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가톨릭성지순례 길은 마산교구로 향하였다.
첫 번째로 복자품에 오른 세 분의 묘지를 찾아 떠나는 순례 길이었다.
한국은 조선왕조의 개국이념이 숭유억불정책으로 유교국가를 지향했던 나라이다.
그러다보니 유교의 이념을 구현하고 주자가례에 따른 관혼상제를 엄격하게 지켜왔다.
한국에 천주교가 자생적으로 시작되어 말씀의 싹을 틔웠다고 하지만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서 본격적인 복음 선포가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관혼상제 중에서 제사의 문제가 가장 크게 부각되었으며 이는 천주교탄압의 빌미가 되었다.
유교이념에 따라 조상을 모시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사자에 대한 묘지자리는 후손들에게 그 영향을 미친다고 하여 매우 중요하게 다루었다.
이러한 조선의 풍속은 천주교회에 접목되어 유골 한 점 한 점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였다.
이런 유학적 풍토는 사자에 대한 묘지를 잘 관리하였다.
천주교 박해시기 많은 순교자들이 발생하였으며 당시 남몰래 시신을 거두어 가묘를 쓸 정도였다.
찾아낸 순교자들의 유골을 다시 모셔 봉분을 쌓고 성역화 하였다.
유교적 풍속은 천주교에 들어와 순교자의 유골 공경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오늘 마산교구 첫 번째 순례도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님 집전으로
복자품에 오른 124위 중에서 경남지역 세 분의 복자 묘지를 찾는 여정이었다.
경남 함안군 대산면 대산성당은 구한선 타대오의 유해를 모신 성당이다.
복자의 고향은 함안 미나리골로서 현재의 대산면 평기마을이다.
선교사 신부의 복사로 활동하면서 전교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병인박해 때 23세를 일기로 순교하였다.
복자는 특별히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포졸들이 매를 치다가
왜 천주교를 믿었느냐고 문초하자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서” 라고 답하였단다.
그분이 순교한 뒤 부모에게 효를 다하지 못하였던 사람들이
그 분의 묘를 참배하면서 기도하자 치매로 집을 나갔던 부모님이 돌아오기 까지 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대산성당은 무덤경당을 따로 만들고 복자의 유해를 안치하였으며 교회 옆에 ‘희망의 동산’을 조성하였다.
오스트리아 그라츠 세카우교구와 1971년 10월 15일 자매결연을 맺고 신앙적 유대를 이어가고 있다.
마산교구 초기에 그라츠교구의 인적 재정적 지원을 많이 받았다.
대산성지 순례는 구한선 타대오 복자 유해를 공경하는 성지로 무덤경당에 들어 조용히 묵상기도를 바쳤다.
십계명 중에서 인간계명의 첫 번째 “네 부모를 공경하라” 라는 계명을
신앙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실천했던 그 분의 순교신앙을 본받아 삶의 자리에서 실천해야 할 거다.
십계명을 다시 묵상하고 잘 실천하라고 구한선 타대오 성지로 초대하였던 하루였다.
<2019. 1. 27 구한선 타대오 성지 대산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