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타(116) 제2권 안다이 특설 실험장의 각종 폭탄 성능 시험
제10장. 요시다 드디어 행동까지
8절. 강숙희를 위한 요시다의 마지막 배려
강숙희는 방안으로 들어선 요시다 대위를 알아보고는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요시다는 모리가와에게 말했다.
‘중위, 저 여자를 풀어주고 옷을 입게하라“
”하이“
모리가와 중위는 대답하고 여자의 손에 묶인 줄과 발목의 줄을 풀었다. 머리를 고정시킨 줄도 풀어 내렸다. 여자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몸은 반점 투성이었고, 추위로 피부가 얼어 있었다.
한쪽 다리는 동상에 걸려 마비가 되어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모리가와가 거들어 그녀의 옷을 입혔다.
여자에게 옷을 입히고 있는 동안 요시다는 한쪽에 서서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옷을 입고 있는 강숙희를 바라보자 요시다는 착잡한 심경이었다. 자기를 알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애매한 죽음을 맞게 되는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이 온몸을 지릿하게 엄습해 왔다. 옷을 모두 입히고 벽을 기대게 하여 여자를 앉혔다.
모리가와 중위는 그녀를 앉히고 돌아서서 요시다에게 말했다.
”대위님, 제가 잠깐 나가 있을까요?“
”그렇게 해주게나“
”네 잠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고맙네“
모리가와 중위가 밖으로 나갔다. 요시다는 담배를 피우며 여자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여자는 탈진된 표정으로 요시다 대위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분노라든지 슬픔조차 없는 체념한 굳은 얼굴이었다. 마치 표정이 없이 담담한 가면 같은 분위기 였다.
”담배 피우겠나?“
요시다 대위는 담배 한 개피를 꺼내어 물었다.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시다는 담배에 불을 붙여 그녀의 입에 물려주었다. 팔을 올려 담배를 받으려고 했으나 손과 팔이 떨려서 제대로 받지 못하자 그녀의 입에 직접 물려 주었다. 여자는 담배에 손을 대지 않은채 연기를 빨았다. 그녀는 심한 기침을 하였다. 기침을 하면서도 담배를 뱉지 않으려고 이빨로 깨물고 있었다. 그녀가 기침을 ㅈㄴ정시키고 벽에 몸을 기대어 앉아 가만히 있을 때 요시다가 말했다.
”미안하다.“
”...........“
여자가 고개를 들고 요시다 대위를 멍하니 쳐다 보았다. 그녀의 눈은 피곤으로 지쳐 있었다. 졸음이 오는 듯한 눈빛이었다.
”대위님 ---.“ 하고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불렀다.
요시다는 자세를 바로하며 여자를 내려다 보았다.
”대위님, 그거 지금도 지니고 있나요?“
”그거라니?“
”상평통보 말이예요. 대위님의 어머니가 부적이라고 주셨다는 메달 말씀이에요“
”있지“
”보여주세요“
”................“
요시다는 계면쩍어서 잠깐 망설이다가 문을 힐끗 돌아보고 가슴에서 메달을 꺼내어 보였다.메달을 꺼낼 때 목에 걸린 은도금한 쇠줄이 불빛에 비쳐 반짝거렸다. 여자는 메달보다도 목에 걸린 쇠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녀의 눈빛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역시 대위님 이었군요.“
”무엇 말인가?“
”아니예요“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은데? 얘기 해봐.“
”괜찮을까요?“
”괜찮아.“
”대위님에게 무척 불괘할 텐데요.“
”괜찮아. 아가씨를 이렇게 죽도록 만든 사람인데 나에게 불괘한 것이 문제가 되겠나?“
”그래서 날 구해주셨나요?“
”..............“
”당신의 조국을 배신하면서까지 왜 날 구하시려고 했나요?“
”그걸 어떻게 알았나?“
”메달의 줄을 보고 았았어요. 그리고 변성한 목소리 였지만, 그 목소리를 듣고 짐작했어요.“
”왜 구해주셨나요?“
”이유는 없어. 나도 모르겠어. 죄의식 때문인지도 모르지. 아가씨에 대해서-----“
”거짓말 같이 들리네요. 일본군 장교가 타민족의 아가씨 한두사람을 무고하게 죽게 했다고 죄의식을 느끼나요?“
”뭐라고 변명할 수 없군.“
”제가 두렵죠?“
”무라구?“
”우리를 구해준 복면슨 남자가 요시다 대위님이라고 밝히면 어떻게 되죠?“
”그게 사실로 확인되면 난 사형되겠지.“
”그런데도 두렵지 않으세요?“
”아니,. 조금도 두렵지 않네.“
”왜 그렇죠?“
