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강의 제33회/**금강경 상식풀이**제9분 일상무상분(3)
<금강경 제9분 :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독경: 상진스님>
**금강경 상식풀이**
ㅡ 一相無相分 第九 일상무상분(3)ㅡ
須菩提 於意云何 阿羅漢能作是念我得阿羅漢道不須菩提言
수보리 어의운하 아라한능작시념아득아라한도부수보리언
不也世尊 何以故 實無有法 名阿羅漢 世尊 若阿羅漢作是念
불야세존 하이고 실무유법 명아라한 세존 약아라한작시념
我得阿羅漢道 卽爲着我人衆生壽者
아득아라한도즉위착아인중생수자
『수보리야,네 생각에 어떠하냐. 아라한(阿羅漢)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노라 하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실로 아무 것도 아라한이라 할 법이 없는 것을 아라한이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만일 아라한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노라. 한다면 이는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나'라는,'남'이라는, 내 것이라는,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집착되는 것입니다.』
아라한(阿羅漢) : 아르한(Arhan)의 음역. 아라한은 성문의 마지막 지위로서 수행이 최고의 극치에 이른 성인이다.
아라한은 무적(無賊)·불생(不生)·응공(應供)이라 번역하는데, 무적이라 함은 번뇌의 도적이 깨끗이 없어졌다는 뜻이고
불생이라 함은 다시는 인간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며
응공이라 함은 인간세계와 하늘계에서 어떠한 공양이라도 받아도 타당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아라한이 끊어야 할 번뇌는 색계와 무색계의 수도혹으로서 탐(貪)·치(痴)·만(慢) 등 세 가지가 주 구성성분이 된다.
이미 아나함의 과위를 얻은 이가 오나함천에 태어나 살피니, 아직 상계의 수도혹이 남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냥 끊기는 너무 미세하여 색계의 것을 넷으로, 무색계의 것도 넷으로 하여 총 여덟가지로 나누고 이들 여덟가지 몫을 다시 각각 아홉등분으로 나누어 모두 72품으로 하는데, 이중에서 71품까지를 끊으면 아라한향(雅羅漢向)이라 하고 72품을 다 끊어야 아라한이라 하는 것이다.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의 네 개를 아인사상(我人四相) 또는 사상(四相)이라 하는데, 이것은 중생들이 범하기 쉬운 집착상을 경계하는 말이다.
아상(我相)은 '나'라는 相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인상(人相)도 아상(我相)·처럼 집착하는 모습의 하나인데, '남'을 의식하는 데에서 오는 행동과 생각을 말한다.
중생상(衆生相)은 괴로운 것을 싫어하고 즐거운 것을 탐내는 등 현실주의적인 행동이나 상념의 집착을 규정하는 말. 수자상(壽者相)은 인간은 선천적으로 길든 짧든 간에 일정한 수명을 하늘에서 받아 그 수명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의 집착을 말한다
世尊 佛說 我得無諍三昧人中最爲第一 是第一離欲 阿羅漢世尊
세존불설 아득무쟁삼매 인중최위제일 시제일이욕 아라한세존
我不作是念 我是離欲阿羅漢 世尊 我若作是念我得阿羅漢道 世尊卽不說
아부작시념 아시이욕아라한 세존 아약작시념 아득아라한도세존즉불설
須菩提 是樂阿蘭那行者 以須菩提 實無所行 而名須菩提 是樂阿蘭那行
수보리 시요아란나행자 이수보리 실무소행 이명수보리 시요아란나행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일러서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은 사람 중에 가장 으뜸이라 하셨는데, 이는 욕심을 여읜 아라한(離欲阿羅漢이욕아라한)이기 때문입니다마는 저는 내가 욕심을 여읜 아라한(離欲阿羅漢이욕아라한)이라고는 생각치는 않나이다.
세존이시여,제가 만일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노라」한다면 세존께서는 곧 수보리를 아란나행(阿蘭那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마는 수보리가 실로 수행하는 티가 없으므로 수보리는 아란나행을 좋아한다고 이름하셨습니다.』
무쟁삼매(無諍三昧) : 무쟁은 원어 아라나(Ara a)의 의역으로
"다툼이 없다"는 뜻이다. "다툼이 없다"는 것은 마음속에 갈등이 없다는, 즉 미혹이 없다는 것이다.
삼매(三昧)는 원어 사마디(Sam dhi)의 의역으로 산란한 마음을
한 곳에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고, 또 마음을 바르게 하여 하나의 대상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일사불란한 정신통일의 경지를 말한다. 무쟁삼매는 몰입무아(沒入無我)상태로, 한마디로 마음속에 티끌만한 갈등이 없는 상태이다.
아란나(阿蘭那) : 원어 아란야(Ara y )의 음역. 아란야(阿蘭若) 또는 아련야(阿練若) 등으로도 음역한다. 적정처(寂靜處), 무쟁처(無錚處), 원리처(遠離處)라고 의역한다. 즉 소음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서 수행하기에 적당한 숲, 들, 모래밭 등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마을에서 소의 울음소리가 겨우 들릴정도로 떨어진 곳으로 정한다. 인가와 너무 먼 곳은 탁발(托鉢)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 일체의 욕망과 번뇌를 끊어버리고 무쟁삼매의 수행을 하는 것이 아란나행(阿蘭那行)인 것이다.
⑧삼매(三昧) :
범어(梵語)samaani 音을 따 三摩地(삼마지), 三摩耶(삼마야) 또는
三昧(삼매)라고 한다.-『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즉 「마음속의 산란함을 끊고
한곳에 마음을 모아 조금이라도 흔들림 없이 바른 마음, 망념이 없는 동심의 경계」를 말함.
그러므로 삼매란 세 가지를 잊어버릴 정도로 몰두한 상태
〈① '관세음보살'을 부르다 주변을 잊어버린 상태.
②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 자신을 잊어버린 상태.
③ '관세음보살'을 계속 부르고 있으나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다는 그 자체도 잊고 한 점의 망념도 없이 정신은 오직 선명하면서도 성성히(분명하게) 깨어있는 상태로 적멸(고요)의 정신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말함.〉⇒ 염불삼매 · 참선삼매등
(대각 제 188호 부분발췌 룸비니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