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마물(甚麽物)
龍短虎長용단호장
五更樓下夕陽紅오경루하석양홍
畵圓書方화원서방
九月山中春草錄구월산중춘초록
용은 짧고 호랑이는 길다,
오경 누각 아래 석양이 붉구나!
그리면 원이고 쓰면 네모인데
구월 산중에 봄풀이 푸르구나!
이 시(詩)는 청(淸)나라 사신(使臣)이 조선(朝鮮)에 와서 조선을 얕잡아 보고 대구(對句)로 묻는 시(詩)가 위의 상구(上句) 용은 짧고 호랑이는 길다, 오경 누각 아래 석양이 붉구나<龍短虎長 五更樓下夕陽紅> 시(詩)이고, 아래 그리면 둥글고 쓰면 네모 각이라 구월 산중에 봄풀이 푸르구나!<畵圓書方 九月山中春草錄> 시(詩)가 기노사(奇蘆沙) 선생이 답한 대구(對句) 시(詩)다. 청나라 사신이 처음 낸 문제(問題)는 동해에 고기가 있은 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등골도 없다, 용은 짧고 호랑이는 길다. 이것이 무엇이냐?<東海有魚 無頭無尾無脊 龍短虎長 是甚麽?>가 첫 번째로 시험(試驗)으로 묻는 문제였다. 조선 조정에서는 삼정승(三政丞) 육조판서(六曹判書) 벼슬하는 신하들에게 다 물어봐도 이 문제 하나를 풀 사람이 없어서 골머리를 앓고 야단이 났다. 해답(解答) 시간은 촉박하게 다가오고 사신이 낸 문제는 무슨 뜻인지 몰라 온 나라가 곤경(困境)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 누가 장성에 가면 신동(神童) 이인(異人)이 기정진(奇正鎭)이라는 선비가 있는데, 그라면 혹시 알지 않겠느냐고 조정 중론(衆論)이 모아졌다. 그래서 대궐에서 사람이 내려가서 기노사(奇蘆沙)에게 문제 글을 보이니, 겨울과 여름 해를 말한 것이라고 답(答)을 풀어 주었다. 동해(東海)에 고기(魚)가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고 없고, 척추뼈도 없다고 하면 어자(魚)가 날일 자(日)가 된다. 해는 날마다 동쪽 하늘에서 뜨기 때문에 해(日)를 고기(魚)로 상징을 하고 파자(破字) 법으로 시제(詩題)로 삼아 문제를 낸 것이다. 그것을 기노사 선생이 파자로 풀어서 해답(解答)하자, 청나라 사신이 깜짝 놀라고 또 대구(對句)로 답하라고 묻는 시(詩)가 용(龍短)은 짧고 호랑이(虎長)는 길고, 오경에 누각 아래 석양이 붉구나!< <龍短虎長 五更樓下夕陽紅>이다. 이 시구(詩句)도 찬찬히 따져보면 이치(理致)에 맞지 않는 허점(虛點)투성이 시(詩)다, 용단호장(龍短虎長)은 겨울과 여름 해 뜨는 시간을 말한 것이다, 겨울철은 용단은 진방(辰方)에서 해가 떠서 낮, 시간이 짧은 겨울철을 말한 것이고, 호장(虎長)은 인방(寅方)에서 해가 뜨는 여름철의 낮, 시간이 긴 것을 말한 것이다. 그 허점을 찾아내서 대구(對句)로 답(答)을 하면 끝이 난다. 오경(五更) 누각(樓閣) 아래 석양(夕陽)이 붉다고 한 말에 청나라 사신이 파놓은 덫 올가미가 있다. 시구(詩句) 문장(文章)은 그럴 듯, 하지만 문제(問題)투성이 이치에 맞지 않는 시다. 오경(五更)은 아침 오전 7시~9시까지다. 누각(樓閣) 아래 석양(夕陽)이 붉다고 한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 시구(詩句)다. 아침나절에 어떻게 석양이 붉을 수가 있겠는가? 이다. 청나라 사신이 파 놓은 함정이 아침나절에 석양이 붉다는데 함정 덫이다. 