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세제 개편안이 뭇매를 맞고 있다. 고액연봉자와 중산층의 세금부담을 늘려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는 정부의 세제 개편 취지에 중산층 봉급생활자들의 반발 여론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편안 큰 반발 불어올 수 있어
근로소득은 세율에 따라 원천징수가 가능하기 때문에 세수를 늘리려는 정부로서는 가장 손대기 쉬운 방법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가장 간편하고 정확한 세수확대 방법인 근로소득세를 손댄 사례가 있다. 그 때마다 소득이 훤히 보이는 봉급생활자의 유리지갑을 탈탈 털려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이번 개편안은 더 큰 반발을 불어올 수 있다. 매우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데다가 여야간 대치상태가 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악수'이기 때문이다.
13월의 봉급인 소득공제도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의료비, 교육비, 보장성보험료 등 특별공제를 소득공제 방식에서 세액공제로 전환됨에 따라 중간층 연봉자들의 부담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반면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다르다. 시장친화적인 세제를 마련하겠다며 법인세 감면 등 대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을 입안 중이다. 또 이번 세제개편안에는 재벌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니 봉급생활자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이번 세제 개편안에 따르면 세부담 증가 기준선은 연봉 3450만원. 정부는 소득 상위 28%에서만 세금 증가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정부의 해명과 봉급생활자의 체감 정도가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근로소득세 부담자 84.3%에게 세금 증가 발생
근로소득자의 28%만 세금을 더 내는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현장감이 크게 떨어진다. 근로소득자는 2011년 기준으로 1544만여명. 이중 연급여 2000만원 이하(798만명)의 경우 세부담이 없다. 또 개정안에 따르면 연봉 2000~3000만원인 근로자(231만명)들도 사실상 세금 면제 혜택을 받게 된다. 평균 6만원을 부담하도록 돼 있지만 이들에게 근로·자녀장려금 7만원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결국 연급여 3000만원 이하의 근로자(1029만명)에게는 세부담이 없게 된다. 그렇다면 세금을 내야 하는 근로소득자는 514만명이고, 정부가 세금 납부액 증가 기준선으로 잡은 연소득 3450만원 이상인 근로자는 434만명에 이른다. 따라서 근로소득세를 내야 하는 근로자의 84.3%가 이번 정부의 세제개편으로 세금을 더 내야한다.
세부담 증가가 근로자 상위 28%에서만 발생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맞는 말이면서 틀린 게 된다. 정부는 10명 중 3명만 세금을 더 내는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근로소득세를 내온 근로자들은 10명 중 8명 이상에서 세부담 증가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연봉 3000~4000만원 봉급자의 팍팍한 형편 모르나?
연급여 3450만원이라는 기준선도 잘못돼 있다. 월급 300만원도 안 되는 봉급자를 ‘중산층’으로 규정하는 정부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월 300~400만원 봉급을 받는 가장들 대부분은 높은 주거비와 교육비, 가계부채 상환 부담에 단 몇만원도 빼낼 수 없을 정도로 팍팍하게 생활한다.
하지만 이들을 보는 정부의 시각은 다르다. 논란이 되자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중간 봉급자의) 세금 증가는 연 16만원으로 월 1만3천원 정도”라며 “이 정도는 감내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득공제가 사라진 것에 대해서도 “죄송하지만 이해해 달라”며 “마음을 열고 받아달라고 읍소드린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은 "십시일반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민주당 수뇌부의 '유리지갑 퍼포먼스>
봉급생활자에게 중요한 가처분소득이었던 ‘13월의 봉급’이 사라지게 되는 것도 분통이 터지는데 여기에 한술 더 떠 ‘유리지갑’에서 몇 만원을 더 빼낼 테니 군소리 없이 입 닫고 감내하란다. 이러니 정부를 향해 볼멘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가처분소득 줄고 빚 늘어나 텅 빈 유리지갑
왜 털 곳은 털지 않고 만만한 봉급생활자만 괴롭히는 건가. 정부가 중산층과 서민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모르는가 보다.
지난 20년간(2001~2012) 국민총소득(GNI) 연평균 증가율은 6.5%였다. 기업의 소득증가율은 이를 훨씬 상회하는 9.6%인 반면, 가계소득 증가율은 GNI 증가율에도 못미치는 5.6%에 불과했다. 기업 소득은 크게 늘어났지만, 가계의 체감소득은 감소했다는 얘기다.
빚을 내 생활하는 가계도 크게 늘었다. 2007년말 665조원이었던 가계부채가 급격히 증가해 2012년 964조원으로 5년 동안 3000조원 증가했다. 최근 5년 동안 가계부채가 50%나 늘어난 셈이다. 여기에 자영업자 부채를 가계부채로 볼 경우 전체 가계부채는 1100조원에 육박한다.
가계가 버텨낼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의 증가도 심각한 수준이다. 2008년 149.7%에서 2012년 163.8%로 증가했다. 부채가 소득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털 곳 털지 않고 봉급자만 괴롭히나
빚에 눌려 살아야 하는 중간 봉급자에게 단 몇만원도 큰 돈이다. 가처분소득이 줄고 부채가 늘어나 팍팍하게 살아가고 있는 봉급자들의 지갑을 털겠다고 나선 정부가 한심하다. 털 데가 없어서 유리지갑에 손을 댄단 말인가.
봉급생활자는 기업가나 전문직, 고액자영업자와 다르다. 각종 세금과 건강보험, 연금, 고용보험 등 준조세까지 가장 성실하게 납부해온 게 월급쟁이다. 13월의 봉급을 빼앗으며 세금을 더 내라고 하니 이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는 중앙정부 공약 이행에 필요한 세수를 48조원으로 잡고 있다. 이번 세제개편을 통해 발생하는 세수증대효과는 고작 4300억원. 하지만 어떻게 나머지 47조5700억원을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48조원을 만들어내려고 살펴보니 건들기 간편하고 만만한 게 봉급생활자의 지갑이었나 보다. 유리지갑에서 몇만원 더 빼내려는 수작은 그만 거두고 48조원을 확보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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