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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이킹(Breaking), 당신이라는 습관을 깨라.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몸에, 또 몸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지배당하고, 그 결과 몸이 곧 마음이 되는 상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관찰자가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단지 뇌 뿐만 아니라 몸 또한 물질에 영향을 준다.
이것이 관찰자로서 외부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당신의 존재 상태이다. 우리는 주로 생각과 느낌을 사용하여 양자장과 의사 소통한다. 우리의 생각은 양자장으로 신호를 보낼 때 사용하는 중요한 도구 중 하나이다.
양자장은 단순히 우리의 소망, 감정적인 요구에 반응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의 목표, 즉 생각에만 반응하지도 않는다. 양자장은 오로지 생각과 감정이 정렬되거나 일관성을 띨때, 이 두 가지가 동일한 신호를 방출할 때에만 반응한다.
고양된 감정과 의식적인 의도를 결합시킬 때, 우리는 양자장에 놀라운 방법으로 반응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우주 안의 모든 잠재력은 사실상 전자기장을 갖는 에너지이고 확률의 파동이다. 우리의 생각과 느낌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생각들이 양자장 안으로 전기적 신호를 보낸다. 우리가 자기적으로 만들어내는 느낌은 사건을 끌어당긴다. 이렇게 생각하는 방식과 느끼는 방식 두 가지가 함께 존재 상태를 만들어 내는데, 그 상태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의 모든 원자들에 영향을 주는 전자기 신호를 발생시킨다.
만약 양자장 안의 그 잠재성과 부합하도록 존재 상태를 변화시켜 새로운 전자기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당신의 몸이 그 일(사건)에 이끌린다거나 그 일이 당신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관찰자로서 다른 존재 상태를 창조해야 하고 새로운 전자기 서명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할때, 전자기적 잠재성으로만 존재하는 양자장 내 잠재적 현실과 연결될 수 있다. 나의 존재 상태 또는 내가 내보내는 신호와 양자장 내의 전자기적 잠재성이 연결되면 내가 그 잠재적 현실로 이끌리거나 그것이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변화는 생각과 느낌이 정렬될 때에만 생겨난다. 파동이 일관성을 띨 때, 훨씬 더 강력해지는 것처럼 생각과 느낌이 정렬될 때 더욱 강력한 신호를 내보낼 수 있다.
마음과 몸이 함께 작동할 때, 생각과 느낌이 정렬될 때, 새로운 존재 상태에 있을 때, 그 때 비로소 우리는 보이지 않는 방송파에 일관성 있는 신호를 담아 내보내게 된다.
먼저 나의 내면 환경,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바꿔보라. 그리고 나의 노력에 따라 외부 환경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라. 미지의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해 보라.
예상치 못한 일이 당신에게 도움되는 쪽으로 나타날 때, 당신은 뜻밖의 기쁨을 맛볼 것이다. 이제 막 당신은 자기 삶의 창조자가 되었다. '원인과 결과'에서 '결과를 창조하기(causing an effect)' 쪽으로 옮겨갔다.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의도를 가져라. 하지만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법은 양자장에 맡겨라. 그것이 나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나에게 딱 맞는 방법으로 만들어 내도록 하라. 예기치 못한 것을 기대하라. 바라는 일이 어떻게 펼쳐질지 내맡기고 믿고 흘려보내라.
당신은 원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감사하고 당신이 바라는 일과 관련해 고양된 감정을 느낄 수 있는가? 이러한 현실을 아주 완벽하게 상상해서 지금 그 미래의 삶 속에 존재할 수 있는가?
양자장 안에 잠재성으로 존재하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은 어떤 것에 감사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원인과 결과, 내면을 변화시키기 위해 외부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에서 '결과를 창조하기, 외부에 어떤 결과를 낳기 위해 내면의 어떤 것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감사의 상태에 있을 때, 당신은 어떤 일이 이미 발생하고 있는 양자장으로 신호를 보낸다. 감사는 지적인 사고 과정 이상의 것이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바로 이 순간에 그것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야 한다.
오직 느낌만을 이해하는 나의 몸이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미래 경험의 감정적 몫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해야 한다.
"모든 물리적 현실은 시공간을 가로질러 하나로 연결된 광대한 그물 안에 존재하는 에너지" 라는 것이 양자 역학 모델의 기본 개념이다.
