用智, 而合自然之智.
그 밝은 것을 알고, 그 어두운 것을 지키면 천하의 준칙이 되니,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식(式)이란 모범이 되는 준칙이다.
式, 模則也.
천하의 준칙이 되면 항상 덕이 어긋나지 않으며,
爲天下式, 常德不忒,
특(忒)은 어긋난다는 뜻이다.
忒, 差也.
무궁의 세계로 복귀한다.
復歸於無極.
다할 수 없다.
不可窮也.
그 영화로움을 알고 그 욕됨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되니,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언제나 덕이 넉넉하며 다시 질박함으로 돌아간다.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주석>
『이아』(爾雅) 「석수」(釋水)에 “물이 강으로 흘러가는 것을 시내라고 하고 시내에 흘러가는 것을 골짜기라고 한다(水注川曰溪 注溪曰谷)”라고 했다.
이 세 가지는 항상 반대로 결과를 맺으니, 뒤에 물러설 줄 알아야 각각 처하는 바에서 자신의 덕이 온전하게 됨을 말한다. 아래 장(40장)에서 돌아감(혹은 相反됨)은 도의 움직임이라고 했으니, 공(功, 즉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을 취해서는 안 되고 항상 그 모(母, 즉 근원)에 처해야 한다.
此三者, 言常反終, 後乃德全其所處也. 下章云, 反者道之動也. 功不可取, 常處其母也.
질박함이(혹은 통나무가) 부서져 그릇이 되니, 성인이 그것을 써서 관장(官長, 즉 관직과 사회제도 및 예법질서)을 만든다.
樸散則爲器, 聖人用之則爲官長.
박(樸)은 진실함이다. 진실됨이 흩어져 온갖 (꾸며진) 행실들이 나오며, 갖가지 종류가 생겨나는 것이, 마치 (통나무가 잘려져) 그릇이 되는 것과 같다. 성인은 그 나뉘어 흩어짐에 따라, 그것을 위해 관장(官長)을 세우고, 선으로 스승을 삼고 불선을 의지해, 풍속을 바꾸어 다시 하나로 돌아가게 한다.
樸, 眞也. 眞散則百行出, 殊類生, 若器也. 聖人因其分散, 故爲之立官長. 以善爲師, 不善爲資, 移風易俗, 復使歸於一也.
그러므로 큰 재단(즉 성인의 정치나 제도)은 자르지 않는다.
故大制不割.
크게 짓는다는 것은 천하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삼는 것이므로 자르지 않는다.
大制者, 以天下之心爲心, 故無割也.
<Stefan Stenudd 역>
Knowing the manly, but clinging to the womanly,
You become the valley of the world.
Being the valley of the world,
Eternal virtue will never desert you,
And you become like a little child anew.
Knowing the bright, but clinging to the dark,
You become a model to the world.
Being a model to the world,
Eternal virtue will never falter in you,
And you return to the boundless.
Knowing honor, but clinging to disgrace,
You become the valley of the world.
Being the valley of the world,
Eternal virtue will be full in you,
And you return to the state of uncarved wood.
When the uncarved wood is split,
Its parts are put to use.
When the sage is put to use,
He becomes the head.
The best way to carve is not to split.
Be Like Uncarved Wood
Lao Tzu is fond of the image of the uncarved wood as a symbol of simplicity and humility. He uses it several times in his book. A piece of wood is as simple as something can ever be, but it contains numerous possibilities. When carved, it can become almost anything you want. Still, nothing surpasses the natural state of wood before the knife is put to it.
We should not think that we improve the wood by our carving. We just change it. That way it may become more useful to us, but in no way finer than it was in its original state.
This is even more obvious if compared to what it was when still part of a living tree, where it participated in the wonderfully complex process of life and growth. When cut from that tree it becomes a log. A chunk of material, passively reduced to whatever we make of it, or abandoned and decomposed.
Whatever we do to wood, it can never be as splendid as it was on the living tree.
Polarities
In this chapter, Lao Tzu also uses quite strong polarities, such as honor and disgrace, preferring the latter. That might be hard for most people to accept. But insisting on being honored is a mentality that surely leads to disgrace.
The one who accepts disgrace, on the other hand, will be honored already by this.
We frequently witness examples of this in modern day politics, where pompous dignitaries fall from grace when they refuse to admit any wrongdoings, although evident. Those who confess humbly and regretfully, on the other hand, can find themselves even more praised than ever before. We do love to forgive a repenting sinner.
Choosing the darkness before the bright seems even more absurd to us, because we have a tradition of comparing the latter to salvation and the former to its opposite, damnation. It’s deeply rooted in the Christian vocabulary, since the time when Jesus called himself the light. Consequently, we call his counterpart the prince of darkness.
But the opposites mean something else to Lao Tzu. Darkness refers to the dim valley compared to the brightly lit mountain, the shady side, yin , instead of the sunny side yang . Tao Te Ching keeps repeating the ideal of yielding, so the sage modestly steps out of the light, into the shadows, and never insists on attention.
The Chinese words used can also be translated white and black, but the meaning is the same. Choosing the latter shows exemplary character, because it proves that you are not driven by personal gain.
The manly and womanly are opposites of the same kind as light and dark. Yang is regarded as manly and yin as womanly, in the Chinese tradition. In the symbol, yang is the white field hovering over the black yin, like Heaven rises above Earth.
Anyone choosing the former will elevate himself over others, thereby losing compassion for them. It’s impossible to lift everyone else to an elevated position, but if you choose the lowest seat, then others will fall effortlessly into your lap.
Usually, Lao Tzu compares this yielding to the motherly, but here he lets us know that it also brings out the child in us.
When you let go of your ambitions, the world becomes fresh before your eyes. You see it for what it is, instead of what you want from it. That’s the eye of the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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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n and yang. The signs show the original meaning of the words: shady side and sunny side.
The Virtuous Past
The virtue mentioned several times in this chapter is Te , part of the book’s title. This virtue being eternal refers to its ancient tradition. It could not be eternal without stretching into the past as well as into the future.
In the time of Lao Tzu, the ancient past was regarded with much more reverence than the present and the future. So, that side of eternity was valued higher. Virtue of recent origin would be regarded as preposterous.
Antiquity, not only in China, valued its history tremendously, but saw little reason to ponder the future at any length. We tend to do the opposite, because we believe the future to be one of continued improvement – at least its potential.
If you make the right choices by following the ancient virtue, you become like a child, simple as uncarved wood, and thereby boundless. You lose the limits of preconception, the prejudice brought on by wants and ambitions.
It’s a state of mind, which is brought on by virtuous choices – not for the sake of reaching it, but because of these choices being the virtuous ones. That’s why virtue fills you, never falters, and never deserts you. True virtue needs neither reason nor rewards. It’s just the way it should be, which is according to the Way.
Put to Use
Lao Tzu ends the chapter with what seems to be some play with words. The sage is like uncarved wood, which is put to use when split. But when the sage is put to use, he takes command. Some serve and some lead. It’s natural for the sage to lead, even when he is reluctant to do so.
He will lead even when others expect him to serve. He points the Way. How else to use him?
The sage knows to remain in the state of uncarved wood, utter simplicity, in whatever grand tasks he gets involved. He is not split, either by distraction or ambition, but remains with what we call the whole picture.
That’s how the world should be treated. It’s a whole that must not be split into this and that. All things are connected to the whole, and malfunction when separated from it.
This is something we are right now starting to understand about the world we live in. We give this knowledge a fancy new name, ecology, but it’s been known for ages.