” 나도 죽을 각오가 돼 있어. 아가씨가 밝히지 않아도 자수 할 생각도 있어.“
”무모한 짓이예요.“
”매화....아니, 강숙희라고 했던가?“
”나를 모두 189번 마루타라고 부르던데요. 왜 나를 통나무라고 하죠?“
”..............“
”이제는 모두 알고 있어요. 우리를 실험 재료로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우리는 하천을 거슬러 올라 10킬로 정도 함께 가다가 사방으로 흩어졌어요. 헤어지면서 살아남은 세명은 이런 약속을 했어요. 러시안인 백인 여자는 꼭 살아서 당신의 나라 군대에 가서 이 사실을 알리고.몽고인 여자는 중국군에게 가서 알리고, 나는 조선 독립군을 찾아가 실험재료에 대해서 고발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죽자고 했어요. 그런데 산 속에 숨어있는 나를 개가 냄새를 맡고 따라왔어요. 죽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이 가공할 만행을 폭로하지 못해 억울해요.“
”................“
”대위님은 당신의 조국에 큰 실수를 했던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성공하지 못했으니 다행이겠지요?“
”모르겠어, 내 주위가 모두 무엇에 미쳐 있는 것만 같아. 나도 함께 미치지 못해서 이렇게 괴로운지 모르지.“
”괴로워 할 것 없어요. 같이 미치면 되잖아요?“
”내가 아가씨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탈출 시켜주세요.“
’이제는 불가능해.”
“그럼 빨리 죽여 주세요. 앞으로 오래 살 것 같지 않아요. 그동안 심한 고문에 시달리느니 죽는게 좋아요.”
“고문은 하지 못하게 하겠네.”
“죽이는게 도와주는 일이예요. 고문 안해도 지금 나는 괴로워요. 육체적인 고통 속에 있어요.”
‘..................“
요시다 대위는 어제 저녁에 중국인 여자 마루타를 둥근 원판에 매달고 단검을 던져 도박을 하던 것을 보고 총을 쏘아 사살한 일이 떠올랐다. 자기가 좋아했던 여자 두 사람이 무엇 때문에 손수 죽여야 하는지 그는 한스러웠다.”
“그것이 아가씨를 돕는 일일까?”
요시다는 자기 자신에게 묻듯이 중얼거렸다. 말이 입 밖으로 흐러 나갔는지 여자가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담배 한 대만 더 피우게 해 주세요.”
“지난번에는 담배를 못 피운다고 한 것 같은데?”
“배웠어요. 가르쳐 주더군요.”
“왜?”
“담배가 아니고 마약이었나 봐요. 죽으면서 그게 생각나요. 그러나 마약은 없을테니 담배라도 피워야죠.”
요시다 대위는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불을 붙여 여자의 입에 물려 주었다. 여자는 기침을 하면서 담배 연기를 빨았다.
“우리나라 민요 아리랑을 부를 테니 그 곡이 끝나기 전에 절 쏘아 죽이세요.”
“아리랑.....? 그렇게 하지.”
여자는 담배를 입에 물고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여자 마루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그녀는 떠리는 목소리로 아리랑을 불렀다. 여자가 눈을 감았다. 그녀의 눈 꼬리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리랑 아라리요........
요시다 대위는 권총을 빼들어 여자의 머리를 겨누었다. 그러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노래가 모두 끝나도록 쏘지 못하고 망설였다. 여자가 눈을 뜨고 요시다를 쳐다 보았다.
“쏘아 주세요. 빨리. 아리랑을 다시 부를 테니 쏘세요.”
여자는 담배를 뱉어내고 다시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래가 끝나도록 요시다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요시다이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때 문 밖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모리가와가 막는 듯했다.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어 요시다는 총구를 추켜 들었다. 여자가 눈을 감았다.
"우리나라 애국가가 있다고 들었지만 난 배우지 못해 못 불러요. 그래서 아리랑으로 대신하는 것이니 쏘세요. 아리랑........"
총성이 울렸다. 여자의 이마에 총탄이 박히었다. 그녀는 옆으로 쓰러졌다.
밖에서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문을 차고 안으로 뛰어 들었다.
첫댓글 189번, 강숙희 !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