핵심(核心)포인트인 그 점을 기노사(奇蘆沙) 선생께서 멋들어지게 적시(摘示)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대구(對句) 화답(和答) 한 시가 그리면 둥글고 쓰면 네모 각인데 구월 산중에 봄풀이 푸르구나<畵圓書方 九月山中春草錄>다. 구월이면 가을인데 어떻게 봄풀이 푸를 수가 있겠는가? 노사선생도 이치에 맞지 않는 대구(對句)로 답(答)을 해서 청나라 사신도 조선에도 인재가 있은 것에 놀라서 칭찬하고 돌아갔다는 일화다. 그래서 철종(哲宗)은 장안에 만목(萬目)이 장성에 한눈(一目)만 같지 못하다고 <長安萬目 不如長城一目>했다. 기노사(奇蘆沙) 선생을 칭찬한 말이다. 그 후 대원군(大院君)도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라고 칭찬했다. 노사 선생을 격찬하는 말이다.
기노사(奇蘆沙) 선생은 원래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조동리에서 출생했다. 출생은 순창에서 하고 양친 부모님을 잃고 난 후 18세 때 선영이 있는 장성으로 이사를 한다. 기노사 선생을 일목장(一目章)이라고도 한다. 외눈 문장이라는 별칭(別稱)이다. 한쪽 눈을 실명(失明)해서 외눈이다. 실명이유(失明理由)는 조모(祖母)님의 묘소(墓所)를 황앵탁목혈(黃鶯啄木穴)에 쓰고 박복(發福)했다고 전한다. 노사 조부는 풍수학(風水學) 공부(工夫)를 하고 장성에서 순창 복흥면 조동리에 먼저 세상을 뜬 아내 묘를 (옥룡자(玉龍子) 비결록秘(訣錄)에 따라 복흥에서 남쪽으로 10리를 가면, 장성과 담양이 갈라지는 길 골짜기에, 금방동에서 처음으로 기봉한 산 아래, 적색 바위가 화산처럼 생겼고, 석맥(石脈) 위에 (용 또는 혈이 있다). 아름다운 물은 동북쪽에서 서로 만나 합류하여, 남쪽으로 크게 지현자(구불구불)로 흘러 서쪽으로 빠져나간다. 안산이 역수(逆水) 하는 황앵탁목혈(黃鶯啄木穴)이다. 본신에서 나온 청룡과 백호는 선익이 되고, 안산이 외청룡과 더불어 수구를 이룬다. 후손은 큰 부자가 되며, 백화(진사) 2인이 날것이고, 문과와 무과에 각각 3인이 나는데 정2품에 이르고, 용감한 선비 1인이 나온다. 맹인(盲人) 1인이 나는 것을 제외(除外)하고는 흠(欠)이 없는 명당(明堂)이다. 비결(秘決) 복흥남십리(福興南十里) 장성담양분거로협(長城潭陽分去路峽) 금방동초기봉하(金榜洞初起峰下) 적암화산석맥상(赤岩火山石脈上) 수자동북교합류(水紫東北交合流) 남대류지혈귀서(南大流之玄歸西) 안재역수(案在逆水) 황앵탁목혈(黃鶯啄木穴) 본신용호이선익(本身龍虎以蟬翼) 안여외청룡성수구(案與外靑龍成水口) 예성대부(裔盛大富) 백화이인(白花二人) 문무각삼인위지정이품(文武各三人位至正二品) 용사일인(勇士一人) 맹인일인지외무흠(盲人一人之外無欠) 비결(秘決) 혈처(穴處)인 황앵탁목혈처(黃鶯啄木穴處)에 노사(蘆沙) 조모묘소(祖母墓所)를 쓰고나서 발복(發福)하여 실명(失明)했다는 이유다. 노란 꾀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명당이라 외눈 손자가 3대에 나와야 명당 발복이라고 한다. 황앵탁목혈(黃鶯啄木穴) 묘좌유향(卯坐酉向)이다. 묘좌(卯坐)가 3, 8목(木)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도 풍수학(風水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간산(看山) 하는 명당(明堂) 코스라고 한다. 