<사봉 역>
知其雄守其雌(지기웅수기자)
강한 남자라도 여성성을 잃지 않아야
爲天下谿(위천하계)
천하를 품은 계곡 같이 큰 그릇이 되고
爲天下谿(위천하계)
세상을 품을 수 있는 큰 계곡이 되면
常德不離(상덕불리)
항상 타고난 덕을 잃지 않게 되니
復歸於孀兒(복귀어영아)
어린아이의 순순함으로 돌아가게 된다.
知其白守其黑(지기백수기흑)
흰 것에 검은 것의 속성이 있는 것을 알면
爲天下式(위천하식)
세상의 모범이 된다.
爲天下式常(위천하식)
세상의 모범이 되면
常德不忒(상덕불특)
항상 덕에 어긋나는 법이 없이
復歸於無極(복귀어무극)
처음과 끝이 없는 무극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知其榮守其辱(지기영수기욕)
영광을 알고 욕됨을 잊지 않으면
爲天下谷(위천하곡)천하를 품은 골짜기 같은 그릇이 된다.
爲天下谷(위천하곡)
세상을 품는 골짜기가 되려면
常德乃足(상덕내족)
항상 덕이 넉넉하게 되어
復歸於樸(복귀어박)
질박한 통나무처럼 되어야 한다.
樸散則爲器(박산즉위기)
통나무가 이리저리 흩어져 그릇이 되듯
聖人用之(성인용지)
성인은 그것을 활용하여
則爲官長(즉위관장)
세상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된다.
故大制不割(고대제불할)
그러므로 큰 정치는 가르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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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 도덕경 비교
(6장)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15장) 故强爲之容, 豫焉若冬涉川, 猶兮若畏四隣, 儼兮其若容, 渙兮若氷之將釋, 敦兮其若樸, 曠兮其若谷, 混兮其若濁
(28장)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32장)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
(39장)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 谷無以盈, 將恐竭
(41장)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進道若退, 夷道若纇, 上德若谷, 大白若辱, 廣德若不足, 建德若偸, 質眞若渝,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66장)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故能爲百谷王
反(復,歸) 도덕경 비교
(14장) 復歸於無物, 是謂無狀之狀, 無物之狀
(16장)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22장)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誠全而歸之
(25장)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28장)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嬰兒,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34장) 萬物歸焉, 而不爲主, 可名爲大,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其大
(40장) 反者道之動
(52장) 復守其母, 沒身不殆 /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64장) 則無敗事, 是以聖人欲不欲,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復衆人之所過
用 도덕경 비교
(4장) 道沖而用之 或不盈
(6장) 用之不勤
(11장)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28장)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35장)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
(40장) 反者道之動 弱者道之用
(45장)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68장) 善用人者爲之下 是謂用人之力
樸 도덕경 비교
(15장) 敦兮其若樸
(19장) 故令有所屬, 見素抱樸, 少私寡欲
(28장) 復歸於樸,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32장) 道常無名, 樸雖小, 天下莫能臣也
(37장) 吾將鎭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57장) 我無欲而民自樸
嬰兒 도덕경 비교
(10장)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嬰兒乎,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民治國, 能無知乎, 天門開闔, 能無雌乎, 明白四達, 能無爲乎
(20장) 衆人熙熙, 如享太牢, 如春登臺, 我獨泊兮其未兆, 如嬰兒之未孩, 沌沌兮若無所歸
(28장)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嬰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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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이명권 http://cafe.daum.net/koreanashram/8IoM/33
도덕경 28장 대제불할(大帝不割)과 통나무 예수
1. 통전적 영아의 세계
<남성성을 알고 여성성을 지키면 천하의 계곡이 된다. 천하의 계곡이 되니 덕이 항상 떠나지 않아서 갓난아이의 상태로 돌아간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嬰兒.
수컷을 알고 암컷을 지킨다는 말은 무엇인가? 이 세상은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 수컷과 암컷이 따로 따로 창조되어 있어서 이 양자의 결합으로 만물은 생명을 이어 간다. 식물세계도 예외가 아니다. 남성 홀로 남성을 낳거나 여성 홀로 여성을 낳는 법이 없다. 지상의 모든 미물을 포함한 인류의 생존과 번영은 모두 암수의 결합과 조화로 가능하다. 비록 신화(神話)이지만, 단군신화(檀君神話)에서도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은 수컷으로서 지상의 곰을 만나 웅녀(熊女)와 결혼함으로써 단군왕검(檀君王儉)을 낳았다. 이는 하늘의 수컷이 땅의 암컷과 결합하여 천자(天子)가 탄생했다는 고조선의 건국 신화를 말해 주는 것이지만, 하늘의 기원과 땅의 생산적 토대가 결합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대비를 하늘과 땅에 비유한 것이지만, 생산적 토대는 어디까지나 여성성이다. 암컷이 수컷을 배척하거나 수컷이 암컷을 배척하는 구조로는 어떠한 생성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한 인간 속에, 남성에게는 어느 정도의 여성성이 깃들어 있고, 여성에게도 어느 정도의 남성성이 내재 되어 있다. 이른바 아니마 아니무스가 그것이다. 이는 생리적으로도 입증된 바다. 남자는 늙어질수록 여성스러워지고 여자는 늙어 갈수록 남성적으로 변해 가는 것이 호르몬의 양성적 변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자가 말하려는 바는 한 인간의 남성성을 알되 그 여성성을 간직하면 곧 천하의 계곡이 되어 영아의 상태로 돌아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우선 중요시 되는 것은 여성성이다. 알아야 할 부분은 남성적인 것(知其雄)이지만, 지켜야 할 부분은 여성적(守其雌)이라는 점이다. 여성은 우선 부드러움(柔)을 그 특징으로 하면서도 생산성과도 관계가 있다. 암컷 곧 여성성을 지킬 때 그는 곧 천하의 계곡이 되어 덕이 떠나지 않음으로써 갓난아이와 같은 미분화적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분별지(分別智)로 인한 온갖 편견, 즉 아상(我相)과 법상(法相)이라는 주관과 객관이 확연히 구분되지 않은 원시적 통전적 미분화의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노자의 사상에서 남성보다 여성이 더욱 중요시 되는 바는 이미 6장에서도 본 바와 같다. 계곡의 신(谷神)은 현묘한 암컷(玄牝)에 비유되고 있고, 그 암컷의 문(玄牝之門)이 천지의 뿌리(天地根)가 된다고 했던바와 상통하는 부분이다. 계곡은 포용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므로 항상 덕이 떠나지 않고(常德不離) 끝없이 부드러운 갓난아이(嬰兒)를 생산하는 것이다. 갓난아이는 인간의 원시적 상태를 상징한다. 성장하여 남성과 여성으로 뚜렷이 분화된 상태가 아닌 덜 분화된 미숙한 상태다. 그러기에 오히려 더욱 부드럽고 순수하다. 인간은 성장 할수록 원시적 순수 상태에서 멀어져 간다. 그러므로 노자는 통전적 인간의 회복을 위해 영아를 상징적 존재로 내세우고 있다. 마치 예수가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마태복음 18:3)”고 한 것처럼 말이다.
노자는 또 10장에서도 “기(氣)를 전일(專一)하게 하여 능히 갓난아이와 같게 할 수 있느냐(專氣致柔 能嬰兒乎)”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부드러움(柔)과 갓난아이(嬰兒)와 여성성의 간직은 도를 실천하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기본적인 덕목이 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남성성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성성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임을 보면, 도의 실천을 통한 덕의 함양이라는 수행이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같이 노자는 알아야 할 문제와 지켜야 할 문제를 남성과 여성의 문제 뿐 아니라, 백흑(白黑)의 문제와 영욕(榮辱)의 문제를 대비시켜 설명하고 있다.