그물, 양자장은 모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생각(의식), 관찰, 느낌, 그리고 존재 상태를 통해 그 가능성들을 실현시킬 수 있다. 즉 현실로 붕괴시킬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반응하는 전자기력에 불과한 것일까? '생명력을 불어넣는 우리 안의 영'은 단지 생물학과 무작위성의 함수에 지나지 않은 것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왔다. 그들과 논의는 결국 다음과 같은 대화로 이어진다.
"우리의 심장 박동을 유지하는 기능은 어디에서 옵니까?"
- 그건 자율신경계의 일부분입니다.
"자율신경계는 어디에 위치해 있습니까?"
- 뇌에 있습니다. 뇌의 변연계가 자율신경계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면 뇌 안에 심장 박동 유지를 담당하는 조직들이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런 조직들은 무엇으로 구성되었습니까?"
- 세포입니다.
"그럼 그 세포들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 분자입니다.
"그 분자들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 원자입니다.
"그럼 그 원자들은 무엇으로 이루어졌습니까?"
- 아원자입니다.
"그러면 그 아원자 입자들은 주로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 에너지입니다.
우리의 몸이 우주와 같은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몸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물질 우주를 구성하는 9.9999999999999 퍼선트의 형체 없는 에너지라는 사실과 맞닥뜨릴 때, 사람들은 알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를 뜨거나, 하나의 통합 원리가 모든 물리적 현실에 스며 있다는 이 관념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리적 현실의 0.0000000000000001 퍼센트에 불과한 부분에만 온 관심을 쏟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뭔가를 놓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정보를 실어나르는 에너지 파동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힘이 우리의 물리적 구조와 기능을 만들어 낸다면 양자장은 '보이지 않는 지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가 모든 물리적 현실의 기반이기 때문에 그 보이지 않는 지성은 스스로를 물질로 조직해 왔다. 양자장과 그 안의 모든 것에 생명을 주는 것이 바로 이 우주 지성 universal intellfigence 이다.
이 지성이 우리의 심장 박동과 소화 작용을 유지시키고, 모든 세포에서 매초마다 셀 수 없이 많이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감독한다. 또한 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게 하는 것, 멀리 떨어져 있는 은하계를 생성하거나 붕괴하는 것도 이 똑같은 의식이다.
그것은 모든 장소와 모든 시간에 존재하고, 우리 안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힘을 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성은 개인적인 동시에 우주적이다.
이 지성이 우리를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로 만들어 주는 의식과 동일한 의식을 가진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이 힘은 우주적이고 객관적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우주 지성은 자기 자신 뿐 아니라. 당신과 나에 대해서도 모든 차원에서 완전하게 의식하고 있다. 모든 것을 의식하기 때문에 이 우주 지성은 우리를 관찰하고 우리에게 주의를 기울인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 꿈, 행동, 그리고 욕망을 알고 있으며, 모든 것을 물질 형태로 관찰한다.
의식의 두 가지 측면, 양자장의 객관적인 의식(지성)과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자기를 인식하는 개인의 주관적인 의식, 이런 의식의 특성을 그대로 따라할 때, 우리는 창조자가 될 수 있다. 이 사랑의 지성과 공명을 느낄 때, 우리는 그것처럼 사랑 넘치는 지성이 된다.
이 우주 지성은 주관적인 마음이 양자장에 보내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에 일치하는 사건, 즉 에너지 반응을 만들어 낸다. 우리의 의지와 마음이 양자장의 그것과 일치할 때, 또 삶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삶에 대한 양자장의 사랑과 일치할 때, 우리는 이 우주 의식을 그대로 재현하게 된다. 우리는 과거를 초월하고 현재를 치유하며, 미래의 문을 여는 고양된 힘이 된다.
목적을 가지고 삶을 변화시키려 할 때, 자신이 접촉하는 양자 의식에 신호를 요청하라. 내가 바라는 특정 결과와 관련된 동시성을 과감히 요청하라. 그렇게 요청한다는 건 이 양자 의식이 정말로 실재하고, 그래서 나의 노력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고 싶다고 용기 있게 표명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일단 받이들이고 나면 우리는 기쁨과 영감 속에서 삶을 창조해 나아갈 수 있다.
양자는 아무 몸도 없고 아무 사물도 없으며 아무 시간도 없는 감각 넘어의 영역에 존재하는 다차원적인 실재이다. 따라서 그 영역으로 들어가서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잠깐 동안 자신의 몸을 잊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인식을 외부 환경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벗어나게 해야 한다.