예로부터 전하는 말로는 생거부안(生居扶安)하고 사거순창(死居淳昌)이라고 했다. 살아생전 살기 좋은 고장은 진안 땅이고, 죽어 편안히 누울 곳은 순창 땅이라고 했으니, 순창 고을이 명당이 많다는 뜻이다. 순창하면 회문산(回文山)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의 명당혈(明堂穴)이, 회자(膾炙)된다. 그래서 노사 조부도 아내의 묘소를 순창 복흥 산에 묻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부친께서 벼슬을 하지 말라는 유언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노사는 소과(小科)에 장원하고 벼슬길에 오른 지 6일 만에 사직하고 수차례 조정으로부터 벼슬을 받고도 벼슬은 맡지 않고 후학들 양성에 평생을 학문에 전념하여 조선 성리학 6대 가가 된다.
기노사 선생은 송대(宋代) 성리학(性理學)의 우주 현상(宇宙現象)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극복(克復)한 인간(人間)의 심성(心性)과 도덕문제(道德問題)를 기(氣)가 아닌 이(理)의 작용(作用)으로 봤다. 이(理)는 하나지만 기(氣)는 수많은 형태로 나눈다는 유이론(唯理論)인 이일분수론(理一分殊論)을 주장했다. 일체(一切)의 기발(氣發)은 이발(理發)을 근거(根據)라고 주장했다. 이율곡(李栗谷)의 주기론(主氣論)을 인정하지 않고 비판했다. 조선성리학(朝鮮性理學)도 알고 보면 주기론(主氣論)과 주리론(主理論)의 논쟁(論爭)인 셈이다. 조선 성리학의 6대 대가에 속하는 노사 선생은 직계제자(直系弟子)가 3,000명이고 간접제자(間接弟子)도 3,000명이라고 하니 호남(湖南)의 거유(巨儒)였다. 청나라 사신도 깜짝 놀라게 한 문장력은 풍수학(風水學)과 관련이 있을까? 이다. 노사 선생의 출생 자료는 노사 선생의 실명(失明) 이유를 풍수학(風水學)과 관련이 있다고 전 한다. 노사 조부께서 장성에서 순창 복흥으로 이사를 와서 노사 조모 묘(墓)를 이장(移葬)하였는데 그 묘소(墓所) 혈(穴)이 황앵탁목혈(黃鶯啄木穴)에 묘를 쓰고 나서 노사 선생 대에 발복(發福) 하였다고 전한다. 풍수학(風水學)은 주역(周易)의 꽃이라고도 한다. 땅속 일이라 상달천문(上達天文) 하달지리(下達地理)에 도(道) 자리에 안목이 열려야 훤히 안다고 한다. 人傑(인걸)은 地靈(지령)이라고 했다. 태어날 때는 두 눈이 멀쩡했으나 조모 묘소 혈 발복으로 외눈이 되었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풍수학 설을 믿는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노사 일목(一目) 실명(失明)은 풍수학(風水學)과 연관을 짖는다. 21세를 맞이하는 대한민국의 국제 정세도 노사 선생이 살았던 조선 시대와 달라진 것은 없다. 지금도 중국은 한반도 대한민국을 동북 공정 속에 두고 역사를 날조하고 있다. 아리랑도 판소리도 구정 설 명절도 중국 것이라고 생떼 트집이다. 오늘은 조선말 당시에 실화로 있었던 일화(逸話) 시구(詩句)로 오늘을 되새김질 해보았다. 여여법당 화옹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