2. 돌아가야 할 무극(無極)의 세계, 하나님의 품
<백을 알고 흑을 지키는 자는 천하의 모범이 된다. 천하의 모범이 되니, 늘 덕이 어긋남이 없어서 무극(無極)으로 돌아간다.>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백과 흑은 양 극단의 상징이다. 흑백을 상대적으로 보면 일체 대립의 존재로서 일치를 이루지 못하게 되어, 언제나 분리와 다툼이 일어나고 극단에는 원수가 되어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극단의 대립은 부자지간에도 마찬가지다. 후백제 시대의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고 금산사에 갇히는 신세라든가, 중국의 수(隋)나라를 세운 양제가 아들 문제에 의해 살해된 것이나, 이스라엘 왕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추격을 당하던 일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흑백의 대립은 인종 간에도 마찬가지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의 흑인 침해와 차별사건은 비일비재한 현상이 되고 있다.
흑백의 문제는 인종 뿐 아니다. 백(白)의 세계가 밝고 찬란하고 빛나는 세계를 상징한다면, 흑(黑)의 세계는 상대적으로 어둡고 그늘지며 무겁고 소외된 세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바둑을 둘 때도 백을 연장자가 쥔다면 흑은 연소자가 쥐고 둔다. 백은 흑에 비해 상대적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흑은 백에 비해 소외된 계층, 낮은자 약자의 세계를 말한다고도 볼 수 있다. 노자는 이러한 흑백의 세계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백을 알되(知其白) 흑을 간직하라(守其黑)고 말한다. 흑백 대립의 반목(反目)적 논리를 벗어나 백을 알고 흑을 지킴으로써, 모두를 포용하는 관용의 도리를 폄으로써 천하의 모범(天下式)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천하의 모범이 되니 늘 덕이 어긋남이 없게 되어(常德不忒) 궁극적 이상인 무극(無極)의 세계로 나아 갈 수 있다.
무극은 흑백 이원론을 극복한 원초적 자리다. 중국의 유학자(儒學者) 주돈이(周敦頤)는 노자의 무극 사상을 태극이라(無極而太極)하여 유학적 사상의 기초를 무극에서 도출하고 있다. 태극 사상은 이미 주역(周易)의 계사전(繫辭傳)에서 보이듯이, 태극에서 음과 양이 나오는 것(太極是生兩儀)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므로 삼라만상이 전개되기 이전의 상태를 태극 곧 무극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무극은 그리스도교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품이다. 이곳에서는 모든 이원론적인 대립이 용해되어 버린다. 원수도 사랑의 품에서 하나가 된다. 극단적 대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이는 손자병법이 말하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라는 공격적 원리가 아니라, 지피(知彼)하되 수차(守此)하는 포용적 승화의 길로 나아갈 것을 말한다. 화해와 일치 곧 평화의 세계, 그것이 무극이요 천국일 것이다.
3. 영욕(榮辱)의 세계를 구족(俱足)한 통나무
<영화(榮華)를 알되 수욕(羞辱)을 간직하면 천하의 계곡이 될 수 있다. 천하의 계곡이 되면 늘 덕이 풍족하여 소박한 통나무로 돌아간다.>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영화를 알되 욕됨을 지킨다. 그리해야 천하의 계곡이 되고 통나무 같이 소박한 형태로 돌아갈 수 있다. 부귀영화 그 자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욕됨을 지킨다 했다. 이는 수치와 욕됨을 감수하고 감당하겠다는 것이다. 예수가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한 점과 통한다. 오늘의 영달(榮達)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해 고난을 감수하며 수모와 핍박을 견디겠다는 정신이다. 그러한 사람만이 하나의 계곡을 이룰 수 있고, 그럴 때 비로소 통나무 같이 소박한 정신으로 돌아 갈 수 있는 것이다.
노자가 다른 곳에서도 몇 차례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만, 도(道)를 영아나 통나무에 비교하고 있는 것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노자는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온유한 세계, 이분법적 대립의 세계를 넘어선 소박하고 질박(質樸)한 세계를 이상적 세계로 보아, 이를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적으로 말하자면 박(樸)은 예수에 비유될 수 있다. 예수는 통나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비유가 아닐 것이다. 통나무는 길거리에서 발에 차이고 내 팽개침을 당하여도, 온갖 상처를 입고도 누구하나 원망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면서 그들의 용서를 빌고 자비의 눈길을 보낸다. 한없이 수용적인 통나무는 폭력에 쓰러지기까지 일체의 말이 없다. 그러므로 통나무는 관용과 자비의 상징이 된다.
4. 큰 다스림, 사랑의 통치
<통나무가 쪼개지면 그릇이 된다. 성인이 이 그릇을 사용하면 관아의 어른이 된다. 그러므로 큰 다스림엔 분할이 없다.>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통나무가 쪼개지면 그릇이 된다. 성인은 이 그릇을 사용하여 지도자가 된다. 사실 통나무는 그 자체로 사용되는 법이 별로 없다. 어떤 형태로든 다듬어지거나 쪼개짐으로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그릇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릇은 하나의 제도일 수도 있고, 하나의 개체적 인격일 수도 있다. 성인의 행위는 통나무를 사용(用之는 用樸을 의미)하여 구체적 그릇을 만들고 제도로 삼지만 근본적인 통치 원리는 분할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분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一) 곧 통나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왕필에 의하면, 통나무(樸)는 참(眞)이다. 참, 곧 진리가 흩어지니 갖가지 행실이 나온다(樸, 眞也. 眞散則百行出)고 하였고, 갖가지 종류가 생겨나는 것이 마치 그릇과 같다(殊類生, 若器也 )고 하였다. 성인은 그 흩어짐에 따라 지도자를 세운다(聖人因其分散, 故爲之立官長). 선함을 그 스승으로 삼고 선하지 못한 자들을 외면하지 않음으로써(善爲師, 不善爲資), 풍속을 변화시켜 다시 하나로 돌아가게 한다(移風易俗, 復使歸於一也).
예수 또한 참이요 통나무에 비유 될 수 있다. 예수는 생명의 떡으로 하늘에서 내려 왔다. 하나인 하나님의 품에서 하나로 내려왔다. 그러나 그 하나의 생명 곧 통나무 같은 예수는 생명의 떡이 되어 쪼개짐으로서 그 떡을 먹는 자 마다 영생을 얻게 된다.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가 십자가에 죽음으로 자기 몸을 쪼개어 만인을 먹이는 영의 떡이 된 것이다. 예수 자신이 스스로 쪼개져 만인의 그릇이 되기도 하고 만인의 떡이 되기도 하였다. 통나무 같은 예수는 선한 자나 선하지 못한 자 모두를 포용하여 변화시킴으로써 하나이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분당을 짓거나 편파를 가르지 않고 원수도 포용하는 지도력, 이것이 성인이 펼치는 ‘대제불할(大制不割)’의 큰 통치요, 대자대비(大慈大悲)한 사랑의 통치다.
<인용> http://cafe.daum.net/frog0052/VJ3y/78?q=%EB%8F%84%EB%8D%95%EA%B2%BD%2028%EC%9E%A5
강의실 밖 강의실 2018년 강의
노자 도덕경 28장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嬰兒.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박산즉위기, 성인용지, 즉위관장, 고대제불할.
푸르른 날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남성다움을 알면서 여성다움도 유지하라 세상의 시냇물이 될 것이다.
1. 한자 풀이
1) 雄 수컷 웅, 隹 (새 추, 8획), 총 12획
1. 수컷, 2. 두목, 3. 씩씩하다, 4. 용감하다(勇敢--), 5. 이기다, 승리하다, 6. 뛰어나다, 7. 웅장하다(雄壯--)
※ 형성문자; 뜻을 나타내는 새추(隹☞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厷(굉→ 웅)이 합하여 이루어짐. 굳센 수 컷 새(새 추(隹☞새)部)의 뜻이 합(合)하여 「수컷」을 뜻함. 새의 수컷, 그것으로부터 굳세다, 용감하다는 뜻으로 되었음.