현실(환경)에 영향을 주고, 몸을 치유하며, 미래(시간)의 어떤 사건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외부 세계를 완전히 놓아버리고(아무 사물도 없고 no thing), 몸에 대한 인식을 내려놓고(아무 몸도 없고 no body), 시간의 흐름도 없는(아무 시간도 없는 no time) 순수한 의식이 되어야 한다.
순수한 의식이 될때, 우리는 환경과 몸, 그리고 시간에 대한 지배권을 갖게 될 것이다. 양자장의 아원자 세계는 순수하게 의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스스로 순수한 의식이 되지 않고서는 달리 들러갈 방법이 없다. '어떤 몸(some body)'의 상태로는 양자장으로 들어갈 수 없다. '아무 몸도 아닌(no body)'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
양자장의 무한한 현실 실현 가능성은 시간과 공간 넘어에 있다. 왜냐하면 잠재성은 아직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장소를 차지하거나 시간적인 위치를 점유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질적 실체를 갖고 있지 않은 것, 확률 파동이 입자 현실로 붕괴되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시공간 넘어에 존재한다.
양자장은 비물질의 가능성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바깥에 존재한다. 그 무한한 가능성들 중 하나를 관찰해서 그것에 물질적 현실성을 부여하는 순간 양자장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게 된다.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것 같은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운전에 완전히 몰입하거나 생각에 깊이 빠져 있을 때를 떠올려 보라.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으면 몸을 잊고, 환경을 잊고, 시간을 잊어버린다.
바로 이런 순간에 우리는 양자장으로 들어가는 문턱을 넘어서서 우주 지성과 함께 작업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미 생각을 다른 어떤 것보다 더 현실적으로 만든 셈이다.
당신이 과거에 그토록 변하려고 노력했어도 잘 안 되었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당신의 사고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항상 외부의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맡은 일이 이렇게 많지 않다면 군살을 뺄 수 있을 텐데, 그러면 행복할 텐데", 라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는 모두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해왔다. "만약 이랬다면 정말 그렇게 했을 거야..." 이것이 바로 '원인과 결과'의 사고방식이다.
시공간의 경계 밖에서 당신의 마음, 생각, 느낌, 그리고 존재 방식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시간에 앞서 변할 수 있고, 내면의 변화가 '외부'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본다면? 이것은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그리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마음을 바꾸는 것이 단순히 '내가 되어버린 습관'을 깨기만 하면 되는 문제라는 깨달음이었다.
나의 감각을 극복할 때, 내가 결코 과거의 사슬에 매여 있지 않다는 걸 알 때, 몸, 환경, 시간을 뛰어넘는 삶을 살 때,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
모든 존재에 생명을 불어넣는 우주 지성은 당신을 놀라게 하고, 또 기쁘게 할 것이다. 우주 지성이 바라는 것은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에 다가갈 기회를 제공하는 것 뿐이다.
위대한 지성과의 접촉이 삶을 변화시키는데 얼마나 강력하고 효과적인지 보여주는 이야기를 하나 나누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딸에게 단지 여름에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어떤 곳을 가게 될지에 대한 명확한 의도만 가질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을 경험하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또한 매일 느껴 보라고 했다.
나는 딸에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실대로 그것을 경험하는 것 같고 뇌의 시냅스가 그 정보를 현실인 양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분명하고 생생하게 그 장면을 그려보라고 말했다.
나는 딸에게 다시 한번 말했다.
"마음 속으로 이런 경험을 상상하고 나서 일어날 때는 처음과 똑같은 사람으로 일어나면 안 돼, 마치 네 인생에서 최고로 멋진 여름을 막 보내고 난 것처럼 일어나야 해"
내 딸은 '원인과 결과'를 따라가는 대신, 자신의 존재 상태를 변화시켜 스스로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딸아이는 양자 법칙에 따라 살고 있었다.
양자장에 존재하는 하나의 의도된 운명에 전자기적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딸아이의 몸은 미래의 사건으로 이끌리게 되었다. 그 경험이 내 딸을 찾아냈다.
결과는 예측할 수 없었으며,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왔다. 그 일은 동시성을 통해 일어났고, 딸의 내적인 노력에 따른 결과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어떤 기회들이 나를 찾기 위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가? 이 순간에 나는 누구로 존재하는가? 그리고 다른 모든 순간에는? 현재 존재 상태로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끌어올 수 있는가?
당신은 자신의 존재 상태를 바꿀 수 있는가?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운명을 관찰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이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의 주제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