※ 이체자; 䧺 수컷 웅, 수컷 훙 (동자)
유의자; 牡 수컷 모
2) 守 지킬 수, 宀 (갓 머리, 3획), 총 6획
1. 지키다, 다스리다, 2. 머무르다, 3. 기다리다, 4. 거두다, 손에 넣다, 5. 청하다(請--), 요구하다(要求--), 6. 지키는 사람, 7. 직무, 직책(職責), 임무(任務), 8. 벼슬의 지위(地位)는 낮고 관직(官職)은 높음을 나타내는 말, 9. 지방(地方) 장관(지방에 파견되어 그 곳을 지키는 일이나 사람), 10. 정조(貞操), 지조, 절개(節槪ㆍ節介), 11. 임시, 가짜, 12. 벼슬의 이름
※ 회의문자; 관청(갓머리(宀☞집, 집 안)部)에서 법도(寸☞손→손으로 꽉 잡는 일, 또 는 치수→法度(법도☞규칙)에 따라 일을 한다는 뜻이 합(合)하여 직무를 지킨다는 데서 「지키다」를 뜻함.
※ 유의자; 保 지킬 보, 防 막을 방, 遵 좇을 준, 衛 지킬 위
상대자; 擊 칠 격, 攻 칠 공
3) 雌 암컷 자, 隹 (새 추, 8획), 총 14획
1. 암컷, 2. 암 새, 3. 약하다(弱--), 4. 쇠약해지다(衰弱---), 5. 패배하다
※ 형성문자; 뜻을 나타내는 새추(隹☞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부부 (夫婦)가 된다는 뜻을 가진 此(차→자)로 이루어짐. 따라가는 새, 암 새, 전(轉)하여 암컷을 뜻함.
※ 상대자; 雄 수컷 웅, ※ 모양이 비슷한 한자; 此 이 차, 紫 자줏빛 자
4) 谿 시내 계, 다툴 혜, 谷 (골 곡, 7획), 총 17획
1. 시내, 2. 시냇물, 3. 산골짜기, 4. 텅 비다, 5. 헛되다, a. 다투다 (혜)
※ 형성문자; 溪(계)와 동자(同字). 뜻을 나타내는 골곡(谷☞골짜기)部와 음(音)을 나 타내는 글자 奚(해→계)가 합(合)하여 이루어짐.
※ 이체자; 嵠 시내 계 (동자), 시내 계 (동자), 溪 시내 계 (동자), 磎 시내계 (동자)
2. 남자다운 남자, 여성다운 여성의 근본은 인간다운 인간이다.
1) 27장
是以聖人, 常善救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시이성인, 상선구인. 고무기인; 상선구물, 고무기물.
2)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페르소나+原型+그림자
자신의 본성을 감추는 가면이자 타인과 관계를 이루는 사회적 인격인 페르소나(persona). 이 페르소나 때문에 무의식 속에 억압된 개인의 경험이나 생각, 감정인 그림자(shadow). 우리가 태어날 때 이미 간직한 선험적인 인류보편의 무의식인 ‘집단무의식’.
이는 여러 원형(Archetype) 상징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형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동 유형이며, 신화와 종교의 원천이기도 하다. 여러 원형들 중에는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가 있다. 아니마는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이고, 아니무스는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 요소.
3. 直觀과 共感능력SQ, 洞察力과 分別心, 差別心
樸을 쪼개면 器; 雌雄, 黑白, 榮辱은 하나라는 생각, 나누어 쓰되 근본을 잊지 말 것. 貪, 瞋, 痴는 인간이 생존하게 만드는 생명원리. 진화하며 만들어진 본능, 심리. 사리사욕을 위해 경쟁하되 싸우거나 차별하지 말 것.
※ 집중력이 높은 사람은 사회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뇌 과학의 보고. 뇌의 발달은 사회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 (원숭이 7~80마리 정도와 소통, 인간 150명 정도와 소통)
※ 인간은 문제를 찾아내는 능력(비판적 능력)이 뛰어나고, 컴퓨터는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 인간을 찾아내는 능력이 더 고차원적 능력.
※ 28장 정리
知; 알아야 할 것; 觀 | 雄; 父系; 남성성; 動 | 白; 빛; 태양; 殷 | 榮; 영광 |
守; 지켜야 할 것; 止 | 雌; 母系; 여성성; 靜 | 黑; 어둠; 물; 夏 | 辱; 욕됨 |
알고 지켜서 얻는 효과 | 谿; 계곡 | 式; 모범, 법 | 谷; 골짜기 |
그 효과가 빚어내는 결과 | 常德不離 | 常德不忒 | 常德乃足 |
그 결과가 인도하는 경지 | 嬰兒; 갓난애 | 無極 | 樸; 통나무 |
※ 雌雄; ① 夫婦, ② 강약(强弱), 승부(勝負), 우열(優劣)을 비유하는 말
谿; 시냇물은 강이 되어 바다에 이르며 上善若水가 된다.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嬰兒.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세상의 시냇물이 되면, 한결같은 덕이 흩어지지 않아,
갓난아기(의 순수함으로, 雌雄이 나뉘기 전으로)로 다시 돌아감과 같다.
※ “시내谿”가 흘러서 마침내 “復歸”(※르네상스Renaissance, 학문 또는 예술의 균형, 절제, 조화, 숭고미를 재생·부활) 하는 것은 바다, 그러므로 嬰兒는 순박함을 지녀 回春한 바다라 할 수 있다.
1. “嬰兒”가 되는 방법; 10장; 생각과 말과 행위를 부드럽게 할 것.
專氣致柔, 能嬰兒乎 전기치유, 능영아호
자연의 기를 온전히 받아 더없이 부드럽게 하면 갓난애 같아질 수 있다. 전(專)은 순(純)이다. 치(致)는 극(極)이다. 기가 순수하고 부드러움[柔]이 지극한 것을 영아(兒)로 비유했다. 硬直, 몸뿐 아니라 생각과 말과 행위가 굳어서 딱딱해진다는 것은 죽음의 상태로 가는 것이다. ※ 어른- 꼰대- 아재
2. 덕의 용례; 덕은 體인 道의 用
1) 德分 ; ① 주로 ‘~에’, ‘~로’, ‘~이다’의 꼴로 쓰여,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 ② 주로 ‘~에’, ‘~로’, ‘~이다’의 꼴로, 좋은 결과를 얻게 된 원인이나 조건
2) 德澤 ; 주로 ‘~에’, ‘~로’, ‘~이다’의 꼴로 쓰여,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
3) 德目 ; 타고난 천성으로 간주하여 추구하고 실천해야 할 가치 항목
4) 德談 ; 상대방이 잘되기를 빌어 주는 말
5) 德望 ; 덕행으로써 얻은 명망
6) 感之德之 ; ① 과분한 듯 하여 아주 고맙게 여김, ② 과분한 듯하여 아주 고맙 게 여기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7) 大德 ; ① 덕이 높은 스님, ② 넓고 큰 덕(德), ③ 석가모니를 달리 이르는 말
8) 肉德 ; 몸에 살이 많아 덕이 있어 보이는 모양
9) 失德 ; ① 덕(德)에 어긋나는 행실, ② 덕망(德望)을 잃음, ③ 점잖은 사람의 허물
10) 德業 ; 어질고 착한 행실이나 사업
11) 背恩忘德 ; 남에게 입은 은혜를 잊고 배반함
12) 悖德的 ; ① 도덕이나 의리 또는 올바른 도리에 어긋나는, ② 도덕이나 의리 또 는 올바른 도리에 어긋나는 것
13) 三德 ; ① 유교에서 말하는 정직(正直), 강(剛), 유(柔)의 세 가지 덕, ② 유교 에서 말하는 지(智), 인(仁), 용(勇)의 세 가지 덕, ③ [기독] 믿음, 소망, 사랑의 세 가지 덕
14) 六德, 六元德; 仁, 義, 禮, 樂, 智, 信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밝음(흰 것)을 알면서 어둠(검은 것)을 지키면 세상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1. 한자 풀이
1) 式 법 식, 弋 (주살 익, 3획), 총 6획
1. 법(法), 2. 제도(制度), 3. 의식(儀式), 4. 정도(正度), 절도(節度), 5. 형상(形 狀), 6. 점치는 기구(器具), 7. 수레의 손잡이 나무, 8. 본뜨다, 9. 본받다, 기준 (基準)으로 삼고 따르다, 10. 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11. 쓰다, 사용하다(使用--), 12. 절하다, 경례(敬禮)를 하다, 13. 악하다(惡--), 나쁘다, 14. 드러내다, 표창하다(表彰--), 15. 닦다, 걸레질하다, 16. 17. 써, ~(으)로써
※ 형성문자; 뜻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음(音)을 나타내는 주살익(弋☞줄 달린 화 살☞ 안표가 되는 나무→식)部와 장인(工☞도구(道具))이 물건(物件)을 만들 때에는 일정(一定)한 법식이 필요하다는 뜻이 합(合)하여 「법식」 을 뜻함.
※ 유의자; 例 법식 례(예), 典 법 전, 法 법 법, 憲 법 헌, 格 격식 격, 가지 각, 마 을 락(낙), 별 이름 학, 規 법 규
2. 黑과 白;
1) 陰과 陽의 순환 운동; 나뉨과 섞임 과정의 역동성; 恨 과 興(신바람)
2) 불교에서는 善業과 善行을 白業이라 부르고 惡業과 惡行을 黑業이라 부른 다. 사람은 살기 위해 이 두 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3) 역기능과 순기능
3. 居安思危
1) 『周易』, 「繫辭傳 下」
危者安其位者也, 亡者保其存者也, 亂者有其治者也.
위자안기위자야, 망자보기존자야, 난자유기치자야.
위태롭게 여기는 것은 그 자리를 편안케 하려는 것이요,
망할까 염려하는 것은 그 자리를 지키려는 것이며,
어지러울까 불안해 하는 것은 다스리기 위해서이다.
是故, 君子安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
시고, 군자안이불망위, 존이불망망, 치이불망난.
이런 까닭에 지혜로운 사람은 편안해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으며,
지니고 있어도 없어질 것을 잊지 않으며,
다스리면서 늘 어지러워질 것을 잊지 않는다.
2) 지금의 행복은
“죽을 고생을 한 제게 주는 상 아니겠습니까?”
“제가 겪었던 고통의 순간들의 보답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네가 그동안 남들에게 범한 숱한 시행착오와 실수들은 잊었느냐. 지금 누리는 너의 기쁨과 행복이 이후 더 큰 고생과 고통으로 들어가는 문이 될 것이다.”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세상의 본보기가 되면, 한결같은 덕에 어긋나지 않으니,
이는 무극의 상태로 돌아감과 같다.
1. 한자 풀이
1) 忒 틀릴 특, 心 (마음 심, 4획), 총 7획
1. 틀리다, 어긋나다, 2. 의심하다(疑心--), 3. 변하다(變--), 새롭게 고쳐지다, 4. 사악하다(邪惡--), 5. 매우, 몹시
※ 형성문자; 뜻을 나타내는 마음심(心(=忄, 㣺)☞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弋(익→특)이 합(合)하여 이루어짐.
※ 이체자; 慝 사특할 특, 숨길 닉(익) (동자)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영화로움을 알면서 욕됨을 견디면 세상의 골짜기가 될 것이다.
1. 2장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오이.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是以聖人,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시이성인, 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2. 마르틴 니묄러, 「그들이 처음 왔을 때」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유대인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가톨릭교도를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 프리드리히 구스타프 에밀 마르틴 니묄러 (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öller)
독일의 루터교 목사이자 반나치 운동가이다. 애초 니묄러는 민족보수주의적인 성향을 가졌고, 아돌프 히틀러의 지지자였다. 하지만 성향을 바꿔 나치에 반대하는 고백교회의 설립자 중 한 명이 됐고, 나치에 물든 독일의 개신교를 비판했다. 또한 니묄러는 아리아인 조항과 같은 나치의 인종주의를 격렬히 반대했고 이런 활동 때문에 다하우 강제 수용소에서 1937년부터 1945년까지 갇혀 있었다. 나치 독일이 패전한 이후 그는 평화주의자자 반전주의자로 활동했다. 1966년부터 1972년까지는 국제전쟁저항자모임(War Resisters' International)의 부회장을 역임했고, 베트남 전쟁기간에는 호치민을 만나기도 했다. 또한 비핵화 운동에도 앞장섰다.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
세상의 골짜기가 되면, 한결같은 덕을 갖추어 모자람이 없어서,
다듬지 않은 통나무 상태로 돌아감과 같다.
1. “樸”과 “嬰兒”, “無極” 그리고 3장
爲無爲, 則無不治
위무위, 즉무불치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박산즉위기, 성인용지, 즉위관장, 고대제불할.
다듬지 않은 통나무를 쪼개면 그릇(도구)이 되는데,
성인은 이를 사용하여, 지도자가 되니,
그러므로 큰 만듦은 쪼개지(분할하지, 차별하지, 분별하지) 않는다.
1. “君子不器” 그래서 “大制不割”
군자는 그릇이 되지 않는다. 그릇이 되면 부림을 당하고, 이용당하기 때문.
2. 5장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
허이불굴, 동이유출. 다언수궁, 불여수중
3. “樸”은 常德, 道; 제6장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인용> http://cafe.daum.net/xlsk0058/TkKA/16?q=%EB%8F%84%EB%8D%95%EA%B2%BD%2028%EC%9E%A5
통청아카데미 199주(2013.10.16)
노자 도덕경 읽기 (16)
이태호(철학박사/통청아카데미 원장)
Ⅰ. 도덕경 28장
(1) 원문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嬰兒.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樸散則爲器 聖人用之則爲官長 故大制不割.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 박산즉위기 성인용지즉위관장 고대제불할.
웅(雄) : 수컷, 승리, 어른, 우두머리, 우수함, 강함
자(雌) : 암컷, 패배, 아이, 아랫사람, 열등함, 약함
계(谿) : 시내, 텅 빌
식(式) : 법
특(忒) : 틀릴, 어긋남, 변하다.
영(榮) : 영화, 영달, 창성함
욕(辱) : 욕될, 수치, 잃음
곡(谷) : 골, 골짜기
내(乃) : 이에, 그리하여, 그럼에도(오히려), 이야말로(참으로)
족(足) : 발, 족하다. 분수를 알다.
박(樸) : 통나무, 질박함, 순수함.
산(散) : 흩다. 흩어지다. 갈라지다.
제(制) : 마르다(재료를 필요한 규격대로 베거나 자름), 다스리다.
할(割) : 나누다. 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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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
수컷(陽 : 승리, 어른, 우두머리, 우수함, 강함을 나타냄)에 대해 알고 암컷(陰, 패배, 아이, 아랫사람, 열등함, 약함을 나타냄)을 지키면 천하의 계곡(천지가 시작되는 곳 : 음양이 만나 만물이 시작되는 곳)이 된다. 천하의 계곡이 되면 항상 덕과 떠나지 않아 갓 태어난 아기로 돌아가게 된다. 흰 것을 알고 검은 것을 지키면(흑백논리를 극복하여 이분법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천하의 법도가 된다. 천하의 법도가 되면 항상 덕에 어긋나지 않아 무극(한정형식으로 구별이 되지 않는 세계)으로 돌아간다.
영화로움을 알고 욕됨을 지킨다면 (만물을 태어나게 하는) 천하의 골짜기와 같이 된다.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항상 덕으로 충만하게 되어 통나무(순수한 자연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통나무가 잘라지면서 (세상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그릇이 된다. 성인은 (다듬어진 그릇보다는 원목인) 통나무를 사용하여 관리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러므로 크게 자를(다스릴) 때는 (잘게 다듬어진 그릇 자르듯이) 나누지 않는다.(세련되고 복잡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3) 해설
우리는 남보다 한 발짝이라도 더 앞서 가려고 한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성장하고 발전해서 강해져야만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고, 권력, 돈, 명예, 지위 등 많은 것을 지녀 영화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롭게 산다는 것은 남들보다 내가 잘산다는 것이며, 잘 산다는 것은 내가 남보다 잘 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영화롭게 살 수 없다는 것은 남들보다 내가 못살며 못난 욕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자는 여기(28장에)서 영화로운 삶보다 욕된 삶을 지키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며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그 조건은 영화로움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화로움을 안다는 것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영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영화롭게 사는 것이 별로 재미가 없음(항상 좋은 상태인 常德이 아님)을 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본력을 가장 강함으로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지만, 부자가 되어 누리는 기쁨이 그렇게 크지 않으며 유지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항상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위해 스스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은 부자를 부러워하지 않고 더군다나 부자에 대한 질투나 분노는 당연히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그는 영화로움이 극에 이르면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는 사실을 알고, 영화로움을 자랑하고 그것으로 잘난 체 했거나 그것에 매달려 온 사람들은 그만큼 더욱 욕됨에 이른다는 사실을 안다. 즉 그는 영화로움을 추구하는 일이 상덕(常德)이 아니라 변덕(變德)임을 알고, 변덕보다 상덕이 가능한 욕됨을 지키려고 한다. 그런데도 묘하게 결과적으로는 이 사람이 부자가 된다. 그 이유는 상덕으로 사람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세부적인 것은 다음 29장에서 말하고 있다. 28장에서는 상덕의 근본 원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상덕의 근본 원리는 양을 알지만 음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자연에서는 계곡과 같고, 식물에게는 통나무와 같고, 사람에게는 어린아이와 같아진다. 계곡에서 시작된 물은 시내를 거쳐 강에 이르고 강물은 바닷물로 나아간다. 바다에서는 다시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산의 계곡물이 된다. 계곡, 통나무, 어린아이 모두 만물의 시작단계를 의미한다. 노자는 이 때가 바로 무극의 다음 단계로서 가장 좋은 상태로 본다. 그렇지만 자연은 순환하고 생물은 자란다. 이것을 멈출 수는 없다. 다만 그 순리에 맡기는 것을 상덕으로 본다.
Ⅱ. 도덕경 29장
(1) 원문
將欲取天下而爲之, 吾見其不得已. 天下神器 不可爲也. 爲者敗之 執者失之. 故物或行或隨 或歔或吹 或强或羸 或載或隳 是以聖人去甚去奢去泰.
장욕취천하이위지, 오견기부득이. 천하신기 불가위야. 위자패지 집자실지. 고물혹행혹수. 혹허혹취 혹강혹리 혹재혹휴. 시이성인거심거사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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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將) : 장수, 장차
부득이(不得已) :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혹(惑) : 혹, 혹은, 어떤 경우
행수(행수) : (앞에) 가고 (뒤에) 따른다.
허취(歔吹) : (콧김을) 내쉬고 내뱉다.
강리(强羸) : (몸이) 강건하거나 여위다.
재휴(載隳) : (수레에) 싣거나 떨어뜨리다.
거(去) : 가다, 떠나다. 제외하다. 없애다.
심(甚) : 심하다. 정도가 지나침.
사(奢) : 사치하다. 과장하다.
태(泰) : 크다. 매우 크다. 교만하다. 태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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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천하(세상)를 취하고자 인위적으로 노력한다 해도 내가 보기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왜냐하면) 천하(세상)는 신기한 그릇이라 갖고자 노력한다고 갖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억지로 갖고자 노력해도 실패하게 되고 잡으려 해도 잃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앞서서 가는 것도 있고 뒤 따라가는 것도 있다. 숨을 내쉬기도 하고 내뱉기도 한다. 강한 것도 있고 약한 것도 있다. 싣기는 것도 있고 떨어지는 것도 있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지나친 것을 피하고 사치하는 것을 버리며 태만하지 않는다.
(2) 번역
이 29장에서는 노자는 영화롭게 되기 위해 천하를 자기 것으로 하고 싶어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천하가 신비로운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릇은 통나무를 잘라서 만든다. 자를수록 모양은 낼 수 있는 그릇처럼 보이지만, 크게 쓸모 있는 것으로 될 수는 없다. 만물로 구체화시키는 것은 좋고 나쁜 것으로 이분할 수밖에 없다. 이분되어 나쁜 것으로 떨어진 쪽은 쓸모가 없어진다. 그래서 짤린 그릇은 크게 쓸 수 없는 것이다.
성인은 통나무 그대로 사용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나친 것을 삼가고(去甚), 사치한 것을 버리며(去奢), 태만하지 않는다.(去泰) 이 세 가지를 행하면 영화롭게 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인데도 오히려 영화가 따라온다. 부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데 부자가 된다. 왕이 되려고 하지 않는데 왕이 된다. 명성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데 명성을 얻는다. 지위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데 지위를 얻는다.
<인용>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ong5922&logNo=221373136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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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을 알면서도 암컷을 지키면 천하의 계곡이 된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이 글(28)은 똑같은 유형의 문장이 세 번 되풀이되고, 마지막에 꼬리글이 붙어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되풀이되는 문장은 "무엇을 알면서도 무엇을 지키면 무엇이 된다. 무엇이 되면 덕이 어떻고, 덕이 어떠하면 무엇으로 복귀한다"는 형태다. 첫 문장에 대한 해설은 다음 문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기에서 수컷을 "안다"고 한 것은 수컷의 성질에 따라 행동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임희일). 수컷의 성질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따르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암컷의 성질을 지킨다는 것이다. 왕필에 따르면 수컷의 성질은 한마디로 앞에 나서는 것이고, 암컷의 성질은 몸을 뒤로 물리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좀더 범위를 넓혀 생각해도 좋다. 가령 존귀하고 비천한 것(하상공), 강하고 조급한 것과 부드럽고 고요한 것(성현영)의 대비로 보아도 좋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노자』의 독특한 사유는 이미 해설하였다(다음 참조).
계곡〔谿〕은 물이 모이는 곳이다. 뒤쪽에는 골짜기〔谷〕라는 말이 나온다. 『이아』에서는 "물이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곳이 계곡이고, 물이 계곡으로 흘러들어가는 곳이 골짜기다(「석수」)"라고 하였다. 곧 산골짜기는 산 깊은 곳에 있고, 산골짜기에서 빠져나와 강으로 이어지는 곳에 있는 것이 계곡이다. 하지만 계곡과 골짜기의 함축은 같다. 모두 낮은 곳, 낮아서 물(만물)이 모이는 곳,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밝지 않은 곳을 가리킨다. "뛰어난 덕은 골짜기와 같다(41)"는 말처럼 골짜기를 들어 덕을 노래하는 것은 『노자』의 상례다.
"수컷을 알면서도 암컷을 지키면 계곡이 된다"고 하였는데, 사실 암컷을 지킨다는 것과 계곡이 된다는 것은 반복이다. 암컷을 지키는 것이 곧 계곡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문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도응훈」에서는 이 문장을 조 양자(襄子)와 지백(知伯)의 일에 빗댄다. 조 양자는 서자의 천한 몸으로 임금이 되었기 때문에 지백은 언제나 양자를 업신여겼고, 한번은 양자의 머리를 손으로 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양자는 자신을 후계로 세운 선군의 뜻이 사직을 위해 치욕을 참으라는 데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당장 지백을 처형하라는 주위의 청을 물리쳤다. 나중에 지백이 군사를 일으켜 양자를 공격했을 때 양자는 지백을 대패시키고는 그 두개골을 쪼개 물그릇으로 사용했다. 그러므로 "수컷을 알면서도 암컷을 지키면 천하의 계곡이 된다." 이런 정략이 『노자』의 심오함을 해친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노자』는 처음부터 이런 제왕학을 유세하는 책이다.
천하의 계곡이 되면 언제나 덕이 떠나지 않는다. 덕이 떠나지 않으면 어린아이로 되돌아간다
爲天下谿, 恒德不離. 德不離, 復歸於嬰兒
'항덕(恒德)'은 모든 통행본에 '상덕(常德)'으로 되어 있다. 과거에는 이것을 특별한 개념으로 보았다. 가령 임희일은 통행본 1장의 상도(常道)와 같은 개념이라고 하였고, 설혜는 영원한 덕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항'은 백서에서 이 글자가 거의 그렇게 사용되듯이 부사다. 물론 '항덕'도 개념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갑본을 보면 '항덕'은 바로 다음 구절("덕이 떠나지 않으면")에서 '덕'이라고만 되어 있다. 만약 이것이 특별한 개념이었다면 다음 구절에서도 '항덕'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옛주 중에는 하상공·왕진 등이 '상(常)'을 부사로 본다.
세 번째의 "덕이 떠나지 않으면"이라는 구절은 통행본에 없다. 여기뿐만 아니라 다음의 같은 유형의 문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암컷의 성질을 지켜서 결국 되돌아가는 곳은 어린아이다. 어린아이도 여러 의미를 함축한다. 가령 왕필은 "지혜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지혜에 합치하는 것"을 어린아이의 특성으로 보았다. 곧 어린아이란 무지를 함축한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또 무욕을 상징할 수도 있고, 소박을 의미할 수도 있다. 양생술사는 당연히 어린아이를 원기론과 연결할 것이다. 이런 문제는 탄력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단지 본문에서 어린아이로 "되돌아간다〔復歸〕"고 했으므로 그것이 어떤 것이든 인간의 본래 상태와 관련되어야 한다.
앞의 문장에서 "암컷을 지킨다"는 것과 "천하의 계곡이 된다"는 것이 반복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천하의 계곡이 된다"는 것과 "언제나 덕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도 반복의 의미가 있다. 천하의 계곡이 된다는 것이 이미 떠나지 않는 덕을 간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장자』 「천하」는 이 말이 노담에게서 나왔다고 하였다.
노담은 "수컷을 알면서도 암컷을 지키면 천하의 계곡이 된다. 깨끗한 것〔白〕을 알면서도 더러운 것〔辱〕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앞서려고 하는데 자신만 뒤에 처지려고 하였다.
『여씨춘추』 「심분람·불이」에서 소개한 열 사람의 사상가 중에 노담은 '부드러움〔柔〕'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기 때문에 암컷의 성질을 따른다는 것은 그의 사상에 부합한다.
그런데 「천하」는 지금 글(28)의 일부분만 인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고증학자는 원래 『노자』의 글은 「천하」에 인용된 것과 같았고, 나머지 부분은 후대의 사람이 끼워넣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역순정은 「천하」에서는 수컷〔雄〕·암컷〔雌〕, 깨끗함〔白〕·더러움〔辱〕이 쌍을 이루는 데 비해 통행본에서는 수컷·암컷, 흰 것〔白〕·검은 것〔黑〕, 더러움〔辱〕·영화로움〔榮〕이 쌍을 이룬다는 데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후대의 사람이 깨끗하다는 의미의 '백(白)'이 선진 문헌에서 곧잘 더럽다는 뜻의 '욕(辱)'과 대비되는 것을 잘 몰랐기 때문에 문장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백(白)'에 '흑(黑)'을 붙이고, '욕(辱)'에 '영(榮)'을 붙였다고 한다.
한편 백서에는 수컷·암컷, 깨끗함〔白〕·더러움〔辱〕, 흰 것〔白〕·검은 것〔黑〕이 쌍을 이룬다. 「천하」와도 다르고, 통행본과도 다르다. 이것은 원래 『노자』의 문장이므로 역순정의 판단이 모두 옳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백서와 「천하」가 모두 깨끗함〔白〕과 더러움〔辱〕을 대비시키는 것을 보면 통행본에서 더러움이 영화로움이 짝을 이루는 데에는 역순정이 말한 곡절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런 곡절로 인해 『노자』가 통행본처럼 개삭되었다면 그것은 한초의 일이다. 「도응훈」의 인용도 통행본과 같기 때문이다. 「도응훈」은 아래에서 해설하겠다.
여태까지의 설명이 모두 맞다면 「천하」는 적어도 「도응훈」 이전의 작품이다. 「천하」는 「도응훈」과는 다르고 백서와는 유사하기 때문이다. 사상사를 통해 보아도 그렇다. 한 무제가 학관에서 제자학을 내쫓고 오경 박사만을 둔 이후에는 「천하」와 같은 종합주의적 학풍이 나오기 힘들었다. 제자학이 학관에 설치된 것은 진나라 때의 일이고, 분서와 함께 제자학이 퇴출되었다가, 한 혜제가 협서율을 폐지하고 문제가 다시 박사 제도를 두면서 부활했으므로 짐작으로 「천하」 같은 제자학 종합 보고서는 진의 궁정이 아니면 한초에 만들어졌으리라 본다.
깨끗한 것을 알면서도 더러운 것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언제나 덕이 족하다. 덕이 족하면 통나무로 돌아간다
知其白,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恒德乃足. 德乃足, 復歸於樸
이미 설명했듯이 여기에서 '욕(辱)'은 모욕이 아니라 더럽다는 뜻이다. "참으로 깨끗한 것은 더러운 것 같다(41)"는 문장에도 같은 용례가 있다. 사실 모욕받는 것은 더러운 일이므로 두 뜻도 서로 통한다.
더러운 것을 지키는 것이 곧 천하의 골짜기가 되는 일이다.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아래로 잘 처하기 때문이다(66)." 낮은 곳에는 온갖 더러운 것이 다 모이므로 더러운 것과 함께할 수 있어야만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 또 천하의 골짜기가 되는 것이 곧 언제나 덕이 족한 것이다. 자족할 줄 알아야 천하의 골짜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골짜기나 통나무도 앞문장의 계곡이나 어린아이와 같이 다양한 함축을 지닌다.
「도응훈」은 은나라 주왕과 주나라 문왕 사이의 고사를 통해 이 문장을 설명한다. 주왕은 원래 문왕의 세력이 장대함을 보고 항상 근심했고, 결국 측근의 조언을 듣고 문왕을 유리(羑里)에 구금한다. 그렇지만 산의생(散宜生)은 온갖 진귀한 보물을 구해 들여 간신 비중(費仲)의 다리를 짚고 주왕을 달랬고, 주왕은 보물에 현혹되어 문왕을 풀어주었다. 풀려난 문왕은 주왕의 눈을 속이기 위해 여악을 즐기는 척하였다. 그것을 본 주왕은 마음 놓고 방탕해져 충신을 죽이고 총첩만 아끼는 혼군이 되었다. 그러므로 은나라가 멸망한 것은 모욕을 참을 줄 알았던 문왕의 '덕' 때문이었다. 그래서 『노자』가 말하기를 "영화를 알면서도 모욕스러움을 지키면 천하의 계곡이 된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지금 보듯이 「도응훈」의 인용은 통행본과 같다. 그 뜻이 백서의 이 문장에 해당하므로 여기에서 「도응훈」을 설명한 것이다.
지금 여기에 "통나무로 돌아간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런 말이 나오는 고전은 적어도 세 편 있다. 우선 『장자』다.
사(北宮奢)가 듣건대 "이미 새기고 다듬은 뒤에는 다시 통나무로 돌아간다"고 하였으니 멍하게 아는 바가 없고 흐릿하게 바보 같아서 사람들이 모였어도 알지 못하고 그저 가는 사람을 배웅하고 오는 사람을 맞이하였을 뿐입니다(「산목」).
『한비자』는 여기에서 북궁사가 인용한 옛말을 『서(書)』에서 인용한다.
『서』에 이르기를 "이미 새기고 다듬은 뒤에는 다시 통나무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양나라 사람 중에 이 말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어……(「외저설좌상」).
『한비자』는 『장자』와 유사한 문장을 인용하면서 『서』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였다. 여기의 『서』가 무슨 책인지는 모르겠다. 『상서』일 수도 있고, 『일주서』 같은 책일 수도 있고, 『전국책』 「주서」 같은 글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책일 수도 있다. 여하튼 『한비자』에게는 『서』라는 출처가 있었다. 가만히 보면 『장자』에서도 북궁사가 들은 말이다. 그의 출처는 또 어디였는지 확인할 수 없다. 단지 이 말이 『노자』 이전에 잘 알려진 말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할 뿐이다.
이 말이 나오는 마지막 고전은 『여씨춘추』다.
그러므로 하나(일)를 아는 것을 알면 통나무로 돌아간다. 원하는 것에 쉽게 만족하고, 몸을 기르는 일에 절제함이 있으니 누구도 그를 신하로 얻을 수 없다. 세상을 떠나서 스스로 즐거워하며, 마음속의 감정이 결백하니 누구도 그를 더럽힐 수 없다(「계춘기·논인」).
이 말이 잘 알려진 말이었다는 심증을 더 강하게 해주는 글이다.
한편 이 글에서도 전국 말기에 유행한 '하나(일)' 관념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미 설명한 것처럼 '하나(일)'는 숫자 1의 속성에 부합하는 의미를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 범주다. 그렇지만 「논인」에서는 특히 군주가 가야 할 길〔道〕의 요체를 가리킨다. 「논인」은 "자신을 되돌이켜 구하는 것"을 그 요체로 제시한다.
군주의 길은 간단하고, 임금이 지킬 것은 멀지 않다.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을 되돌이켜 구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남에게서 구하는 것이다.
자신을 되돌이켜 구한다는 것과 지금 『노자』가 말하는 "되돌아간다"는 것 역시 비교될 수 있겠다.
흰 것을 알면서도 검은 것을 지키면 천하의 모범이 된다. 천하의 모범이 되면 언제나 덕이 어그러지지 않는다. 덕이 어그러지지 않으면 무극으로 돌아간다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恒德不忒. 德不忒, 復歸於无極
암컷이나 더러운 것을 함께하려는 정서는 『노자』의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이 문장처럼 흰 것과 검은 것을 대비하는 경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현(玄)'이 검다는 뜻이지만 '현'과 '흑'은 느낌이 다르다. '현'은 컴컴한 것이고, '흑'은 까만 것이다. '현'은 뭔가 어렴풋한 것이지만 '흑'은 색깔이 분명히 드러난다. 더욱이 『노자』는 "흰 바탕〔素〕을 드러내고 통나무를 껴안는다(19)"고 하였다. '백(白)'과 '소(素)'의 느낌도 같지는 않지만 여하튼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더욱이 이 문장에서는 "검은 것을 지킨" 결과가 "천하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모범이 된다는 것 역시 계곡이 된다든지 골짜기가 된다든지 하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모범을 보여 백성을 교화하는 것보다는 "내가 무위하니 백성은 스스로 교화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니 백성은 스스로 올바르게 된다(57)"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노자』다. 이런 문제 때문에 종래 이 문장을 둘러싼 논란이 많았던 것이다.
이 책처럼 『노자』를 진나라에서 편집된 책으로 보면 이 문장은 영낙없이 수덕(水德)을 숭상했던 진 시황의 구미에 맞춘 글이다. 진은 화덕(火德)을 가진 주나라를 극복하고 들어선 나라이므로 시황제는 추연(鄒衍)의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에 입각하여 진이 수덕을 가졌다고 판단하고 제도를 통일할 때 항상 수덕을 기준으로 하였다. 수덕의 색은 흑색이다.
시황은 오덕종시의 전(傳)을 추찰하여 주나라는 화덕을 얻었고 진나라는 주나라의 뒤를 이었으므로 (진나라의 덕은 주나라의 덕이) 이기지 못하는 것을 따른다고 생각하고, 당시를 수덕이 시작되는 때라고 보았다. 한 해의 시작을 바꾸어서 시월 초하루에 조하(朝賀)를 받고, 의복과 모(旄)·정(旌)·절(節)·기(旗)에는 모두 흑색을 숭상하였다. 수(數)는 육(六)을 기준으로 하여 부절(符節)과 법관(法冠)의 길이를 모두 6촌으로 하고……(『사기』 「진시황본기」).
이것은 증거가 아니고 단지 한번 생각해본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노자』만 놓고 보아서는 이 문장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 문장에서는 무극이라는 말도 눈에 띈다. 도교사나 성리학사에서는 이 말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노자』를 해석하면서 그러한 의미를 가져오는 것은 곤란하다. 왕필은 무극이 "궁함이 없다"는 뜻이라고 하였고, 다른 옛주도 특별한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 물론 "궁함이 없다"는 뜻이 토대가 되어 나중에 중요한 개념으로 발전하지만 당장은 단순히 이해하는 게 좋다고 본다.
통나무가 흩어지면 그릇이 되고, 성인이 쓰이면 군왕이 된다. 무릇 큰 제도는 갈라짐이 없다
樸散則爲器, 聖人用則爲官長. 夫大制无割
『노자』에는 원시와 순수를 보존하려는 사유가 충만하기 때문에 통나무를 가공해서 그릇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은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설혜는 이렇게 하는 것이 "고인의 대체(大體)"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노자』는 제왕학이다. 현실적으로 쓰임이 없는 은둔자의 통나무라면 『노자』가 왜 관심을 두었겠는가. "백성을 다스릴 뜻이 있으면서도 적당한 그릇이 없으면 뜻을 이루지 못한다(『예기』 「경해」)." 현실적인 쓰임이 있으면서도 통나무의 원시와 순수를 잘 보전하고 있기 때문에 성인이다. "통나무가 흩어지면 그릇이 된다"는 말에도 그런 뜻이 있다. 통나무가 흩어져서 만들어진 그릇이기 때문에 훌륭한 쓰임새가 있다.
마찬가지로 성인은 은둔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노자』에서 성인은 언제나 임금이다. 성인의 쓰임은 세상을 구제하는 군왕됨에 있다. 통나무로 만든 그릇에 통나무의 소박성이 숨어 있듯이 성인됨을 간직한 군왕에게는 세상을 평화로 이끌고 스스로는 장구히 존속할 수 있는 덕성이 있다.
그런 통나무와 성인이 "큰 제도"다. 정말로 큰 사람은 사라지고 난 뒷자리에 향기를 남기듯이 통나무와 성인은 그릇이 되었을 때나 되지 않았을 때나, 또 군왕이 되었을 때나 되지 않았을 때나 항상 그 덕성을 보존한다. 그러므로 "큰 제도는 갈라짐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일)를 아는 것을 알면
통나무로 돌아간다
―『여씨춘추』 「계춘기·논인」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노자(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2003. 6. 30., 김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